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1. 
 병장 이승현 02-28 13:52 | HIT : 136 



 습작1. 그러나 울음을 터뜨릴 이는 내가 아니었다.

 차사고로 얼굴이 심하게 훼손된
 어떤 목사는 늘 한쪽 눈에 가리개를
 끼고 다녔다 그에게 아랑곳하지 않는
 어느 고등학교 강단 위에서 그 목사는
 설교 도중에 가리개를 벗었다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엔 구멍난 상처를
 메운 검은 살만이 있었고
 학생들은 비장함과 우스꽝스러움을 동시에 경험하는
 어색함을 무마하기 위하여 더욱 그를 외면했다

 어느 날엔가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열다섯 가량의 남자들에게
 돌려가며 강간당한 여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엔 누군가에겐 익숙할 이름들이
 여러 차례 언급되었으나 나는 알지 못했고
 다만 열다섯명이 여자 위에 사정한
 생명 없는 정액만이 떠오를 뿐이었다
 낙태시술을 받는 여자의 신음처럼
 그러나 울음을 터뜨릴 이는 내가 아니었다. //

 오래전에 처음으로 썼던 시인데 이제 보니 시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네요.
 울음에 관한 글을 보고 기억이 나서 올려봅니다.
 나의 언어를 갖는다는 건 쉬이 되는 일이 아니군요.
 특히 불행에 관해서는.
 시를 보증하는 것은 시인의 삶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혹은 시는 시인의 삶 그자체일 
 수도 있겠군요. 시와 삶, 아직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두 가지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