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 세 끼 식사에 관하여. 3.저녁. 
 
 
 
 
삼시 세 끼 식사에 관하여. 3.저녁.

왜 하루에 세 끼의 밥을 먹어야만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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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라는 것이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인가 보다. 식욕(食慾)이라는 것이 사람의 세 가지 욕구 -식욕, 성욕, 수면욕 중의 하나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있노라면 그런 것도 같기도 하고, 사람의 삼시 세끼의 명칭들이 ‘아침, 점심, 저녁’인 것처럼. 사람이 살아가는 때. 시간과 삼시 세끼의 이름이 아침, 점심, 저녁으로 같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어쩌면 사람이 먹는다는 행위가 시간의 흐름에 엄청나게 중요한 것이라는 선인들의 가르침이 아닐까...라고 혼자 상상해 볼 뿐이다. 
그냥 따로 부르기 그랬거나 저녁이라는 말에 ‘먹자’는 말만 붙이면 ‘저녁밥’이라는 말과 별반 다른 의미를 가질 수는 없기에-시간을 먹을 수 없지 않는가. 이래저래 간단하게 서로서로 부르다보니 한 단어가 다양한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겠거니. 또 혼자 상상해 볼 뿐이다. 아. 밥이라는 말에도 이런 저런 뜻이 있을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도 불현 듯 든다. 이런 허섭스레기같은 말은 여기까지만.
삼시 세 끼 식사에 관하여. 1.아침. 첫 머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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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 _ 끝은 봐야하는 마지막 이야기. 

(※ 이 얘기는. 지극히 감상적이고 지극히 어두침침 구리구리 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며. )

중학교. 그 마지막 끝자락에서. 

  중학교 3학년 때였다. 내가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 꽃 살구 꽃 아기진달래는... 없었지만. 아직도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기 위해서는 ‘연합고사’라는 것을 봐야하는. 그런 남쪽 끝에 있는 그저 그런 ‘지역’이었다. 그 연합고사라는 것이 어떤 것이냐 하면. 그저 그런 지역에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 수 만큼 사람을 뽑기 위한 시험으로. 축복받게 그 시험을 통과한 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고등학교를 1차 2차 3차 ....인문계 학교 수 만큼 지망하고는 운명을 건. 일명 뺑뺑이를 통해서 고등학교를 정하게 되었다. 말그대로. 고등학교 입학에 있어 ‘커트라인 앤 러시아룰렛’ 방법을 채용했었던 것인데. 참으로. 그저그런 지역에 그저그런 교육시스템이 아닐 수 없다. 자랑스럽다. 진심으로.
나 난. 뭐. 그저그런 교육시스템이라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16살 청소년이었을 뿐이었다. 나도 뭐 남들과 다르지 않은 그저그런 청소년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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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뺑뺑이를 할 수 있는 인원에 들어가기 위해 연합고사라는 그래도 이름은 고사인 시험을 보기위해. 노력을 하긴 해야 했었는데. 어린 것이 벌써부터 교육시스템의 맹점을 간파해 버리고는 그 때부터 공부를 게을리 하기 시작했다. 이 커트라인 시스템이라는 것이 그 문턱에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정말 사선을 넘나드는 게임이었겠지만. 어느 정도의 안정권에 있는 상위그룹들에게는. 뭐. 대수롭지 않은 것이었다. 엄밀히 따져서 자기 자신 밑에 300명이 있다면. 그 300명이 정말 최선을 다해서 자신을 앞지르지 않는 이상. 그래. 300명 중 300번째로 뒤쳐져있던 아이가. 자신을 앞지르지 않는 이상. ‘안정빵’이라는 말씀이다. 
나 난 뭐.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상위권이었다. 그때는 말이다. 그때는.

다른 애들이 모두 좋은 점수를 딸려고 친구들에게 노트도 안 빌려주고 치사빵구 식의 혼자만의 공부. 또는 과외선생님과의 알콩달콩한 공부를 택했을 때. 나는. 그저 옥상에서 미니 축구를 하며 한 명의 친구가 한 숙제를 돌려쓰기를 한다거나. 적당한 선에서의 노트정리를 한다는 등으로 어느 정도 여유롭게 그 커트라인 이라는 것을 넘을 수 있었다. 나에게 중학교 때의 연합고사라는 것은 큰 의미가 없었다. 
그 당시에는 이러한 ‘경쟁심’의 부족이 나중에 수능에서까지 이어진다는 것을 말해주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아! 왜 그때는 몰랐을까. 그것이 범청소년적 학생경쟁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는 것을. 생존경쟁에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싸움이었다는 것을. 그땐 미쳐 알지 못했다. 뭐. 누군가가 이것은 범청소년 ... 프로젝트이니 같이 하지 않겠나 라고 말했다면. 흠. 하고는 뒤돌아 열심히 PC방에 가서 레인보우 정도의 게임을 했겠지만. 아니면. 디아블로 정도를 했겠지. 중학교 때 이미 PC방 사장이 되었던 K모 군과 함께 말이다. 
( 그 PC방이 자리를 옮겨 아직도 있다. 참. 사업적으로 머리가 빨리 돌아간 친구였다.) 

그렇게 그렇게 남들은 방과 후에도 열심히 공부를 하는 것이 대세가 되어버린 아이들 틈바구니 사이에서. 누구는 학원으로 누구는 독서실로 떠나갈 때. 나는 당연히 돈도 없고 친구도 없으니. 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중3 가을. 나에게 중요한 것은 연합고사니 학원이니 독서실이니 뭐니뭐니 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저녁밥이었다. 

밥. 밥. 디바밥. 바라라 디디바밥.

가을 무렵. 그래. 남들은 열심히 연합고사를 준비하던 그 시점에서. 이사를 간다고 간 집이이라는 곳이. 예전처럼 학교 근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버스를 타고 보통은 40분 넘게. 퇴근시간에 겹치면 1시간정도가 걸리는 조금은 먼 곳에 있었다는 게 문제였다. 예전에는 근처에 살던 막내 이모의 도움으로 점심, 저녁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었는데. 이렇게 다른 곳으로 훌쩍 이사를 와봐렸으니. 문제가 한 두개가 아니었다.

어른들의 말씀으로 돌이라도 씹어 먹을 수 있을 혈기왕성의 16살 청소년이지만. 욕구불만이기도 한 16살 청소년에게 7-8교시를 끝내고 저녁을 먹을 그 시간에. 수 많은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한 손은 버스 손잡이를 부여잡고 한 손은 배고픔을 호소하는 배를 부여잡고 1시간을 참고 견디라는 것은. 급해서 달려간 화장실 앞에서 길게 서 있는 사람들 뒤에 서서 도옹꼬를 부여 잡고 있는 것과 흡사. 다를 게 없다. 먹고 싶은 것이나 싸고 싶은 것이나 그게 그거다. 

그렇게 배고픔을 참고 참고 참아서 조금 더 높아진. 하늘과 조금 더 가까워진 집으로 도착해서는. 주머니 속에서 작고 귀여운 열쇠를 깨내서 집 문을 열면 나를 반겨주는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그렸던 소묘 몇 점들뿐이었다. 운동화, 과일들, 자질구레한 그런 소묘에 어울리는 것들. 지금 생각해 보니. 중학교 초기의 꿈은 화가였었다. 언제나 그렇듯 꿈은 스스로 바뀌기도 스스로 바꿔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니까. 그래서 그런지 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면 이런 저런 이유로 우울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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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혼자라고 슬퍼하거나 우울해 하면서 멍하니 있는 것은 16년 인생동안 많이 해 봤기에. 이제는 자연스럽게 허기를 달래기 위해서 ‘요리’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자~ 보자. 하고 냉장고를 열어보면 뭐. 언제나 그렇듯 먹을 것은 정해져 있다. 언젠가 했었다는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커다란 직육면체의 빨간색 플라스틱 용기 속에 들어 있는 ‘김치’와 가~끔 할인매장에서 사오는 참치 5종 세트-그냥, 고추, 야채, 짜장, 바비큐. 개인적으로 밥 먹기에는 고추가 제일이다.-가 있다거나. 이름에서부터 ‘지체나 신분이 높은 상류 계급’의 느낌이 물씬 풍기지만. 서민이 더 많이 먹는 다는 그 ‘ㅇㅂ김’을 세팅한다. 

뭐. 반찬은 이 정도면 만족하고. 조그마한 밥상에 앉아 밥을 먹어보자. 국이라는 것은 그리 중요한 아이템이 되지 못한지 오래 되었으니 제껴두고. 밥에 물에 김치. 삼종세트를 먹기도 하고. 가끔 스페셜 메뉴로 앞에서 말한 참치5종세트의 한 캔을 깐다고나. 지체 높은 김을 같이 먹기도 했다. 이런 밥상을 먹을 때의 포.인.트는 절대 빨리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밥을 먹는 시간이 10분도 체 되지 않았었다. 그럴수록 나중에 더 배가 고프고 나중에는 야참식으로 밥을 한 번 더 먹게 되는 것이다.  빨리 밥을 먹을수록 나중에 금방 더 배고파진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서 알게되었고. 그 이후로는 천천히 먹는 방법을 마스터하기 시작했다. 그래. 잠이 들기 전까지는 배가 불러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중에야 의학적인 지식을 어디선가 주워들었는데. 많이 씹으면서 먹으면 뇌에서는 음식을 많이 먹는 줄 알고 포만감이 더 오래 지속된다고 한다. 포만감이 위와 관련된 것인 줄 알았는데... 뭐 TV에서 지체 높으신 박사님이 말씀하신 것이니 어느 정도는 맞을 거라 생각한다. 맞겠지. 뭐. 맞을 거다. 아마.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그러한 식단으로 중학교 3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 2학기까지 시작할 때 정도까지 근 3년여를 보냈다. 어쩔 때는 스페셜 메뉴들이 한 달간 없었던 적이 있었는데. 물, 김치, 밥의 3종세트 먹는 것에 질려서. 김치 볶음밥을 해 먹거나 김치로 전을 부쳐 먹는 등 나중에는 10여가지 방법으로 응용을 해서 먹어보기도 했다. 점점 저녁 밥을 먹는 요령만 터득하게 된 것이다. 서당개 삼년이 아니라. 저녁밥차리기 3년에 요리사가 될 판국이었다.
언제나 사건 사고는 예상하지 못하는 곳에서 생겨난다. 그러니까 사건 사고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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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때 신체검사 날에 웬일인지 내과 진료를 하는 의사분이 오셨었다. 대부분의 신체검사는 몸무게 재고 키 재고 그냥 대충대충 그까이거 수준으로 하기로 유명했던 학교에서 웬일로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알고 보니 이번에 1학년에 들어온 신입생 아버지 한분이 병원 원장이이시란다. 그래서. 공짜로 해주다니 뭐 좋구나야! 하고 부탁한 것 같은데. 언제나 그런 일들이 그렇듯 누구한테는 기쁜 일이 누구한테는 불행을 가져다 주나보다. 

학교에서 생전 처음으로 받아보는 내과 진료라는 것에 별 긴장이나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저 키와 몸무게를 잰 나의 신상명세표를 보고는 ‘나를 아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빤히 쳐다보는 것이 뭔가 느낌이 이상야릇했을 뿐이다. 눈도 까발려보고 혓바닥도 내밀어 보라고 하고. 무슨 강아지 어르는 것처럼 이리저리 만져보는데. 이 사람 이상한 사람아니야 하는 생각까지 들기는 했다. 그러더니. 의사선생님이 말씀하시길.

“밥은 잘 먹고 다니냐”
“예 뭐. 그냥... 먹어요. 아침은 잘 못 먹지만.”
“점심은 학교에서 먹을 테고... 저녁은 잘 챙겨 먹어”
“...... 뭐. 그냥. 먹어요.”
“잘 챙겨 먹냐고 어머니가 밥 잘 안 해주시냐 ”
“.......”
왜 대답이 없니. 어머니 안 계시니 고아야“
“.......6x3”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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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학교에는 전설적인 타작용 몸둥이가 있었는데 그 이름하여. ‘애자매’-[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한 막대기]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어디 막노동 판에서나 볼만한 그런 나무 덩어리가 있었으며. 그 보(寶)몸둥이도 인정한 몸둥이의 주인인 K선생님이 계셨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의문인게 그 분이 담임이었는데 내가 그날 왜 그랬을까 지각해서 많이 맞아 봤으면서. 얼마나 아픈 줄 알면서도 왜 그랬을까 이성을 잃었던 것 같다. 그 이성이라는 걸 말이다.
음. 기억하기로는 그 일 때문에 한 30~40대를 풀스윙으로 맞은 것 같다. 내가 스스로 기억하기까지는 말이다. 뒤로 갈수록 세는 것의 무의미함을 느끼기도 했고. 귀찮기도 해서 맞은 횟수를 세지 않았던 그전까지는. 아마. 그 정도였다.

뭐. 지체 높으신 의사 선생님에게 욕을 했으니 맞아도 싸다. 그래. 신입생 아버지이신 분인데 그러면 안되는 것이지.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같은 학교의 후배의 지체 높으신 의사선생님이 아닌가 
K선생님에게 나를 맡기고 돌아가는 의사‘선생님’의 뒷모습이 참으로 ‘지체와 신분이 높은 상류 계급’의 한 모습처럼 보였다. 아. 그 순간. 오늘은 ‘ㅇㅂ김’을 아작아작 아주 많이도 씹어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사라지는 의사선생님의 뒷모습을 보며. 오늘 먹을 저녁반찬 계획을 미리 짜보기도 했었다. 그러면서 다시 마음 속으로. 6x3. 2x9. 543.

밥 잘 챙겨먹지 못한 내가 죄다 싶더라. 자신의 몸도 다스리지 못했던 내 자신에게 참으로 부덕했구나 싶더라. 이제 조금 있으면 고3인데 이렇게 하면 공부하기 힘들겠구나 싶었다. 
......
무슨 얼어죽을 죄에. 부덕에. 고3이냐.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지가 뭔데 우리 어머니를 착한 사람에서 나쁜 사람으로.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사람으로 거기다가 보너스로 아버지까지 보내버리다니. 사람이 좀 산다 싶거나 영양실조 걸린 사람들은 다 그런가 다른 학교에 많이 돌아 다녀봤는데. 얼굴 모습이 누리끼리 댕댕 하고 혓바닥이 희멀그리 한 아이들은 99.9%가 나쁜 어머니에 편부모 이거나. 고아였었나 우와. 그러면 나는 그 의사‘선생님’이 본 0.01% 겠네! 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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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세 몸이 약해진 것이었다. 뭐, 움직일 이라고 해봤자 책상에 앉아 있는 일이니 크게 힘을 쓸 일도 없고. 체육시간에야 언제나 벤치에 앉아 하늘이나 쳐다보고 그랬으니. 크게 열량을 소비할 만한 일은 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일까 나조차도 점점 몸이 안 좋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가끔 책상에서 일어날 때 현기증을 경험하기는 했었지만. 쓰러지지는 않았으니 멀쩡한 줄 알았었다. 뭐. 쓰러지지만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영양실조라는 것이 아프리카 난민이나. 어느 TV에서나 나오는 기아체험 24시인가 뭐신가 하는 곳에서 나오는 자료화면 속 아이들에게만 일어나는 것인 줄 알았더니만. 하. 나는 진정한 대한민국에 숨겨져 있는 아웃사이더 인 것이었다.

난 그날. 욕 한번 잘못하면 엄청난 게 엉덩이가 아플 수 있다는 것. 많이 맞으면 엉덩이가 빨갛다가 파랗다가 퉁퉁 부어서는 참 걷기가 힘들어 진다는 것. 돈도 중요하지만 그 명예라는 것이나 권력인가 하는 것이 ‘힘’이 있다는 것. 그 의사 선생님 가슴속에 나는 0.01%로 남을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밥을 잘 먹지 못하면 ‘영양실조’라는 ‘질병’에 걸리는 수도 있다는 것. 등등등등등 참 많은 다양한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뭔가를 알았다고 해서. 그래. 이 일을 ‘문제’라고 말해보자. - 문제라고 표현하는 것도 좀 이상하지만. 일단은. 문제라고 해보자. 문제를 알았다고 해서. 문제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어떻게 해야 ‘답’을 얻을 수 있는지 알았다고 해서. 이 세상의 모든 문제에 ‘정답’을 말 할 수는 없다. 뭐. 언제나 그렇지 않은가. 특히, 이런. 아직은 경제적인 활동에 제약이 있으며. 자신의 아픔을 잘 말하지 못하며. 자존심은 은근히 있어서 쪽팔린 걸 싫어하는 18살 청소년에게. 지금까지 계속 아무문제 없다고 생각하며 지냈던 일을. 이 정도면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혈기왕성, 욕구불만의 18세의 청소년에게. 저녁밥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뭐, 나는 그랬다는 말이다. 흠. 아 이놈의 문제.문제.문제.문제.문제.문제.문제.들. 
인터넷 찬스를 써야 하나...

어찌하나. 그저 밥에 물에 김치에 5종세트 참치캔에 이제는 아작아작 잘도 씹어 먹게 된 ‘ㅇㅂ김’으로 나의 위장을 채울 수 밖에. ‘백지’ 답안지를 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뭐. 나는 그래야만 했었다는 말이다.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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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밥 이라는 거. 

보통의 저녁 식탁은 가족들과 보내기 마련입니다. 
그렇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과 직장에서 돌아오신 아버지. 이 사람들을 위해 저녁밥을 준비하신 어머니. 잠에서 깨어나 아침에 잠깐 보는 시간을 제외하고 온 가족이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있는 시간은. 바로 이 저녁식사를 하는 밥상머리 앞이 아닐까 싶습니다. 
뭐. 이 얘기야 언제나 식탁을 놓고 도란도란 밥을 먹는 어느 방송국의 일일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아름다운 한 가정의 모습일 테고. 요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미술학원이다 태권도다 어릴 적에 배울 수 있는 예체능학원부터 시작해서 누구누구 영어 학원 같은 외국인 선생님들이 있는 학원에서 하루 종일 X라X라 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아이들이 연령이 올라 갈수록 이러한 집 밖에서의 시간은 더욱더 늘어만 갈테고. 중학교 때부터. 너무나도 자유스러운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학교도 있다는 듣노라면. 말 다한 것이죠. 고등학교야.. 뭐. 따로 할 말이 없습니다. 대한민국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 10대 아이들의 삶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앞집의 K군도, 뒷집의 J군도. 양 사이드 집의 S군, M군도 그런 것을 보면. 대충.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런 것 같더군요. 그렇게 보고 자랐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그렇다면 아버지들은 또 어떤가요 직장을 다니는 아버지들이야 돈을 벌어야 하니.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들어오는 것이 불문율이고. 야근이다 회식이다 시간외 수당도 주지 않는 행동들에 시간을 보내‘셔’야 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예. 어쩔때는 그 업무시간외에 하는 일이 업무시간에 하는 일보다 더 중요할 때도 많다고 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어린 저야 무슨 말인가 했겠지만. 이제 나이 들어 이 사회를 보니. 아하!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옵니다. 그래. 업무 외 작업도 중요하죠. 중요해.

요즘의 어머니들이야 아버지와 다를 게 뭐가 있을까요 요즘은 맞벌이가 기본 베이스에. 잘 사는 부인 만나 전업주부 하시는 아버지분들도 많다고 하니 여성들의 경제적인 입지성장이 얼마나 가속화 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만. 이렇게 돈 벌러 나가는 부모님 때문에 우리의 아이들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요

우리는 아이들을 집이 아닌 학원에 보냄으로 인해.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요 돈. 학벌. 진급. 사랑. 모르겠습니다. 무엇이 무엇이 똑같을까. 젓가락 두 짝이 똑같아요 라는 것은 자명한 이치 같아 보이지만. 무엇이 더 중요한지. 어느 젓가락이 라면을 떠먹기에 좋아 보이는지. 둘 다 똑같은 것 같아 보여. 고를 수가 없습니다. 같아 보이지만 다른 그런 거. 그래서. 저는 고를 수가 없습니다. 젓가락 두짝은 두짝이기에 젓가락이지. 왜 하나만 고르라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학원 좀 다니고 직장 좀 다니면서도 집에서 다 같이 밥 먹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일까 돈 많이 벌어서 학교 좋은데 보냈다고 나중에 훌륭한 사람 되었다는 얘기는...들어본 것은 같은데. 꼭 그래야만 했던 것인지. 그래야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이 되는 것인지. 필요조건인지 충분조건인지. 아니면 옵션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저는 나중에 한 가정의 가장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저의 기억 속에는. 먹지 못한 아침. 부끄러운 점심. 배고팠던 저녁.의 기억의 아니라. 언제나 그 ‘밥’이라는 것을 혼자 먹어야 했던 외로움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밥이라는 거. 같이 먹어야 제 맛. 아니겠습니까 

식사 하십쇼~
 병장 노지훈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8-09 0233) 

  
 
 
 
병장 송희석 (20060808 124856)

가지로! 

그리고, 저도 연합고사 세대였습니다. 보통 83년까지인가 모두 연합고사 보지 않았나요 아닌가    
 
 
병장 이영기 (20060808 130204)

저도 연합고사 봤어요. 하아.    
 
 
상병 최태욱 (20060808 135323)

저도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혼자 밥을 먹는 경우가 많았더랬죠. 
중고등학교 때, 어두워진 거리를 거닐며 
집에 들어왔을 때, 어두워진 거리보다 더 어두운 집 안을 들여다 보며, 
부모님을 참 많이도 원망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그런 부모님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요. 

우울한 이야기를 참 명랑하게 쓰셨네요. 
웃으면서 읽었지만 다 읽고나니 왠지 좀 뭣 합니다. 
어쨌든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저도 가지로    
 
 
 병장 박진우 (20060808 141027)

동원 양반김!    
 
 
병장 고계영 (20060808 150821)

진우  전 간접광고 싫다고요. 하하하. 
태욱  웃으면서 읽으셨다면. 미션 성공. 
희석  저는 84년생이라 제외. 저를 83으로 몰고갈 수 있는 암흑의 '보통 83년까지인가'의 글귀는... 
영기c  나이가...    
 
 
병장 김희곤 (20060808 191802)

이런이런. 지역마다 달라요. 저는 83년 생이지만 안봤다구요. 저희 동네는 82년생까지만 봤지요. 영기씨는 82년생일텐데요. 

그리고. 계영씨 무지 보고싶어져 버렸어요. 정모 나오신다니 다행이군요. 

가지로! 가야겠군요. 하하.    
 
 
병장 이훈재 (20060809 102146)

저는 84이지만 연합고사 봤습니다. 88인 제 동생도 연합고사를 봤는데, 지금도 보고 있는 것 같고요. 
그건 그렇고 이 글 최고네요. 저 역시 혼자 밥 챙겨서, 밥 한숟갈위에 계란 후라이와 깍두기를 놓고 김으로 싸 먹던 게 생각나서 소름돋는 공감과 함께 부모님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에효. 요즘 계영씨는 정말 멋진 글을 써주시네요. 가지로 왔지만서도 가지로!    
 
 
병장 엄보운 (20060809 122740)

계영씨. 우리 분식점에 가서 포만감 넘치게 먹어보도록 합지요!! 갸오갸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