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췌언 38. 사회비판의 올바른 방법
병장 이영기 01-12 13:18 | HIT : 197
191. 올바른 방법과 그릇된 방법
발췌부분은 웹 기사를 구하지 못하여 역시 슈가 후로.
나는 그리 즐겨 보지 않는 TV 프로 중에 웃찾사라는 것이 있다. 형님 뉴스라는 코너가 있는 모양이고, 거기서는 주기적으로 비리 공무원이나 기업체 사장에게 열띤 목소리로 질타하는 장면이 삽입되어 있는 모양이다. 관객이나 시청자는 개그맨의 질타에 환호하고, 부정을 저지른 이들에 분개한다. 코너가 유지되는 것을 보면 문제 삼을 것이 많은 모양이고, 관객들이 환호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손쉽게 공감하여 기뻐하는 모양이다. 무엇이 기쁜 것일까.
06년 12월이 저물어가던 어느날 네이버 검색어 1위에 공무원 봉급표가 오른적이 있었다. 07년 공무원 봉급이 개정되어 발표되었고, 전국의 공무원들이 일제히 소관 부서의 홈페이지에 접속하기 위해 네이버 검색창에 검색어를 쳐댄 결과였다. 바로 그날 중으로 일부 언론에 이 일은 기사화되었고, '돈독오른 공무원들이 이번에도 역시...' 라는 인상의 기사들이 지면을 장식했다.
한국에는 기본적으로 공무원에게 요구하는 도덕치가 지극히 높은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공무원은 사회에 봉사해야하고, 국가를 위해 헌신하여야 하며, 청렴해야 한다는 믿음이 사회 저변에 깔려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전후 한국의 관료 문화는 청렴한 편은 결코 아니었고, 따라서 유교적인 청백리의 소망은 부패한 관료라는 현실과 결합해 희한한 결과를 내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공무원은 이미 뒷돈이나 접대를 많이 받고 있고, 부정한 방식으로 치부를 하고 있으므로, 또한 그들은 국가에 봉사해야 하므로 봉급을 높은 수준으로 확보해 줄 필요는 없다는 식으로. 공무원들이 자신의 급여나 혜택에 대해 신경쓰는 모습들은 흔히 그런 신념과 결부되어 사람들의 비난섞인 반응에 직면하게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 보자. 우리는 공무원의 급여가 기업체에 비해 낮은 편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 (보통 대기업의 70%, 전체기업의 80% 선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 기업체 사람이 2백5십을 받는다면 같은 정도 지위 및 연공을 지닌 공무원은 2백을 받는다는 얘기다) 자신의 급여에 높은 관심도를 갖는 (다운된 홈페이지를 기다려가면서 당일날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부패한 공무원이라기보다는 급여로 생활을 꾸려가는 청렴한 공무원일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 자신의 급여표나 승진 인사를 보면서 커피 한 잔 하지 않는 회사원은 많지 않을 것이고, 급여표를 들여다보는데는 고작해야 1분여의 시간이 소요 될 뿐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도 없을 것이다. 업무를 하면서 1분의 짬을 내기 힘든 직종은 많지 않고, 공무원도 마찬가지일 뿐은 아닐까.
보통 부패한 공직자는 급여를 훨씬 초과하는 수익을 거둘 것이다. 그들에게 고정된 수입은 이미 확보된 수익, (적확한 비유는 아니겠지만 매몰비용처럼 이미 의사결정에 반영되지 않는 것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이들이 주의를 기울이는 수익은 기업체나 민간으로부터 받을 커미션이나 뇌물일 것이다. 소득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가진 이가 보다 부정을 저지를 확률이 높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자본주의 하에서 생활을 영위하는 이가 소득에 아예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공무원이 자신의 합법적인 소득에 일반적 수준의 관심을 갖는 것을 비판한다면, 이는 부패를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조차 있다는 것이다.
사실 대부분이 그러하다. 많은 경우 사회 일반에 퍼져있는 비판들은 부적합한 지점을 공격하고 있다. 부패나 부정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감사나 문화 자체를 개선하고 부패를 촉진하는 이유들을 추출해 척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일이지, 부패 공직자를 욕하고 시원해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애초에 그런 욕을 두려워하는 이가 공직자의 감투를 쓰고서 부패를 저질렀을까. 구조적으로 개선할 여지를 찾지 않는 비판은, 심지어 합리적일 때조차도 무의미하다. 형님뉴스를 보면서 기분은 개운할지 몰라도, 아무 것도 변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결국 불변의 카르텔이 은연중에 형성된다. 우습게도, 카르텔의 묵직한 테이블 한 귀퉁이에는 바로 그들을 욕하는 우리 자신이 앉아 있는 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