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해서 발을 씻었다. 닦고 닦고 또 닦고. 비누칠을 여러번 해서 발가락 사이사이와 각질이 뒤덮인 곳을 중심적으로 해서 열심히도 닦았다. 그러나 세면장을 나와 내무실 침상 바닥을 밟을 때면 어김없이 질타의 눈초리와 찡그린 코가 시야로 들어오기 마련이었다. 짬이야 먹었겠다 크게 뭐라 할 사람은 없지만서도, 예전부터 발냄새라는 억울한 사유로 전입초부터 주욱 갈굼을 받아왔던 나로서는 이런 무언의 협박도 괴롭기 마련이었다. 발수건을 들고 세밀하게 물기를 제거하지만, 그 지독한 내음은 사라지질 못했다.
그렇게, 스트레스 아닌 스트레스를 받던 매일매일에 닥쳐, 어느 날인가 나는 신발 안에 10원짜리를 넣어 놓으면 발냄새가 덜해진다는 뉴스를 우연치 않게 접할 수 있었다. 후임녀석이 지나가는 말로 한 것인데 - 어쩌면 나 들으라고 슬쩍 떠본 이야기 일지도 모르겠다 - 그냥 흘려 듣기에는 너무 큰 희소식이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둘째 치고라도 - 짬 먹었으니까 - 우선 내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안되겠던 참이었다. 이 괴로움에는 예전 발을 3일간 씻지 않아도 발냄새 다운 냄새 한번 나지 않는 내 발에 대한 아련한 추억과 그 아이러니함에 대한 스트레스까지 합쳐져 있었다.
아무튼 그 희소식을 들은 당일 나는 PX에서 씹을거리를 사면 어김없이 나오곤 하는 동전들을 오리들처럼 몰아넣은 동전통에서 10원짜리 2개를 꺼내 군화 깔창 밑에 각각 한개씩 집어 넣어놓았다. 아직 그 효험을 본 것도 아니건만, 후임녀석의 말에 희망을 걸어 어느새 내 맘은 어느 정도의 발냄새를 몰아내고 있었다. 더불어 스트레스까지도.
처음 몇일간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워낙 심하기도 심한 내 발냄새 였지만, 아마도 깔창에 배겨난 그 냄새 덩어리가 10원짜리 2개로는 정화하기 역부족이었으리라. 그러나 십원짜리 몇 개를 더 집어 넣는다고 효과가 더 좋아 질 것 같지도 않고, 일단은 그 효능에 대해 내 스스로도 의심이 가는 터라 그저 몇 일간 여유를 두고 상황을 좀더 지켜 보기로 했다.
세월동안 자신의 발냄새에 조금은 둔감해 진 탓인지 차이를 별로 실감하지 못했었지만, 반응은 주위에서 부터 먼저 나왔다. 내가 10원짜리를 넣어둔다고 공공연히 밝혔기 때문에 발생한 플라시보 효과일런지는 모르겠으나, 나와 관물대를 가까이 쓰던 녀석들이 정말 그거 효과 있나보다고 너스레를 떠는 모瑛?그냥 하는 말 같지는 않았다. 그런 흡족한 이야기가 들릴 때 마다 나는 숨겨진, 그러나 공공연한 미소를 만면에 띄우고 키스 할 듯이 주둥이와 코를 발바닥에 들이밀어 냄새를 맡곤 했는데, 과연 날이 갈 수록 내 특유의 '썩은내"가 줄어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10원짜리에 대체 어떤 광물이 들어있길래? 구리를 조금 조합해서 만든 동전이 아닌가?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잡지식에 어두운 나는 그저 슬며시 구리에 어떤 냄새 흡수 기능이 있지 않을까 하고 지례짐작 해 볼 뿐이었다. 아쉽게도 이 처방을 내려준 후임 녀석 또한 어떠한 작용이 숨어있는지 까지는 알지 못했다. 하기사 사람 사는 가운데 그 원리를 하나하나 다 알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리랴만은. 어떤 작용을 거치던 간에 내 발바닥에 짓눌린 10원짜리 4개가 분명히 이 악취를 제거 하는데 효과가 있는 것은 틀림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10원짜리는 어느 정도의 냄새를 제거 하는데에는 성공하였으나, 완전히 그 냄새를 가리는데에는 역할을 충실히 하지 못했다. 뭐 쥐스킨트 소설 향수에 나오는 그루누이도 아니고 내가 체취가 없을 수야 없고, 그 체취에 발이 포함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지만, 아쉬운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도 주변 사람들은 그나마 다행이라며, 함박눈이 진눈개비가 되었다느니 하는 군대적 발상에 의한 비유를 하며 내 발냄새 약화 (악화가 아니다!)에 소리없이 박수를 쳐주었다. 그리하여 나는 이정도 효과에 만족하여 10원짜리들을 내 발 밑에서 굴러다니도록 방치해 둔 것이었다.
문제는 20Km 행군을 한 뒤에 나타났다. 원래 깔창밑에 숨어 겨울잠 자는 개구리처럼 조용히 내 발냄새를 빨아들이던 그 10원짜리들이 오랜 걸음 탓이었는지 발 앞쪽으로 쏠리는 가 싶더니, 어느 덧 발가락 쪽으로 나와 내 5개 발가락을 유린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이런 문제쯤이야 엄지발가락을 놀려 깔창 밑까지는 아니더라도, 발바닥 밑으로 밀어 넣으면 그만이었다. 실제로도 그 작은 계획은 성공적으로 치루어졌고, 이에 행군도 별 무리 없이 끝 날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그 10원짜리는 내 발바닥 밑에 장난감처럼 자리 잡아, 존재감을 뽐내며 심심한 행군에 재미까지 더해준 셈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행군을 마친 뒤에도 나는 깔창 밖으로 비져 나온 이 10원짜리 녀석을 가만히 발바닥 아래에서 굴러다니도록 방치해 두었다. 굳이 깔창을 다시 들어 그 속에 집어 넣기가 귀찮았을 뿐만 아니라, 괜스레 서정이 마음에 깃들어 답답한 깔창아래 그녀석을 쑤셔 박기가 미안한 까닭이었다. 이에 10원짜리 녀석은 최소한 내가 전투화를 신고 다니는 시간 동안에는 그림자보다도 더 가깝게, 더 큰 존재감을 뽐내며 친구처럼 나와 함께 해주었다. 어디 그뿐이랴, 독한 냄새를 먹어치우는 희생정신까지 발휘하지 않았던가! 참으로 德을 갖춘 친구라고 말하기에 한점 부끄러움이 없다.
그렇게 사랑스러운 친구 녀석을 내 발바닥으로 느끼던 어느 날이었다. 야간 근무가 있어 새벽에 내무실로 돌아온 내가 전투화를 벗던 순간, 내 눈에 그녀석이 들어온 것이었다. 문제는 그녀석이 그녀석이 아니라는데에 있다. 나는 한동안 그 녀석을 빤히 바라보았다.
분명 시궁창 냄새를 머금는 녀석에 걸맞게 구릿빛 피부를 자랑스럽게 뽐내고 있어야 할 그 녀석이, 마치 봄처녀 같은 자태로 은색 광채를 반짝이며 깔창 위에 올려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그것은 분명 100원짜리였다. 그것도 2005년도 발행인, 꽤 새 것의 동전이었던 것이다. 나는 의아해졌다. 그렇다면 그림자처럼 붙어 나를 지켜주던 그녀석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철썩같이 신뢰하고 믿었던 10원짜리 녀석이 아니었던가? 구리에는 냄새를 흡수하는 기능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었는데 갑작스레 튀어 나온 저녀석을 보고 있자니 혼란스러워졌다. 안그래도 잠자다 일어나 근무를 다녀온 탓에 정신이 혼미한 상태인데, 이 상황은 나에게 너무 급작스러웠다. 그래 혹자는 그런 문제를 뭐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냐고 말 할 지도 모른다. 허나 나에게 있어 10원짜리는 냄새를 흡수해주는 동전, 물체 이상의 존재였던 것이다.
전투화를 빤히 들고 바라보다가 나는 행군을 하던 도중 주머니의 구멍을 통해 100원짜리가 굴러 전투화로 들어간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보기도 하고, 처음부터 어리석은 나의 머리가 10원짜리와 100원짜리를 섞어서 집어 넣었던 것이 아닐까 예상해 보았건만, 그 가능성들은 금새 뒤집힘을 당했다. 내 튼튼한 전투복 주머니 속으로는 조그만 구멍 하나 없었고, 10원짜리 녀석들을 집어 넣을 당시 마치 포커 카드를 쥐 듯 엇갈려 쥐고 바삭바삭 대며 후임 녀석에게 "이녀석들이 앞으로 나를 도와줄 위인들이다" 하며 너스레를 떨었던 기억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누가 청소시간에 100원짜리를 흘려 내 군화에 집어 넣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행군시에 내 발가락을 아프게 하며 깔창을 벗어나오던 그 녀석의 사투를 생각하면 또 불가능 한 말이었다.
나는 멍하니 창문으로 비치는 10원짜리 동전같은 보름달을 바라보다가, 전투화를 슬그머니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렇다. 나의 친구 10원짜리 녀석이, 내 발냄새를 머금은 탓에 이무기 용이 되듯, 달이 지고 해가 뜨듯, 100원짜리로 변모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것은 지난날 행군에서 보여줬던 사투에도 그 증거가 명백했다. 이를테면, 거북이의 산란같은 아주 맹렬한 자기와의 힘든 싸움이었던 것일 게다. 알을 깨고 나온 10원짜리 녀석. 아니 이제는 100원으로 변모한 그녀석을 나는 군화에서 빼내 집어 들고는 살짝 입맞춤을 해 주었다. 막 근무를 다녀온탓에 뜨듯한 감이 없지 않았으나, 상관없었다.
"장하다"
나는 웃으며 말해주었다. 보름달이 환하게 창문을 꿰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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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과장이 가미된 논픽션입니다. (킁) 저는 발냄새가 심하지 않습니다.
아, 그리고 이건 재탕입니다. 제목을 바꾸긴 했는데. 재탕입니다
이제 재탕 재료도 거의다 떨어져 갑니다
상병 이지훈
푸하핫. 재목이 너무 웃기네요 03-12
병장 이윤창
예전 서프라이즈에서 방영했던
발냄새로 사람 죽인 이야기를 떠올릴 수 밖에 없는 제목이네요. 03-12
상병 이지훈
근데 발냄새가 생산해 낸것은 모든것은 마음에 달렸다는 것인가요? 03-12
병장 배진호
음 논픽션이면 누구의 소재인지요 궁금하네요 흘흘 나름대로
흥미로운 발 소재였어요~~!
그나저나.. 그 놈의 십원짜리를 난로위에 놓고
학대하던 기억도.. 십원짜리를 갈아 윤택나게 한다고
막 갈아대던 시절도 기억이 나네요~ 03-12
병장 안수빈
하하.. 잘 읽었습니다. 지민씨 글도 언제나 읽는 즐거움을 주시는 것 같아요.
부러움 반, 고마움 반! 03-12
병장 정준엽
생산적 활동?! (궁금하면 ocn을 보라!) 03-12
병장 이승일
아 정말 지민씨 글은 어떻게 이렇게 재밌을 수가!!
제목 정말 딱 맞네요 ~ 생산적 발냄새 ! 03-13
상병 진규언
입맞춤이라니요...입맞춤이라니요... 03-13
병장 박상호
재탕 재료가 거의 다 떨어져 가신다면.
어서 새로 쓰셔야죠. 마구 재촉해드리겠습니다.(먼산) 03-13
병장 이영준
신발에 녹차 잎을 넣어도 발냄새가 없어진다는 말이 있던데... 03-13
병장 성태식
'드리클로'라는 약이 괜찮습니다. 발냄새의 근원인 땀을 없애주지요.
단지.. 사용하기가 좀 귀찮고 계속 사용해야 한다는 상당히 큰 단점이 있지요.
(....) 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