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은 발전을 위해 자신의 죽음을 택했다. 
 
 
 
 
원핵생물
초창기에 지구에 등장하여, 지금도 생태계의 뒷골목을 주름잡는 실력자인 원핵생물의 가장 큰 특징은, 핵(Nucleus)이 없고, 뭉쳐진 염색질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 염색질을 똑바로 펼쳐놓으면, 이른바 이중 나선의 원형 고리가 되는데, 바로 이 고리가 원핵생물의 특징을 결정짓는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다. 이 구조의 최대 장점은, 단백질을 생산하는 과정이 극도로 단순화 된다는 점이다. 만약 어떤 단백질을 생산해 내야한다면, 염색질을 잘 풀어헤친다음, 필요한 부위의 코드를 RNA가 복사한 다음, 그 상태 그대로 아미노산 조합을 개시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핵생물의 패턴은 엄청난 번식력으로 바뀌었고, 단 한마리의 원핵생물이 한시간도 안되어 수백마리로 뻥튀기가 되고, 이 상태를 그대로 놔두면 하루도 안되어서 조 단위를 넘어버리는 경우까지 만들어버린다.

하지만, 이 방법은 자신의 정보가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한마디로 진화라는 현상 자체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며, A라는 단백질을 생산해내는 원핵생물은 오직 A밖에 못만든다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해 버렸다. 이렇게 되면 원핵생물은 오랜기간 살 수 없기 때문에, 플라스미드라는 일종의 매개체를 만들게 된다.

이 플라스미드는, 염색질과는 분명 구분이 된다. 일단 코돈 자체가 그렇게 크지 않을뿐만 아니라, 세포 바깥으로 나가는 경우 역시 흔하다. 사실 염색질이 세포 바깥으로 나가게 된다면, 그 세포는 당류와 단백질이 결합된 껍질에 불과해진다. 하지만 플라스미드가 없다고 해서 죽는다거나 하는 일은 발생되지 않는다. 이는 플라스미드가 생존에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님을 알게 된다.

하지만, 플라스미드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것과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플라스미드 역시 독자적으로 RNA를 전사하는 능력을 가졌으며, 이를 통해서 원핵생물은 사기적인 적응능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예컨데, 원래대로라면 원핵생물이 먹으면 죽는 항생제라 할 지라도, 플라스미드에 이 항생제를 분해하는 코드가 존재한다면, 원핵생물은 항생제를 맞아 죽기는 커녕, 항생제를 분해해서 에너지원으로 쓰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이른바 내성이라고 불리우는 현상이 바로 이것이다.

진핵생물
어떻게 생물이 핵을 만들었는지의 여부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핵이 생겨나면서 세포질에 있는 플라스미드는 사라진것이 분명하다. 핵은 세포질과 염색질을 갈라놓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진핵생물은 원핵생물과 같이 사기적인 번식력을 가질수가 없게 되었다. 하지만, 핵을 따로 보관함으로써, 좀 더 정교하고 많은 정보를 보관할수 있게 되었으며, 또한 RNA가 제대로 전사되어 핵 바깥으로 나온다면, 조직적인 세포질의 활동으로 훨씬 큰 단백질을 만들수 있게 되었다.

이는 생물계에 하나의 혁명이었다. 단순히 군락을 형성하는것뿐만이 아니라, 이들 단백질을 뼈대로 해서 군집을 형성하게 되고, 외부와의 경계벽을 만들어서 하나의 개체가 되는것 역시 가능해졌다. 이것이 이른바 다세포 생물의 시작이다. 우리 인간 역시, 이런 부류중의 하나에 속한다.

그런데, 이런 과정에서, 핵에 엄청나게 많은 정보가 축적됨에 따라, 단순히 염색질을 원형으로 구성하게 되면 그 정보를 찾는데 엄청난 시간이 걸리게 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염색질을 몇개로 나누는 작업을 단행하게 되는데, 단순히 나누기만 하면 공간 활용에 크나큰 애로사항이 있을 터, 적절한 형태로 만들어서 정보를 보관하게 되는데, 바로 염색체가 이것이다. 염색체의 끝단에는 텔로미어라고 불리우는 당단백질이 있어서, 다른 유전정보와 자신을 확실하게 구별 할수 있게 되었으며, 수 많은 정보의 바다속에서 RNA가 DNA를 재빨리 찾아서 복사할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서, 이렇게 함과 동시에 진핵생물은 한가지 장점을 얻게 되었다. 기존의 원핵생물은 자외선을 직접 쬐게 되면, 뉴클레오티드의 한 종류인 티민이 과민반응을 일으켜서, 티민 이합체를 형성하게 되는데, 만약 이 티민 이합체에 의해서 염색질이 심하게 꼬이면, 세포의 유전정보는 그 기능을 상실하게 되고, 결국에는 RNA가 효과적으로 정보 복사를 할 수 없게 되어, 그 세포는 죽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데 진핵생물은, 텔로미어라는 존재 때문에 꼬인 부분을 완전히 잘라낸다 한들 염색질이 완전히 풀리는 경우가 드물었고, DNA의 염기서열을 다시 복구하는것 역시 훨씬 쉬운일이 되었다. 이는 비단 자외선 뿐만 아니라, 뉴클레오티드와 민감하게 반응하는 여러 물질들과의 접촉에서도 우위를 가지게 되는 원인이 되었고, 원핵생물처럼 뒷골목을 지배하는 존재가 아닌, 대로로 나갈수 있는 계기를 만들게 된 것이었다.

텔로미어는 시계이다

하지만, 텔로미어는 저런 강점만을 준 것이 절대 아니다. 지금까지 시계가 없어서 무한한 삶만 반복하던 원핵생물과는 달리, 자신이 분열하면서 염색질이 풀리는걸 막기 위해 텔로미어의 길이를 차츰 차츰 줄여야 하는 진핵생물은, 텔로미어가 다 풀리게 되면 그 생명을 종말시켜야 하는 운명을 가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텔로미어의 길이를 줄이지 않기 위해, 처음부터 DNA를 새로 조합하여, 넉넉한 길이의 텔로미어를 가진 하나의 새로운 세포를 만드는 방법 - 이른바 유전자 교환을 통한 유성생식이라 불리우는 방법 - 을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특정 성질'만 전달해주는 플라스미드와는 달리, 정보의 '하이브리드'를 만든다는 점에서, 진화에 한걸음 더 나서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식으로 진핵생물이 생명계의 역사에 발을 들여놓은지 벌써 수십억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어떤 진핵 생물도 이 텔로미어의 길이를 줄이는 방법을 찾지 못하였고, 결국에는 유한한 생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많은 원핵생물들은 텔로미어를 지니지 않았고, 생존에 위협이 되는 요소가 존재하지 않는이상, 자신의 무한한 삶을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 원핵생물은, 시간이라는것이 어떻게 지나가는것인지를 느끼지 못한다. 단지, 자신이 존재했느냐 안했느냐만이 중요한 것이고, 그러므로 과거와 미래를 구분할 필요가 없는것이다.

하지만 진핵생물은 텔로미어라는 시계를 보면서, 자기 자신의 흔적을 미래에 남겨야 하는 의무를 가지게 된다. 우리 생물에게 얼마나 좋은 방향으로 흔적을 남길것인지 고민하고, 새로운 텔로미어를 가진 새로운 존재를 자연에 전해줘야하는 사명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명은 어느새 진화라는 것으로 이루어졌고, 그 진화의 뿌리들중 하나가 바로 인간이라는 존재가 된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인간의 이성은 인간이 뛰어나다고 자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텔로미어의 존재는 저런 인간의 자만심이 순간의 일임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병장 노지훈 (2006/03/22 03:47:07)

생물학도 흥미진진하네요. 모르는 단어들이 몇가지 있는데요. 
코돈, 뉴클레오티드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지? 
그리고 "아직까지도 어떤 진핵 생물도 이 텔로미어의 길이를 줄이는 방법을 찾지 못하였고" 이 부분 잘못된것 같은데 맞나요? 
생물 공부는 매우 싫어했지만 이런 글은 재미있네요. 감사합니다~    
 
 
상병 김정훈 (2006/03/22 06:31:23)

DNA는 뉴클레오티드의 연결로 구성됩니다. 뉴클레오티드는 인산, 당, 염기의 한 덩어리를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이 중에서도 인산과 당은 DNA이중나선에서 골격을 형성하고 안쪽에 염기가 위치하며 상보적으로 이중나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염기라 함은 고등학교 생물시간에 들어봤을 법한, A(아데닌), G(구아닌), C(시토신), T(티민), U(우라실, 단 RNA에서 존재)을 칭하는데요. 이 염기들이 쭉 일렬로 늘어서 있습니다. 
Ex) AGTTCAGAGCCTTACAATTCCAAGGTACG 와 같은 식으로 늘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염기서열은 각각의 고유한 암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암호는 염기 3개가 뭉쳐서 의미를 갖는데요. AGT, TCA, GAG 로 끊어서 각각을 하나의 코돈이라 칭합니다. 상기 코돈은 복제의 시작, 복제의 종결 등 여러 의미를 내포하게 됩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원핵생물도 핵은 있죠(핵양체의 형태로) 다만 핵막이 없을 뿐이죠. 기본적으로 핵막의 유무에 따라 원핵 생물과 진핵생물로 나뉩니다.    
 
 
상병 조용준 (2006/03/22 06:46:51)

지훈// 진핵생물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텔로미어의 길이를 증가시키는 방법은 현재까지 없습니다. 분열을 하는 과정에서 "절대적 수치"안에서의 텔로미어 증가가 일어나기는 하지만, 세포 분열에 따라서 텔로미어 역시 증가하는것이지, 텔로미어의 "길이"가 증가하는것은 아닙니다. 이런식으로 분열할때마다 텔로미어의 길이는 줄어듭니다. 

물론, 새로운 개체가 탄생할때, 그 개체의 텔로미어는 기존 개체의 텔로미어 길이와는 상관없이 "새로운 길이"를 가지게 되는데, 이를 분기로 하여 한마디로 전혀 별개의 삶을 가지게 되는것이죠. 이는 수정 후 염색체가 재조합되면서 생기는 과정입니다. (재조합부터는 약간 어려운 부분이므로 생략할게요.) 

결과적으로 진핵생물은 새로운 텔로미어를 만들어서, 새로운 후손을 유지할줄은 알지만, 자신의 텔로미어를 늘여서 생명을 연장시키는 방법을 쓸 줄은 모른다는 겁니다.    
 
 
 병장 김동환 (2006/03/22 07:33:43)

오. 쉽게 쓰셔서 그런지 이해가 쉽군요. 용준님 전공이 이쪽이신가봐요?    
 
 
상병 조용준 (2006/03/22 07:44:03)

동환// 네. 생물학 전공입니다.    
 
 
상병 조주현 (2006/03/23 14:40:28)

플라스미드로 잘라낸 DNA정보를 옮긴다고 하던데, 문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