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사 이야기] 신시시대(1)
아.. 오래 놀았습니다 그려. 세달만에 업데이트.(땀)
처음 보시는 분은 '상고사 이야기'나 제 이름으로 검색하시면 전편들이 몇 개 나오니 살짝 뒤적거려주시면
재미없는 얘기, 좀더 재밌게 보실 수 있겠습니다.
신시 시대는 총 1565년으로 추정됩니다. 간단한 연표를 보면 좀더 이해가 쉽습니다.
1세 - 한웅천황(거불한 한웅) 120세
2세 - 거불리 한웅 102세
3세 - 우야고 한웅 135세
4세 - 모사라 한웅 129세
5세 - 태우의 한웅 115세
6세 - 다의발 한웅 110세
7세 - 거련 한웅 140세
8세 - 안부련 한웅 94세
9세 - 양운 한웅 139세
10세 - 갈고 한웅 125세
11세 - 거야발 한웅 149세
12세 - 주무신 한웅 123세
13세 - 사와라 한웅 100세
14세 - 자오지 한웅(치우천왕) 151세
15세 - 치액특 한웅 118세
16세 - 축다리 한웅 99세
17세 - 혁다세 한웅 97세
18세 - 거불단 한웅(단웅) 82세
물론 연대기별로 1세 한웅천황부터 18세 거불단 한웅까지 무슨일이 있었는지 조근조근 얘기해보는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뭣보다 유의미한 자료자체가 적고 제 기억이 허락하는 시기가 1세 한웅천황, 5세 태우의 한웅, 14세 자오지 한웅, 18세 거불단 한웅, 요렇게 4가지 뿐이라서(땀) 일단 고 시기 위주로 띄엄띄엄 썰을 풀어보도록 하지요.
어느 역사서든 나라를 처음 연 지도자가 갖는 의미는 상당합니다. 기존 세계의 패러다임을 재구성해낼 능력도 능력이지만 국풍과 통치체계의 대부분이 보통 이 첫 번째 지도자에게서 결정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비교적 오래 지속된 성공된 국가의 첫 번째 지도자는 부풀려지기 쉬우며 특히 고대국가일수록 그 부기가 심하게 나타나게 됩니다.
한웅천황이 신시를 만들게된 과정이 삼성기(三聖記)하편에 나오는데 역시 하늘의 아들이 땅에 내려와 지도자가 되었다는 류의 통속적인 레파토리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대략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한국(桓國)의 말기에 안파견(제 1세 한인)이 밑으로 삼위(중국 감숙성 돈황현에 있는 산)와 태백(백두산)을 내려다보시며 '모두 가히 홍익인간할 곳이로다'하시며, 누구를 시킬것인가 물으시니, 5가(다섯명의 주요 신하) 모두가 대답하기를, '서자 한웅이 있어 용맹함과 어진 지혜를 함께 갖추었으며, 일찍이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뜻이 있었사오니, 그를 태백산에 보내시어 인간들을 다스리도록 함이 좋겠나이다'하니, 마침내 천부인(天符印)세 가지를 내려 주시고, 이에 말씀을 내리셨다.
제 1세 거발한 한웅께서 3000명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 밑에 내려오신 곳을 '신시'라 하고, 바로 그분을 '한웅천황'이라 한다. 한웅천황께서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데리고 곡식을 주관하고, 생명을 주관하고, 형벌을 주관하고, 병을 주관하고, 선악을 주관하며, 무릇 인간의 360여가지 일들을 모두 주관하여 세상을 교화하시니, 널리 인간세상에 크게 유익함이 있었다.
거발한 한웅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썰은 논외로 치더라도 우선 논란이 많은 부분은 거발한 한웅이 이끌던 이시기의 무리를 국가라고 인정할 수 있는지의 문제입니다. 본문에 보면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데리고 통치활동을 벌였음이 분명히 언급되지만 시기적으로 볼 때 이때는 기원전 3800년경이라 온전한 신석기 시대거든요. 보통 국가라는 체제가 갖추어지려면 신석기시대가 아니라 청동기 시대로 들어서야 한다고 봅니다. 이는 청동기가 가지는 제조적인 난이도 때문에 희소성을 가지기도 하거니와 적어도 청동기쯤은 되어야 인류가 문화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을정도로 수준 이상의 지성을 갖게 된다고 보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중국도 청동기 시대가 시작되는 이리두문화(二理頭文化, 夏)를 최초의 국가 성립단계로 보고 있으며 이집트 또한 이 시기에 국가가 성립되었다고 봅니다. 문제는 스타트가 좋은 중국 황하유역에서도 청동기 문화가 시작된 것은 기원전 2200년전이라는 겁니다.
아예 기원전 3800년경 거발한 한웅이 신시를 만들때 청동기 문화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말한다면 그냥 위서의 내용이라고 하거나 날조된 기록이라고 할만하지만 분명 거발한 한웅은 신석기 시대를 인정하면서도 법을 가진 세련된 형태의 나라를 만들었다니 거참 알쏭 달쏭합니다. 본문에서 '3000명의 무리를 이끌고'에서도 알수 있듯 거발한 한웅은 토착세력이 아닌 이주민 세력이었거든요. 역사적으로 비교우위의 문화를 가지지 못한 이주민 세력이 지배세력으로 정착된 경우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 부분은 확실히 여러가지로 석연치 않은 느낌을 줍니다.
거발한 한웅이 신시에 터를 잡고 고시례(高矢禮)로 하여금 먹여 살리는 임무를 맡게 하시고, 이를 '주곡(主穀)'이라 하셨다. 당시에는 농사의 방법도 잘 갖추어지지 않았고 불씨도 없었는데 어느날 고시례가 우연히 깊은 산에 들어갔다가 홀연히 큰 바람이 숲에 불어닥쳐 오래된 나뭇가지에서 소리가 나며 서로 부딪쳐 번쩍번쩍하는 불길이 잠깐 일어났다가 꺼지는 것을 보고 문득 깨달았다. 산에서 돌아와 오래된 홰나무가지를 모아놓고 서로 비벼 불을 만들었으나 아직 완전히 성공하지는 못했다.
다음날 다시 교목숲에 가서 이리 왔다 저리 갔다하며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는데 갑자기 호랑이 한 마리가 크게 울부짖으며 달려드는지라, 고시례는 고함을 지르면서 돌맹이를 집어 던졌고 그 돌이 호랑이 옆 바위 한쪽에 맞았는데 번쩍하고 불이 생기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크게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와 다시 돌을 부딪쳐 불을 만들었다. 그 뒤부터 백성들은 음식을 익혀 먹을 수 있게 되었고 물건을 만드는 기술도 점차 진보하게 되었다.
'신시본기 진역유기(震域留記)의 신시기(神市記)'에 나오는 고시례에 대한 기록입니다. 소풍가서 밥먹기전에 '고시례'하면서 먼저 조금 떼어놓는 풍습이 여기서 파생됐다는 설도 있고 아무튼 선후관계가 뒤바뀐 것 같기는 합니다만 국가에서 불씨 기술을 개발해서 사회에 보급한 셈이니 특이하다고 볼 수 있는 점입니다.
이밖에도 풍백(風伯) 석제라(釋提羅)를 시켜서 사람사는 곳에서 짐승을 쫓아내고, 우사(雨師) 왕금영(王錦營)으로 하여금 사람들이 동굴을 벗어나 살 곳을 만들게 했으며, 소·말·개·돼지 등의 짐승을 모아 축산을 관장케 했습니다. 운사(雲師) 육약비(陸若飛)는 남녀의 혼례법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신지(神誌 : 고대에 문자를 주관하던 벼슬 이름)혁덕(赫德)이 문자를 만든 이야기와 치우(治尤)가 병마와 도적(盜賊)을 관장하도록 했다는 기록이 신시 본기에 있습니다만 자세히 언급할만한 얘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신시본기에 등장한 '고시', '신지', '혁덕'은 그 후손이 왕성하게 늘어나 오늘날로 치면 '명문가'쯤 되는 집안들이라 앞으로 자주 등장하게 됩니다. 1세 거발한 한웅은 대략 이정도의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5세 태우의 한웅은 본인은 단전호흡 이외엔 뭔가 남겨놓은 것이 없고, 자식들 때문에 기억되는 케이스입니다.
태우의 한웅에게는 아들이 12명 있었는데 장남은 6세 한웅이 된 다의발 한웅이고, 막내아들은 태호(太皓)라 하는데 이사람이 중국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첫 번째 인물인 복희씨(伏犧氏)입니다. 복희씨는 중국 주역의 모체가 된 팔괘를 구성한 것으로 유명한데요. 신시본기 3편에서는 밀기(密記)와 대변경(大辯經)을 인용해 복희씨의 이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복희씨는 신시로부터 나와 우사(雨師)가 되었다.
신용(神龍)의 변화를 보고 괘도(掛圖)를 만들었으며,
신시의 계해(癸亥)를 갑자(甲子)로 처음 고쳤다.
여와는 복희의 제도를 이어받았으며,
주양(朱 )은 옛 문자에 의하여 처음으로 육서(六書)를 전했다.
후에는 갈리어 풍산(風山)에 살았으므로 풍(風)씨성을 갖게 되었으며,
풍씨에서 더 갈라져서 패(佩), 관(觀), 임(任), 기(己), 포(疱), 리(理), 팽(彭), 사씨가 되었다.
복희의 능은 지금의 산동성 어대현 부산(鳧山)의 남쪽에 있다.
본문 세 번째와 다섯 번째줄은 저도 무슨 얘긴지 잘 모르겠고요.(땀)
여와는 복희씨의 여동생입니다. 복희씨가 중화족(中和族) 수인씨(燧人氏)나라를 빼앗고 기산(崎山)서쪽의 강수(姜水)지역(산둥반도가 포함된,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영토의 바로 위까지라고 보시면 됩니다)까지를 한웅의 영토로 편입시키고서 그곳에 나라를 세웠는데 복희씨의 뒤를 이어 그 여동생인 여와가 왕이 되었다는 뭐 그런 내용입니다.
기산 서쪽으로 강수지역까지를 포함하는 복희씨가 세운 요 신생국을 중화족(中和族)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8세 안부련 한웅은 소전(小典)장군을 강수로 파견합니다. 소전 장군에게는 신농(神農)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신농의 직업은 수많은 약초들을 혀로 맛보아 약을 만드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신농씨 후손은 훗날, 열산(列山 : 중국 호북성 수현의 북쪽입니다)으로 이사했는데 그곳에서 농사와 의약의 원조가 되었지요. 신농씨 후손들은 후에 병력을 이끌고 여와의 왕위를 빼앗고 농경기술을 발달시킵니다.
신농은 열산에서 일어났는데 열산은 열수(列水)가 흘러나오는 곳이다. '신농'은 '소전'의 아들이며, '소전'은 소호와 함께 '고시(高矢)'씨의 방계 자손이다.
그당시의 백성들은 정착하여 생업을 이어 갔으며, 점점 하는 일들이 커져서 곡식과 의복·의약·건축의 기술을 갖추어 갔고, 낮에는 저자를 이루어 서로 교역하고 돌아갔다.
원래 중국땅은 습하고 강이 많아 농경에 적합한 땅이었지만 북방기마민족 출신인 동이족의 입장에서 보면 말도 키우기 힘든 별 매력없는 땅이었을겝니다. 신농씨는 그 땅들을 옥토로 만들고 중화족(中和族)에게 그 농토를 지키기 위한 성을 쌓는법을 가르쳐줍니다.
여기서 성을 쌓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성은 중화족(中和族)의 수적 우세와 중요 보급선인 농토를 지켜줄 뿐아니라 기동성 위주의 전술로 대륙을 지배했던 동이족에게 제동을 거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성을 쌓아버리면 말은 소용이 없어지니까요.
아무튼 신농씨가 차지한 나라는 신시와 거리상으로 무척 멀 뿐 아니라 소수 동이족에 중화족이 대부분이라 같은 나라라고 보기 힘들었으므로 10세 갈고 한웅이 땅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신농을 제후로 임명해 조공을 바치도록 합니다. 이 신농이 바로 삼황오제(三皇五帝)의 두 번째, 염제 신농입니다. 이 부분이 간단하게 삼성기(三聖記) 하편에 언급되고 있습니다.
훗날에 갈고 한웅이 나서서, 염제 신농의 나라와 땅의 경계를 정했다.
10세 갈고 한웅 이후 약 500년간은 이렇다 할 사건이 없는 평화로운 시대가 지속됩니다.
다음 글에서는 '치우(蚩尤)'라는 이름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14세 자오지 한웅때부터 쓰도록 하겠습니다.
상병 조주현 (2006/05/26 14:37:22)
앗, 조회수1이다.
일단, 찍고 감상 - 오랜만이네요 상고사시리즈!-
병장 김태경 (2006/05/26 15:16:40)
오오! 오랬만의 상고사 이야기!
재밌게 읽었습니다~
병장 김형진 (2006/05/27 18:24:27)
재밌게 보고 있어요.
제가 머드게임 단군의 땅 폐인이었기 때문에 흐흐.
상병 송희석 (2006/05/27 19:55:44)
정말 잘 읽었습니다.
병장 김희곤 (2006/05/27 20:12:50)
치우천왕이라. 기대되는군요. 다음 시리즈도 빨리 부탁드려요.
병장 한상원 (2006/05/29 22:52:27)
나가서는 어디서 이 이야기를 읽을까요. 흥미로운 우리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일병 김현우 (2006/05/30 08:33:24)
병장 한상원 //
http://coo2.net에 가시면 이런류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하지만 history21.org나 디씨인사이드의 역갤같은곳에서 반론도 보시는걸 추천합니다.
입대 전까지만 해도 디씨 역갤에서 심심하면 터지던게 환단고기였는데 여기서 보니 새롭네요.
일병 변화수 (2006/05/30 09:49:09)
한(환)단고기는 계연수라는 사람이 원본을 보고 필사했다고 전해지지만 그 필사본의 원본 조차
전해지지 않는 것이 문제죠.
상병 조주현 (2006/05/30 09:50:46)
감질맛나네요 다음편다음편다음편
병장 김동환 (2006/05/30 10:02:05)
현우, 화수//
치우천왕 다음편에서 한단고기에 대한 얘기를 할께요. 기다려주시길.
일병 변화수 (2006/05/30 10:05:20)
하아. 기대됩니다. 빨리 올려 주시길.
일병 김현우 (2006/05/30 10:58:43)
저도 동환님의 치우천황 포스팅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치우이야기라면 분명 "묘예"가 나올듯도 한데 이걸 어떻게 해석하실지..
상병 박상일 (2006/05/30 15:24:18)
워낙 근현대사에만 힘을 쏟았던 터라 상고사는 영 알쏭달쏭 하네요.
국어까지 복수전공 한터라 더더욱 힘들구요. 상고사 너무 어려워요..
병장 노지훈 (2006/05/31 00:31:08)
으아~ 감질맛 나는 분량. 더, 더,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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