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의 꿈나라 : <아케이드 프로젝트>소개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신의 유럽탐방기에서  파리의 인상에 대해 상품으로 가득 채워진 이곳에 물신주의적 분위기의 팽배에 협오감을 내 비치었다. 악마 바알의 도시, 파리라고. 파리를 수놓는 음란한 매춘행각과 내놓여진 창녀는 뻔뻔하게 상품화 되어 아케이드의 쇼윈도에 내놓여진 상품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혹은 상품이 매춘형식을 띄고 있었다. 리비도적 욕망이 매춘 행위 너머 상품과의 관계를 마저 규정하게 되었으며, 이로 말미암아 매춘은 상품의 가장 오래된 형식이 되었다. 

각설하고 <수잔 벅 모스의 아케이드 프로젝트>중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정리하고 그에 관통하는 한 대목을 읽고 넘어 간다. 아케이드에 대해, 벤야민은 특정한 전통의 파국, 폐허로 남겨진 지난세기의 현상을 ‘유산’으로 읽어 볼 단초로서 총체화 해 놓았다. 호화로운 상품과 그들의 유행?퍼레이드로 수많은 산책로 장악한 파사주들, 즉 영어로 아케이드라 불리는 상점들의 지난세기의 이미지를 그리며(*오늘날로 치면 상점이 즐비한 명동, 압구정등과 같은 (지방 표현으로) 시내쯤으로 치면 될 것 같다). 아케이드에 관해 그가 기술할 시점을 보면 이미 퇴물 격으로 나이 든 상품들이 모여드는 폐허에 지나지 않았다. 그에 의하면 폐허의 이미지는 “자본주의 문화의 무상함과 허약함의 우의형상일 뿐 아니라 자본주의 문화의 파괴성의 우의형상”이고 “역사적 이미지들을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재현하여, 자본주의적-산업주의적 경제 형태를 훨씬 순수하고 맹아적인 단계”이다. 그의 연구는 이를 가시화하는 것이다. 

일부를 따라가면 파리의 곳곳엔 아케이드들이 산책로를 점유하고 설치가 되었다(근래에는 달리 상점이 들어섰기에 산책로가 조성된다). 군중의 이미지를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로 반영되고 유행을 i는 소망들이 이 곳 파사주들을 점유한다. 이러한 “파리의 스펙터클이 ‘환등상’-착시를 이용한 환등의 영향으로, 상들이 수시로 크기를 바꾸어 상들이 뒤섞인다.” 의미를 잃은 사적인 꿈들이 채워진 상품의 형식들은 지침이 없이 진보한다. 상품은 (성취 불가능한 억압된) 소망으로 꿈의 공간으로써 옮겨 향락된다. 그러나 “최근에 지나간 유행은 상상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성욕을 감퇴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이 ‘유토피아의 배반’은 진보를 통해 매회 소망의 충족이 거듭되기를 원하였다. 그들이 가진 유토피아적 이상은 한시적이었지만 그들의 진보에 대한 자신감은 가히 신화적임을. 인간이 전능하다는 신화, 인간적 가공이 자연을 지배할 수 있고 세계를 인간의 이미지로 재창조 할 수 있는 신화에 의해 추돌된 유행은, 반복되어왔건 간에 신형을 찬미한다. 그들은 신형의 창조를 위하여 거듭 레테(망각)의 강물을 마시어 모든 과거를 망각하여야 했다. 유행이 자극하는 신형에 대한 갈증을 채우려 할 때 집단적인 역사적 기억도 비슷한 입장을 처한다. “유행은 치명적인 망각의 영향을 집단적으로 보상하는 약품이다.” 소비자의 잠재적 유토피아는 명시적 차원에서 미래의 한없는 진보와 계속되는 변화로 나타난다. (생시몽주의에선) “산업경영자의 이익이 실제로 인민대중의 이익과 일치 한다” 그러나 잠재적인 차원, 즉 꿈꾸는 사람의 소망차원에서의 미래는 부르주아 계급지배의 영속화를 표현한다. 부르주아 계급을 집단적 꿈의 생성자로써 간주한다면 그러한 꿈을 양면적 욕망의 상황에서 자기의 이윤을 얻고 있는 산업생산을 긍정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는 동시에, 산업주의가 자신의 계급 지배의 존속을 위협하는 조건을 창조를 부정한다. 

<파사젠베르크>에서 반복적으로 보여주듯, 근대성의 동인은 꿈 ‘소망’의 왜곡된 형상으로서 과거를 복원하려는 소망이 아니라, 인류가 줄기차게 표현해온 유토피아에 대한 욕망을 복원하려는 소망이다. 그리고 이를 사회적 유토피아를 향한 집단의 욕망을 의식화하고, 그러한 욕망을 물질적 형식의 “새로운 언어”로 번역하여 그러한 욕망을 성취할 새자연의 잠재력을 의식함이 진보적인 문학형식을 위한 벤야민의 첫걸음이었다(그의 이론은 초현실주의와 프루스트,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의 요소를 세대인지와 아동인지의요소와 합성한다. 그리고 이러한 합성물을 연결하는 것은 물리적 방식이 아니라 문학적 방식이다).

산업진보가 자연적으로 출발점을 여겨질 때 신화적 오류는 자연에서의 진보를 역사에서의 진전으로 오해할 경우가 생긴다. 이렇게 구성된 새자연은 생산수단 차원에서 실제적인 진보를 보여준다. 사회 진화가 더 이상 신화가 되는 때를 역사의 야만, 자연적으로 규정하지 않는다(이런 역사관에서의 사회는 먹이사슬 관계라는 흔한 은유처럼 야만자체가 역사의 진전 원동력으로 탈바꿈된다). 역사의 이러한 분위기 속에 유행은 전근대 이전과 달리 빠르게 전개 되었고 자연의 경계를 변했다. 사회 변화의 속도는 회를 거듭할수록 더욱 속력을 낸다. 이처럼 한 세대만에 대상물들의 집단적의미가 완전히 바꿔버린 세계에서는 부모들이 더 이상 조언 하지 못하였으며, 자녀는 ‘스스로 만들어낸 장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전통은 단절되고 “옛날의 선사적 전율이 이미 우리의 부모의 세계를 둘러쌌다. 전통은 더 이상을 우리를 구속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지만 벤야민은 이러한 상황에서 근대성 특유의 혁명적 잠재력을 보았다. 전통의 단절은 상상력을 보수적 제약에서 해방하며(전통이 영속을 유지한 반면), 사회변화의 과제 즉 끊임없이 전통의 원천이 되어온 지배의 사회적 조건을 단절하는 과제를 수행한다. 그래서 벤야민은 “우리는 우리부모세대로부터 깨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가 혁명의 가능성을 간직하는 한 벤야민은 현재"를 꿈꾸는 과거가-지향하는 깨어나는 세계로 긍정적으로 -목적론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우리는 여기서 지난세기의 키치를 ‘깨우는’ 자명종 시계를 만든다"). 

“프롤레타리아에게 19세기 문화의 폐기물은 여전히 도달할 수 없는 삶을 상징했다. 부루주아 지식인에게 그러한 폐기물은 존재했던 어떤 것의 사라짐을 상징했다. 한편 상품문화가 두 계급 모두에게 초래한 양식상의 혁명은 사회혁명의 중형식 -부루주아 사회의 맥락에서 가능한 유일한 형식- 이었다. 새로운 세계가 경험한 바로는 “최근에 지나간 유행은 상상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성육을 감퇴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이러한 유행을 “정치적으로 중요한”것으로 만들었으며, 따라서 지나간 세대의 유행과의 조우는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부모의 꿈나라에서 버려진 소도구를 진보의 환등상이 현실이 아니라 무대 위의 스펙터클임을 보여주는 물질적 증거였다.” 동시에 이러한 유행이 지난 대상물은 유년시절 기억의 거리로서 상징이 가지는 의미론적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벤야민의 논평에 따르면 카프카에게 ”‘우리’세대의 경우에 한정하여 말하자면(···)본격 자본주의가 시작되던 당시의 무시무시한 내용물은 유년시절의 찬란한 경험의 명소로 느껴졌다.“ 아동기의 잃어버린 세계를 회복하려는 욕망을 과거에 대한 한세대의 관심을 결정했다. 그러나 깨어나는 욕망을 결정한 것은 한세대의 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성인으로서의 필요였다.”<수잔 벅모스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중요한 부분인데 약간이라고 하나 흠 탓에 안심하고 읽어 볼 수 만은 없다. 그런 기분에 다시 음미하자니 처음 부분부터 편치 않다. “과거와 현재의 병치를 감지하게 하는 인식의 “충격”은 진리와 같다“처럼 독특한 벤야민의 (골격이라 예단할 수는 없지만) 역사철학 테제로써 읽어 보아야 한다. 그러나 대목 중 크게 ‘난황’으로 이끄는 오역, 과연 ‘무시무시한 내용물은 유년시절의 찬란한 경험의 명소’로 느껴졌다‘는, 그 무시무시한 잃어버린 세계를 과연 회복하려는 욕구는 드는가? 이 곤경은 벤야민의 역사철학을 인위적으로 이끌고 무료한 텍스트로써 답습하게 된다(글 전체의 짜임새를 느슨하게 한다).  


고쳐 보자면 ”‘우리’세대의 경우에 한정하여 말하자면(···)본격 자본주의가 시작되던 당시의 무시무시한 내용물은 유년시절의 찬란한 경험의 명소로 느껴졌다.“ 는 ”‘우리’세대의 경우에 한정하여 말하자면(···) 아마 찬란한 경험의 명소로써의 유년시절은 본격 자본주의가 발현하던(접하던) 그 당시 무시무시한 내용물을 기억한다.“ 쯤으로 수정할 수 있다(조합수준이지만). 요지 상 기억 내의 상징이 가지는 ‘의미론적 내용물’은 “부모의 꿈나라에서 버려진 소도구를 진보의 환등상이 현실이 아니라 무대 위의 스펙터클임을 보여주는 물질적 증거였다.”등치 된다. 다시 말해 ‘무시무시한 내용물’이 찬란한 경험의 명소(*명소보다는 장소정도로 강세를 낮춰 읽을 필요가 있다. 찬란함은 경험의 장소에 있지 명소로 발하는 건 아니다)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며 무시무시함은 경각심의 환기를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프카의 유년시절에 대한 이야기는 그의 믿음에 대한 구체적 사례이다. 정치적 필연는 정치적 책임/답해야(깨어나야) 하고 이는 성인으로서의 필요와 아동기의 기억과의 팽배한 대치된 상태이어야 가능하다. 따라 벤야민의 아케이드의 산책은 ‘아케이드(과거)를 눈부신 쇼윈도(현대)와 병치될 때’ 근대사의 본질이 수수께끼로 표현해야하는 책임(응답)과 함께 이루어질 수 있다. (이는 실용주의적 역사에 대한 비판과 유물론자들이 제시하는 문화사에 대한 비판이며 다른 하나는 정신분석학이 유물론적 역사기술의 주제에 대해 가지는 의미로서의 방법적 두 형식이다)


이후 그의 연구는 그리  긍정의 입장을 취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1930년대의 사태들은 과거를 완전히 다른 성좌로 편성했다. 특히 1937년 이후에는 묶음 틀에서 기록된 이미지들이 간직한 유토피아적 광채가 덜해진다. ”보다 인간적인을 예표“하기보다는 현재에 대한 절박한 경고를 발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새로운 정치적 가능성의 이미지가 아닌 반복되는 정치적 위험의 이미지이다.” <수잔 벅모스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그는 <아케이드 프로젝트>와 유서와 함께 나치의 침략으로 파리에서 스페인으로 피신하던 중 그의 자살과 피신한 일행 중 여인에 의해 행방이 묘연하게 되었다. 그러나 미완으로 남은 그의 저작노트는 파리 도서관의 조르주 상드의 문서고에서 발견되었다. 이러한 탓에 그의 연구의 매력은 아마 이러한 미스테리한 곤경에 대한 누군가의 구원을 간절히 요한다. 그건 벤야민, 영광의 자리를 채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게 아닐까?물론 발터 벤야민이라는 맥락 아래에서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