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진호씨
-굿바이, 굿바이, 굿바이-
#1. 여름냄새
냄새는 추억을 돌아보게 하는 매개체다. 즉 추억과 함께한 사물들은 고유의 냄새를 가지고 있다는 셈이다. 예를 들어보자면, 국방일보에는 재생용지 삘나는 냄새가 나고, 군데리아 빵에는 바나나 향이 난다. 여름 역시 특유의 냄새가 있다. 봄이 싱그러운 풀냄새라면, 여름은 물비린내가 약간 난다고 할까. 그런데, 그 냄새는 언제부터 난걸까?
아버지와 함께 아침 일찍 집을 떠나 고속도로에서 차 에어컨으로 무더위를 달래며 3시간에 걸쳐 도착한 곳이 유명한 논산이었다. 논산. 논과 산. 정체된 도시야. 발전이 없는 동네겠군. 논산이라는 간판을 보면서 혀를 쯧쯧 차고 있을 무렵 아버지가 먼저 차문을 열고 내리셨다.
무더운 공기가 갑자기 차 안으로 밀려 들어오면서, 묵직한 냄새가 내 코끝을 아려왔다.
이건 뭐지? 뭘까? 이마에서 한 줌 땀방울이 흐르면서, 어떤 무언가가 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여름냄새구나. 여름 냄새.
나는 그 냄새를 그 날 부대에서, 불침번을 설 까지 잊지 못했다. 답답하면서도 가슴 한 구석에 바닷물이 치는 듯한 냄새. 사격장에서 사격을 하는 내내 철모사이로 스쳐지나가는 바람도, 화생방교장에서 눈물과 콧물이 뒤범벅이 된 내게 불어오는 바람도 여름 냄새를 가져다 주지 않았다. 그 냄새. 언제 다시 맡을 수 있을까. 그렇게 나는 훈련소에서 여름의 끝자락을 지나 가을을 만났다.
이리저리 눈치보며 살던 시기가 지나고, 상병을 달았을 무렵 짚차 전복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친구 녀석의 사고소식을 들었다. 휴게실에 앉아서 하늘을 바라봤다. 높다. 참 높다. 맑구나.바람이 불었다. 그때 난 또 한번 여름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 안녕. 오랜만이야.
그리고, 1년이 지났다.
손가락으로 남은 날짜를 세는 어느 날 , 사무실을 올라오는 길에서 여름냄새를 만날 수 있었다. 이게 마지막이구나. 군대 밖에서도 다시 널 만날 수 있을까?
그러기에 삶은 바빠. 삶은 바쁜거야. 삶은 많이 바빠.
여름아. 여름아. 안녕.
굿바이. 여름냄새야.
#2. 내가 사랑하는 동기
“너랑 같이 입대한대”
그렇게 입소날 여자친구를 통해서, 녀석을 처음 만났다.
녀석은 까맸다. 하지만, 훈련소를 들어가는 길에 녀석이 까만지, 하얀지는 상관없다. 나는 슬프니까. 힘드니까. 단지 같이 가는 녀석도 불쌍하겠다 그 뿐이었다.
그렇게 녀석과는 인연인지, 훈련소에서 같이 훈련을 받고 후반기교육을 같이 받으며, 자대까지 같이 가게 되었다. 그리고 생활관에서는 내 옆에 앉아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
“야. 이거 완전 동거수준인데. 2년을 같이 보내다니.”
“사실혼이야. 이제 동사무소 가서, 신고하자.”
“됐거든. 너 여자친구가 보낸 흥신소 녀석 아냐?”
“미친 *. 아무리 염탐한다고 해도 군대를 같이 들어오겠냐?”
그렇게, 녀석과 이병생활을 같이 했고, 일병을 같이 했으며 상병을 보냈고, 병장을 달았다.
시간이 흘렀다. 녀석은 허리 춤에 있던 벨트고리가 부러져 다쳤는지 계속 앉아있었다. 나 역시도 녀석을 알게 해 준 여자친구와의 헤어짐에 많이 힘들었었다.
야. 너 근데 고향이 어디냐?
대만이다.
진짜? 대만에도 교민이 있어?
휴가중, 밖에서 인터넷 서핑을 하던 중 녀석의 몸에 새겨진 문신글귀를 검색창에 쳐봤다.
Skylab
미국의 유인우주실험실.
미국놈이었군. 대만이라니.
녀석은, 아직도 내게 사실을 말하지 않고 있다.
단지, 요즘엔 항상 평소보다 9분이 빠르다.
TV에서 9시면, 녀석은 9시 9분이다. 녀석은 나보다 2007년도 먼저 만났다.
“너, 나보다 일찍 제대하겠네”
“그래서 내가 니 고참인게야.”
그런데 어떡하지.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내 곁에는 휴대폰이 있을텐데. 그렇게 너는 일상생활속에서 잊어버릴 수 밖에 없었던 내 전우들처럼 어느 한 곳에서 생활하겠구나.
굿바이 시계.
굿바이 전우들.
#3. 옥상
날씨가 맑은 날, 공강시간에는 학교 옥상에 올라갔다. 양쪽 귀에는 이어폰을 꼽고, 옥상에 대자로 누워서 일광욕을 즐겼다. 남산타워가 보였고, 동대문이 보였다. 그리고 옆에 궁궐도 보였으며 빽빽히 들어서 있는 하숙집들도 보였다. 대학생활로 처음 온 서울에 기가 죽었던 시골촌놈 녀석은, 그렇게 사대문 안 명륜동 가장 높은 곳에서 서울을 호령하고 있었다.
으아악. 덤벼라 세상아.
하늘을 향해 소리 질렀다. 가장 높은 곳. 그렇게 나는 가장 높은 곳에 있기를 좋아했다.
군대에서 역시 마찬가지였다.
힘들때나, 답답할때 버릇처럼 가장 높은 건물 옥상에 올라갔다.
눈을 감고 한 팔을 길게 뻗어본다. 바람이 손끝을 스쳐 지나간다. 서풍인가. 동풍인가.
그건 상관없다. 어디로 바람이 불던지. 지금 난 충분히 즐거우니까. 안 그래?
183번 훈련병 이진호. 10번 교육생. 이병 이진호. 분대장.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난 여기서 이겼던 걸까. 호령했었나.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내 눈앞에는 2년동안의 내 모습들이 물안개처럼 확 펼쳐 지나간다.
안녕. 그렇게 흘러갔구나.
안녕. 이제 또 다시 학교 옥상에 올라갈 때가 왔구나.
굿바이. 군대.
굿바이. 183번 훈련병.
굿바이 책마을 식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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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전역인사를 씁니다.
내글 내생각으로 보내야 하는 건지, 전역인사로 해야 하는 건지 망설였습니다.
쪽지보내주시면, 싸이 주소 알려드리겠습니다.
지민씨, 규언씨, 준연씨. 고마워요.
부족한 제게 힘이 되주셔서 고마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