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인사] 비로소, 올리브 산으로
병장 김민규 [Homepage] 2009-04-14 00:01:41, 조회: 264, 추천:0
거친 생활이었다. 나는 끊임없이 표류했고, 정처없이 떠돌았으며, 또한 한없이 침몰했다. 이것을 무엇으로 다 내어놓을 수 있을 것인가. 어렵다. 아니, 그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그만큼이나 솔직하지 못한 하나의 아류작에 불과한 것을.
많은 것을 보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으며, 또한 많은 일들을 했다. 순전한 호기심으로서 새로운 영역을 탐구하는 상식적 세계와 '이 곳'은 달라서, '많은'은 그냥 그 자체로 하나의 굴레에 불과한 것이었다. 사람은 반복행위를 하면 지친다. 꽃노래도 삼세번이다.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때까지, 그만큼뿐이다.
처음 책마을을 알게 된 것은 아마도 작년 7월 즈음이 아니었나 한다. 예벽 '문'의 화면을 너머 살피다 눈에 들어온 그 글귀들, 그러나 '많은' 단어들은 내게는 부담이었고 또한 힘들게 느껴졌다. 아름답게 받아들이기에 나의 마음이 너무도 피폐했던 까닭일까, 무려 두달 이상을, 나는 그저 맴도는 데에 소진하고 말았다. 새로운 것을 마주하는 것이 어떠한 기쁨을 주지 못하리라는 마음속 불신때문이었다.
비록 첫 동기는 불순했으나, 이제와서 다시 거듭하면 무슨 소용이겠나마는 - '그들'로 대표되는 폐쇄적인 지적 유희가 뭇내 거북스러웠던 까닭으로 당시 자유롭지 않았던 신규회원 가입을 예벽 '문'의 추천에 의한 '낙하산'으로 돌파하여 들어와 - 결국에 내가 깨트리고 만 것은, '그들'의 오만한 작태도 허상의 유희도 아닌 나 자신이었을 뿐, 그리고 그래서 이것이 내게 꽃노래가 되었으리라. 그래, 내게 책마을이란 그런 것이었다.
광풍과도 같은 것은 비상식적 현실의 장면도, 굴종을 강요하는 거짓된 소리들도, 억제로 귀결되는 갖가지 신호등들도 아닌, 내 안의 바로 직면하지 못할 참담한 모순들이었고, 또한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재진행형의 잔재들이었다. 나름의 자존감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이십여년을 살아왔다. 그러나 아니었다. 충족되지 못한 것들로부터 오는 박탈은, 곧 나르시시즘적인 탈출을 모색하였으며, 또한 실제로 박탈당한 것들로부터 오는 불일치, 그래서 그것에서 파생된 극도의 피로와 무력감은, 나로 하여금 허상의 안정감을 찾아 동굴 속으로 기어들어가게 만드는 원흉이었다.
의도하지 않았겠으나 그대들은 나로 하여금 그것을 알게 하였고, 몸서리치게 아팠으나 스스로 보게 하였고, 또한 자인하며 넘어서게끔 이끌어 주었다. 마지막 가는 길에 이 2년간의 삶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고, 또한 하나의 공유된 꿈을 꾸게끔 하였으니 이것이 은인이 아니라면 무엇이 은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제는 정말 떠나야 하는 것을, 저 반대편의 해가 떠오르고 다시금 지고 또한번 떠오를 때에, 우물가에서 두레박 소리가 나고 말이 따뜻한 입김을 뿜으며 회색의 거리에서 우는 이른 시간에, 그렇게 훌쩍 떠나가야 하는 것을, 애석해하기에는 그 순간을 너무도 오래 그려왔으며 미련없이 털어버리기에는 그간의 시간들이 너무도 소중한 것을 어찌 해야 할 것인가.
떠나간다. 비로소 떠나간다. 동경에 찬 무겁고 뜨거운 남풍처럼 따뜻한 바다를 건너, 따뜻한 발과 따뜻한 사상으로, 나는 바람이 잔잔한 곳, 나의 올리브 산의 양지바른 곳으로 달려간다. 휘몰아치던 겨울의 폭풍소리가 그치고 이제 완연한 봄의 향기가 풍겨오는데, 겨우내 그토록이나 비웃던 저들이 어떻게 나의 행복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 떠나가자. 홀린듯 피리를 불며 그렇게,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저 따뜻한 바다로, 나의 올리브 산으로 달려가자.
그리하여 올리브 산의 양지바른 곳에서 나는 노래하며 기다릴 것이다. 우리가 다시금 이야기할 그 날을, 그래서 차디찬 겨울하늘을 가르고 우리 영혼의 분방함의 천상의 비유로서 세상을 긍정하기를 고대하면서, 그렇게 아름답게, 저 먼 여명위로 두둥실 태양이 떠오르기를 소망하며 다시한번 추억하리라.
안녕, 곧 다시 볼 수 있기를.
김민규
cyworld.com/minkiw
minkiw.kim@gmail.com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10
12:21:03
병장 김도환
2년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민규님의 저녁인사에 첫 댓글을 달 수 있다니 이 또한 매우 의미 깊은 일이 아닐수 없군요.
개인적으로 책마을에서 민규님의 만만디 스러운(?) 댓글을 보며 마음의 평안을 얻곤 했었는데 아쉽게 됐습니다.
저도 이제 곧 이곳을 떠나갈 입장인지라 그리 부럽지는 않아욧!! ....이라고 하려 해도 역시나 마음 한켠엔 부러운 마음도 살포시 드는군요, 아..이 간사한 인간이여-
아무튼 다시 한번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 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2009-04-14
00:09:33
상병 차종기
정말 가시는군요, 정말 정말, 이제 minkiw 라고 사인같이 적힌
글을 못 보는 것인가요, 흑흑,
하지만 가야될 사람은 가야하기에, 쿨하게 보내드립니다.
부디 가셔서 몸 건강하세요. 2009-04-14
00:27:23
병장 정건희
수고 많으셨습니다.
도환님처럼 부럽진 않아요! 할 도량도 베짱도 제겐 없네요. 부러워요!
저도 졸업반이지만 이곳에 늦게 든 세대로서
책마을의 주옥같은 글들엔 항상 민규님의 따사로운 댓들이 함께 한다는 인식이 굳게 박힌지라... 한동안 뭔가 허전한 기분이겠순요.
가시는 걸음걸음 햇살 가득하시길. 2009-04-14
00:31:38
병장 김동욱
빈 자리가 느껴질 것 같아서 약간 아쉽기는 하지만, 양지바른 곳에서 노래하며 기다리고 있길.
수고 많았다오. 2009-04-14
00:41:28
병장 김무준
숙취에 쩔어, 막걸리의 후폭풍에 대가리와 오른쪽 팔이 죽을 듯이 아파도, 깽깽이는 몇 자 두드립니다. 파이팅. 4월에 봅시다. 2009-04-14
02:31:05
상병 이석재
슬슬, 제 처음 이곳에 있었던 사람들이 떠나가는군요. 허허. 나가서, 뵙겠습니다. 2009-04-14
06:38:05
병장 김형태
안농잘가바이바이, 샬롬 2009-04-14
07:29:15
병장 이동열
이 몇 byte의 댓글로 아쉬움을 표현한다는게 가당키나 할까요... 만나뵙고 아쉬움을 달랬으면 합니다. 허허 2009-04-14
07:34:54
상병 김치곤
민규님 수고하셨습니다. 앞으로 민규님의 주옥같은 글을 책마을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크나큰 아쉬움으로 다가오는군요. 2009-04-14
07:36:04
일병 김태건
수고하셨습니다. 뵌 기간은 얼마 안되지만 아쉬운 마음은 작지 않네요.. 2009-04-14
07:38:39
상병 권홍목
안녕히가세요. 제가 책마을을 꾸준히 찾게해준 또 한분이 가시네요 흑흑 2009-04-14
08:00:11
상병 이재환
내 글 완결 안보고 갈꺼에요? 라고 외쳐봤자 가겠죠, 흥.
민규형 잘가요. 계속해서 불평불만이 가득 찬 방명록들 남겨줄 테니까.
잘가요. 2009-04-14
08:50:12
병장 고승철
이곳의 minkiw 스타일이 마무리지어지는듯 하네요.........
당신의 스타일 참 재밌었습니다.
밖에서도 당신 스타일은 참고할꺼에요.
밖에서도 화이팅!
아마 언젠간 뵙기 싫어도 따라갈테에요~ 2009-04-14
10:10:44
병장 이우중
너무 늦지 않았기를 바라며. And. 2009-04-14
10:41:44
상병 정근영
이 날이 오고야 말았군요.
토요일에 봅시다, 민규형.
고생많았어요 2009-04-14
10:53:45
상병 김태완
이제 김민규라는 이름을 못보겠군.
잘가세요. 2009-04-16
16:26:38
병장 김용준
민규씨 축하하오. 허허...
다시 만나 풍류를 즐길 수 있도록 준비해 주시구려. 껄껄껄. 2009-04-17
08:53:00
상병 기류언
수고하셨어요.
아, 기억하나요? 쪽지 내용들. 정말 감사하고 죄송하단 말밖에 떠오르지 않네요.
인연이란게 이런건가 봅니다. 민규씨. 언제나 건강하세요. 행복하시고요. 그리고 평안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