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보이다 (상병 김상희/051018) 
 
 
 
 
지관순이라고 얘기하면 알까? 한 때 골든벨을 열심히 본 필자로는 ‘문산여고 3학년, 그리고 43대 골든벨!’(군대에서는 이런 프로를 보기 힘들어서 현재는 몇 번째 골든벨을 맞이하였는지는 모르겠다. 문제 푸는 재미가 솔솔해서 자주 보는 편이었다. 요즘에는 우리말 퀴즈에 재미들이고 있는 중) 잘 사는 집 아이들이 공부까지 잘하게 되어버린 세상에서 초등학교를 못 다닐 만큼 가난한 소녀가 이룬 작은 승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그가 그로 인해 기쁨을 느끼는 이웃들에게 자랑스러운 벗이 될 것인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개천에서 난 용’의 행로는 대개 그렇다.


“아버지 지씨는 지양이 골든벨을 울린 데 기뻐하면서도 ‘사람 되는 일보다는 공부에 더 관심을 기울일 것 같다.’며 걱정부터 했다. 공부를 잘 한다고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평소 소신 때문이다. 최근 부쩍 늘어난 주변의 관심도 부담스러운 듯했다. 지씨는 ‘관순이에게 한번도 공부하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학교 자율학습도 고3이 되어서야 담임 교사의 끈질긴 설득 끝에 저녁 7시까지만 시키고 있다. 지양은 대신 집에 돌아가 집안일은 물론 마을 이웃 일을 돕는다. 지병에 시달리는 이웃 어르신들을 위한 빨래도 관순이의 몫이다. 오리를 기르는 지씨는 자신도 생활보호대상자인데도 사육장에서 나오는 오리알은 몇 년 전부터 인근 의료원과 요양소 등지에 수용된 오갈 곳 없는 환자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지씨는 ‘관순이가 학자보다는 의인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동안 살면서 공부 좀 했다 하는 사람 치고 곡학아세하지 않고 제대로 사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세상엔 대학생이 많지만 의인은 없습니다. 본인이 공부를 계속하겠다면 막지 않겠지만 어떤 일을 하더라도 묵묵히 봉사하는 삶을 살았으면 하는 것이 제 바램입니다.’ ” 


어떻게 보면 쉽게 접할 수 있는 기사일지도 모른다. 삭막하기만 할 것 같은 세상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인생을 보람있게 보내는 사람도 많이 있다. 어쨋튼, 이렇게 우연치 않게 보게 된 기사에서 지관순 양이 매우 반듯한 의식을 가진 청년이며 그 배경에 아버지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세상에 가난한 아버지는 많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가난하면서도 자식에게서 존경받는 아버지는 많지 않다. 영혼이나 사랑까지 사고파는 세상에서 가난한 아버지는 자식의 인생을 해치는 죄인에 가깝다. 그러니 지관순 양과 그 아버지의 경우는 참 특별하다. 딸을 초등학교에 못 보낼 만큼 가난한데다. 의인이니 곡학아세니 하는 지사적 언어(요즘 사람들은 구리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를 사용하는 아버지와 딸 사이에 흐르는 믿기 어려운 존중을 말이다. 한 가지 짐작한다면 그 아버지는 제 딸을 단지 말로 가르친 게 아닐 것이다. 말로는 그렇게 되기 어렵다. 그는 제 딸에게 ‘살아 보인’게 틀림없다. 





병장 양용구 (2005-10-18 11:20:18)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세상살이에 대해 한번 되새겨봄직한 칼럼이네요(웃음)
학자보다는 의인이라...마음이 훈훈해짐을 느낍니다.(웃음)  

상병 김동환 (2005-10-18 11:48:16)  
와..멋지다..
저도 저런 아버지가 되고 싶군요.
글 잘읽었습니다.  

전일중 (2005-10-18 12:04:18)  
마음이 와닿습니다.

부모님이 얼마만큼 자식에게 큰 영햐을 주는지 깨달았습니다.

저도 관순이 아버지처럼 가난하지만, 인간다운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겠습니다.

그럼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상병 정태남 (2005-10-18 13:02:24)  
"살아보이다" 이 말이 참 가슴에 와닿습니다.
말로은 이렇게 쉽지만..
이 말을 행동으로 옮기기에 얼마나 많은 노력과 땀방울이 소비될까요?
아니 노력과 땀방울만으로는 저렇게까지 되기는 힘들것입니다.
마음속 깊은곳에서 우러나오는.. 따듯한 무엇인가가 필요할것 같네요..
오랜만에 가슴이 따듯해지는 글 잘 읽었습니다..  

상병 이태현 (2005-10-19 08:22:01)  
시큰한 정강이에 파스를 붙인 후 화끈해지는 느낌이 드는 글이네요.
저는 저의 아버지 그림자를 좇아 가렵니다. 제게 저의 아버지는 관순양의 아버지처럼 '살아보이신' 분이니까요.  

병장 조상훈 (2005-10-20 17:02:08)  
살아보이다....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되어있음을..믿는다.  

병장 최재원 (2005-10-21 09:10:34)  
자기 자식이 '자랐으면 하는 모습'으로 '살아보인다'!
대단하군요. 하지만 관순양도 참 대단한것 같네요.
저를 보면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거인'같은 분들이심에도
관순양처럼 되지 못했으니까요. 부끄럽네요.  

병장 강성주 (2005-10-21 10:07:59)  
가을이라서 그런지 김상희상병님 글이 튼실하게 무르익어서 과육이 터져나가려고 하는군요. 맛있게 먹었습니다.  

병장 이준오 (2006-01-04 16:26:07)  
좋은 아버지를 만난다는 건 무척 축복받은 일인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