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 발가락 
 병장 임정우 02-15 16:09 | HIT : 164 



 별천지에 와있나. 이곳은 환한 번화가. 차가운 감정들이 회오리처럼 휘감아 도는, 그리고 한여름에 얼음처럼 녹아 스러지는 정념들의 무력함 뒷편에서 나는 우뚝 섰다. 사방에서 각종의 인파들이 짐승처럼 몰아 닥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술내음, 여자내음, 가벼운 다툼의 냄새부터 죽음의 향기까지.. 이곳 번화가 길거리에는 꿈결같은 모호함이 소나기처럼 내리고 그치기를 반복하고 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아프다. 내가 좀전에 무얼했는지 기억해 내려고 억지로 애써본다.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니 좀전 돌뿌리에 부딪혀 다친 새끼 발가락이 지옥처럼 아려온다. 그리고 새끼 발가락에 고통보다 수천배는 가혹한 이별의 기억이 ,칼로 쑤신 상처에서 봇물쳐럼 자지러지는 핏물의 홍수처럼, 동맥의 리듬감에 동조하여 한다발씩 뿜어져 나온다. 아, 나는 이별했다. 그것도 첫 이별. 모든 처음은 아름다웠다. 오늘이 나를 쩌억 갈라버리기 직전까지는.

 숨을 가다듬고 들이켰다. 그리고 걸었다. 정처없이. 절벽에서 발을 헛딛여 굴러떨어져 다리가 부러진 산양처럼.. 끔찍하게 부자연스럽게 어딘가로의 귀가를 강요당하는듯한 몸부림을 뱃속에 거하게 채운 차림새로 말이다. 차가운 밤바람이 귀밑을 사정없이 에이고 돌고 집어뜯고 할퀴고 지나간다. 붉게 물든 부끄러운 귓볼은 잔뜩 긴장해 움츠려 든다. 하지만 어떠한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난 거짓말을 하고 있다. 사실 오른쪽 새끼 발가락이 아프다. 어떤 죽일놈이 망치로 개잡듯 후려치고 있는게 분명하다. 보이지 않는 그 잡놈을 잡는다면 목을 졸라 죽일테다. 난 살기에 들어차 있다. 아프다. 분노보다 고통이 나를 사로잡는다. 나의 정신을 확실하게 훈육하여 자신의 포로로 만들 작정이다. 나는 저항해 보지만 도리가 없다. 얼굴을 어둠의 생명체처럼 구겨뜨린다. 고통이 기억의 조각들을 환상적인 술수를 이용하여 흐린빛의 추억으로 조립해 버린다. 조금씩 깨닫기 시작한다. 나는 이별했다. 그것도 첫 이별. 모든 처음은 아름다워야만 한다. 

 그렇다. 처음이었다.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된것은. 키스도 나에겐 처음이었고, 그이상으로 다가온 모든 육체적인 허락들도 최초의 순결함이었다. 신촌근처 밴치에의 가슴 떨리는 고백도, 압구정동의 재즈바에서 누군가를 위해 노래했던것도, 서투른 솜씨로 김밥을 말아 우리들만의 여행을 떠난것도, 이런 모든것이 처음이었고 아름다웠다. 처음이어서 아름다웠나? 아름다운게 처음이어야 하나? 그럼 두번째는 아름답지 않았나?... 아니다, 아니다, 그녀와 함께 했던 모든것이 처음이었다. 매순간이 새로왔으며 새로운것은 처음이었고 처음이란건 아름다웠다. 나는 난생 처음 벅찬 환희속에 특별한 법칙을 만들었고 그 법칙에 개처럼 순종했다. 혀를 내빼고 꼬리를 흔드는 행위는 나의 심장속에서 걸핏하면 일어났고 그녀는 나의 그런점을 좋아했다. 아, 그녀가 건내는 손길이 기억난다. 매번 새롭게 피어나는 감정의 찬연함과 오롯함. 은 이제 없다. 나는 이별했다. 그것도 첫 이별. 나의 공식은 비스켓처럼 쉽게도 부서진다.

 그녀는 나를 사랑했다. 하지만 나의 전부를 사랑한건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아무 사이도 아니였을지 모른다. 그냥 인연마트에서 파는 잠깐 스쳐가는 코너에서 상당히 저렴한 품목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서로의 성적인 욕구에서 발현된 소모품의 일종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모든걸 알수없다. 아니다. 적어도 하나는 확신할수 있다. 분명 그녀는 나의 새끼 발가락을 사랑했다. 우리가 사랑을 나눈후, 언제나 그녀는 사랑스러운 입술을 벌려 나의 새끼 발가락에 키스를 하곤했다. 그때마다 나는 분명 사정을 할때보다 더한 쾌감에 몸을 떨곤 했다. 아아, 잠깐의 상상으로도 나는 쾌감으로 돌입하겠다. 하지만 고통은 상상을 겁탈한다. 겁탈의 이름은 이별. 그것도 첫 이별.  잔인하고 사정없는 상상.

 새끼 발가락이 점점 더 아려온다. 더이상 고통을 참을수가 없어 짐승처럼 끄억거리는 신음을 뱉어도 본다. 점점 그 세력을 넓히는 고통은 더이상 육체의 고통인지 정신의 고통인지조차 도저히 구별할수가 없게 만든다. 구원할길 없이 한없는 어둠속으로 발길이 다달았을때 뒤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번화가는 환한 웃음소리의 빛무리를 사정없이 난사하고 있다. 어쩌면 배를 붙잡고 낄낄대는 세상의 모습같기도 해서 잠시 고통을 잊고 따라 웃어본다. 배를 붙잡고 몸을 굽히고 점점 바닥에 쓰러져서 나중엔 흐느끼며 웃는다. 아무리 웃어보고 울어보고 몸을 뒤틀어보아도 나는 그녀를 잊을수 없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그녀를 잊어야만 한다. 나에게 아름다운 처음만을 건내주었던 그녀. 오직 나의 새끼 발가락을 사랑했던 그녀. 그러나 나의 새끼 발가락은 무려 한시간 전에 가혹하게 상처입고 말았다. 가로등 아래에서 자세히 보니 하얀 운동화가 핏빛으로 물들어 있구나. 그 더러운 운동화를 순결한 피가 능욕하는 장면을 지켜보니 너무나 아름다워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제 더이상 흔들릴 필요가 없다. 아마 그녀는 더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분명 더이상 사랑할수 없는거다. 그녀가 사랑하는 나는 없다. 그녀에게 있어서의 나는 더이상 없다. 나의 새끼 발톱은 죽어버린게 분명하다. 시간이 한참 지나면 구불거리고 더러운 색상의 발톱이 돋아나겠지. 그때면 고통이 다하여 우리의 추억도 늙은개처럼 생을 마감할것이다. 그래 죽기전에 나는 그녀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어떤 누구라도 나에게 비난하지 말기를 부탁하겠다. 이젠 다 끝이다. 세상의 끝에서 피어나는 꽃의 이름은 이별. 아름답고 선명한 핏빛의 이별.



 상병 이지훈 
 그녀는 가끔 생각할까요? 정우님의 새'끼 발가락을? 
 그렇게 사랑스러웠던 그 기억들이 잊혀져 간다는게 믿을수 없습니다. 흑!!! 02-15   

 병장 배진호 
 슬픈 이야기이네요.. 

 뭐 아련하게도 아쉽게도.. 

 모든 흔적은 남아있지만.. 

 지우려고 단지 발버둥 칠 뿐이라는걸.. 02-15   

 병장 임정우 
 이거 픽션 인걸요. 으흐흐.. 02-15   

 병장 배진호 
 그렇군요... 흑.. 그래서 더 슬퍼요.. 02-15   

 병장 임정우 
 진호 / 이.. 이봐요?.. (덜덜) 02-15   

 병장 배진호 
 넵?;; 핫.. 뭐 오해하셨나봐요.. 제가 속았다는 사실에 슬프다는.. 쿨럭... 02-15   

 병장 임정우 
 진호 / (장난) 뭐, 픽션은 픽션인걸요. (웃음) 02-16   

 병장 김청하 
 글 끝의 세미콜론은 금지여요.. 02-16   

 상병 박수영 
 우오오 짝짝. 잘 읽었습니다. 이런 글 너무 좋아해요 

 정우님 멋쟁이... 02-16   

 병장 임정우 
 수영 / 감사해요. 이거 사실 이상한 글이에요. 흐흐. 02-16   

 상병 김지민 
 나도 이 글 좋아해요. 흐흐 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