안녕하세요. 피그씨 
 병장 이진호 06-12 10:49 | HIT : 136 



 안녕하세요. 피그씨
- 살다보면...-

 채식주의자라는 말은 너무나 교양있는 단어다.
 상추의 아삭함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닭고기의 쫄깃함과 소고기의 육즙, 돼지고기가 주는 행복함을 상추로 대체하기에는 나의 위는 서민적이다. 
 생각해보건데,  아무리 내가 축구선수 김두현을 좋아한다지만 C. 호날도와 바꾸자고 제안한다면 1초의 여유가 없이 택하듯 육식이 그렇다. 그런 거다.
 역시 교양있는 단어야. 고기가 얼마나 맛있는데.
 그것을 몰라준다는 것은 미식가인 나의 심금을 울리는 말이다.
 내 사랑을 독차지한 녀석들을 열거해보자면 대표적인 녀석으로 닭고기, 오리고기, 돼지고기, 소고기가 있겠으며 녀석들의 주특기 부위를 쪼개보자면 닭똥집, 등심, 안심, 갈매기살, 베이컨, 삼겹살, 목살이 있겠다.

 아줌마. 여기 삼겹살 2인분이요.
 숯이 들어온다. 물수건으로 손을 정성스레 닦는다.
 삼겹살이 들어온다. 불판에 오와 열을 맞추어 올려 놓는다. 주위에는 김치, 마늘, 송이버섯이 삼엄한 경계를 서고 있다. 지글지글. 지글지글.
 경계를 서던 녀석들이 오늘도 싸운다.
 너 중국산이지? 아니야. 나 메이드 인 코리아야. 너 어느구역에 있다 왔어?
 너한테서 만리장성 냄새가 나. 중국산 맞는데. 오늘도 이렇게 중국산으로 오해를 받던 마늘은 분에 못 이겨 정열의 숯구덩 속으로 빠져들었다. 나. 참. 이런.

 정량제를 실천하고 계신 주인 아주머니 탓에 안 그래도 수량이 적은 마늘인데.
 살려야 돼. 불판 속으로 젓가락을 들이밀어 마늘과 면회를 시도해본다.
 마늘씨. 괜찮아요? 싸우다 보면 패자도 있게 마련이죠.
 저기요. 아니거든요. 패자 아니거든요. 저 효녀 심청이예요.
 이런. 오해를 해버렸다. 
 매운 연기 탓인지, 놀라운 효심에 감복해서인지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래. 효성이 지극하다는데. 효자를 끌고 와서 불효자로 만들고 싶지 않기에, 내버려 두었다.

 정력에 좋다는 송이버섯에 물이 고이고, 삼겹살은 알맞게 선탠을 했다.

 지글지글. 지글지글. 상추에 삼겹살, 김치, 그리고 된장을 듬뿍 발랐다.
 입 한가득 행복이 들어오려는 순간, 이건 무슨 냄새지? 잔디 냄새인가?
 눈을 떠보니 제초작업으로 뽑았던 풀이 입가에 묻어 있었다. 아. 제길.
 채식주의자라는 말은 너무나 교양있는 단어야.

 어렸을 적, 돼지부위는 목살만 있는 줄 알았다. 
 집에서는 항상 목살을 먹었었다. 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면 목살이었다.
 엄마. 나. 닭고기. 
 그 날 저녁은 목살 두루치기였다.
 엄마. 나. 비엔나.
 그 날 저녁은 목살 두루치기였다.

 왜 고기는 항상 목살이지? 라는 생각이 들때 쯤, 나는 목살이 맛있다고 주장하는 어머니를 따라 정육점에 같이 가게 되었다. 선홍빛의 네모난 고기들이 여기저기서 뽐내고 있었다. 
 똑같이 선홍빛에 흰 줄이 들어가 있는데 이름은 달랐다. 
 등심. 안심. 돈까스용 고기, 삼겹살. 목살.
 목살은 Kg 수가 작았다. 다른 것보다 숫자가 작았다. 목살이 제일 구하기 어려운가.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게 가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날 저녁도 목살 두루치기였다.

8000 원의 통닭도, 한근의 1000원인 목살도, 고가의 소고기도 어차피 씹으면 그만이다.
 두루치기를 하면, 저녁에도 다음날 저녁에도 그 다음날 저녁에도 먹을 수 있다.
 아파트의 평수를 몰랐지만, 레고로 집을 크게 지으면 된다고 했던 내가,
10000 원이 좋은 건 알았지만 100원으로도 행복했던 내가,
 그 날 이후로 나는 조용한 소년이 되었다.

 살다보면 말이다.
 웰빙하던 사람이 다음날 교통사고로 죽어버리면 웰빙이 허무해지듯이 인생이란 그렇다.
 인생이란 그렇다. 
 비싼 걸 먹던 죽을 놈은 일찍 죽고 그렇잖아. 싼거 먹는다고 일찍 죽지 않듯이 말이다.

 채식주의자라는 말은 너무나 교양있는 단어야.
 먹고 살기에도 바쁘잖아. 돼지 녀석이 꿀꿀대며 말한다.
 고기 먹자는 말은 참으로도 내뱉기 힘든 말이야. 내가 말했다.
 효녀 되는게 이게 쉬운게 아니거든. 까맣게 그을려진 마늘이 말했다.

 돼지가 운다. 내 눈에도 눈물이 흐른다.
 안녕하세요. 피그씨. 
 돼지가 운다. 내 눈에도 눈물이 흐른다.

 안녕하세요. 피그씨.




 병장 김지민 
< 가지로> 
 진호씨, 시를 써보는 건 어때요? 06-12   

 병장 이진호 
 지민// 
 비딱하게 본다면, 수필같은 장문은 별로니까 시라도 써라. 이런 말씀인가요? 싫어요! 
 헤헤. 지민씨 같은 필력이 되질 않아서 시를 쓰기에는 무리입니다. 06-12   

 병장 진규언 
 뭐라 답글은 달아야 겠는데(혹은 달고 싶은데) 뭐 말이 안나와서 못달았네요. 그저 잘 읽었습니다. 읽은 그날도 점심 직전이라 참 배고파 졌는데,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06-14   

 병장 김지민 
 사실 묘사들은 참 참신하기도 하고, 또 탁월하기도 하고 참 좋은데 뭐랄까 
 메시지의 일관성이 좀 뒤떨어져서 뭐라 말해야 할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끙) 
 하지만 비유가 너무 좋아서, 헤헤 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