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악의> : 장르소설이 쉽게 빠지는 함정
상병 홍명교 2009-04-29 09:29:59, 조회: 185, 추천:0
최근 추리문학이라는 장르문학계에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추리소설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소설 <악의>를 읽었다. (4. 21~23)
이 소설은 무명의 아동문학 작가인 노노구치 오사무의 수기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자신과 가까운 근처에 사는 중학생 동창이었던 히다카 구니히코의 집 안에서 이상한 여자를 발견한다. 여기서부터 작가가 관객을 상대로 벌이는 함정이 시작된다. 애완고양이가 히다카가 경단에 넣은 독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생각하는 이 여인의 이야기는 하나의 맥거핀에 불과한 것이다. 요컨대, 그건 존재하지 않는 사실이며, 애초에 노노구치가 수기 안에 어떤 목적에 의해 써넣은 가상의 이야기인 것이다. 이것이 맥거핀이라는 사실은 소설의 후반에 밝혀지며, 여기에 추리를 밝혀가는 최종지점의 단초가 존재한다.
이 소설의 추리의 단계들을 하나하나 요약할 필요는 없겠다. 이번 기회에 내가 확실히 알게 된 점이 있다면, 도무지 나는, 장르소설의 재미가 무엇인지 알아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문학적 재미를 느끼는 순간은 끊임없는 전복, 권력들에 대한 풍자와 조소 같은 사건들이 개입되며 플롯을 풍요롭게 하고, 캐릭터를 매력 있게 만드는 점들인데, 이런 점들은 장르소설이 더 강하게 갖고 있는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나는 이 소설에서 그런 것들 발견해내지 못했고, 최근의 읽은 다른 일본대중소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도무지 이런 소설들에는 어떤 전율이나 강한 울림 같은 것이 없다. 지긋지긋한 뻔한 설정과 뻔한 캐릭터, 뻔하게 예상되는 다음 장면까지... 너무도 뻔해서 읽기도 전에 그 재미를 상실하는 것이다.
이 소설은 현대 일본인의 인간관계 사이에 심어진 ‘악의’라는 것을 그 소재로 삼는 소설이다. 이것은 어린 시절의 ‘이지메’라는 교육적이고 사회적인 문제, 그리고 어린 시절의 신경증에서 비롯된 정신분석학적 성찰의 심급까지 다가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내 꽁지를 내리고 교훈적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나쁜 마음을 먹으면 악행을 저지르며, 그것은 불행한 결과들을 초래하며, 결국에는 모두가 (추리력이 뛰어나고 호기심이 넘치는 형사들에 의해) 들통이 나서 단죄를 받고 말지. 그런 식이다. 아동기의 신경증의 발원까지 다가가는 듯 하면서도 깊이 있는 성찰을 보여주지 못하는 점은 현대사회의 정신질환이 빚어내는 수다한 비극들을 ‘사회화/문제화’시키지 못하는 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사건으로 시작해서 사건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모든 갈등이 일소에 해결되는 방식으로 마무리된다. 독자는 마주했던 갈등들이 해소되었다는 착각을 하게 되는데, 이 소설의 경우 작가가 계기들마다 시점을 바꾸는 다소 얄팍한 태도도 일조한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독자가 사건 내에서 당연시되던 것들을 뒤집는 효과를 발휘하는 장치로서 시점의 변환을 차용하는데, 중반부터는 이런 스타일적 시도마저 쉽게 예측되는 흐름으로 바뀌기 때문에 지루함을 줄 뿐이다.
이런 식의 수다한 설정과 수사결과의 번복들은 이야기가 여러 차례 뒤집히는 추리소설 장르의 재미효과를 위해 배치된 장치들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게다가 다분히 설명적이기까지 하다. 작가는 형사 가가의 수사기록일지라는 얄팍한 구조를 빌어 추리들의 사이사이에 있는 ‘맥락’들 모두를 설명 하려든다. 이런 점은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에서는 주요한 역할을 분담한 ‘설명자’의 몫이기도 할 것이다. 추리소설 장르에서 범죄자가 밝혀지고, 그의 범죄사실을 100퍼센트 설명가능한 것으로 추리해내는 ‘탐정’이 모든 혐의 고백이 끝난 후에 적나라하게 그에 대한 부연설명까지 구태의연하게 붙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요소인 것처럼 존재해온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장르소설 또는 대중소설이라는 이유 하나로 설명적인 교훈소설이어야 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장르 안에서 이것은 과연 필연적인가? ‘장르문학’의 구태의연함을 극복하는 것과 장르성을 지키는 것은 대치되지 않는다. 철저히 장르적이고자하는 소설가에게 장르적 경계를 깨뜨리자는 엄한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장르구조 안에서의 장르의 발전을 요구하는 것이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1
15:37:55
병장 김형태
이제사 덧글을 다는군요. 명교씨의 독서후기 항상 잘 보고있습니다.
장르소설이 쉽게 빠지는 함정은 그 장르이기에 존재할 수 밖에 없는 한계라는 것을 심감할때가있습니다. 사실 명교씨처럼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느낀바는 없지만 말이죠. 뭐 그 형식에 대해서는 항상 답답하게 느낄 때도 있었습니다만, 왠지 익숙해졌다고 해야할까요. 새로운시도들이 필요하다기 보다, 기존의 틀에서 깨어지는 것이 어려워보이지는 않습니다만 작가들의 상상력은 명탐정 코난뿐인가봐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소설들도 있다 말하고 싶습니다. 한국, 일본 특히나 일본의 경우에는 위에 적어주신 것처럼 항상 같은 형식의 지루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홈즈시리즈의 경우나 유럽의 추리소설들은 조금씩 다른 내용들을 다루고 잇기도하고, 그쪽에서는 일상의 행위들 일지 모르겠으나 우리에게는 새롭게 다가오므로 읽을때마다 새로운것같습니다. 2009-05-01
07:59:05
일병 박준우
독서후기 잘 보았습니다.
저도 장르소설에 크게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건 마찬가지지만 '악의'라는 책에서 특별하게 느낀점 한가지라면 보통의 추리소설과 달리 주인공이 철저히 자신이 범죄자로 남기위해 노력했다는 점이 참신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뭐 어쩌면 제 독서가 짧아서 특별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장르소설이라도 한가지쯤은 특별하게 보이고픈 특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작은 차이점을 찾아내는것이 장르소설을 읽는 하나의 재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