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시 사회로 회귀한다. 그날을 위하여, 모든 이 곳의 망령들이여 안녕.
하나씩 하나씩 떨어져 나가라.
이 곳에서 추구했던 자유와 이상들은 모두다 가식이었으리
나는 불평등과 부조리의 산물이며 태아이며 산모이며 어버이다
인생이 그렇듯, 이기심을 향한 만세뿐이...


- 2007. 8월 어느 날의 일기 中




한 사회를 떠나 한 사회로 입성한다는 것은, 그 사회로 들어가기 위한 관문을 지나기 위해 자신을 얼마쯤 깎아내고 또 덧붙여 주어야 함을 뜻한다. 편입하는 그 과정이란 끊임없이 자신의 사회적 형태를 변형해 가는 과정.
나는 이 곳으로 전향해 오며, 얼마나 많은 나를 깎아내고, 또 아직 내가 아니었던 것들을 투덕투덕 붙여 주었을까. 그 무렵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얼마나 다른 모습일까.


이제는 내가 다시 이 곳의 사회를 떠나 본디 있던 사회를 향해 돌아가려 한다.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그 세월은 다시 나에게 전향을 요구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그 요구는 세월이 내게 했던 것이 아니라, 내가 세월에게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이제 전향을 해야한다는 것. 그것은 의무이자, 세월과 나의 공통적인 소망이라는 것. 그 것이다.

재밌게도, 본디 있던 사회로 전향하기 위해, 나는 또 얼마쯤의 나를 깎아내고, 덧붙여 다음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곳으로 오기 전의 나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얼마쯤 (적어도 지금 보다는) 예전에 더욱 가까워 지겠지만, 사실 그것은 가까워진 모습일 뿐, 핵심은 정작 딴판으로 변해 있을 수도 있다. 

굳이 이제와서 새삼스레 피터팬 컴플렉스를 내세우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나의 심리적 체형의 변화가, 긍정적으로 이루어졌길 바랄 뿐이다. 변화는 어쩔 수 없는 것. 변화는 세월의 소유. 인간 역시 세월의 소유. 따라서 변화는 인간과 끊임없이 상존하는 것. 



나는 군대라는 사회에 나를 깎아세우고, 덧붙여 주물거리며 맞춰, 이곳에 맞는 형상으로 나를 바꿔 놓았다. 그것은 나를 사회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였고, 이러한 탁월한 선택은 물론 사회에 적응하기 쉽게 만들었다. 사회로부터의 적응은 변화된 나의 형상을 더욱더 견고히 했고, 나는 조금 더 조금 더 사회가 원하는 인물이 되어갔다.

그것은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변화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사회탓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이유야 어쨌건 자신을 사회와 타협시킨 나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것은 타인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어떤 공공의 사회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자신을 위해서 였으니까. 자신을 위한 타협이였으니까. 유쾌하지 못한 변화 또한 나 자신의 책임일 것이다.


책마을은 그렇게 깎아지고 주물러져, 사회에 맞도록 견고해진 나를 끊임없이 때려주는 곳이었다. 지나치게 현학적이며 이상적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커뮤니티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를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책마을에서 마련할 수 있었다. 책마을은 나에게 반성의 틈이었고, 일기장이었으며, 거울이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열어 볼 수 있게 하는 마법의 책이었다. 나는 나 스스로를 통해, 그리고 누구보다도 책마을인들을 통해, 많은 것들을 배워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나의 착각일까. 책마을에서 이상을 쌓아가면 갈 수록, 나의 괴리감은 커져만 갔다. 현실은 달라요. 라고 말하며, 나는 쌓아놓은 이상과는 다른 현실을 고집해 갔다. '길들여지지 말라' 라고 써놓은 한컴쪽지 좌우명이 무색하게, 나는 철저히 이곳 사회에 길들여져 부조리함을 일삼았다. 그리고 안도했으며, 또한 스스로를 정당화했다.

내가 이 곳에서 배운 것은 무엇보다도 '부조리'함이었다.



바깥으로 나간다면 무언가 달라질까. 다시 이곳의 형태를 벗고,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되어 날 수 있을까. 내가 맞춰진 이곳의 부정의 형태들을 완전히 깎아낼 수 있을까. 또, 이곳을 벗어나면 부조리한 사회를 탈피하게 되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그것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사회는 변함없이 부조리할 테고, 나는 끊임없이 이기적으로 사회와 타협하며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살아갈 것이다. 이곳에 와서 그러했듯이, 부조리의 산물을 자처하며, 부조리를 잉태하며, 부조리를 정성껏 기르며, 사회에 순응하며, 부조리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일익을 담당할 것이다. 내가 언제나 외쳤던 '부조리 좋아하시네, 인생이 부조리다' 의 슬로건을 내세우며, 부조리를 정당화 시키며 말이다.


그러나, 최소한 나는 약속할 수 있다. 이 책마을에서 배운 것들로 말미암아, 앞으로 사회에서 더욱더 배워나가며, 이상이라는 무너지지 않는 절대의 탑 앞에서, 나의 부조리함을 끊임없이 반성하며, 타도해 나갈 것임을. 나는 부조리를 완전히 무너뜨릴 수 없으나, 최소한의 부조리를 위해 반성할 것임을. 비록, 나의 부조리함을 때로는 정당화 시키며, 나의 인생의 낙을 찾겠지만, 그 어느 순간의 성찰에 있어서는 불평등과 부조리함에 대한 깊은 반성으로 시간을 보낼 것임을 다짐한다. 그리고 약속한다. 또한 반성이란 행동을 필요조건으로 함을 기억할 것이다.

오로지 확실한 것은 불확실성이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사회와 개인의 불확실성에 대한 반성이 최선아니던가. 

부조리한 사회 안에서 부조리함으로 견고해 지지 않기 위하여, 깎아내고, 덧붙이고, 깎아내고 덧붙이고, 해야 할 인생이 앞에 펼쳐져 있다.





감사합니다 책마을. 고맙습니다 책마을 여러분. 저 역시 곧 나갑니다. 살짝 이른감이 있지만, 실질적인 활동이 힘들것 같아 지금 써버립니다. 8월 30일 정모에서 만나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