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이의 나는 처음에는 순전히 백화점에 쇼핑하러 간 어머니를 따라가서는, 백화점 서점의 한 구석에서 책을 읽으며 어머니의 쇼핑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어린 아이였습니다. 그 때의 그 어린 아이는, 서점에서 집어들었던 책의 이야기에 끌려 어머니의 쇼핑이 가능한한 늦게 끝나기를 바라며 행여나 한 글자라도 놓칠까, 행여 읽지 못하고 지나가는 책이 있을까 전전긍긍하며 문자를 읽어댔었더랬죠. 집에 돌아오면 집에 있는 책을 읽었고, 그것도 모자라서 주위에 책이 많은 친구들 집을 찾아다니며 빌려 읽었습니다. 그 때 착한 아이는 아홉시면 자는 거라고 부모님은 아이 방의 불을 항상 끄셨고, 아이는 그 때부터 잠이 들기까지의 시간도 아까워서 희미한 주홍빛 백열등을 켠 채로 책을 읽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나이가 들었던 어느 날엔가, 그 때까지의 아이는 단지 '이야기'에 걸신이 들린 것처럼 이제까지 문자를 읽어들였었지만, 이야기는 무한했고, 죽을 때까지 읽기만 하더라도 모든 이야기를 다 읽지는 못할거라는 것을 깨달아버렸습니다. 아이는 고민했지요.
그 때 어머님의 말씀은 간단했습니다. '좋은 것을 읽으라'고 하셨죠.
그래서 그 아이에게는 무엇이 '좋은 것'인가 하는 고민은 그다지 하지 않고서는, 어머니가 가져다 주는, 그리고 추천해주는 책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계는 왔습니다. 어머니의 독서량도 그다지 많다고 할 수는 없었던 데다가, 어머니가 아이에게 추천해 줄 수 있는 책들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었었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했던 것은, 어머니가 추천하는 책 중에서는 '재미없는 이야기'가 너무 많았습니다. 재미없는 이야기를 읽어들이다 보니, 아이는 책 읽기에 흥미를 잃었습니다. 직접 골라 읽던 책들은, 하다못해 서점에서 표지가 예뻐서 집어들었던 책도 재미있었는데, 어머니가 가져다 준 책들은 재미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죠.
신기했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표지만 보고 집어든 책들은 재미있었는데, 왜 어머니가 가져다 준 책들은 그렇지 않은 것인지. 결국 아이는 추천따위는 포기하고, 그냥 '내가 고른' 책들을 집어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한계는 다시 찾아왔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했었던 아이가 책을 집어들기에는 시간은 부족했고, 직접 골라서 든 책들의 이야기는 재미가 있긴 했지만 그걸 읽었다고 해서 친구들에게 자랑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학교 문구점 앞에서 팔았던 드래곤 볼 다음 권을 읽으면 자랑을 할 수 있었지만, 아이가 읽었던 책들은 자랑하기에 적합한.. 그런 책은 아니었거든요.
아이는 그 때부터 친구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책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만화책이었지요. 손오공과 대마왕의 천하제일무술대회의 결말을 반 아이들 중 누구보다도 빨리 알아내서 자랑하기도 했었고, 슬럼프 박사의 아라레와, 뽀글머리 박사가 만든 로봇과의 대결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가장 먼저 알아내서 자랑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 아이는 그렇게 친구들에게 자랑하며 만화책을 읽었다는 이유로 어머니한테 매우 맞았습니다. 맞으면서도 이해하지 못했죠. 책은 좋은 거고, 난 그걸 읽어서 친구들에게 이야길 했을 뿐인데 왜 맞아야 할까. 이 책은 왜 내가 읽어서는 안 될까. 만화 삼국지나 만화 세계사는 되는데 왜 드래곤 볼은 안 되는 것일까.
그 때 이후로, 아이는 예전처럼 걸신들린 듯 문자를 탐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의 뜻에 따라 열심히 공부하는 모범생이자 우등생 소년으로 변하게 되었죠.
앎이란 것이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다는 것을 몸소 실감하였고,
안다는 것을 나불거려서 가끔 나쁠 때도 있다는 것을 체험하였으니까요.
#2.
소년은 공부를 잘 했습니다.
아마 그렇게 된 것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소년의 어머니였을 겁니다.
행여나 그 소년이 만화책에 좀 지나친 탐닉을 한다거나, 오락실에 새로 등장한 용호권이나 아랑전설2에 매달리느라 성적이 떨어지면 그 소년에게 세상이 끝나기라도 할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주셨거든요. 덕분에 그 소년은 반에서는 대부분 1등이었고, 전교 등수도 한자리를 거의 유지했습니다. 행여나 반 성적이 2등으로 떨어지거나, 전교 등수가 두자리 대로 밀려나거나, 가끔 그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나기라도 하면 문자 그대로 소년에게 '세상의 끝'을 보여주셨죠.
그래도 소년은 책 읽는 습관을, 특히 만화책을 읽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다만 조금 바뀐 게 있다면 소년은 부모님이 안 계신 곳에서는 슬램덩크와 블랙코브라, 천재들의 합창 따위를 읽었지만, 부모님이 계신 곳에서는 소설을 읽거나, 만화책이라고 하더라도 '먼나라 이웃나라', '만화로 읽는 자본주의 공산주의', 그리고 '만화 세계사'를 읽는 잔머리를 발휘했었다는 것이겠지요.
하필이면 소년이 읽었던 '허용된 만화책'들은 공통적으로 자본주의의 승리와 공산주의의 패배를 모두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소년의 눈에 보이는 세상 또한 그러했었지요. 중학교에 들어가기 얼마 전에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고, 힘센 톰아저씨도 두려워했던 나쁜 소련은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가, 다시 붙어보려고 꿈틀대는 시절이었거든요.
하지만 동시에 소년은, 학원을 오가려고 시내에 들어갈 때마다, 무엇인가를 외치면서 거리를 행진하는 대학생들을 보곤 했습니다. 의아했습니다. 방송에서, 신문에서, 그리고 책에서 모두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조합이 이겼다고 하는데, 왜 저 사람들은 그게 나쁘다고 하는지..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려고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릴 때, 그 따가운 최루탄 때문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고민했었지요.
그러다가.. 소년이 대학에 들어갈 때 쯤 되면 논술을 해야 한다면서 소년의 어머님은 소년을 이른바 '논술학원' 이라는 곳에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그 논술학원에서 소년의 반 강사는 이른바 학생스포츠를 열심히 했던, 나이가 지긋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강사는 소년의 지식 뿐만이 아니라, 다른 지식이 있다는 걸 소년에게 알려주려고 무던히 애를 썼습니다. 소년이 알고 있는 다른 쪽의 세계는 패배자의 질투에서 생겨난 실패한 세계였지만, 그 강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모 주방용품 업체의 공장에서 일하면서 하루 종일 공장에서 일 해봐야 달랑 몇백원을 받던 시절을 이야기해 주면서 소년에게 물었습니다. 너라면 어떻게 했었겠느냐면서, 너라면 어떻게 해야겠다고 생각하겠느냐면서요.
소년은 아노미에 빠졌습니다. 소년이 알고 있던 세계는 좁디 좁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소년이 반항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소년은 이제까지 쌓은, 또래에 비하면 꽤 두텁지만 40대의 강사 앞에서는 얄랑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로 반항을 시도했지만, 그 때마다 번번이 깨지고 또 깨졌습니다. 처음에는 그게 분했지만 방법이 없었죠. 소년이 아는 정도는 그 강사도 알고 있었고, 그 강사는 소년이 모르는 이야기를 들고 나와서 소년을 번번이 패퇴시켰거든요. 학교의 다른 경쟁자가 그랬다면 교과서를 열심히 보면 그 친구를 이기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지지는 않을텐데.. 40먹은 강사를 이기려 할 때에 어떤 책을 보아야 할지, 또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할지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른' 책을 읽으라구요.
하지만 소년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권한 '다른'책을 읽으면 내가 아무리 잘 해봐도 저 선생님을 이길 수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20년이 넘는 시간차라는 것이 쉽게 좁혀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오히려 내가 이제까지 읽었던 책들을 다시 씹어보고, 또 파고들어야 그 선생님을 이길 수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선생님도 사람인데 완벽할 수는 없을 거라고 믿으면서 소년은 한 동안 잊고 살았던.. 어린시절처럼 걸신들린 것처럼 책을 읽어대기 시작했습니다. 읽은 책 중에서도 놓친 것이 있을까봐 두번 세번을 읽었고, 참고 도서에 나왔던 책들도 읽었습니다. 선생님한테 지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요.
처음에 학원을 보낼 때에는 몰랐지만, 그 학원 선생이 빨간 물이 든 사람이라는 걸 소년의 부모님이 알기까지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학원을 그만 보내려고 하셨지요. 하지만 소년은 끊고 싶지 않았습니다. 소년은 부모님께 나는 그 선생님의 이야기가 옳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결코 물들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부모님은 반신반의하셨지만, 그래도 소년을 믿고 계속 그 학원에 보내주셨죠.
(훗날 어머니 말씀으로는.. 일주일 내내 축 늘어져 있다가, 학원에 다녀오면 생기가 돌았답니다. 아마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그 학원에서 풀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겁니다.)
그렇게 책을 읽고, 또 선생님께 지지 않기 위해 계속 궁리를 거듭하면서, 소년은 조금이나마 '내 머리'로 생각하는 법을 깨우쳤습니다. 또, 선생님과의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선생님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수업을 듣는 친구들을 설득하면 된다는 사실도 알아냈습니다.
그것이 조금 먹혀듭니다. 소년은 기뻤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소년이 이길 때면, 그 선생님은 조금은 슬픈 눈빛으로 소년과, 같이 수업을 듣는 소년의 친구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하나씩 던지고는 했습니다. 처음에는 패배자(?)의 애달픈 헛소리 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계속될수록, 소년에게는 차츰 의문이 쌓여갔습니다. 이런 논술학원에서 선생님을 이긴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되는지. 그럴 이유가 있는지. 그리고 아무리 공부하고 고민해도 내가 모르는 세계, 내가 알지 못하는 사상과 생각과 상념들, 그리고 내가 경험하지 못하는 것들이 쌓여있다는 압박감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이 오래 가지는 않았습니다. 소년은 어떻게 공부해서 어떻게 길을 찾아야 하는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쌓여있는 상념과 사상과 고민 모두가 곱씹을 가치가 있는 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년은 이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풀어서 다른 이에게 이야기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그렇게 타인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광대하고 무한한 앎의 세계가 두렵지 않았었지요.
소년은 그 이후 괜찮은 학교에 괜찮은 학과에 들어갔습니다.
적어도 소년의 여자친구 부모님이, 딸의 남자친구 학교를 물어볼 때에
그 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정도는 되었으니까요.
#3.
대학에 들어가서.. 소년은 당황했습니다.
첫번째로 당황했던 것은.. 한 학번 위의 선배들이 와서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서 소년을 여기저기로 끌고 다녔던 겁니다. 하지만 그게 소년에게는 우스웠습니다. 소년은 이미 1년 반 정도 그 '선배'들보다 훨씬 무시무시한 사람과의 하드트레이닝을 거친 상태였거든요. 어설프게 물이 들었던 선배는 소년에게 개박살이 나서 돌아가고는 했습니다. 아주 통쾌했지요.
두번째로 당황했던 것은.. 소년과 다른 세계에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뉴스에서나 보던 부유층은 아닐지라도, 그에 버금가는 생활을 하는 이들이 꽤 많았습니다. 소년은 그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고, 스키장엘 가고, 온갖 유흥거리를 즐겼습니다. 하지만 안타까웠던 것은, 소년의 지갑은 그들만큼 두툼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덕택에 소년은 그들과의 유흥을 위해서, 학교와 학과를 팔아서 열심히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고 다녔습니다. IMF이전에는 한 집에서 월 80도 받았다는 한 선배의 말에 아쉬워하면서요. 친구들과의 최소한도의 유흥이 계속되려면, 소년은 주2회 2시간의 아르바이트를 적어도 세 개는 뛰어야 했습니다. 남들은 대학 다니면서 연애도 하고, 놀기도 하고, 공부도 한다는데, 적어도 소년은 아르바이트와 유흥 두 가지 하기도 벅찼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난 뒤에, 소년은 논술학원 선생님을 어쩌다 만났습니다. 설전을 할 때에야 목에 핏발을 세우면서 떠들었었던 사이지만, 사실 소년은 그 선생님을 참 좋아했거든요. 학교 근처 술집에서 당시 그 학원에 다녔던 다른 아이들과 함께 술을 푸면서.. 선생님은 소년의 근황을 물었습니다.
그런데... 할 말이 없었습니다. 아르바이트와 유흥. 이 두가지 뿐이었거든요. 선생님이 그에 대해서 별반 말씀은 없었지만, 소년은 그게 죄송했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웠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선생님께 예전보다 무뎌진 것 같다는 한 마디만을 들었을 뿐인데.. 사실 잊고 지나가면 그만인데도 그것이 잊혀지지가 않았습니다. 꿈에서도 선생님이 나타나서 소년을 비웃는 악몽을 꾸곤 했습니다. 그 때까지 얄랑한 선배들 박살낸 것이 자랑인 것 마냥, 그리고 그것이 모든 이들을 박살낸 것처럼 우쭐했었던 것이 창피했습니다.
소년은 유식해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철학 동아리에 들고, 어려운 책을 읽고, 조급한 마음에 유흥과 아르바이트를 접고 한 동안 학구적인 생활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노는 맛'을 알아버린, 그리고 머리도 적당히 커 버린 소년은 철학 동아리에서의 세미나가 무의미하게 느껴졌고, 데리다건 라캉이건 그 누구건 뭐라고 이야기하든 간에 웃기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세계가 어떻게 되건 말건 말장난만 한다고 해서 무엇이 바뀌는 게 아니지 않느냐고 생각하면서요.
그 시기에, 소년은 자기 자신을 전적으로 믿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소년은 자신이 언제나 옳지는 않다는 것도, 그리고 언제나 틀릴 수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자신은 게으름뱅이면서, 동시에 얄랑한 지식으로 떠들어대는 입담만 있을 뿐, 정작 쌓여있는 것은 없는 빈 껍데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모든 지 앞에 완전히 자신을 비우고 다가갈 수는 없으리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차라리 그럴 바에는 프랑스의 어떤 개똥철학자처럼 항상 의심하고 또 되돌아보아야만 자신이 막나가는 독불장군이 아닌, 그나마 보아 줄 만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언제나 틀릴 수 있다.. 가 소년의 제 1명제로 자리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입증하지 않은 이상에는, 아무리 소년이 보기에 되지도 않는 이야기를 하는 이가 있다고 할 지라도, 그 전까지의 가열찬 비판과 비난과 냉소의 삼중주보다는 상대에게 그냥 반문을 한 번 던지기로 했습니다. 내가 나 자신을 믿고 있는 것만큼이나, 다른 이들 또한 자기 자신을 믿고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동시에 자신에게도 한 번 반문을 해 보기로 했습니다. 어쩌면 그 '얼토당토 않은' 말이 소년이 틀렸다는 깨우침을 줄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게 소년은 청년이 되었고, 그 청년은 2년간 군대에 있다가 이제 전역을 앞두고 있습니다.
글쎄요. 그 청년은 이제 어떤 명제도 완벽하게 신뢰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가 붙잡고 있는 것들이 옳은지 그른지 잘 알지 못하는 탓에, 그는 항상 회의하고 또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2년이라는 기간 동안에는 가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피로할 때가 있기도 했었고, 간혹 그 '피로함'을 이유로 그런 노력에 눈을 감기도 했었죠. 하지만 이제 사회에서는 그런 어리광따위는 용납되지 않을 겁니다. 부단히 자기 자신을 단련하고 예리하게 날을 세워야 할 겁니다.
청년은 이제 좋은 책, 다른 책 이 아닌 자신의 책을 읽으려 합니다.
앎이라는 것, 그리고 살아간다는 것은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을 테지요.
또 혹시 모르지요. 그렇게 부단히 날을 세우다 보면, 눈을 감기 전 언젠가는 진리의 끝자락 하나쯤은 손에 쥘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일테니 말입니다. 청년이 자신의 책을 찾는다면, 어쩌면 죽기 전에 무엇 하나라도 쥘 수 있는 확률이 개미눈꼽만큼이라도 늘어날 지도 모릅니다.(라고 본인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디 책마을의 모든 분들이, 살아가면서 진리가 되었든 사랑이 되었든,
어떤 무엇인가의 끝자락 하나쯤은 손에 쥐시길 기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