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혁명을 위해 빗자루를 들었는가?

'담배 한 대만 빌려줘'는 해방적 증여행위의 정치적 상징이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담배화함으로, 해방된 세상을 건설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주영준, 담배 한 대 빌려 달라는 말에 대하여 中

 내가 속한 어떤 곳을 가장 밑에서 떠받치고 있는 것은 ‘기수’였다. 여기에서 몇몇 부조리가 자연스럽게 뒤따라 나타났다. 내가 꼽창이 되지 않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것은 이 체제를 암묵적으로 용인하고 더욱 굳건히 할 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담배를 빌려주는 일이 비상품의 영역을 확장시켜 모든 것을 상품의 영역으로 포획하려는 체제를 위협하듯이 그곳도 이러한 비체제적 행위의 확장을 통해 모순들을 해체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냥 미치도록 해체시켜버리고 싶었다.

 기수에 의한 그 사회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지점은 바로 청소였다. 화장실에서부터 빗자루, 마대, 감독 등으로 올라가는 그 구조는 힘든 일은 낮은 기수부터 해야하고 서로가 서로를 중첩되어 감시하는 이 사회의 구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바꿔내고 싶었다. 이것만 바뀐다면 기수에 의해 나타나는 다른 부조리들도 자연스럽게 변화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었다. 나는 청소 각을 짜는 친구들은 물론이고 체제 전체를 관장하는 친구들을 능가하는 기수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체제 속으로 들어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내가 변화시키고자 했던 바로 그 체제의 모순을 더욱 강화시키는 것에 불과했다. 그것은 또 다른 억압일 뿐이다. 자발적인 비기수적 행동을 통해 체제에 구멍을 내야 했다. 그러한 행위가 확장되어 체제의 기본 공리 여기저기에 균열이 생기고 틈이 발생해 너덜너덜해진다면 결국 그곳은 바뀔 것이다. 아니, 굳이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아도 그것은 더 이상 기수에 기반한 사회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빗자루와 마대를 집어들었다. 우선 독서실부터 시작했다. 사용하는 사람이 정리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우리는 길들여져 있었을 뿐이다. 독서실 청소를 해야하는 친구들이 무척 당혹스러워했다. 자기들이 하는 청소가 충분히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내가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바라는 것은 절대 그런 반응이 아니었다. 나의 행동이 선행으로 알려지길 바라는 것은 더욱 아니었다. 나는 오히려 나를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던 친구들이 청소를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놓였을 때 빗자루와 걸래, 마대를 함께 들어주기를, 결국 모든 청소가 억압적 명령이 아닌 어떤 다른 방식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나는 이러한 방식이 그곳의 모든 영역에 확장되어 체제를 떠받치고 있던 근본적 모순을 해체시킬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 계획이 자신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불순한 의도에 기반한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반대로 어떤 이들에게는 이것이 너무나 소극적인 방법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책들과 소통하며 배운 억압을 수반하지 않는 근본적 사회변혁의 가능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체제를 거부하는 비체제의 공간, 즉 체제의 외부를 내부에서 확장시켜 나가는 것. 기수적 질서에 의해 이루어지던 일을 비기수적 방식에 의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 뜨거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너희들이 자발적으로 빗자루와 걸래, 마대를 드는 것. 그러한 삶의 방식이 이 체제 전체로 확장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아는 진정한 혁명이다.

 언젠가 그곳의 모든 억압이 해체되고 있음을 들을 때, 어디에선가 나는 눈물을 뿌리며 춤추고 있을 것이다.
가슴이 아프다.
예수를 믿고 그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하는 한 사람으로써, 인간은 인간 이외의 것들로 구분지어지고 평가받아서는 안된다고 믿는 한 사람으로써 현재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이 슬프다.

현재 내가 있는 곳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오로지 인간을 배터리의 충전 여부로만 판단하는 현실에 충격을 받고 ‘나는 절대로 저러지 말아야지’라는 누구나 한번씩은 꼭 하게 되는 생각을 했다. 이성적 사고와 논리적인 판단은 존재하지 않고 오직 힘에 의해서 모든 것이 정해지고 그것이 옳다라고 주장되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세계와 그 세계에 포함된 나 자신에 대해, 그것을 갈아엎지 못하는 무력한 자신에 대해 경멸했다. 
나 스스로도 억제하지 못하는 경멸과 비난이 내지르는 아우성 속에서 정신을 못차리던 어느 한 순간에도, 나의 배터리는 조금씩 충전이 되어 가고 있었고 그래도 시간은 흐른다는 것을 깨달았을 즈음에는 약간의 안도감을 느꼈다. 언젠가는 내가 세상을 변화시킬 거라고 외치고 있는 가슴 저편에서 뿜어져 나오는 혈기를 느끼며.

그리고 어느 덧 나에게도 그런 힘이 생겼다.
나는 그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었다. 내가 지구의 평화를 가져다 주는 슈퍼히어로가 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나의 의지로 내가 미치는 힘의 영향권 안에 있는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싶었고, 그들에게 최소한의 고귀한 인간성의 회복을 부여해 주고 싶었다. 대외적으로는 소박한 평화를 위협하는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적들과 맞서 싸우며 대내적으로는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우리 모두를 위해서 ‘당연히’ 해야 할 것들과 ‘반드시’ 바로잡아야 하는 것들을 조정하는 ‘간단한’ 일들만 처리하면 되었다. 그 작은 목표를 위해서 달려나갔지만

나는 목표를 이룰 수 없었다.

나는 구성원들이(나와 같은 힘을 가지고 있는 동지들)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하고 ‘좋은 것과 나쁜것’의 구분 보다는 ‘옳은 것과 그른 것’의 구분을 먼저 지어야 하며 한 조직의 리더가 조직을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는 옳고 그름에 대한 확고한 생각을 그 조직에 반영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 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같은 마음일 수는 없지만, 최소한 나와 함께 시련을 겪고 힘든 시절을 함께하던 동지들은 같은 생각이라고 믿고 있었다.

처음 그 힘을 가지게 되었을 때와, 이제 그 힘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게 될 날이 머지않은 현재와 비교해 보면
우리는 잘못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힘을 소유하고 있는 강자는 힘을 가지지 못한 약자를 도와주어야 한다. 그것이 옳은 일이고(비록 나 혼자만의 생각일 뿐이더라도) 가장 이상적인 정치구조에 속한다. 비록 내가 힘이 없는 상태에서 힘이 있는 자들에게 날 도와달라고 강요할 순 없지만, 나에게 힘이 있다면 힘이 없는 자들을 위해서 내가 가진 힘을 써야 한다. 그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했던 예수가 가르친 바이고 그의 제자들의 행동강령이며 내가 예수에게 나의 전 생애를 걸고 맹세한 피의 서약이다.

하지만, 현재 힘을 가지고 있는 나와 나의 동기들은 그러지 못했다.
나는 그토록 경멸하고 비판을 마지않았던 그 세계 속에 어느덧 깊게 뿌리박고 있는 내가 내린 뿌리를 보았다. 한때 그 뿌리를 태워버리고 다시 세계를 갈아엎기 위해서 배터리가 어느정도 찼을 때 청소를 몇번 해 보았지만 그것은 너무 귀찮았고 아무런 효용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나의 의지의 한계였고 이상과 현실의 괴리일 수도 있다. 혹은 내가 예수를 사랑하는 마음이 깊지 못한 만큼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 일 수도 있고 단순한 나의 귀찮음일 수도 있다.
변명이 어떠하건, 나는 하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나는 또 하나의 가능성을 보았다. 내가 있는 곳에 나보다 아주 약간 빨리 온 사람이 작성한 어떤 글을 통해서 그의 의지를 알게 되었고 언뜻 언뜻 비치는 모습을 통해서 직접적인 행위를 두 눈으로 보았다. 비록 그는 소박하고 대단하지 않은 자그마한 ‘혁명’이라고 하지만 이미 비슷한 과정을 밟아오고 실패를 경험한 나에게 있어서 그의 소박하고 대단하지 않은 행위는 나의 삶을 뒤돌아 보게 만들었고 다시한번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와 내가 가지고 있는 궁극적인 목표는 전혀 다르고 앞으로 나아갈 길도 다르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생각은 나의 생각과 같았고 나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런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몇몇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 할 수 있었다.

내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할 수는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이 생각하고 행동할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엄격한 사람이고 이성을 존중하며 삶에는 명징한 목표와 추구해야 할 고귀한 가치가 있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인류가 목표로 해야 하는 최선의 행동은 예수가 우리에게 알려준 사랑이라고 믿고 있으며 나는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내가 있는 곳에서 ‘착하다’라는 어처구니 없는 오해를 들으면서도 꿋꿋이 그 의지를 행동으로 바꾸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1. 나름대로 보안법에 위반되지 않기 위해서 이리저리 돌려쓰고 얼버무렸지만, 그래도 위험한 부분이 있다면 삭제해주세요. 글 작성 후 한 3일동안 책마을에 접속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신속한 수정은 힘들것 같습니다.

2. 언제나 그렇듯이 글을 작성한 후에 그 글을 다시보게 되면 어처구니 없을만큼의 무개념과 억지가 판을 치는데, 일일이 수정하다 보면 끝이 없고 그러다가 책마을에 글을 올리지 못한 적이 많아서 오늘은 각오하고 글을 올립니다. 글 중에 오류가 있다면 가차없이 비판해 주세요.

3. 뜬금없지만, 와우 좋아하시는 분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