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미야 하루히 센세이션 
 병장 박수영 06-10 21:58 | HIT : 253 



 스즈미야 하루히 센세이션



 교토 애니메이션에서 제작한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이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을 즈음 나는 군대에 있었다. 물론 센세이션이라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이쪽 세계' 에서의 이야기로 그 전설의 포켓몬, 드래곤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소규모의 센세이션이었지. 아무튼 내가 입대 전 활동했던 애니메이션 팬패이지나, 동인계에서는 이 문제작 '스즈미야 시리즈'로 난리도 아니었다…고 한다. 

 슈가를 나갔더니 다짜고짜 친구녀석이 봐라. 무조건 봐라. 팔을 질질 끌고 PC방에 들어가 강제로 보게해서 아무튼 봤다. 14화 밖에 안 되서 금세 보았다. 호오. 애니메이션의 퀄리티는 TV판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미친듯이 높았다. 이전에도 교토 애니메이션은 말도 안 되는 퀄리티로 유명한 제작사였기에 나름 예상은 했지만, 정말로 황당한 작품을 만들어 내었다. 애니메이션 한편 제작하는 데 드는 돈이 결코 만만한 액수가 아닌데, 이렇게 돈을 발라서 만들면 그 분들은 뭐 먹고 사시는지 모르겠다. (라면만 드시나?)

 그리고 나선 친구가 NT 노벨도 함께 빌려 주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또 보았다. 그래서 대충 후기를 올린다. (내일이 슈가라서……. 미리미리 올려놔야죠. 후후)

 ──────────────────────────────────────



 어떠한 영상이던, (혹은 텍스트던) 한 나라의 한 장르에는 공식화된 유형이라는 것이 생긴다. 이를테면 MTV에서 보여주는 우리나라 뮤직비디오에서는 허구한 날 조폭이 나와서 각목을 휘두르고, 아름다운 미모의 여배우가 비명을 지르며, 뭐가 폭발하고, 누군가는 뒷통수에서 피를 흩뿌리는 그런 전형성. 미국 드라마는 무슨 놈의 '특수 수사대'가 그리도 많은 지.

 아무튼 그것은 일본 애니메이션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그놈의 공식과 전형적인 전개가 넘치도록 난무하는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드라마나 영화 같은 경우 기존에 갈고 닦은 캐릭터를 차용해 올 수가 있다.  스타 캐스팅. 그 경우 해당 배우가 가지고 있던 그 밑바탕이 캐릭터에 녹아 들어 그 작품 안에서 해당 역할의 매력을 보다 원할히 끌어내줄 수 있다. 애니메이션의 경우에는 원화가와 성우의 조합으로 배우 만큼은 아니더라도 조금이나마 사전 캐릭터 형성에 도움이 된다. 그런데 텍스트는?

 아무리 유명한 작가의 글이라고 해도, 새로운 글의 캐릭터는 결국 그 작가의 손에서 나열되는 문자들의 조합으로 확립된다. 아무리 매력적인 캐릭터를 그려내고 싶어도 그것은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니다.  "이 캐릭터는 엄청나게 매력적이라, 보는 사람들은 한방에 뿅 갈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매력적인 캐릭터가 되나? 고만고만한 작가들이 써내는 고만고만한 캐릭터. 청순가련형, 츤데레형, 과묵한 형, 신비주의형, 활발한 형. 아무튼 이런 부류의 전형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작품을 꼽아보라고 하면…. 글쎄. 모르긴 몰라도 A4 한 두 장으로는 택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 냉정한 일본 NT 노벨 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작가들은 자신들의 캐릭터가 조금이라도 생명력이 있고,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은 일단 '캐릭터들의 생명력'이라는 부분에서 성공을 거머쥐었다. 항상 귀찮은 듯 하면서도 은근히 불타오르는 평범한 외모를 자랑하는 주인공과 존재감 없는 친구 A,B(타니구치… Etc) 등장하는 매력적인 여자 캐릭터 3명과 남자 캐릭터. 항상 제멋대로고 투덜거리는 이른바 츤데레형  스즈미야 하루히, 청순가련형에 완벽 미모, 착한 몸매를 자랑하는 아사히나 미쿠루, 항상 조용히 책만 읽는 침묵계 소녀 나카토 유키, 핸섬한 외모에 뭐든지 다 잘할 것 같은 완벽남 코이즈미. 정말로 그냥 캐릭터들을 나열하고 나면 그냥 주변에 굴러다니는 저 미소녀물들과 하등의 차이점도 없다. 그런데도 캐릭터들은 매력적이다. 왜냐고?




 ──────────────────────────────────────

 전형성과 비전형성의 조화

 이것이 포인트다. 수많은 캐릭터가 난무하는 세계에서 어떤 뚜렷한 아이덴티티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

1. 캐릭터는 평범하되 세계관과 스토리가 범상치 않은 경우. 서사적인 요소가 클 경우 어떤 사건의 전개에 의해 캐릭터들이 끌려다니게 되므로, 그런 경우 캐릭터는 평범하더라도 스케일이나 전개가 즐거우면 캐릭터는 아이덴티티를 확립하게 된다. 
[ 은하영웅전설, 건담시리즈, 코드 기어스.. 등등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

2. 또 하나는 스토리는 평범하지만, 그 속에 움직이는 캐릭터들의 행동이나 개성이 뚜렷한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 사건 자체는 진부하지만, 그 진부함 속에서 드러나는 캐릭터들 만의 독특한 개성과 맛이 살아 숨쉬는 경우.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
[ 생략]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의 경우 1번으로 위장하고 있지만 결국은 2번으로 귀결된다. 보통 일상세계에 특이한 가상의 세계관을 도입한 경우. 결국은 그 세계관에 의해서 '일상'은 무너져버리고 만다. 결국 비일상이 일상을 대체해버리는 경우 일상에서 드러나게 되는 캐릭터들의 성격은 감추어지고 서사적인 구조 하에서의 캐릭터들의 움직임이 중요해 진다. 그러나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은 언뜻 '정보통합사념체', '초능력자 집단', '미래에서 온 집단'들이 등장하여 스즈미야 하루히라는 어떤 '신의 능력'을 지닌 소녀에 대한 각자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것처럼 보이나, 결국은 아무것도 없다. 비일상은 일상에 아주 교묘하게 함몰되어 있다. 우주인 소녀도, 초능력자도, 미래인도 그저 평범하게 스즈미야 하루히와의 조금은 이질적인 학교생활을 함께 향유한다. 저 3명의 조직과 하루히와의 관계를 연결시키는 교두보로써 '평범한 학생' 쿈 (주인공이다) 이 존재한다. 

 여기에서 첫번째 매력 포인트가 등장한다. '작안의 샤나'와 비교를 해보겠다. '작안의 샤나'의 경우 일상에 머무르고 있던 주인공이 여 주인공 '샤나'와 조우하게 되면서 일상은 빠르게 비일상으로 전이된다. 강한 적들은 계속해서 등장하여 그와 샤나의 목숨을 노리고, 이런 와중에서 느긋하게 일상을 향유할 수는 도저히 없는 것이다. 이런 식의 전개는 지금까지 수도 없이 많이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굳이 자세히 언급할 필요도 없겠다.
 그러나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의 경우 특이한 세계관을 표방하면서도, 그것이 일상에 미치는 영향은 지극히 적어 (그 설정이나 스케일에 비해서) 그것은 그저 조미료 마냥 쿈과 하루히 사이의 미묘한 거리를 변화시키는 용도로써 귀결된다. 그래서 언뜻 보이기에 전형적인 이것은 동시에 비전형성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진중함, 가벼움, 산뜻함, 질척거림. 이 다양한 요소들을 묘하게 버무려 낸다. 

 또한 캐릭터들도 마찬가지다. 언뜻 보기에는 전형적으로 보이는 캐릭터들은 저마다 비전형적인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 작품 이름이 '스즈미야 하루히' 인 만큼 이 캐릭터의 중요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안철수 백신 연구소에서 '안철수'라는 세 글자가 가지는 상징성의 무거움과도 같다]. 이 범상치 않은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서 작가는 상당한 공을 들인다. 

 약간 정신이 이상한게 아닌 가 싶을 정도의 특이한 가치관.  난 평범한게 싫어. 특이한게 좋아. UFO. 외계인. 미래인. 초능력자 그런 것들. 왜 이리 세상은 따분한 걸까? 일상 그리고  평범을 극도로 혐오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는 이런 비정상적인 일들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정상적인 가치관을 명확히 가지고 있다. 그래서 캐릭터는 안정화 된다. 속칭 말하는 또라이적인 캐릭터가 아니라 자신이 바라는 것과 현실적인 가치관을 동시에 갖춤으로서 캐릭터는 입체성을 띄게 된다. 또한 그녀의 심리 상태를 절대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코이즈미라는 캐릭터를 통해 최대한 간접적으로 표현함으로서 그녀라는 캐릭터가 값싸게 보이는 것을 차단해 냈다. 너무나 많은 심리 상태가 노출이 되면, 신비성이 떨어지고, 신비가 사라진 캐릭터는 재미가 없다. 
 그런 면에서 이 스즈미야 하루히는 절묘하다. 완전 무뇌아 마냥 설치다가도 언뜻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쿈과 항상 투닥거리며 거리감을 유지하다가도 순간 묘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관객이 기대하는 모습을 절대 '싸게' 팔아 넘기지 않음으로써 스즈미야 하루히는 '아이덴티티'를 획득했다. 

 그리고 완전히 전형적인 캐릭터로 등장하는 '아사히나 미쿠루'는 그야말로 전형성이 극치이다. 여기서 또 재미있는 것은 일부러 이 캐릭터는 '뒤틀지' 않는다. 완전한 노림수 캐릭터로써 그대로 활용한다. 작가들도 바보가 아니고 너무나 전형적인 틀에 사로잡힌 캐릭터는 재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전형성을 부여한 뒤 독특한 개성을 추가함으로써 식상함을 벗어나려고 한다. 이것을 역으로 뒤트는 것이다. 그야말로 개성이라고는 눈꼽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의 전형성을 응축하여 모아버림으로써, 그냥 보고 즐기는 캐릭터로써 그녀는 존재한다. 쿈도 바니걸 복장이나 메이드걸 복장을 하는 미쿠루를 보며 즐기며 '내 마음의 안식'이라던가 화려한 미사여구로 치장하지만 결코 그 이상 나가지 않는다. 주인공과 해당 캐릭터 간의 거리감이 변화하는 것은 '하루히', 그리고 '나가토'로 한정된다. 

 관객이 기대하는 모습을 너무나 '눈에 보이게' 응축시켜 버림으로써, 오히려 역으로 '아이덴티티'를 획득했다. 

 마지막으로 수 많은 팬들을 보유한 나가토의 경우 역시 전형적인 '무쿠치(말이 없는)' 캐릭터이다. 주인공의 표현에 따르면 겨울잠을 자는 뱀도 저보다는 많이 움직일 것이라는 극도의 조용한 캐릭터. 이런 부류의 캐릭터는 보통 감정이 아예 없다기 보다는, 누군가 그것을 깨워줄 사람을 찾지 못했을 뿐으로. 다정다감한 주인공의 작업에 조금씩 조금씩 감정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여, 관객을 열광시킨다. [대표 : 호시노 루리. 끗]
 이분 역시 점차 감정을 깨닫는다는 점에서 다른 무쿠치 캐러들과 크게 다른 점은 없어보인다. 대신 완전 부가적인 속성으로 '외계인  대 유기생명체용 휴머노이드 인터페이스(였던가?)' 를 추가로 가지고 있어, 기존의 과묵하고 운동신경 둔한 캐릭터와는 달리 초인간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언어로써는 이해할 수 없는 정보를 파악하고, 무엇이던 할 수 있는… 쉽게 말해서 미소녀 도라에몽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하루히와의 트러블로 무언가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쿈을 도와주는 묘하게 순종적인 면에서 사람들을 쾌감을 얻는 것이겠지.

 평범한 속성에 완전히 상반되는 속성을 부여함으로써 아이덴티티 획득.

[ 남자는 생략..]

 언뜻 보기에 완전 전형적일 것 같은 이 글은 그 속에 비전형성을 보일 듯 말 듯 숨겨 녹여내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 매력이 있다.



 ──────────────────────────────────────


 마무리 지으며


 그럼에도 이 작품의 캐릭터들의 생명력은 결코 아주 특출 난 것은 아니다. 전형적이면서도 비전형적인 캐릭터는 상당한 매력을 갖추고 있지만 결코 '센세이션'을 일으킬 만큼 격렬하지는 않다.

'아야나미 레이'나 '호시노 루리'의 압도적인 캐릭터에 비하면 내 생각은 So~So 정도?

 그럼에도 이 작품이 센세이션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애니메이션'의 힘이다. 우리가 어떤 글을 볼 때, 우리는 그것을 텍스트로써 받아들이는 것 뿐만 아니라, 영상으로 상상한다. 텍스트를 바탕으로 개인의 상상력에 덧씌운 그것은 생각보다 기준점이 높아서 왠만한 영상화로는 독자들의 마음에 쉽게 차지 않는다. 사람들의 상상력이란 생각보다 뛰어나니까. 

 그래서 일반적으로 어떤 텍스트의 '애니메이션'화가 결정되어도, 원작을 아는 사람들은 기대보다는 걱정이 우선 앞선다. 이번엔 또 어떤 식으로 원작을 망쳐줄까. 그게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개중에 그나마 잘 된 것이 '원작'을 그럭저럭 잘 소화했다고 하는 정도다. 

 그런데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애니메이션은 원작을 초월했다. 텍스트를 보면서 상상하게 되는 것. 그 이상이 영상으로 구현화되어 있다. 저패니메이션을 자주 보다보면 어느 정도 작품의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된다. 극장판이나 OVA처럼 힘이 들어가기 보다는 한정된 돈과 시간으로 작품을 만들다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려니 하고 포기하게 된다. 그런데 이 스즈미야 하루히 애니메이션은 그런 '내심 포기하고 있던 부분'을 멋지게 초월해 주었다.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정교한 영상과 카메라 웍. 학교 축제 장면에서의 신들린 듯한 공연씬. 
 애니메이션을 조금이라도 봤다는 사람이라면 입을 적 벌릴 장면들로 가득하다. (TV 애니메이션이라는 테두리 하에서)

 평작보다 조금 나은 정도의 텍스트는 교토 애니메이션이라는 괴물 집단에 의해서 특급으로 화했고, 그 결과 텍스트 또한 함께 고공비행하게 된 것이겠지. 만약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라는 것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그냥 애니메이션을 보길 추천한다. 텍스트는 그저 그렇다. 

 아 그리고. 대상은 어느 정도 미소녀 물에 나름 익숙해져 있는 분들이어야 한다. 


 ──────────────────────────────────────

 그럼 본인은 이만 슈가를 (슈슉)



 병장 조보람 
 박수영병장님 보완관련 규정 위반... 
x 가 대신에 휴x, 슈가, 나들이, 혹은 설탕이라고 고치셔야합니다.(퍼퍽) 

 글 잘읽었습니다. 왠지 저도 나가서 보고싶어지는데요? 
 그나저나 당분간 못뵈겠군요, 잘 쉬다오세요! 06-10   

 상병 임승균 
 일단 애니메이션 방영/국내 소개 이전부터 작품, 즉 소설의 팬임을 공언했던 입장이지만 (작품을 좋아하는 것과 작품에 대한 평가는 별개이기에) 제 견해와 거의 같네요. 부연하자면, 캐릭터의 배치나 일부 전개가 돋보이긴 합니다만 냉정하게 말해서 시리즈의 인기는 이토 노이지의 일러스트와 때마침 찾아온 츤데레 붐과 교토애니메이션에 빚을 지고 있는 셈이죠. 이전에 권당 18만-20만부였던 판매고가 현재는 60만부에 달하게 된 것도 그렇구요. (통상적으로 라이트노벨은 10만부만 넘겨도 히트작이었습니다. 풀 메탈 패닉이나 키노의 여행 같은 초대형 히트작도 30만부 정도였죠. 그러니 여러가지 의미에서 스즈미야 하루히는 대사건.) 
... 그렇다고 해서 '원작은 그저 그렇다'는 평가에 완전히 동의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나 1권 우울과 애니메이션화되지 않은 4권 소실은 뛰어난 SF '라이트노벨'이에요. 06-11   

 상병 박재우 
 지금 제 손에 '스즈미야 하루히의 분개'가 들려 있습니다. 하하 06-11   

 병장 김대현 
'2006 년 4월 그 때 하루히는 지구적地球的 대세였습니다.' 

 라고 흔히 표현하더군요. 저도 심히 동감하는 바로... (실눈) 06-11   

 상병 이선열 
 음... 아무튼. 
 교토 만세입니다. 06-12   

 상병 김준기 
 하루히 애니는 정말 대단하죠... 하루히 댄스...->럭키스타 댄스~ 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