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심리에 고통을 잊는 작용이 있다는 사실은 고마운 일이다. 우리는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은 잊지 않지만, 그 경험에 대한 느낌을 언제까지나 처음처럼 간직하지는 못한다. 그렇지 않고 처음 겪을 때와 같은 예리한 통증이 너무 자주 떠오른다면 삶은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상실은 잊지 못한다. 왜냐하면 상실은ㅡ특히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거나 중요한 물건을 잃어버렸을 경우ㅡ우리의 세계를 변화시켜 우리로 하여금 그 새로운 세계에 다시 적응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가족들 중 우리에게 중요한 사람이 없어진 빈 틈, 혹은 우리의 일상생활을 이루었던 평범한 사건들 중에서 어느 하나가 사라진 빈 틈은 그전까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다. 그렇기 때문에 이혼이나 직장과 가족을 잃는 것은 무엇보다도 쓰라리고 아픈 경험이다. 게다가 그런 일은 잔인하리만치 갑작스럽게 일어남으로써 세상에 대한 믿음이나 우리 자신에 대한 신뢰와 같은 다른 것들도 상실하게끔 한다.

  유비무환이라고 모든 것에는 준비가 필요하다고 한다. 사람들은 당연히 상실의 상황에 처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러면 정작 무언가를 상실했을때 쓰라릴 뿐이다. 삶은 상실이고, 사랑도 상실이며, 뭔가 귀중한 것을 얻으려는 노력도 상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중요한 것을 얻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그 사실을 용기있게 인정하는 것이다.

  상실은 개인에게 파괴적인 힘을 지니기 때문에, 스토아학파는 사람들에게 사전에 준비를 하라고 가르쳤다. 삶의 모든 것은 불확실하며 확실한 것은 단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언젠간 상실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뿐이다. 예를 들어 결혼을 할때 우리는 장차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리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매일 아침 해가 뜨는 것처럼 상실은 명백한 사실이다. 사랑이 깊다면 우리는 결국 죽음을 통해 상실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이별, 변화, 새로운 사랑의 발견, 옛 희망의 상실, 너무 많은 오해의 축적으로 인해 상실할 것이다. 그것이 곧 삶이다. 아무리 낙천적인 사람이라 해도 그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스토아학파는 설사 잃는다 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만 소유하라고 권고했다. 이 생각을 더 일반화하면 이렇다. 우리는 외적인 사건들에 대한 통제력이 거의 없으므로 그 대신 우리 자신을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즉 바라는 것이 적을수록 우리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에 초연할 수 있으며(아파테이아, 부동심의 경지), 따라서 불가피한 일이 일어났을 때 상실감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가르침은 비록 사람들에게 삶의 변화를 담담하게 견디는 데 도움을 줄지는 몰라도, 또 그 착상은 가장 사려깊은 철학일지 몰라도, 실은 아주 중요한 핵심을 놓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감정을 지나치게 억제한다면ㅡ즉 사랑의 아픔을 피하기 위해 사랑을 자제하고, 욕망의 대가를 치르지 않기 위해 욕망을 억누른다면ㅡ그러한 삶은 따분하고 무미건조해지리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그것은 사실상 존재의 자극적인 측면을 최소화하기 위해 부분적인 죽음을 택한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의 삶에는 쾌락, 황홀감, 다채로움만이 아니라 고뇌, 불행, 슬픔도 따르게 마련이다. 삶을 힘껏 받아들이고 끌어안을 때, 활력과 의욕을 가지고 삶에 뛰어들 때는 삶의 갖가지 근심도 불러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근심을 회피하는 대가는 무척 크다. 인간의 짧은 생애 동안 참된 삶을 살아보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시간만 보낸 것이기 때문이다.
 
 
 
 병장 김청하 
  가끔은 막연히 이 글 쓴 사람을 꼭 만나보고 싶다, 는 생각이 드는 글이 있지요. 잘 읽었습니다. 05-18   
 
상병 김재영 
  저 역시 잘 읽었습니다. 
우리는 기다릴 수 있는 것만을 소유한다. 나는 죽어야 하기 때문에 이미 죽어있다. 05-18   
 
 병장 김지민 
  많이 와닿는 글이었습니다 
쿨한 사랑과도 겹쳐질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어요. 

한 가지 문제는 마지막에 결론 내리신, '근심을 회피하는 대가는, 참된 삶을 살아보지 못하게 된다는데에 있다' 라는 부분이 참인 명제인가 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부동심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은, 생을 무미건조하게 살고, 행복도 모르고 살게 되는 것일까. 그들은 또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고민해 봅니다. 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