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노트 #13 - 살인자들의 마을
김*민D 05-09 11:31 | HIT : 270
살인자들의 마을
- 김*민D
그 말엔 분명 살인자가 돌아다녔다
먹먹하게 피가 타들어가 녹슨 칼을 한 자나 들고, 북풍이 산기슭에서 회오리 치듯 가슴들을 후벼 파내며 분명 여기 이 후텁한 공기처럼 잡힐듯 잡히지도 않은 채 휘이 떠돌다가, 또 머물러 도려내는 칼날들이 챈챈거렸을 것이다. 아니다 우리 중엔 없이여, 우린 중엔 없이여. 타지에서 온 눈 게츰한 변태같은 놈이 강제로 색시 팬티 벗기듯이 절절 지리며 박아넣은 것이여. 그건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니고, 그래서 우린 아니고. 그 말엔 분명 살인자가 돌아다니는데, 그 말은 우리 사는 말인데 우린 중엔 없이여
검은 달이 곰팡이처럼 구석진 밤하늘에 피어나는 밤, 오로지 선명한 것은 소시지에 뿌려놓은 케첩같은 피 피 달콤한 피. 우리는 피를 원하네, 우린 중엔 없이여.
가시나무는 딴 데 없이 우리 발고락에 손고락에 뿌리 붙이고 살고 있는 가 그래서 우리는 굴러다니며 붉은 음표들을 거리에 박아 놓는가 명랑하게 튀기며 스타카토로 앙 앙.
아픈 것만이 우리여. 아픈 것만이 우리여. 오늘도 함께 놀며 꽹과리로 귀를 부수네 쟁쟁 재잰쟁재쟁 얼 쑤 좋다 그 말엔 분명 살인자가 돌아다니는 듸
괜차녀 우린 중엔 없으니 됐시여.
그리고 담 날이면 또 몇 명이 가슴이 벙 뚫리여 젓가락처럼 다소곳이 누워 인생을 차디찬 밥상처럼 알고 있구려 그랴. 우린 중엔 없을 것인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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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받는 사람들이 있으면, 상처 준 사람들도 있는 법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는 나 자신을 '상처 주는 사람' 으로 인식하기 보다는 '상처 받는 사람'으로 인식하는데에 익숙한 것 같다. 하찮은 발상의 전환이라 생각 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큰 차이이다. 상처 받는 것은 惡이 아니지만 상처 주는 것은 惡이기 때문이다.
항상 나는 피해자로서 동정을 받길 원하며, 누군가 나의 심정을 이해해주기를 바라지만, 정작 내가 손을 내밀어 다른 피해자의 사정을 이해하려 노력한 적은 그다지 없었다. 행여 그런 노력을 하더라도 나는 철저히 나의 입장에서 분석했고, 따라서 얼마든지 폭력적인 의견을 제시할 수 있었다. 푹푹 찔러 넣듯이.
그래도 나는 피의자가 아니라고 우겼다. 분명 상처받은 사람이 있으면 상처 준 사람도 있는 것인데, 나는 상처 주는 사람의 계급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가슴아파 죽어나갈 지언정 나는 그 책임이 없다고 믿었다. 그것이 나의 대부분의 나날이다.
범인은 이 안에 있다! 라고 한다면 김전일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그것은 크나큰 오산이다.
- 조금 더 스스로를 깎아 세울 수 있는 나날을 기대하며.
진*언
반성합니다. 좁은 시야를 반성합니다. 아주 조금만 넓게 보아도 '같은 공동체'안에 포함되어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인데. 그들만 살인자로 매도했습니다. 나도 살인자 입니다. 그런데 나의 선에서 살인을 멈출 재간이 없습니다. 그럴만한 용기도 없습니다. 스스로를 깎아 굴레를 벗어 던지고 싶은데, 곧 또 하나의 굴레가 지워질것 같습니다. 연쇄살인입니다. 아주 짧은 반성을 끝으로 극악무도한 살인자가 되어갑니다. 05-09
김*민D
인간이 다 타자라는 점에서 서로가 살인자인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종의 원죄로 생각됩니다만. 최소한 반성의 기회는 항상 스스로에게 열어놓는 사람이 되리라 다짐합니다. 살인해 놓고 나는 살인하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뻔뻔한 놈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그게 제 좁은 그릇의 최선일 듯 싶습니다. 05-09
진*언
맞아요. 그래도 일말의 양심이 남아있음에 뻔뻔한놈은 되지말자. 라고 자위하는게 다네요. 일전에도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던것 같은데요. 요새는, 제 그릇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다층적 폭력구조에서 기인하는 연쇄살인을 제 선에서 단절시킬 용기가 없습니다.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이야 가능성을 발견하지만, '우리'에게 심히 타자화된 다른 '우리'들은 불가능합니다. 오늘도 안좋은 일이 있었습니다.
자꾸만 스스로를 깎아내리다 보니, 깎을부분들이 너무 많이 보여서, 이러다 다 사그라져 없어질까도 걱정됩니다. 이래저래 느는건 근심이요, 시름입니다. 이 안에서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그러지 말자. 라고 생각하다가도, 결국에는 도래할 것이라 믿는 새 세상에서도 이 '다층적 폭력구조'의 연장선상일것 같아서 뒤늦게 사춘기가 왔습니다. 이런 말씀도 드렸었지요. 어차피 좁은 그릇이라면, 철저하게 자신을 검증해나가되 결국 행동은 적극적으로 그 구조에 투신해버리겠다고.. 뱉어놓고 며칠뒤에 생각해보니 무서운 말이었습니다.
이 논리는, '우리'가 비난해 마지않던 일제강점기 부일(附日)세력들과도 같은 구조일텐데요. 그래서 두렵습니다. 뒤늦게 사춘기가 찾아옵니다.
* '마을'을 '말'이라고 표현해주신것 참 재미있습니다. 05-09
김*민D
한 가지 오해를 막고자 -
반성은 최소한의 실천이 뒤따라야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오해 없으시길.
규언 / 조금 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했습니다만, 물론 그 이야기로 보더라도 무방한 이야기 같습니다. 맨 처음 규언님이 '투신'을 운운하셨을 때 느꼈던 '그건 아닌 것 같은데' 하는 느낌이 부일 세력에 비유되고 나니 더욱 더 정신이 번쩍 나는 것 같습니다.
파울로 프레이리의 '페다고지'에서는 진정한 해방은 억누르는 자들로 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억눌린 자들로 부터만이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억눌린 자들이며 또한 억누르고 있는 자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가치관의 혼돈을 느끼는 듯 싶습니다. 우리가 깨부셔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라는 점에서 말이지요
저는 그때 당신과의 대화를 통해 '부조리가 다 무어야 18, 인생이 부조리다 18.' 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결국 부조리는 부조리대로 있는 것이 당연하며 때문에 세계는 불완전한 완전성을 띈다고 비겁하게 결론 내렸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최선은 부조리를 완벽하게 타파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수시로 부조리에 대해 고민하고 타파하려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그 논리에는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가 조금 새 나가는 것 같은데, 일단 구조가 나뉘어져 있더라도, 그것이 설령 '우리'와 심하게 타자화 된 '우리'일 지언정 피의자와 피해자는 따로 정해지지 않고 언제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음에는 변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조심해야겠지요. 서로. 그리고 최소한 나 스스로라도. 05-09
문*진
Force 의글이라...거침없이 승용(昇龍)하고있다.
김*민D씨는 에드거 앨런 포의 글과 비슷하게 달려가고 있다..
이 글 다시 봐도 새롭습니다.
Bravo. 05-09
박*용D
웃으면서 다가가 서로의 등에 칼을 꽂아넣는 우리들보다, 차라리 대놓고 할퀴고 물어뜯는 동물들이 더 낫다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05-09
문*진
웃으면서 다가가 서로의 등에 칼을 꽂아 넣는 우리는 하회탈. 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