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어체의 생략을 이해해주시길.



들어가기 앞서서. 이념이 아니다. 신념이다.

..

어느순간부터일까 (어쩌면 인류사에서 정치의 시작과 동시에)

우리는 이미지의 홍수 포토제닉의 무게에 짙눌려 버렸다.

가슴속에 심어진 그 무언가는 없이 막연한 이미지를 사랑하고. 증오하고. 맹신한다.

그러다가 새롭고 이미지가 빠진 하나의 사건을 보았을때

방향을 잡지 못하고 일괄성을 잃는다.

이미지를 벗겨보면 자신이 맹신하는 '그 무언가'와 비슷한데도 말이다...

그냥. 꼭 복잡한 정치 이야기가 아니어도 좋다.

이런 것들은 너무 많다. 

(고등학생의 인권을 부르짖던 녀석이 군대문화는 꼭 필요하다네 나원)

아니 이것도 너무 정치적인가?

(파파이스 좋아하는 녀석이 너무 비싼것 같다고 KFC는 싫다네. 켁)

위에건 좀 비정치적이군. 암튼 사소한 예로 글을 늘일 필요는 없으니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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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이라는 것은 자신이 세상을, 또는 타인을, 또는 후라이드 치킨을 바라보는 눈이다.

자신의 내부에서 나오는 눈. 외부의 이미지에 흔들리지 않고

그 내면을 캐내어 볼수 있는 눈.

이 눈이 신념이라는 형태로 가슴속에 잡힐 때 그는 자신이 보는

눈으로 세상을 해체하고 재구성하고 새로움을 낯설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지금의 우리에겐 이 신념이 너무나도 부족한것 같다.

막상 나부터도 마찬가지이다. 

이랬다 저랬다 지멋대로 세상을 보고 평을 내리고 만족해 한다.

신념인가? 아니다! 대부분 자만이고 독선이고 자신을 잃은 흔들림.

여자의 마음은 갈대 남자의 마음도 갈대

인간의 마음은 갈대 어 이런 젠장 갈대 부러지겠네. 크하~

..

사실 신념의 방향도 문제다. 

사람은 죽일수 있는 것이라는 신념을 가진 탈레반(아니라면 죄송합니다.)이 늘어나면 난처하니까.

하지만. 지금의 이미지 홍수 속에서. 

우리에겐 그 무언가 굳건한 신념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신념은 자신이 만드는 것 일뿐

맑스가 던져주는 것도, 조선일보가 던져주는 것도 아니다.

(이미지라니까 이미지. 사실 이런 '누군가'의 신념들이 더 쉽게 이미지화 될수 있는 법이다) 


병장 오태영 
  신념이라는 것은 자신이 무언가를 바라보는 눈이다. 
자신의 내부에서 나오는 눈. 외부의 이미지에 흔들리지 않고 
그 내면을 캐내어 볼수 있는 눈. 

이부분. 좋은거 같은데요. 
저는 신념을 옳다고 믿고 지켜가야 하는 것이라고 정의했었죠 
신념이란 단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단어랍니다(훗훗) 07-30   
 
병장 배진호 
  저는 이 신념의 개념 자체에서 부터 많은 것들이 흔들리고 있어요. 
'신념은 과연 존재해야만 하는 것일까?' 라는 의문과 ''자신의 신념'이라는 명확한 개념이 설 수 있는 것일까?'와 같은 의문 말이예요. 신념이라는 것이 바뀌는 것이라면 신념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할 뿐더러, 정확하게 많은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상태에서 가지고 있던 신념이라면 어쩌면 바뀌어야할 필요성이 있는 것일지도 모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신념이라는 것은 언제 어떻게 존재해야하며, 나의 신념은 어떠한 형태로 존재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을 벗어버리지 못하면, 저는 이 신념이라는 것이 도무지 생길 것 같지 않네요.(아마도 신념의 개념에 아직까지 혼란이 오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바뀔 수 있다면 그것을 신념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것일까요?' 07-30   
 
상병 김현진 
  저는 "신념이라는 것은...후라이드 치킨을 바라보는 눈이다." 가 맘에 드는군요. 


진호// 인간의 감정이 바뀌지 않을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그 감정을 우리는 기쁨, 슬픔, 우울 등등 여러 형태로 나누지요. 그것들을 분류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고 해서 분류한 의미까지 없을까요? 기쁨이 슬픔으로 바뀔 수 있다고 해서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며, 슬픔 또한 마찬가지일 겁니다. 

마찬가지로, 신념이란 일종의 '고정점'일 겁니다. 관점은 바뀔 수도 있고 바뀌지 않을 수도 있으나, '신념'이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은 그 관점을 "주체 자신의 의지로 고정시킨" 순간입니다. 그것에 분명히 의미는 있습니다. 

누구도 신념이 바뀌지 않는다는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건 경험만으로도 알 수 있지요. 진호 님께서는 스스로 "신념"이라는 단어에 "바뀌지 말아야 한다"는 가치를 부여한 뒤에 스스로 그걸 부정하시는군요. 바뀌지 않는 신념을 갖고 싶으시다면 일단 어떤 관점을 확립하셔야 할 겁니다.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겠지요. 07-31   
 
병장 배진호 
  현진// 음 말씀 감사합니다. 
그렇다라면 신념이 확립된 이후에 신념이 유지되면 그것은 신념으로써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인건가요? 즉 확립되기 전까지의 신념은 신념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인가요? 어든 저에게 있어서는 새롭네요. 관점을 확립하기 전과 후.. 그 것 말이죠. 관점의 확립 시점은 그럼 관계가 없는 것일까요? 내가 언제 관점을 확립하던 간에, 그 관점이 확립되었다라면 그것을 신념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것일까요?(즉, 신념과 시간의 관계 말이죠. 시간이 지난 후에 신념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은 맞는 이야기 일 수 있겠네요. 처음부터 신념이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도 조금 궁금하네요). 아마도 제게 모호한 태도인 이유는 신념이 아직 확립되지 않아서 일 것입니다. 이유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죠. 신념과 존재의 이유에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