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둘로 쪼갤 수 있다, 당도 인민도 심지어 물리적 세계의 원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President Mao(毛)-
"우리의 정신은, 모든 사납고도 단호한 '예'와 '아니오'에 대해 격렬한 고통을 느끼도록 훈련되어 있다."
-니체-
1.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들의 책마을
지금까지의 소사 선거에서 드러난 '당파성'에 대한 숱한 문제제기들이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왜 별 다른 정치적 특색을 띨 필요가 없는 소사 자리에 굳이, 연대나 방향성 그리고 정치성을 구하며, 책마을에 분란을 일으키는지에 대한 준엄한 우려와 경고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아무리 이를 가볍고 최대한 발랄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해도, 저는 동훈님, 형태님, 민정님이 표한 안타까움에 대해 그렇게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문제제기에는 피할 수 없는 '묵직'하고도 무거운 우려들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저는 책마을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 중에서 상당수의 분들은 이번 '논란'을 통해 자신을 '머리는 차갑되, 가슴은 따뜻한 남자'들임을 훌륭하게 입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따뜻하게, 라는 금언이 징후적인 울림을 가지고 책마을에 대두되는 것을 저는 목격하고 있습니다. 한 편으로 어떤 분들은 책마을에 형성된 '괴수'들의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분위기를 어떤 장애물로 상정하셨다면, 저는 오히려 이 금언이 표현하는 바야말로 책마을의 가장 문제적인, 주류적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따뜻하게. 그것은 한편으로 모든 것에 대해 "비판"하고 "분석"하고 "성찰"할 수 있음을, 책마을은 바로 그러한 사유의 해방구임을 함축합니다. 그리고 또한 그것은 책마을이란 사람 냄새가 나는 그런 곳이라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민해기 님은 바로 이러한 점에서 출발하여, 굳이 책마을에 대한 어떤 '노선'을 선언하지 않아도 이미 책마을이 그 자체로 인문독서커뮤니티로 흘러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지적하며, 이 모든 것이 과도한 소란에 지나지 않냐는 의문을 표하셨습니다. 헌데 저는 오히려 바로 그 점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 책마을에 대한 혹은 책마을 안에서의 하나의 '노선'을 창안해야할 강박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필연적으로' '인문적-비판적' 담론에 자연스레 무게중심이 쏠릴 수 밖에 없는 책마을의 진지한 성향의 이면을 구성하는 것은, 다시 말해 차가운 머리와 냉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앞서 말한 '따뜻한 가슴' 덕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여러분들이 책마을 안에서 '말하고자'하는 욕구를 가진 분들임을 그러한 범민주적 시민의 구성원으로서 이미 인정받았다면, 그 안에서 무엇을 하든, 무슨 말을 하든, (단 하나의 금기만 범하지 않는 한에서) 여러분들의 진정성은 '증명'될 테니 말입니다. 이것이 제가 일전에 "글쓰기의 관념화"(<[내글내생각] 글쟁이의 자기기만> 참조)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며 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의 어느 담론공간이 그렇지 않겠냐만은, 책마을에서도 무엇이든 일단은 '쓰고' 보면 그 진정성이 인정되고야 마는 기막한 '합의'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동훈님이 정환님에 대해 왜 굳이 책마을의 노선에 대한 '합의'를 정해야 하냐며 반발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합의'를 깨뜨리는, 반합의적인 적대를 표면 위에 띄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히려 인문독서 커뮤니티에 만연한, 행복한 '상호인정' 속에는 '추문적'(헤겔이 주노의 변증법에서 보았듯이)인 것이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냉철한 지성이 가져야만 하는 따뜻한 가슴이 실상은, 타인에 대한 애정과 존중과 배려라기보다는 차라리 냉철한 지성이 그 자신과 타자에 대해 수행하는 방어적인 거리두기의 심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전도된 사태가 존재합니다. 확실히 책마을에서는 텍스트 상으로 무엇이든 '진지하게' 말하고 사유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러한 '진지함'은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려는, 결국 이 모든 것은 '말'에 불과하기에 아무래도 좋다는 반-사유적인 자기만족적인 경향을 내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담론'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저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빠질 수 있는 함정입니다. 사실 윤정기님이 최근에 허원영 씨의 글을 인용했지만, 저는 그러한 사람들이 '담론'의 편에서 취하는 진지함의 태도에서, 기껏해야 언어적인 진지함에 불과한 것을 그 자신의 인격적인 진정성으로 인정받으려는, 나아가 자신의 실천적-현실적 무기력을 타인의 인정을 통해 보상하려는 패배주의의 단면 외의 그 어떤 것도 보지 못하겠습니다.
2. 책마을의 적대
그런 의미에서 아마 정환님이 자신이 소사 입후보 포부를 밝히면서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겠다고 말한 것에는 분명 정교한 요점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예찬님이 후근대적 생활양식의 "비뚤어진 자기애"라고 표현한 것에 반대되는 것임이 틀림 없습니다. 다시 말해 정환님이 표현한 "사랑"(이것은 어쩌면 기독교적 사랑, 더 나아가 체 게바라의 폭력적인 사랑과 비견될지 모르겠습니다)은 '차가운 지성'임을 자처하는 그 무엇이 사태에 대해 냉정하게 거리를 두며 모든 것을 지나치게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그렇게 해서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 '가슴 따뜻하게' 사랑하려는, 그렇게 해서 자신은 상처 받지 않으려는, 비뚤어진 냉소적 자기애를 유지하려는 상황을 '중단'시키려는 개입의 제스처였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 생각이 저로 하여금, 그의 입후보 선언을 보자마자 그를 지지하게 만든 것이기도 했고요. 저는 정환님과 더불어 책마을의 주된 정서와 정 반대되는 것을 '노선'으로서 정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저희는 가슴은 냉정하고 차가운 냉혈한들일지는 모르겠지만(책마을의 구성원 하나하나가 너무나 소중하다고 말씀하신 동훈님과 정 반대로, 저 자신은 오히려 책마을의 구성원에 대해서는 사실 무심하고,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공지사항이나 제대로 올릴 수 있을까라는, 예찬님의 의혹도 그런 면에서 일리가 있고요) 오히려 머리만큼은 뜨겁게 유지하고자 하는 노선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책마을이 '전장으로서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바로 그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된다면, '나의 책마을은 이렇지 않아!'(마치 나의 아스카는 이렇지 않아라고 말할 팬들처럼)라고 외칠 분들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전보다 책마을의 분위기가 더 각박해지겠지요.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다는 것입니까.
저는 동훈님이 '사태'라고 표현한 이 모든 논란에 대해 양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그것은 누군가 저에게 한 표현에 따르면 책마을에 암묵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적대Antagonsim'를 표면 위에 띄웠다는 점에서는 저는 거기에 대해 반가움과 심지어 어떤 니체적인 즐거움마저 가지고 있었다고 봐야겠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저는 거의 즉각적으로 '어처구니 없다'는 말로 제 불쾌감을 표현할 수 밖에 없었지요. 그것은 동시에 '적대'가 정확하게 인지되지 않는 것에 대한 어떤 저항감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하지만 여기에는 어떤 필연성이 존재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여러분과 저의 '적대'는 일의적으로 말해질 수 있는 게 아니라, 정확히 적대 그 자체를 바라보는 두 관점들 간의 적대로 재기입되어 있습니다. 적대는 적대를 바라보는 두 관점 자체의 적대이기도 합니다: 책마을을 가로지르는 두 노선(비판적 인문독서 커뮤니티를 향한 지향성과, 그것에 대립되는 지향성)이 있음을 말하는 것과(이것이 책마을에 대해 제가 지금껏 시도해왔던 라캉주의적 개입이고요), 그러한 적대를 각자의 다양한 성향과 취향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어떤 (그러나 불가피할지도 모르는) 불행한 '소란'으로 치환하려는 이데올로기적 순치기능 간의 적대로, 적대의 진정한 본성이 그렇게 '이중화'되어 드러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어쩌면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제가 굳이 어떤 정념을 표출하지 않아도 될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역으로, 책마을의 노선 간의 적대를 부인하는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그 적대가 '분명히 존재함'을, '갈등'을 바라보는 그 적대적 시선 자체에서 찾아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분명히 존재함'을 찾아내는 행위야말로, 그러한 노선의 적대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으며 그것은 허구이며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바로 그 구실로 이 '갈등'을 보다 은밀한 방식으로 부추기는 것보다 더 정직한 태도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차이는 명백히 서로에 대해 호의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한 책마을의 구성원들 간에 갈등을 부추기느냐 부추기지 않느냐의 차이에 가로놓여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차이는 이 갈등에 어떻게 개입하고 어떻게 정식화하는지에 따라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갈등이 서로 관점이 다른 개인들이 빚어낸 자명한 해프닝으로 그치지 않고, 이 갈등의 본성 자체가 각각의 관점 속에서 '분열'되어 있음이 자각될 때, 그러한 갈등은 정치화되며 개입의 여지를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책마을에는 분명한 노선의 차이가 있다, 인문 독서 커뮤니티를 향한 방향과 그것에 반동적인 방향 간의 차이가 있다"는 선언은 그 자체로 잠재해 있던 '적대'(뜨거운 머리와 차가운 머리 간의 적대)를 그 자체로 새롭게 발명하고 형상화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습니다. 정환님의 문제적인 메니페스토가, 그것이 아직 실질적으로 어떤 '공약'도, 책마을에 대한 이러저런 제안도 함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적실했던'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입니다. 해기님은 이 논쟁이 소모적이며 정치적인 것과 무관한 지평에 놓여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오히려 이 논쟁 혹은 논쟁을 촉발한 '선언'이 즉각적으로 정치적인 문제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여기에서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쟁점이야말로 유일하게 '정치적'인 쟁점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쟁점을 소사선거 이후에도 재발명해내야 합니다. 적대는 다른 어떤 데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이미 피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러한 발명을 통해 '도래'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긍정하는 축과 그렇지 않은 축으로 나뉘어 있는 것이지요.
민해기님은 이에 반해, 가령 소사에 대한 이런저런 개념정립이 되어 있지 않고, 심지어 책마을을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한 실질적인 (그러나 장차 도래할) 쟁점들이 표면에 부상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메니페스토의 정치성을 운운하는 것은 넌센스임을 암시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러한 제스처에 반대하며, 바로 그러한 쟁점들이 도래하기도 전에 두 적대적인 노선을 '선언'하는 것이야말로 첨예한 정치적인 문제라고 생각하며, 바로 그러한 정치적인 문제는 마오 선생 말대로 어떤 조직도, 설사 그것이 제 아무리 미시적인 조직이라 해도 '피해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러한 '피해갈 수 없다' 급박한 위기감이 지금 소사선거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신 분들 사이에서도 '공유'되고 있음을 분명히 목격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인정하시겠지만 저의 든 이야기나 혹은 정환님이 했던 모든 이야기가 어쩌면 '독서후기'나 '내글내생각' 게시물의 형식으로 어떤 책이나 사상이나 저자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기 생각을 드러내는 방식이었다면 아마 그것은 지금만큼 '불편'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지금 저와 생각이 다른 분들 중에서는 호의적인 반응 표하는 분들도 있었겠지요. 그런데 바로 책마을 한 가운데에서, 그것도 부적절한 어떤 타이밍에 바로 자신의 선언을 만들어내서 이렇듯 논쟁을 촉발한 것, 그것에 대해서 저는 이 자리를 빌려서라도 제 개인적인 찬사를 보내고 싶으며, 선거결과와 무관하게 그것이야말로 지금 책마을에 '필요한 정치적 논쟁'이라고 생각합니다.
3. 소사란 무엇인가, 다시 말해 대표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저는 '소사'라는 자리에 대해 몇 마디 더 언급하고 싶습니다. 저는 단지 '소사'라는 자리가 '상징적인' 자리이기 때문에, 그 자리를 어떻게 해서든 누군가로 채워넣고야 말겠다는 야수적 정념을 가지게 된 것도, 그로 인해 여러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 것도 아닙니다. 물론 '소사'라는 자리는 책마을에 대해 '대표적'인 어떤 존재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대표'란 무엇인가요? 정작 그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사고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예찬님이 올려주셨던, '소사'라는 명칭의 변천사에서도 엿보이듯이 그것은 단순히 책마을 일반의 여론을 '반영'하고, 그것을 위해 묵묵히 복무하는 어떤 자리가 아님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책마을의 즉자적인 여론과 무관한 자율성을 가집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율성' 내지는 '임의성'이야말로 좋든 싫은 은연 중에 책마을의 대표성을 표상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라는 사실도 분명하게 인지되어야 합니다. 소사들이 단순히 책마을의 일반여론과 일치하지만은 않고, 그들 나름의 정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책마을의 성격을 규정짓고 그 방향을 이끌어왔던 것이지요. 나치에 복무했던 경력으로 악명 높은 독일의 헌법학자 칼 슈미트의 말을 빌리자면, 대표자란 결코 인민의 의지를 그 자체로 대표하지 않습니다. (이게 슈미트의 사상에서 가장 큰 논란을 일으킨, 그러나 가장 적실한 부분일 텐데) 오히려 대표자는 현실적으로 말해서 다른 누군가가 아닌 오직 '스스로'를 대표할 뿐입니다. 대표자가 그러한 자기-표상적인 존재인 한에서, 그는 또한 역설적으로 인민의지 일반의 (대표자가 아닌) '체현자'로서 실질적으로 어떤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됩니다.
저는 소사라는 자리가 그 자체로 대단하거나 권위가 있다고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칼 슈미트가 지적한 '대표'의 문제를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고플 뿐입니다. 소사 선거의 결과여부에 관계 없이, 지금 책마을 소사 선거에 걸려 있는 것은 바로 이 '대표성'에 함축되어 있는 문제적 역설과 이율배반이 징후적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본인들 말대로 소사라는 자리가 그저 '복무자'의 자리일 뿐이라고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면, 어쩌면 이 논쟁 자체를 제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이 논쟁은 작금 책마을의 상황 안에서, '소사'라는 자리가 불편한 어떤 지점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단지 그 사실이 지금까지 은폐되어 왔음을 역으로 폭로한다고 하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누가' 대표가 되느냐가 아니라, 이 대표성이 어떻게 정치적인 쟁점으로 첨예화되느냐에 걸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54.1.24.74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12-07
15:50:47
병장 윤정기
22.33.1.126 제가 인용한 허원영씨의 글이 원익님의 말처럼 어떤 반사유적인 진지함, 즉 타자의 인정을 통해 자족적인 글쓰기를 영위하려 하는 패배주의의 발로가 되었다는 점에서 저는 굉장히 부끄럽네요. 이건 다분히 저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리거든요. 흑. 저의 글이 자기비판에서 나아갔지만 결국 반대로 자기만족에의 투신이 되었다는 점에서 저는 원익님이 <글쟁이의 자기기만>에서 지적하신 바로 그 '문제점'이 되었나 봅니다. 이것은 사실 어떤 면에서 '뜨거운 머리' 자체를 가지지 못했던 저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겠지요. 다만, 제가 나아가고자 했던 방향이 도리어 자기에의 탈각이었다는 점에서 이것은 더욱 모순이라고밖에 할 수 없군요.
여담일지 모르지만 우리가 서로에게 보내는 '칭찬'이라는 것, 즉 원익님이 행복한 '상호인정'이라고 표현하신 것이 바로 '추문적'인 ㅡ 즉 칭찬 행위를 통해 칭찬받는이가 가지는 모종의 부담과 칭찬하는이가 가지는 피드백들 ㅡ 것이 되는 현상은 사실 '텍스트'로서 가지게되는 우리들의 비대면적인 방어심리의 표출이라는 점에서, 저는 이 문제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나머지, 특히 소사라는 자리가 가진(대표라는 자리의) 의미에 대한 칼 슈미트적 해석은, 사실 꽤나 시의적절한 지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록 중재자의 입장에 서더라도, 소사는 언제나 자신의 의견으로 대표성을 표상하게 되는지도.. 하지만 무정부적인 것이 늘 그렇듯, 우리는 무정부적인 체제 내에서도 정부적인 체계를 만들어나가는 존재라는 점에서 그 자체도 이미 역설적인 것이 아닌가 합니다. 2009-11-05
14:41:14
일병 오학준
54.12.16.183 다시 말해서 여러분들이 책마을 안에서 '말하고자'하는 욕구를 가진 분들임을 그러한 범민주적 시민의 구성원으로서 이미 인정받았다면, 그 안에서 무엇을 하든, 무슨 말을 하든, (단 하나의 금기만 범하지 않는 한에서) 여러분들의 진정성은 '증명'될 테니 말입니다. 이것이 제가 일전에 "글쓰기의 관념화"(<[내글내생각] 글쟁이의 자기기만> 참조)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며 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의 어느 담론공간이 그렇지 않겠냐만은, 책마을에서도 무엇이든 일단은 '쓰고' 보면 그 진정성이 인정되고야 마는 기막한 '합의'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부분에 특별하게 동의합니다. 사실 이 논쟁은 그러한 '진정성'의 합의에서부터 시작한 것 같아서 말이에요. 2009-11-05
15:07:53
병장 김진호
22.65.5.94 난독증이 있어서인지 언제나 원익씨의 초특급 장문은 딱 반 정도만 이해되네요. 흑흑.
요약정리해주신다면 참으로 좋겠습니다만...
그리고 아마도 이 논쟁과는 상관이 없을 듯 하지만
원익씨의 당선이 확실시되는가운데 조금 무섭게 느껴집니다. 원익씨가...
여러가지로요. 2009-11-05
15:59:27
병장 박원익
54.1.24.102 정기/저는 딱히 정기님 개인에 대해 어떤 불만을 말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거기서 뜨끔함을 느끼셨다면, 그 뜨끔함은 또한 저의 것이라는 말씀을, 정기님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학준/동훈님은 작금 문제가 되는 '합의'를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어떤 것(저와 정환님이 전시하는 어떤 것)으로 전치하고 싶어하는 것 같지만, 저로서는 또 다른, 외설적인 합의가 있다고 보는 것이지요.
원익/저는 제 자신이 여러분과 같이, 설탕 나가는 날에 어린아이처럼 기뻐하고, 여자친구를 그리워하며 남몰래 눈물을 훔치는 매력적이고 인간적인 남자라는 것을 굳이 내세우지 않아서, '무서워' 보이는 게 아닐까요? 2009-11-05
21:18:16
병장 홍명교
20.19.3.55 진호/
왜 무섭죠? 저는 비틀거리고 울고웃고 좌절하는 원익씨가 보이는데. 2009-11-05
22:4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