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에 대한 슬픈 자기 소개서와 부끄런 자신감 
 
 
 
 
나는 랩에 썩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진 않았지만, 우연히 케이블 채널에서 다이나믹 듀오의 <불면증> 뮤직비디오를 본 후부터 그들의 노래를 꽤 신경 써서 찾아듣게 됐다. 그들은 <고백>에서 이렇게 노래를 토해낸다. -이건 슬픈 자기소개서. 그렇다. 이 글은 나의 슬픈 자기 소개서다. 그리고 <불면증>에서 나를 매료시키던 그 노래 가사와, 거칠게 헐떡이며 내뱉던 그들의 처절하기까지 했던 flow처럼, 때때로 밤늦도록 잠 못들며 초라한 슬픈 표정의 자화상이나 그려대는 불쌍한 청춘인 바로 나의 이야기다. 

얼마 전에 쓴 독서후기에 달린 댓글들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김대현씨와 마성은씨의 대화가 머리에 한동안 맴돌았다. 사실, 그 대화는 청천벽력 같이 깜짝 놀랄만한 특별한 내용이 아니라, 사회의 주도권을 쥔 정체불명의 집단인 ‘주류’와 그 대척점에 외로이 선 ‘비주류’ 사이에서 갈등할 수 밖에 없는 이 시대 청년들의 공통된 고민이었다. 그들의 고민은 대개 몇가지 유형이다. 주류에 완벽히 편승하느냐, 비주류로 사느냐, 적당히 타협하느냐, 빡세게 저항하느냐, 등등. 사실, 주류로 훌쩍 뛰어오르는 것도 내 맘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세이노 씨의 칼럼을 한편이라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독하게, 빡세게, 한가지에만 집중해서,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손익을 판단하는 이성은 냉철하게, 성공을 향한 열정은 터져버릴 정도로 뜨겁게. 그렇게 가야한다. 그래야 될까 말까니까. 어쨌든 나의 고민은 대충 이 언저리에서 여전히 맴맴 돌아다닌다.  

개인사를 조금 읊어보면 대학교 전의 나는, 의지가 굳건한 지사의 기질도 없고, 적당히 유약하고 소심한 성격이라 그냥 생각만하고 책상에서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면서 하고 싶은 일 찾아서 하고 가끔 친구들에게 입바른 소리하다가 핀잔이나 듣고, 공부를 좀 한다는 이유로 날 나쁘게 보지 못하셨던 선생님들 앞에서 종종 자습 도망가는 친구들 보호막이나 쳐주며 그렇게 살았었다. 나는 정체가 늘 모호했다. 아예 모범생도 아니었고, 기존 질서를 거부하며 무언가 자기만의 세계를 꿈꾸는 멋들어진 반항아도 아니었다. 나의 굴레는 늘 그 모호함이고, 내가 쓰는 뭔가 모자란 글처럼 그 모호함은 내 안에 온전하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들을 가슴에 품으며 산다. 권력이 집중되고 부가 대물림 되는 것을 무조건적으로 비판하고, 시대와 대결해나가는 것은 파편화된 개인들이 아니라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의 연대로서 가능하다고 믿는다. 능력 있고 꿈 많은 학생들이 입시에 질려 의,약, 한의대로 몰리고, 대학생들은 태반이 고시생인 이 현실은 그들이 사회 속에서 날개짓 한번 해보지도 못하고 그저 폴짝폴짝 뛰는 스스로가 낯선 새가 되는 부조리라고 울분을 토하며 그건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국가의 ‘성장’이라는 면에서도 심각한 상태라는 것에 동의한다.

그런데 나는 소외된 사람들을 나는 그런거 잘 모른다는 이유로 외면하고, 세상이 살기가 빡세다는 이유로 자기 앞가림을 일단 우선하려는 사람들을 여럿, 꽤 여럿 알고 있다. 당장 집안에서 국가 경제를 온몸으로 고되게 체험하고 계시는 부모님은 물론, 의대를 가려고 네 번이나 수능을 봐야했던 나의 제일 친한 친구도 있으며, 4년을 아슬아슬 졸업하고 이런저런 좌절 끝에 눈높이 선생님이 되어 이제는 정말 재미있게 살고 있는 또 다른 친구와, 졸업 후 한큐에 삼성에 취직한 학생운동에 앞장서던 친구도 있다.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군 예비역 병장인 컴퓨터 공학과 복학생도 있고. 그들은 다른 목소리로 저마다의 이유를 말하지만 결국 그 발언들의 공통항은 자기의 행복을 추구하는 저마다의 방식이 곧 자신의 삶이 현재 그려내는 궤적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들 앞에서 이내 입을 다문다. 집안 형편도 알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알며, 때때로 얼마나 힘들었는지도 아니까. 

누군가 말했듯 그들의 삶과 행복이라는 자기정의는 이기심보다 완고하다. 그 결연하기까지 한 완고함 앞에 나는 늘 주변만을 어슬렁댄다. 정말 그들의 고민이 깊고도 거칠다며 나는 그들을 변호해줄 수 없다. 하루하루 생존의 기로에 선 사람, 목숨을 걸고 하루를 버텨내는 사람도 나는 본적이 있기 때문에. 하지만 그런 단순 비교로 누가 누구의 삶을 옳다 그르다 말하고, 이쪽과 저쪽으로 방향 지울 수 있는지, 그래야만 하고, 그것이 정당한건지 나는 대답할 수 없다. 모두 자신의 삶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삶의 무수한 조건들은 결코 평등하지 못해도, 단 한 가지. 저마다의 삶은 다 평등하게 소중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행복을 꿈꾸는 사람들 모두의 팔을 잡아 끌어당기는 일은 한발전에 늘 주저함을 남긴다. 그 주저함 앞에서 나는 고민하고, 뿌리치는 그 팔이, 멀어지는 뒷모습이, 뒤에 어리는 그림자와 새겨지는 발자국이 저 또한 내 것처럼 슬프고 누군가에게 미안해지고, 죄스럽고, 아프다.

그건 나 역시도 늘 그런 생각에 잠기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실현하며 살 수 있을 만큼 나는 내 자신에게 충실한가. 혹은 내가 떠안아야 할 물질적인 짐을 나는 충분히 스스로 감당할 만큼 능력이 있는가. 그리고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그 최소한의 정의를 위해서 기꺼이 실천할 수 있는가하고 말이다. 여전히 나는 어떤 결정적인 순간 돌아서지 않을 준비가 되어있는가 자문하고 회의한다. 

아직 나는 해답을 찾지 못했다. 그건 스스로 찾아야 할 나에게만 준비되어 있는 해답이리라. 

어느 누가..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고 말했다. 그 말은 여전히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그 명제가 있기 전까지 우리는 그 명제가 담고 있는 의미를 몰랐던 것이 아니라, 그 명제가 세상에 등장하면서 보다 명확하게 그 의미를 직시했다고 하는게 옳을 것이다. 여전히 준비하는 마음으로, 여전히 부족함을 채우는 이온음료를 마시는 기분으로 나는 하루하루를 들이킨다. 그러면서 어느 날 문득 나를 돌아보며 다짐하기를, 내가 언제 어디에 있든지 나 다운 것이 무엇인지를 잊지 말자 다짐했다. 내가 어떤 위치에서 무엇을 하든, 내가 단지 무엇이든 만족시키는 항등식의 특정 변수가 아니라 내 삶이라는 방정식의 유일한 해답이 될 수 있도록 살아가자 생각했다. 누군가의 그 명제가 가지는 강력함은 여전히 압도적이지만, 그 명제를 조금만 비껴가자 생각했다. 

세상 어디에 서서도 내가 누군지를 생각하고 싶다. 내가 실천하고자 하는 것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을 말할 수 있는 내가 되도록 살아가자고 스스로에게 약속하기로 했다. 실천의 격전과 공방이 오가는 그 광장의 한가운데에 있을 용기를 가지지 못할지언정 언제까지나 그 소란이 가라앉고 적막이 찾아올 때까지 그 주위를 맴돌며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저 소란이 결코 우리와 무관하지 않음을, 바로 우리의 일임을 속삭이며 끈질기게 서 있을 것이다. 나의 자신감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한 스스로의 다짐과도 같은 것이다. 누구보다 유쾌하게 세상을 유희하면서 내가 품고 있는 생각들을 실현해 내며 나를 확인하는 작업. 무관심을 참여로 환기시키기 위해 주변에 내뱉는 잔소리가 당당해 질 수 있을 만큼 열심히 고민하고, 행동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적어도 지금 내가 마음에 품은 신념이자 자신감이다. 

싸구려 향락이나, 미친 듯 필요 이상으로 증식하는 머니의 논리 - 대체 무엇을 위해 돈을 모으는지 물어보고 싶다. 행복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비싼 행복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닌가, 한몸 누이기엔 너무 커다란 집, 보통 사람들은 이름도 잘 모를 외제차, 평생 라운딩 백번 할까 말까 한 상암 구장 다섯 개만한 골프장의 회원권, 부자는 망해도 삼대는 간다는데 도대체 몇 대까지 이어내려 줄 부를 추구하는 것인지, 설마 국가 발전과 국위 선양을 위해서라고 이야기하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가 아니라 내가 세상과의 관계맺음에서 내 견실한 움직임으로 나와 내 가족, 나를 중심으로 관계 맺는 그 무수한 사람들이 몸소 느끼지 못할 정도로 미세하지만 가능한 편의와 행복을 위해 그렇게 살고 싶다. 사람과 사람과 또 사람은 이어지니까. 그래서 사람이고, 사회고, 공동체니까. 내가 언제, 어디에 있든 구조에 묶이지 않으며, 미친 듯이 유쾌하게.

이게 지금 내가 내밀 수 있는 부끄럽고, 슬픈 자기 소개서다. 나의 한계와 나의 주저함, 나의 망설임이 그대로 드러난 이 앞에서 나는 너무도 아프다. 내가 뱉어낸 이 말들이 실현이 될지 한낱 젊은 시절의 치기가 될지 장담할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더 이상 낯이 뜨거워 글을 이을 수 없다. 아마 당분간 쭉 그럴 것만 같다. 이건 슬럼프도, 침체도 아니고, 그냥 벌거벗은 내 생활이기 때문에. 자신감이 있지만, 그 자신감은 언제나 부끄럽다. 나보다 훨씬 실천적이고 치열하고 날카로운 여러분들의 시선 앞에서. 이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침묵하련다. 적어도 여기까지가 내 언어로 지어진 나의 세계니까.

 

  
 
 
 
병장 김희곤 (2006/04/13 23:59:14)

근거없는 자신감은 젊음의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대한 부끄러움은 언젠가는 고쳐질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요? 누구나 실수는 하는 법이니까요. 

상원님의 언어로 지어진 상원님의 세계는 존중하지만, 그리고 그 침묵도 이해하지만 길지는 않기를 바래봅니다. 그 고민들은 분명 상원님을 강하게 만들테지요.    
 
 
병장 한상원 (2006/04/14 00:12:55)

희곤님/저 역시 제 언어가 튼실해져 제 세계를 넓힐 수 있도록, 그래서 저의 침묵이 산산조각 나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하지만 제 세계 너머에 언제나 있을, 그 말할 수 없는 것들은 여전하겠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하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명제는 정말이지 최근 몇 년간 저를 흔들어놓은 것들 중 가장 강력한 것입니다. 어쨌든 감사해요.    
 
 
일병 정우석 (2006/04/14 01:32:00)

젊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네요 
흔히 '오지랖넓다'라고 할만큼 이것저것 많이 해보려하며 찾으려한건 
진정한자신이 누굴까? 에 대한 답이었지만 
막상 지나고...군에서 생활하니 그거 하나하나가 젊은날의 일부인것같습니다. 
아직도 질문은 많고 답은 없네요. 질문이 고귀한것은 아직 답이 없어서이지 않겠습니까!    
 
 
상병 박종민 (2006/04/14 04:24:37)

역시 고민이 없다면 이런 문장들이 결코 나올 수 없는 거겠지요. 
상원씨 아름다워요-(흣) 
저도 좀 더 고민해 보겠습니다. 

아, 불면증 하니까, 여행하던 기억이 났어요. 
바르셀로나 후안 미로 미술관에서, 
미로의 '자화상'이라는 그림과 마주쳤는데, 기가 막히게도, 
불면증을 들을 때였죠. 
[나는 썩었다라는 푸념만 남긴 채 순수했던 어릴 적 그때를 내 눈 속에 그린다] 
순간 몸이 굳어서, 10분동안 '자화상'앞에서 꼼짝도 못했었지요. 

힘내세요. 
가끔 풀죽을 때 듣는 음악 중에, 랩뮤직이 또 있어요. 
배치기의 '선'이라는 곡인데, 가사도 그렇고 음악이 힘이 참 좋아요. 
남들이 가지 않으려 하는 길을 가려는 사람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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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 뿐인데도. 
나 갈 수 있는 길, 이 길 뿐인데도 내게 손을 내밀어준 사람은 없어. 
이미 난 세상살이에 선을 긋고 있어. 

기대를 건 시선들을 뿌리치고 포기하라고 말하던 사람들 앞에 서서 
긴 시간 꿈에 품은 열정 깊인 해발 70미터 그만큼 진심일터. 
밥 벌어 먹기 힘든 시기에 질린 듯한 요점없는 펜촉은 무턱대고 깊어지기만 했었어. 
서서히 드러나는 밑바닥, 칠전팔기로 길따라. 
믿는 것은 머리요, 사는 것은 X까고 
애처롭게 사는 나는 갓 하나 없는 방랑자고, 
인내란 열매 끝이 달은가. 
사람들은 헛바람들었다고 말하지만 
나 그걸 타고 백지위의 시로 녹여버리면 끝이고, 
한 잔 술에 훌훌 털어버려도 마음에 굴뚝에선 지지고 지펴 연기나지. 
나와 현실의 불륜. 
한계가 던진 추위라 해도 다 필요 없어 전부를 모두 건 전투. 

밑바닥 속에서도 나의 콧날은 오똑해. 
내 걸음에 펼쳐질 내 세계의 스케일은 커. 인생의 스테이지속에 부속품들을 맞춰. 
가슴속 깊이 뿌리를 내려 나 모든 삶으로. 
날 시험하는 갖은 시련속에 이를 악물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이 것 밖에는 없어. 

내가 갈 수 있는 길도 나는 이 길 밖에는 없어. 

'열정으로 눈물 닦고, 펜 끝으로 숨을 쉬어.' 

- 배치기 '선'의 가사 中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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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게 왠 주책이람. 
랩음악 이야기가 나와서 그만 흥분을- 
어찌되었든, 힘내자구요(웃음)    
 
 
상병 엄보운 (2006/04/14 08:19:43)

/ 내가 단지 무엇이든 만족시키는 항등식의 특정 변수가 아니라 내 삶이라는 방정식의 유일한 해답이 될 수 있도록 살아가자 생각했다. / 

/ 내 견실한 움직임으로 나와 내 가족, 나를 중심으로 관계 맺는 그 무수한 사람들이 몸소 느끼지 못할 정도로 미세하지만 가능한 편의와 행복을 위해 그렇게 살고 싶다. / 


몸이 떨리고, 눈물이 날 것만 같은 글입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만나서 할래요. 잘 읽었습니다.    
 
 
일병 조형규 (2006/04/14 09:08:50)

정말로 단어 하나, 문장 하나하나가 남의 말 같지 않아 마음을 울리는군요. 잘 읽었습니다. 혹 마음약한 고백이라고, 나약한 자신감이라고 흘기는 눈도 있을 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오히려 상원님의 소박한 '결의'가 힘줄선 결의의 말들보다 더 강하고 아름다워 보이네요. 나약한 저 자신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병장 김대현 (2006/04/14 14:35:19)

동.병.상.련. 

우리 이대로 주저앉는 거 아니잖아요, 그죠? 쓰러지더라도 두 눈은 부릅뜬채로, 하나하나 기억합시다. 그리고 엔간하면, 우리 쓰러지지 말아요. 
쓰러지는데 쉽게 비장해지지도 말고, 쓰러지지 않는데 쉽게 위안하지도 말아요. 헤헷. 
아, 보고싶다.    
 
 
일병 이건룡 (2006/04/20 16:02:27)

상원 분의 글을 읽으니 전 알게 모르게 신념을 위해 뻔뻔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군요. 사소한 행복속에 위해도 역시나 필요한건 아줌마의 에고라는 생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