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렸을 때 일이었습니다. 
어떤 날, 부친께서 세계 영웅들의 일생을 담은 책 시리즈를 구해다 주셨습니다. 

거기에는 문호 톨스토이, 정치가 비스마르크, 미국의 워싱턴, 링컨, 발명가 에디슨, 인도의 간디 같은 사람들의 책들이 있었습니다. 어린 저는 그들을 볼 때마다 아득히 멀고 높은 세계의 인물들인 것 같이 느꼈습니다. 우리들과는 유전자의 종류나 삶의 바탕이 다른 특별한 위인들로만 생각되었습니다. 멀리 바라다만 볼 수 있는 하늘이 보내준 사람들인 것 같이 말이죠. 

이런 분들을 한번 보고만 죽는대도 한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상당히 오래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동안 저는 톨스토이를 읽었고 링컨의 생애를 알게 되었고 비스마르크의 정책을 비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늘 높이 보여지던 영웅들이 높은 산 위에 자리잡고 있는 위인들로 바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선히 노력했더라면 그들만큼 훌륭해질 수 있으며, 그들도 경우에 따라서는 실패할 조건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늘 위에는 올라갈 사람들이 없지만 산봉우리에는 올라갈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생각으로 바뀌어진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역시 자신이 타고난 선한 소질과 능력을 충분히 발휘해야하며 그것이 곧 성공인 동시에 우리들이 말하는 영웅 위인들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소질과 능력은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소질과 능력을 남보다 풍부하게 타고난 사람이 정성과 노력을 쌓아 그 뜻을 채우게 되면 그것이 곧 훌륭한 일생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톨스토이의 좋고 훌륭한 점은 여기에 있으며, 비스마르크는 위대한 인물이었지만 유구한 역사의 이념은 몰랐던 사람이라고 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황제이면서 장군이었던 나폴레옹이 남긴 무고한 죽음보다는 사랑하는 아들의 팔에 종두를 실험해 보던 의사 제너는 더욱더 존경과 아낌을 받아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의 선한 능력이 무엇이었으며 그가 어떻게 주어진 환경을 뚫고 스스로의 사명을 다했는가에 비중을 더하게 된 것입니다. 아마 이러한 생각이 대학에 입한 한 후부터 계속되지 않았던가 되새겨 봅니다. 그러나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 생각은 더 변하고 말았습니다. 어렸을 때 생각하고 있던 대로의 영웅이나 위인은 이미 존재하지 않으며 또 있을 수도 없다는 생각인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인간이라는 점에서 다 평등하며 같은 하늘 밑에 땅 위에 살고 있는 것 같이 일반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파스칼은 "울긋불긋한 색깔의 군복을 차려 입은 수백 명의 무장 군인의 호위를 받으며, 궁전 깊이 금관을 쓰고 앉아 있는 옛날 터키의 임금님을 나와 꼭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시민이 있을 수 있었을까" 하는 말을 남겨 주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왕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오직 다른 점이 있다면 소질과 능력의 차이, 노력과 정열의 구별이 있었을 것입니다. 괴테는 남보다 뛰어난 지능을 타고났으며, 에디슨은 누구도 뒤따를 수 없는 근면한 일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제각기의 재능과 소질을 가지고 있으며 아무리 부족한 사람이라도 그는 그대로의 좋은 점을 가지고 있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아무리 뛰어난 인물이라도 그만이 지니고 있는 단점과 부족을 갖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역시 신은 인간을 공평하게 만들었으며, 많은 별들이 제각기 빛나고 여러 가지 꽃들이 저대로 아름답듯이, 인간은 모두가 저대로의 선한 특징과 능력을 갖고 태어난 것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그 선한 바탕과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는가에 달렸을 뿐입니다. 톨스토이도 음악에는 베토벤을 당하지 못했을 것이며 에디슨도 마라톤에는 이봉주나 황영조 선수를 따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장미가 국화가 될 수 없음과 같으며 포도나무가 사과를 맺을 수 없음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공자의 말에 "셋이 걸으면 그 중에 스승이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생각한다면 저는 훌륭하다고 존경을 받는 사람보다는 이웃들에게 고요히 아낌을 받는 일생을 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들의 삶의 뜻은 이름은 없어도 영구히 남을 것이며, 그렇게 하는 사람은 오히려 누구보다도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한 가지 욕심이 더 허락된다면 세상에서 가장 존경과 칭찬을 받고 있는 사람을 대했을 때도 
"아아, 과연 이분은 이런 좋은 점을 가지고 있었구나.." 
라고 서로가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들 모두가 정신적으로 자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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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병장 방원우  
 좋은 내용이네요 허허.
2007-11-09 13:21:44 | ipaddress : 5.12.1.92  
01|일병 정한성  
 인간이라면 그 누구든 배울 점(미덕이라도 해둘게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우리가 대개 악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도 그 나름대로의 미덕은 있을 테니까요
배우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배려심과 이해심, 관용도 필요할 거구요.
요 사이 괜히 업무 스트레스에 그 배려심과 이해심을 잃어버린 건 아닌지, 내가 배움을 소홀히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조심스레 반성해봅니다.

2007-11-09 13:51:53 | ipaddress : 54.1.33.131  
  
 한가지 문제를 여러각도에서 보는 다면적인 시각이 필요하지요..

2007-11-09 16:57:34 | ipaddress : 38.9.5.58  
01|일병 정한성  
 막상 여러각도에서 보려고 하면 쉬이 지쳐버리는 제 자신에게 무력감을 느끼는 때도 더러 있습니다.

2007-11-12 08:06:34 | ipaddress : 54.1.33.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