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야구를 시작하기 앞서
어느 날 부터 박민규의 소설이 읽고 싶었다. 주위에서 다들 칭찬이 자자 했다. 박민규의 문체가 무규칙 이종격투가라는 쌩뚱맞는 말을 하는 둥, 예측불허라는 둥 사람들 얘기를 들어가면서 이 사람이 도대체 어쨌길래 이렇게 많은 말들을 만들어내는가 의아했다. 그래서 어떤 작품이 가장 접근하기 쉬울까해서 물어보고 나온 답이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하 삼미)였다. 빨리 읽고싶었는데 서점에는 없고 궁금증은 커져만가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마침 후임 녀석이 외박을 나갔다. 그래서 ‘이번에 책 사올꺼냐’ 라고 물어보니 사온다고 했고 삼미를 추천했더니 한번 생각해 보겠다고했고 결국은 사왔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하나. 삼미를 생각보다 빨리 읽게되어 나름 긴장됐다.
삼미의 제목을 보고난 생각은 ‘과연 혹은 그다지’였다. 나는 야구에 열렬히 응원하는 팬도 아니었고 티비에서 중계하는 프로야구 조차도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었다. 그저 기억이 난다면 초등학교시절 한창 빙그레의 장종훈(맞나 모르겠네)이 홈런을 날리기 시작했고 그때 왠지 모르게 ‘멋있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부모님을 졸라 동대문에서 빙그레의 유니폼을 사입었던 기억이 가장 야구스러웠던 내 모습이다. 그랬든지 말던지 앞에서 말했듯 칭찬이 자자하면 뭔가 알 수 없는 매력이 있는거다.
2.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막상 책장을 넘겨보니 역시 초반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뭐랄까 형식적 틀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문체라고 해야하나. 특이했고 재미있는 문체다. 천천이 책장을 넘겨가면서 큭큭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러다 책 표지에 박민규를 한번씩 번갈아보며 ‘이 작가 진짜 심심찮게 사람 웃기는 재주가 있네’하고 되뇌었다. 사실 긴머리에 선글라스를 끼고있는 박민규에 모습이 특이하다면 특이한 타입이었고 얼핏보면 살찐 박완규의 귀환일지도 모를 착각을 일으킨다. 이건 나만의 생각일지 모르겠다만 정말이다.
3. 대통령이 될 것 같던 어린 시절
소설 ‘삼미’는 어린시절 똑똑하고 총명받는 한 아이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공부를 남달리 아니 암기에 남달리 소질과 재능이 있던 주인공은 부모님의 기대를 듬뿍 받고 자라며 실제로 기대에 저버리지 않는 행동을 보여준다. 주인공은 학교를 땡땡이 치고 몰래 삼미의 야구경기를 보러간다. 그러고도 집으로 돌아와 전혀 흔들리지 않는 초연한 태도를 보여준다. 학교 빼먹은걸 들통난 탓에 집에선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었고 부모님은 화가 나있다. 그러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주인공은 말한다 “밖에 있는 동안 많은 생각을 했어요. 이제 공부에만 전념해야겠다는 결심이 섰어요” 라고 말하며 당당히 자기 방으로 들어선다. 역시 부모님은 우리아들은 뭐가 달라도 달라-라는 듯 대견스럽게 아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주인공이 마치 위기에서 벗어나려 핑계로 말한 듯 보이지만 사실 그건 핑계가 아닌 저 너머에 진실을 담고있는 말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삼미에 연이은 패배 속에 기운은 떨어질대로 떨어져갔다. 자기가 응원하던 삼미에 대하여 노골적인 비아냥투 멘트를 일삼는 야구방송 중계자와 하나하나 삼미를 버리고 다른 팀에 붙는 친구에게서 느끼는 배신감과 분노. 이런 상황이 어린 소년에겐 실낱같은 희망도 보이지 않는 삼미의 좌절감과 고통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주인공은 OB베어스를 특히나 싫어한다. 삼미를 제물로 우승을 거머지고도 모자라 농락적으로 삼미를 깊은 패배의 늪으로 빠뜨리는 OB베어스가 정말이지 지긋지긋하다. 누구도 깨버릴 수 없을듯한 기록들을 삼미를 제물로 쌓아올린 OB베어스는 주인공의 가슴에 커다란 못을 단단히 박는다. 그런 패배감 속에 경기가 끝난 뒤 삼미의 팬으로서 OB의 팬에게 멸시적인 시선과 모욕감을 느낀다. 거기에서 주인공은 깨닫는다. ‘소속이 사람을 바꾸는 구나’라고. 연이은 패배의 화신 삼미를 버리고 다른 팀으로 떠나버린 친구들의 소속감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자신감 또한 더해주는 걸 보면서 ‘소속이 사람을 바꾼다‘ 라는걸 깨닫는다. 그렇기에 주인공은 집으로 돌아와 이제 공부에만 전념해 반드시 일류대에 소속하고 말겠다는 결심을 다지는 것이다.
4. 프로는 다르다.
이렇게 어린시절 주인공은 사회구조를 알아가기 시작한다. 프로만이 살 수 있는 이 비열한 세계를. 그 당시는 실제로도 그랬다. ’프로는 다르다‘, ’프로는 아름답다‘등등 별의별 수식어가 난무했다. 그 틈에서 삼미는 프로 세계속에 적응하지 못한 아마추어 일뿐이다. 이러한 프로의 세계는 주인공이 나이를 먹어 사회생활을 겪으며 더욱 진하게 드러난다. 직장에 들어가 부장의 비위를 맞추는 프로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근무가 끝나고 회식자리에서 부장은 된장에 대한 얘기를 한다. 이때 한 사원은 말한다. “어떤 바이올리스트는 된장을 앞에두고 연주를 합니다”. 주인공은 이러한 프로적 비위 맞추기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리고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하지만 직장에선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다. 어쨌든 프로다움이 결여되어있음으로.
5. 마치며
이 책이 재미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러한 상황이 굉장히 어두운 그늘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코믹적 발상과 유연한 문체로 유쾌하게 접근하는 박민규의 독특한 세계관이 소설 ’삼미‘의 재미를 더해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삼미의 엄청난 패배의 기록을 두고 이 패배를 두드러지게 부각시켜 유쾌함을 자아내는 박민규의 역설법은 진정 유머를 아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고차원적인 수사법이다. 사실 소설 ’삼미‘는 자칫 너무 가벼워서 흥미를 떨어뜨릴 수 도 있다. 실제로 어떤 이는 박민규가 싸이코같다며 읽기를 그만두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는 박민규를 지켜보고자 한다. 그는 저질적이고 비열한 이 사회를 박민규식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