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추방론을 생각하며 
 병장 김지민 05-10 14:09 | HIT : 216 



 시인 추방론을 생각하며




 그 유명한 플라톤의 '국가'를 보면, 제 10장에서 시인 추방론에 대한 언급을 볼 수가 있다. 물론 이러한 관점은 다만 '국가적'인 입장에서 발전을 도모하고자 할 때의 논점이라고 말 할 수 있겠지만, 처음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으로서는 충격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유명한 학자라는 사람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국가에서 시인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니? 이게 다 무슨 말일까


 작년 초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한창 감정이 첨예하던 때, 그래서 감성적인 시를 폭발하듯 남겼던 때(수작이라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나는 00솨단 시 / 수필 게시판을 빌어 나의 감정을 표출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서 이런 저런 피드백을 받고, 계속해서 하루에 적어도 한 편씩 꼬박 시를 쓰던 그 때, 한 30편이 넘게 글이 쌓였을까, 웬일로 난데없이 사무실에 그 쪽 솨단 좌쩐찬모께서 전화를 걸어 왔다. (그 쪽 소속과 직책을 듣고 나서 잠시 어이없어 벙쪄 있던 나의 심장을 아직도 기억한다.)

 통화의 시작은 참 좋았다. 먼저 그 쪽 분께서는 내가 해당 솨단 게시판에 지속적으로 글을 올려주는 데에 대해서 감사를 표했으며, 미약하게나마 '글을 잘 쓰던데' 류의 칭찬을 해 오며 나를 비행기 태웠다. 그런데 내가 싱글벙글하며 '감사합니다'를 이야기 하고 있을 때 그 분께서는 갑작스레 '근데 말이야....'라는 대사로서 분위기를 급반전시키기 시작했다.
 이후로 약 5분간 나는 꾸중 아닌 꾸중과 협박 아닌 협박을 당해야 했는데, 요는 이랬다.

1. 글을 올리는 건 좋은데 소속은 밝혀라
2. 글을 올리는 건 좋은데 니 글이 너무 우울해서, 우리 사단 장병들의 정신건강에 해롭다. 실제로 장병들 중에 우울증에 걸린 병사도 있었다. (이것은 사실 확인 안 되었으나 아마 구라일 가능성 농후)


 요지가 이런데다가 좌쩐찬모의 말투는 매우 화가 나있는 듯 하여 나는 당연지사 쫄아서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아도 그의 권력을 따져 보았을 때, 이 사건은 으시시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굳이 아이피 추적을 하여 내가 어디 근무하는지를 알아보고, 전화번호까지 조사하여 직접 전화하고 협박했다는 점에서, 이것은 덜덜덜 사건인 것이다.

 어쨌거나 이 사건 자체의 공포는 뒤로 하고

 생각해 보면, 이 좌쩐찬모의 요지는, 플라톤이 '국가'에서 이야기하는 시인 추방론과 어느정도 맥락을 같이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감성을 이성보다 열등한 것으로 파악했던 플라톤은, 시란 사람에게 공감적 감정탐닉을 조장하여 성품을 해롭게 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하였으며 본질적으로, 예술이란 현실의 모방이기 때문에진리인 이데아와 가장 동떨어진 묘사로서의 시를 부정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오로지 플라톤이 자신의 이상국가에서 허락했던 시는 국가를 위한 선동적이고 찬양적인 시 뿐이었다.
 좌쩐참모는 자기 솨단의 시 / 수필 게시판에 우울하고 감성적인 시가 올라오는 것을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장병들에게 해악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군인으로서의 의무 수행에 방해가 될 요소가 다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울함에 빠져서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병사들을 '국가'는 바라지 않을 테니까.

 플라톤의 국가는 순수하게도 국민을 도구로서 생각하는 국가이다. 일반적인 시민과, 군인과, 수호자로서 국민을 3등분 하여, 체계적으로 조종하려는 취지가 엿보인다. 이 안에서 국가의 존재는 국가를 위함이며 국민을 위함이 아니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내 경험담이 플라톤의 국가론의 취지와 맞아 떨어지기 때문은 아니다. 라고 말한다. 고 해야할까. 나?


 추가적으로 비슷한 관점에서 문학은 플라톤 이례 계속적인 공격을 받아왔다. 효용론적인 관점에서 문학을 포괄하는 '예술'은 감정의 사치 놀이일 뿐이며 발전을 이룩하지 못하는 소모적인 일로 제시되어 왔던 것이다. 일테면 문학을 한다는 것은 지금 당신이 스타크래프트를 하며 배틀넷으로 1:1을 한창 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심미안적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자신의 유닛들을 끌어 모아 중앙에서 핵으로 전멸시키기 놀이를 한다던가 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발전에는 아무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해악을 끼칠 수 있는 사치놀음이 바로 '예술'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이 앞서 제시되었던 '효용론적'관점에서 옹호 받을 수 있는 것은, 올바른 정신가치를 함양하는 데에 있어 탁월하고, 교훈적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톨스토이를 떠올릴 수 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허나, 설령 문학이 발전적인 도모를 위해서는 전혀 가치 없는 '사치놀음'이 맞다고 할 지언정, 이것이 인간에게 있어 쓸모없다고 보여지지는 않는다. 우리는 분명 쾌락의 접점을 문학에서 찾을 수 있으며 다른 삶의 현장을 경험하는 경험의 확장으로서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타인에게 해악을 끼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자유를 누릴 가치가 있으므로, 문학을 누릴 자유역시 보장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한다. 플라톤의 '국가'가 발전을 위해 박탈하는 것은 그러므로 다름 아니라 '자유'이다.



 다행히도 나는 아직 추방당하지 않고 기 솨단 게시판에서 아직 글을 올리고 있으며, 여기에서 어느정도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다.










 일병 김대윤 
 감성 vs 이성 을 두고 이성의 손을 들어준 플라톤과는 달리 그분은 단지 손익계산이지 않았을까 하는 반항심(..) 과 함께 2번 협박에서 큰 웃음을 머금었습니다. 하하. 05-10   

 상병 이기중 
 혹시나 그분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솨단 장병들의 정신건강을 해치고 우울증에 걸리게까지 할 정도로 지민님의 시가 감동적이라는 뜻이 아닐까요(웃음) 05-10   

 병장 김일섭 
 저도 여친과 헤어져 한창 힘들 때, 시를 썼더랬죠. 한 행이 떠오르는군요.'이성과 감성의 치열한 싸움앞에 난 그저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노예였다' 훗, 지금 다시 보니까 꽤나 유치하군요. 05-10   

 병장 이승일 
 공감합니다. 인체의 어떤 기관이 사라져야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그가 인체에 대해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맹장이라고 할지라도 말이지요. 감성이 설사 그 자체로서는 이성보다 열등할 수 있다고 치더라도, 열등한 것과 우월한 것의 조화는 우월한 것이 독립적으로 있는 것보다 더 우월하다고 생각합니다. 감성을 통해서만 이성의 유한한 한계를 넓힐 수 있으니까요. 05-10 * 

 병장 진규언 
 지난 겨울 우연히 접했던 플라톤의 <국가>가 언급되는걸 보고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말씀해주신대로 플라톤은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의 말을 빌어 국가에서 시인을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사물 혹은 가치의 원천 제작자인 기술자, 통치자 등은 새로운 창조물을 구현해내기에 생산성이 강하지만, 시인이나 예술가들은 비유를 통한 2차 이상의 모방자에 그치기 때문에 소모적일 뿐이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일전에 책마을 내에서 논의되었던 '문학적 비유의 어려움'이라는 글을 보더라도, 문학적으로 비유가 가능해지려면 본질(원 대상)이 있고 난 다음에야 가능할 것입니다. 그 원 대상을 '비유적으로만' 건드릴 수 있는 문학과 예술은 '국가'에서 추방되어야 한다. .. 이정도가 10장의 내용일듯 합니다. 

 저도 지민님과 같이 가능성을 발견하고자 하고, 문학과 예술이 자유가 억압된 상태라면.. 유일하고 유이하게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일제 강점기 총독부의 눈을 피해 문학적 비유를 무기로 항일운동을 전개했던 님들이나, 군부 독재 시절 핍박받고 억압받던 김수영님과 같은 시인을 들 수 있겠지요.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지요. "역사는 승리의 기록이고, 시는 패배자의 그것이다" 공감합니다. 그러므로 시를 위시한 문학 일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과 생활과의 만남이야, 주변에 워낙 많은 예들이 있으나 그중에 현재 LG전자에서 대대적으로 행하고 있는 예술 마케팅을 들 수 있겠네요. 유명 화가의 작품에 LG로고를 합성시킨다던가 하는.. 

 마지막 문장에 '기' 솨단이라고 표현해주신 덕에 피식 하고 웃었습니다. 절묘하게 비유해 놓으셨네요. 아는분은 아시겠지만 어디인지는 숫자로 읽으면 되겠지요. 이래서 문학이 필요합니다. 05-10   

 일병 김대윤 
 역사가 꼭 승리의 기록이고 패배의 기록은 역사가 아닌건 아니겠지요? 다만 승리를 원하는 그네들에게 각광받지 못할뿐 (규언씨 절대로! 딴지는 아니에요. 승리만 기억되는 건 슬프자나요. 규언씨의 의도가 이런것이 아님은 알고 있어요. 제 답글을 Attack으로 받아들이지 마세요. 헤헤) 05-10   

 상병 김재영 
 필화를 당하셨군요. 저도 국방망 안에서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더욱 공감이 됩니다. 그 '덜덜덜'의 심정. 헌병대에 이첩하겠다느니, 주임원사에게 이야기해서 전 군인을 상대로 사과를 받아내겠다느니 등등등.. 05-10   

 병장 진규언 
 대윤님 / 대윤님 말씀이 맞아요. 패배자의 그것도 잊지 않고 철저히 기록해 나가야겠지요. 언제 패배가 승리로 뒤바뀌고, 승리가 패배로 추락할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승리만 기억되는 역사는 바라지 않습니다.(비장) 05-10   

 병장 진규언 
 지민님 / 
 그런데 '기' 솨단의 행위 때문에 촤모님에게 일종의 방법까지 당하시고도, 추방당하지 않고 건재하신 비결에는 어떤것이 있나요. 저라면 쫄아서 모든 활동을 접고 비트 파고 샤샤삭 들어갔을텐데요. 만용? 자부심? 아니면 오기? 긍정적이고 밝은 문체로의 전환? 성명을 밝힘으로써의 타협? 
 전화통화 이후 사건 추이가 궁금합니다. 별다른 일은 없었나요 05-10   

 병장 김지민 
 규언 / 한동안 일단 잠수를 탔어요. 쫄아서 비트파고 들어가 있다가, 추이를 보니 다른 사람들이 막 올리더군요. 나도 어느정도 '우울하지 않은'시를 '소속을 밝혀서' 올리기 시작했죠. 그러다가 지금은 그냥 올리고 있습니다. 아마도 지금은 촤모가 바뀌었겠지요 후후후(.....비겁하다) 05-10   

 병장 이건룡 
 두려워겠습니다. 역시 활동은 적당하게? . 

 니체의 <비극적 사유의 탄생>중 소크라테스의(정확히 그의 제자 플라톤) 위 주장에 비판의 대목이 있습니다. 소크라테스 이래 단절되다시피 버림받은 4대철학자에 대한 옹호로부터 시작하였죠. 탈레스, 아낙시마고라스?,,,,이들 이름들이 기억이 나질 않는 군요. 아 돌머리. 

"그런데 우울함을 느끼지 않고서는 사회의 상태에 관해 사색할 수 없는 사람, 이 사회의 상태를 의무로부터 면제된 문화인들의 고통스러운 지속적인 탄생으로서 파악할 줄 알고 이 문화인들을 위해 다른 모든 것들이 소모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 그는 새로운 인간들이 국가의 기원과 의미에 관해 퍼뜨린 저 허구적인 광채에 이제 더 이상 기만당하지 않을 것이다."<비극적 사유의 탄생> 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