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를 넘어서 (상병 김강록/051101) 
 
 
 
 
72. 서태지를 넘어서 :


나는, 가만 보면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은 사람이다. 무슨, 말이 끝도 없다. 침묵은 나 자신에 대한 반역이랄까. 아니, 절실하긴 하지만 그렇게 극적으로 비장하진 않다. 일종의 스트레스 해소랄까. 쇼핑에 중독된 주부처럼, 맹목적이라 해도 차마 부인못할 어떤 분출이었다. 그래서 휴X 나가서 가장 하고 싶었던 것 중의 하나가 고작,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몇 시간이고 줄창 붙들고 늘어져 일사천리의 장문을 하나 써내는 것이었다. 군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아무래도 제약되니까. i기면서 써야 하니까. 초원을 달리는 몽고기병의 심정으로 글 하나를 썼다. 서론과 결론, 그리고 각각 소제목이 붙은 네 개의 본문. 각각의 본문 역시 하나씩 떼어놓고 봐도 결코 짧지만은 않은 거의 하나의 완결된 글이다. 그러니, 평소 습관이 붙은 몇 배의 분량이 되었던 것이다. 폭발적인, 그 글의 전체 제목은 '폭발적인 하루의 기록'이었다.

글의 요점이 한 마디로 뭐라고 자신있게 말하지는 못하겠다. 처음부터 그렇게 명료한 것이었다면 장문의 글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굳이 말해보자면, '일상 속에서의 포연없는 전쟁을 위한, 청년들에게 보내는 내 방식대로의 독려' 정도라고나 할까. 죽지 말자고, 죽음을 생각하지 말자고 썼다. 그리고, 우린 아직 젊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바로 그게 문제였다. 부대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점차 아직 젊다는 말의 의미가 미심쩍어졌던 것이다. 다른 게 아니고, 이는 서태지의 노래 가사에 대한 인용이었다. '우린 아직 젊기에 / 괜찮은 미래가 있기에 / 자, 이제 그 차가운 눈물은 닦고 / come back home.' 서태지가 우리의 젊음을 근거로 삼아 제시하는 일이란, 무엇이 괜찮은 미래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의 눈물이 그저 닦아내면 그만인 성격으로 말할 수 있는 구체적 설명이나 이해의 과정도 없이, 그냥 집으로 돌아가라? 부랑아는 집으로, 뭘 하든지 일단 집으로 들어간 뒤에 그때가서 얘기하자? 아차 싶었다. 서태지에게서 빌린 어조에서 가족주의의 흔적이 묻어있었다니.

이런 보수적 귀결은, 자칫 내가 나름대로 애써 떠든 장문의 글 전체를 그저 시중에 흔해빠진, 시시껄렁하고 낭만적인 그런 종류의 청춘 예찬 정도로 만들 위험이 있었다. 나는 발끈했다. 아니 서태지가, 겉으로 드러나는 이미지와는 달리 뭔가 석연찮은 속내를 감추고 있는 듯 했기 때문이다. 천재, 라는 단어 대신 사기꾼이란 단어가 그의 이름 옆에 나란히 연상되었던 것이다.

젊음이란 태생적인 반시대성을 함의하고 있다. 끊임없이 솟구치는 에너지이고, 더 이상 주체할 수 없어 마침내 터져나오고 마는 폭발력이다. 가출청소년들이여, 그만 하면 됐으니 집으로 돌아가라? 좋은 얘기다. 하지만 내가 아는 서태지의 입에서 나와서는 안되는 말이었다. 그만 하면 됐으니까? 그건, 나이 들어서도 스머프에 미쳐있으면 바보라는 소리와 뭐가 다른가? 새가 되어 날아가리라 외쳐야 했다. 서태지는, 어설픈 절충안을 택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서태지는, 치밀하게 계산했다. 물론 그가 자본주의 속에서 대중 가수로 성공하기 위해, 발언권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방법론적인 고민도 필히 뒤따랐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하는 말을 전부 거짓으로 전락시켜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인간 서태지를 미워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왕좌는 더 이상 걸맞지 않다. 그를 파면시켜야겠다.

나 역시 서태지를, 좋아했다. 노래방에서의 마지막 곡으 '필승'인 경우가 많았다. 앞으로도 곧잘 부르곤 할 거다. 영웅 서태지가 아닌 그냥 서태지의 노래를, 앞으로도 좋아할 거다. 이렇게, 따라부를 거다. "밤새우며 그리워한 많은 날들을 / 미치도록 사랑스런 너의 모습을……."

서태지를, 우리가 주저앉을 자리로 삼고 싶지 않다. 어떤 인식론적 단절─지금 우리 세대가 서태지에 대해 해야 할 작업은 바로 이거다. 서태지를 넘어, 그 너머를 향하여. 영웅을 잃게 됨을 두려워하지 말자. 그 이상을 얻게 될테니까. 여전히 우린, 아직 젊다.


2005. 10 27. 木

大영일고등당구스쿨 공채 24기 목동의 김프로





병장 한상천 (2005-11-01 14:31:23)  
강록님 한동안 솜씨를 보여주지 않으셔서 삐질뻔 했습니다.  

상병 김성민 (2005-11-01 14:40:07)  
무슨 반론이고 찬성이고도 할게 없네요..그냥 멍~~해요..
대단하십니다!!!!  

상병 김동환 (2005-11-01 15:45:54)  
난해하군요.  

병장_박대열 (2005-11-01 15:47:45)  
"나는 영웅이 아니다
내 뒤를 보지말아라
내 뒤를 따라오지 말아라
나는 너의 옆에 서있는 한없이 약하기만한 너의와 같은 인간이다"
라고 서태지씨는 말했어요 나에게 음악으로...  

병장 오재찬 (2005-11-01 16:18:10)  
그리고 "바로 이날의 영웅은 바로 너"라고...  

병장 오규현 (2005-11-01 16:22:54)  
노래가사가 너무 복잡한 설명을 필요로 한다면 메시지의 전달력이 더 떨어졌겠죠.
제가 봤을 땐 방법론적인 타협이 아니라 대중성의 완전한 포기였던 것 같습니다.
서태지가 아니면 어떤 가수도 그런 가사를 들고 나올 생각은 못했겠죠.
이른바 역대박. 스타를 좋아하시는 분이면 다들 아실듯(웃음)  

상병 김대현 (2005-11-01 19:20:15)  
서태지는, 아마 그 영웅의 자리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스스로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요즘 우리나라 노래를 들어보면, 예전처럼 서태지만 좋아할 수가 없어서 행복하거든요.
원래 영웅이란 것은, 그렇게 곱게 갈려 레모나처럼 사람들의 입에 쏙쏙 들어가는 것으로 
제 의무를 다하는게 좋은 법이니까요.


그리고 가족주의는 떨쳐버려야 하는 자루이기에 앞서, 가장 안온한 자루이기도 하지요.
안티테제는 안티테제일 뿐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다만,
떠나오기 전과 다시 돌아간 후의 집은 서로 다르겠지만요.
그보다도 여기서 집으로 돌아가란 얘기는, 이를테면 다음 가사랑 비슷한 맥락이 아니었을까요.

"너무 깊이 생각하지마, 스쳐가는 의미없는 나날은, 오직 슬픔만이 돌아오잖아,
너무 깊이 생각하지마, 가시돋친 대화속에 남겨진, 너의 평범함을 외면하진마,"
- 김광석, [너무 깊이 생각하지마]  

상병 이석현 (2005-11-01 19:49:26)  
빙산의 일각일뿐.
신이 아닌 인간이기에.  

상병 김강록 (2005-11-02 17:46:30)  
저 역시 서태지의 깃발 아래 두 개의 달이 뜨는 밤을 기다리던 사람입니다. 제 얘기는 그의 가사─라는 것은 그의 세계관이 겉으로 표현된, 적어도 서태지 정도라면 더더욱─에 일관성이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제가 원하는 '일관성'이라는 이름의 기대에 서태지가 꼭 부응해야 한다는 의무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기대와는 달랐다고 말할 수 있는 거겠죠. 이를테면, 솔로 3집에서 '요즘같은 여성상위시대에...' 어쩌고 운운하는 것은 저로선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의외의' 면모들이, 어쩌면 감춰진 그의 진짜 모습 중의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에게 있어서 서태지의 위치가 결코 온당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파면, 이라고, 그래서 그렇게 말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모질지가 못합니다. 밤새우며 그리워한 많은 날들을, 미치도록 사랑스런 너의 모습을……. 말끝을 흐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를 사면에서 포위하여 일말의 빈틈도 없이 몰아붙이고자 하는 글은 아니었니다. 인간 서태지가 도망갈 수 있는 길은 남겨두고 싶었습니다.  

병장 조성훈 (2005-11-03 01:03:45)  
지적하신 가사 이전에 "다시 하나의 생명이 태어났고 또 다시 부모의 제압은 시작됐지" 라는 부분이 나오죠.
come back home 의 home을 단순히 '네가 떠났던 바로 그 집'으로 생각하는 건
가사 전체의 맥락을 고려하지 않으신거 같네요.
뛰쳐 나갈 정도로 답답한 '집'으로 다시 돌아오라고 할 정도의 서태지라면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선택이었던 고등학교 자퇴, 18세의 시나위 멤버, 20세의 난 알아요 
라는 그의 경력을 무색하게 하는 것이겠죠. 이것들은 그런 '집'에선 할 수 없는 것들이니까요.  

일병 강경구 (2005-11-03 08:24:24)  
서태지가 일관성을 고수하지 못한 마음을 '창작의 고통'이라는 단어로 '잠시 은퇴'을 선언 했던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상병 김대현 (2005-11-03 08:47:10)  
솔로 이후 서태지의 가사가 시들해진 건 사실이죠.
그래도 "요즘같은 여성 상위시대에" 후에 나오는 [Victim]의
"Sexual Assault, 넌 네 타인의 미친 광대에 저무는가,
Sexual Assault, 넥타이에 졸린 채 구토를 하는 너"는 괜찮았던 것 같은데요.
다만, 가사 속 메시지가 확실히 예전만큼의 파급력이 없다는게 씁쓸했지만.

확실히, 예술은 자기 등 따시고 배부르면 잘 안되는 것 같군요 [웃음]  

상병 강민구 (2005-11-03 08:51:07)  
태지는 배신을.. 보수적인 입장으로 타협을.. 치밀한 계산을.. 한 것도 아니고
석연찮은 속내를 감추고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에 그런 이야길 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시시껄렁한 청춘예찬? 청춘은 찬양받아야 마땅합니다. 젊은 그 한가지로도 무한한 가능성을 대변하기 때문입니다. 그 무한한 가능성을 포기하면서 방황한다는 것은 낳아주고 길어주신 부모님에 대한 배신이며 배반의 행동입니다. 뿐만아니라 자기자신에 대한 자학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요. 태지는 자신의 길을 가기위해서 -큰의미로서의- 집을떠나 다른 길을 걸어갔던 것입니다. 단순히 가출을해서 방황을하며 젊은시절을 낭비하는 그런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지요. 그러니 '폭발적인 하루의 기록'의 마지막을 장식한 '우린 아직 젊다'는 말에 '울컥'했던 것은 잊으셔도 될 것 같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웃음)  

상병 송영우 (2005-11-04 13:20:11)  
서태지가 과대평가 되었건, 이젠 영웅이 아닌 일개 가수이건..그건 중요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로 인해 행복했고, 그의 노래가 제 사춘기를 관통했단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