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왜 하나의 차원인가. 
병장 이승일 01-24 01:42 | HIT : 235 
 

 
임채승씨의 글에 대한 답변.
리플로 달려다가 길어져서 포스팅합니다. 용서해주세요. 

--
글 잘 읽었습니다. 저 역시 베르그송을 감명깊게 읽었기에 임채승씨의 글이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는군요. 채승씨 말대로 시간계열을 공간의 한 차원으로 간주하는 현대 물리학은 시간의 질적인 속성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베르그송 같은 프랑스 철학자들은 물론이거니와 아인슈타인조차도 "시간을 공간의 한 차원으로 다룰 때, 우리는 분명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 라고 고백했지요. 

그러나 저는 시간의 본질에 관해 생각하기 이전에, 우리가 왜 시간을 공간의 한 차원으로 간주할 수 있는지를 이해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물의 이면> 이라는 글에서 우리가 2차원적인 시각적 인상을 여러장 합쳐서 3차원 ?구성해낸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사과를 이쪽 저쪽에서 봄으로써 비로소 사과의 뒷모습을 포함한 3차원적 영상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을 다음과 같이 재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카메라가 하나 있습니다. 그리고 사과를 한쪽에서 찍고, 조금 옆에서 또 찍고 .... 이런 식으로 사방 팔방에서 찍습니다. 이 사진들은 사과의 3차원적 정보를 가지고 있으며, 이 여러장의 사진을 토대로 입체적인 사과의 모습을 랜더링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우리는 이 과정을 단 한번에, 여러대의 카메라로 해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과의 사방 팔방에 다수의(엄밀히 하자면 무한대의) 카메라를 설치해두고 한번에 찍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맨 처음의 경우엔 시간이 소요되는 반면, 두번째 방식을 사용하면 시간이 소요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찍은 사진들을 나열하기 위해서는 한장 한장의 사진을 구성하고 있는 2차원 좌표 이외에 또 다른 좌표가 더 필요합니다. 만약 또 다른 차원이 없다면, 우리는 모든 사진들을 하나의 평면 위에 겹쳐야할텐데, 그것은 전혀 말이 되지 않는 영상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각기 다른방향에서 찍은 사진들을 슬라이드처럼 투명하게 만들어서 겹쳐놨다고 상상해보십시오. 그것은 이를테면 '모순된' 사진이 될 것입니다. 이 모순을 제거하기 위해서 우리는 또 다른 차원을 도입해야하고, 그것에 맞춰 여러 사진들의 정보를 알맞게 계산하여 종합하면 비로소 3D 입체영상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시간이 하는 역할은 위에서 도입된 새로운 좌표축 같은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하나의 차원이라는 발상은, 우리가 시간 그 자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이전에, 우리의 사고 속에서 논리적인 모순을 제거하기 위한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명제 P를 생각해봅시다. 

P :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바르셀로나에서 <잠> 이라는 작품을 그리고 있다. 

  이 명제는 과거 어느 시점 (아마도 1937년의 어느 날)에서 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1940년 즈음에 이 명제는 참이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확실히 그 시점에서 <잠> 을 그리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명제 P는 도대체 참입니까 거짓입니까?  우리는 뭐라고 대답해야하나요? P는 참도 되었다가 거짓도 되었다가 하는 꼴이 되어버립니다. 하나의 명제가 참도 되고 거짓도 된다는 것은 명백한 모순이며 우리가 받아드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이 모순을 제거하는 손쉬운 방법은 시간이라는 '차원' 을 도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명제와, 하나의 시점을 묶어서 순서쌍으로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컨데 (P, 1937년) 은 참이지만, (P, 1940) 은 거짓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간이라는 차원을 도입함으로써 (P, 1937년) 라는 명제는 (P, 1940) 라는 명제와 다른 명제가 되며, 하나의 명제가 동시에 참과 거짓을 갖는 모순적인 상황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시간은 모순된 방식으로 장면이나 사실(을 표현하는 명제)이 겹쳐지는 일이 없도록, 그것들을 서로 구분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시간을 하나의 차원으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차원의 기능이 시간이 가진 모든 특성을 설명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공간의 한 차원으로 편입된 시간의 개념 속에는 '끊임없이 흐른다' 라는, 아마도 우리가 시간에 관해 가지고 있는 매우 중요한 직관이 반영되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인용한 아인슈타인의 발언도 그런 의미에서 이해할 수 있겠지요. 

  따라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것입니다. 저 역시 채승씨의 말 처럼 시간은 단지 공간의 한 차원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무언가를 포함하고 있다는 생각에 동의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건 시간을 하나의 차원으로 간주하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만약 시간을 하나의 차원으로 도입하길 거부한다면, 우리는 아마 모순을 포함하지 않고서는 거의 한마디도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은 대체 무엇인가? 시간에 대해 아무도 나에게 묻지 않는다면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묻는 자에게 설명하려고 하면 나는 그것을 모른다..."

                                                                               -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IP Address : 54.2.9.70   
 
상병 임채승 
22.19.47.1   잘 읽었네요. "따라서~될 것입니다"의 문단에서 다시 시작해보도록 하죠. 좀더 질문을 파고 들자면 유효한 지점이 토대를 둔 그 지평을 우리는 다시금 물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다른 지평이 가능하다면, 지평들 사이의 또다른 차원을 우리는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느냐를 묻고 싶은 겁니다. 과학이냐 삶이냐 같은 구닥다리 구분짓기로 다시금 빠져나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우리는 자신에게 되묻는 의식이 아닌 직관적인 의식으로, 불가분적인 시간의 흐름을 느끼며 살아가기를 '의식적'으로 지향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군요. 소박한 반작용적인 태도만이 제가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지점이라 그런게지요. 

저만이 달음질 선수겠냐만은, 모든 사람이 '소박한, 상식적' 모든 태도에서 한 번 더 달음질 쳐야 합니다!!! 정도로 결론내면 어떨는지요(웃음). 01-24 * 
 
병장 이승일 
54.2.9.70   사실 "시간은 공간의 한 종류일 뿐이다." 라는 주장이야말로 '소박한, 상식적' 태도에서 상당히 달음질 친 주장이 아닐까요? 베르그송의 시간인식이야말로 어쩌면 상식적이고 직관적인 이해의 한 부분일지도 모르지요. 

무엇보다도 상식으로부터 달음질치고 있는 것은 채승씨가 이 시간에 깨어있다는 사실입니다! 
전 상식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이제 자러 갈게요 (......) 01-24 * 
 
상병 임채승 
22.19.47.1   분명한 것은, 우리 내 의식은 사진기라기보단 영사기에 가깝다는 게지요. 다시말해 이미 의식에 포섭된 것(시간)을 굳이 분리하는 과정을 문제삼는 것이지용. 
(저는 아직 더 일해야 한다는..., 제가 너무 추상적인가요?? 내용이 없네 쩝) 01-24 * 
 
상병 임채승 
22.19.47.31   그렇다면 제가 굳이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우리 내 의식은 사진기라기보단 영사기에 가깝다는 게지요. 다시 말해 이미 의식에 포섭된 것(시간)을 굳이 분리하는 과정을 문제삼는 것이지용. 
(저는 아직 더 일해야 한다는..., 제가 너무 추상적인가요?? 내용이 없네 쩝) 01-24 * 
 
병장 성태식 
54.7.5.200   우리의 의식을 기준으로 한다면 공간에도 동일한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가령 처음 가는 길은 길게 느껴지지만 매번 가는 길은 짧게 느껴지지요. 
또한 기지 한 바퀴 도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나무 숲으로 둘러쌓인, 
완전히 곧게 뻗은 1KM 정도의 길을 너무 길다는 이유로 '마의 코스'라고 부릅니다. 
어쩌면 이 현상은 우리가 느끼는 '시간'이 달라져서 '공간'까지 달라졌다고 할 수 있겠지만, 
뒤집어서 우리가 느끼는 '공간'이 달라져서 '시간'까지 달라진 것은 아닐까요. 

저도 상식적인 인간이라 이제 그만 근무하러.. ( ... ) 01-24 * 
 
상병 박하림 
26.192.3.53    저는 이론 물리학을 다루는 사람이 아니고 공부도 해보진 않았지만 시간이... 
 공간이 있기에 시간이 존재하는, 시간은 관념적 존재(공간 안에 있는 물체는 지속적으로 상태가 변하지만 그것은 시간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공간 자체의 속성이다)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필요한 의식적 결과값을 산출하기 위한 도식으로써 한 차원의 개념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고요. 
 지적해주세요! 01-24 * 
 
일병 최영광 
16.1.9.41   음 보통 1차원의 존재는 2차원을 알수없고 2차원의 존재는 1차원을 이해할수는 있으나 3차원을 알수없다는 것을 어디서 봤던기억이있죠 

음 어제 똥싸면서 쌩뚱맞게 생각 시간을 차원으로보는가 하는것이 여기서 이야기 되고있었네요 
시간을 하나의 차원으로 보고 우리가 사는 3차원 공간에 x,y,z라는 축말고 t라는 시간축이 있다고 가정합니다. 시간이라는 것은 멈춰있지 않고 계속 흐르죠.. 그렇다면 t라는 시간축 위, 서로 다른 위치에있는 것은 서로에게 관여를 할까요 안할까요... 01-24 * 
 
상병 박하림 
26.192.3.53    딴 얘기인데, 시간이 멈춰있지 않고 계속 흐른다는 개념 자체가 시간이라는 축을 증명할 수는 없지 않나요? 그냥 해석에 있어서의 정의 아닙니까? 01-24 * 
 
일병 최영광 
16.1.9.41   그러니까 음 시간의 축위에 위치를 바꿀수있는 어떠한것이 있어서 제가 건빵한봉지를 
30분앞으로(미래의 위치) 조정(보냈)을 했을때... 우리는 30분후에 30분전에 보낸 건빵(나보다는 30분이라는 시간을 덜지낸)을 만날까요?? 아니면 모든 시간은 똑같은 속도로 움직이므로 그 건빵은 나와는 영원히 30분 앞을 살고 있기때문에 볼수없을까요?? 

참 어려운 문제네요 우리가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 우리가 이해하지못한 그무언가를 시간이라고 정해버린건데 그걸가지고 생각하려니...(웃음) 01-24 * 
 
병장 이영욱 
38.13.9.114   왜 영화 큐브가 생각나지.. 큐브2.. 정말 어렵게 본 영화인데..(먼..산) 01-24 * 
 
병장 장선혁 
38.1.6.125   박물관에 가면 시간이란게 뒤엉켜버린 기분이 듭니다. 
조선시대였다가 석기시대였다가...진짜 큐브가 거기 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시간의 축을 선으로 보는 게 문제가 아닐까요? 01-24 * 
 
일병 구본성 
5.12.1.71   사과를 볼 수 있고 그것의 빈 자리를 상상할 수 있기에 공간이란 인식 가능하다고 여겨지지만, 순간을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렇기에 시간을 인식하는 것은 이미 지난 순간과의 차이를 통해서 인식할 수 밖에 없고, 이것이 시간을 공간화 시켜서 인식함을 의미하는 것인가요? 
개론서를 뒤적일때 시간을 공간화 시켜서 인식하지 않고 질적(?)으로 인식할때 진정한 생성과 변화등이 가능하다고 했나 대충 그랬던 것 같은데,, 대체 무슨 얘기를 베르그송은 하고 싶었던 것인가요? 01-24 * 
 
병장 이승일 
54.2.9.70   '기억' 과 과거는 동일하지 않습니다. 기억은 인식론적 개념이고 과거는 존재론적 개념이지요. 

우리의 인식 속에서 과거와 현재 미래가 뒤엉켜 있을 수는 있지만, 물리학 혹은 분석철학에서 다루는 시간은 그렇지 않지요. 

또한 '과거에 존재했던 사물들'과 과거라는 시간적 영역 역시 동일한 것이 아닙니다. 

1. 물리학적 의미에서의 시간이라는 차원 
2. 시간 속에 존재하는 물리적 대상들 
3. 기억과 기대라는 의식의 현상에 기초한 시간 

이 세가지를 제대로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베르그송의 시간에 대한 시론은 3번의 개념에 대한 이야기이죠. 
물론 이 세가지 개념 모두를 받아드려야할 필요는 없으며, 이 중 어떤 것을 수용하느냐에 따라 다른 시간 이론을 구성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건 이 세가지 구분을 전제 한 뒤 통합 혹은 거부하는 것이 편리할 것입니다. 0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