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학, 혹은 과학적 분석. 
 
 
 
 
- 과학적 분석은 사회전반에 크나큰 영향을 주었다.
영화 살인의 추억을 보셨다면, 영화 중반부에 나오는 속옷의 정액이, 범인을 잡는 중요한 키워드가 될수 있음을 아실수 있으실겁니다. 그리고 FBI로 보내진 용의자의 혈액 샘플과, 정액의 DNA분석 결과가 불일치로 나오면서, 사건을 담당하던 형사들은 범인을 잡지 못했다는 심한 괴리감에 빠지면서, 영화는 에필로그로 넘어가게 됩니다.
여기서 DNA검사는 형사들 입장에서 범인을 놓쳤다는 실망감을 안겨주지만, 또한 용의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연쇄살인범의 죄목을 벗는데 큰 기여를 한 셈이 되는겁니다. 물론 살인의 추억은 CSI가 아니기 때문에, 용의자의 입장을 거의 표현하지 않습니다만.

약 10년전에는 저런 DNA분석을 맏기기 위해서는 외국으로 샘플을 보내야 했고, 국내에서는 혈액형의 대조만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엉뚱한 혈액형을 가진 자식이 출생되면, 이 자식이 자기 자식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배우자를 외도했다는 이유로 구박하는 경우가 의외로 흔했고, 이를 이유로 법원에 이혼청구를 낸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법원은, Cis-AB형같은 변종성 ABO혈액형이 있고, 충분히 발현될 확률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이혼청구는 기각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혈액형만 가지고 친자를 감별하면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유전자 검사로 외도를 찾아내는것은 어느새 배우자 편집증 환자의 표준적 증세로 기록이 되어 있고, 실제로 저런 경우로 이혼청구에서 승소하는 경우 또한 많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카사노바가 아무런 부담이 없었겠지만, 요새는 맘만 먹으면 카사노바를 DNA로 역추적 하는것도 가능한 세상이 된 셈입니다.

이런 부정적 효과만 있는것은 아닙니다. 국립 과학 수사 연구소에서는 미아 DNA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여,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와, 고아원이나 기타 보육시설에 방치되어 있는 아이들의 DNA를 대조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고, 아직 시작단계에 불과하지만 몇명이나마 자기 자식들을 찾고, 자기 부모님을 찾아서 집으로 들어갔다는 소식 또한 들려오고 있습니다.

비단 생물학적 분석뿐만 아니라, 화학적 분석은 인류에게 좀 더 정밀한 공업 과정을 가능케 했고, 또 더 정확한 환경지수 파악을 가능케 하였습니다. 이미 1980년대 DDT의 생물농축을 측정할때에는 신기법의 크로마토그래피가 동원되었으며, 최근에는 유해물질을 파악하는데 크로마토그래피 뿐만 아니라, NMR을 이용하여, 원자단위를 스캔하는 극악한 방법으로, 더 높은 정밀도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MRI촬영을 통하여, 기존 CT촬영의 한계인 '저밀도 기관'의 촬영 불가를 극복하였고, 의학용 방사성 동위원소의 개량을 통하여, 극미량을 통하여 신체의 기능을 추적하는 것 또한 가능케 되었습니다.

하지만 과학을 활용한 분석은 절대 쉬운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크게 맹신하는것중 하나가, 분석과학을 통해 분석한 수치는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막상 분석과학을 자주 활용하는 사람들은 분석과학을 맹신하기를 거부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주사위 던지기, 연필굴리기나 지우개 굴리기, 트럼프점이나 또는 화투점을 보는등의 행위로 분석과학을 대체하는 무리한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사실 제대로된 논문을 접해보면, 데이터의 분석을 위해 사용한 기법들과 사용한 기기들의 내용이 좌라락 나열되어 있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리포트에 불과한, 시중의 분석내용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가져다줍니다. 멋모르는 사람들은 '저거 회사 광고시켜주는거 아냐?'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 기기의 나열은 엄청난 의미를 가집니다. 제가 혼자서 써 본 기기중 가장 비싸다는 ICP의 경우, 미국내에서만 몇개 회사가 제조를 하고, 그 회사마다 약간씩의 구조상 차이를 보입니다. 이는 같은 샘플을 투입한다 하더라도, 약간의 데이터값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차이이며, 해당 실험을 증명하기 위해 재현을 할때, 이러한 차이는 실험의 참과 거짓을 증명하는 결정타가 될 수도 있습니다.

더불어서, 기법의 차이 역시 크나큰 차이를 가져다 줍니다. 어떤 기법은 특정 물질의 추출에 유용하고, 어떤 기법은 특정 물질을 거의 추출하지 못할수도 있습니다. 또한, 어떤 기법은 특정 물질을 변형시켜서, 아예 논외로 만드는 경우도 있고, 이 기법을 구체적으로 데이터화 하기 위해서는, 실험기구를 통한 측정을 해야하는데, 어떻게 측정하느냐에 따라서 같은 주제의 실험임에도, 내용이 완전 달라질 수 있습니다.

결국 분석을 하기 위해서는 이런 모든 환경을 조사해야 하고, 그에 걸맞는 실험을 수행해야 합니다. 만약, 실험이 도중에 잘못 되었다면, 내용 분석을 위해서 다시 다른 실험을 수행해야 하고, 만약 샘플이 부족하다면 실험 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실험은 시간과의 싸움. 시간이 오래되면 원샘플이나 대조군, 또는 처리한 샘플이 변질되어 분석에 실패할수도 있고, 그 외에도 극히 사소한 요인들 역시 실험에 영향을 줍니다.

그 때문에 분석한 데이터를 인식한다는것은 전문적인 지식이 요구된다.
과학의 본질은 '궁금함'과 '호기심', 그리고 '의심'이라고 말할수 있을정도로, 참과 거짓을 구별하는데 엄청난 신경을 쏟아붙습니다. 이 분석한 데이터 역시, 액면 그대로 인식을 해버린다면, 크나큰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전후관계를 읽고, 실질적인 본질을 머리속에서 조합하는것이 필요하고, 이러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합니다.

예컨데, 애초에 분석학에서 '이건 10이 나왔어! 그러니까 이건 10이야!'라는건 무의미하고, 실험과정의 특징과, 기타 여려 변수등을 고려해서 '이건 10이 나왔어! 이건 플러스 마이너스 9.24야!'라는쪽이 더 진실에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많고, 더군다나 더 높은 표본 오차를 위해서는 지겹고 지겨운 실험을 다시 해야하는 삽질도 수십, 수백차례 더 해야 합니다. 이때에도 비로소 '신뢰성' 있는 결과가 나왔을때, 그제서야 의심을 풀 수가 있는것이죠.

물론, 신뢰성과 데이터의 조합은 객관적인 데이터를 극히 주관적으로 변형시키는 일련의 메카니즘이라고 밖에 말 할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자체가 주관적이라면, 과학은 지극히 주관적인 학문이 될테고, 현재 과학의 위치를 차지할수 없겠죠. 주관속에서 객관을 찾는것이야 말로 과학의 가장 중요한 키포인트(!!)이고, 또 분석과학에서의 핵심입니다.

분석과학에 대한 절대적인 의존이 아닌, 상대적인 보완이 필요하다.
우리 주변에는 이미 엄청나게 분석과학이 침투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이 글을 쓰는 멍청한 필진 같이, 분석과학을 이리저리 뜯어보는 사람도 생기게 마련이고, 또 일부 부류는 '분석과학이야 말로 분석의 왕도다!'라고 외치면서 맹신하는 부류가 생기고 있는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분석과학을 자주 다루는 사람으로써, 현재의 분석과학을 100%신뢰해야 하냐? 라는 질문에 답을 붙인다면, '100%신뢰할수 있으면 내가 생물학 전공하겠냐'라는 말을 쓰고 싶습니다.

어느 과학이든 마찬가지지만,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해당 분야의 지식은 극히 불완전합니다. 아직 DNA가 상징하는 암호는 해독이 덜된 상태고, 단지 무의미한 염기서열의 나열에 불과합니다. 특정 서열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밝혀진것은 극히 일부분이며, 많은 사람들이 쓰레기 유전자(Junk Genome)이라고 불리우는 이 유전자가 무슨 역할을 하는지는 확실한 답변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출현을 했고, 계속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조차 확실치가 않다는 것이죠.

NMR이 발전하고, UV스펙트럼 기법이 발전하고, 또 크로마토크래피 기법이 발전해서 단백질의 분리와 구분이 용이해졌다고는 하나, 아직도 단백질의 3차원적 구조를 표현하는것은 엄청난 중노동에 속합니다. 실제로 현재까지 정확한 3차원적 구조가 밝혀진 단백질은 그야말로 소수고, 그나마 대부분이 단백질은 끊임없이 변형을 거치기 때문에, 일부의 모습만이 알려졌다는데 더더욱 크나큰 좌절감을 심어주기에 딱 좋습니다.

이런 분석과학이, 생활에 있어서 하나의 도움은 될 수 있지만, 절대적인 진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분석과정의 실수로 DNA결과가 이상하게 나와서, '아무런 혐의가 없는데도' 이혼이 성립된 가족의 이야기는, 이런 세심한 검토 없이는 무엇이든지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되고, 또한 맹목적인 신뢰 역시 절대 도움이 안된다는걸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제 자신도, 극도로 불완전한 존재중 하나일 뿐입니다. 

  
 
 
 
 병장 김동환 (2006/06/23 17:21:55)

'분석화학'이라고 쓰신줄 알고 깜짝 놀랬어요. 음..분석화학. 재수강 과목이죠.(땀) 

갑자기 1990년대 화제가 되었던 미식 축구선수 O.J심슨이 DNA검사 일치까지 갔음에도 
교묘한 변론으로 배심원들의 무죄평결을 이끌어낸 일이 떠오르는 군요.    
 
 
 병장 노지훈 (2006/06/24 15:12:20)

실험실에만 박혀 있는 친구들 보면, 역시 연필과 종이만 있으면 되는 수학이 좋아요...(땀)    
 
 
병장 조용준 (2006/06/25 08:29:32)

동환// 분석화학. 진짜 그 압박감이 사뭇 다르던 과목이죠. 킬레이트 적정의 압박이란.(땀) 
그나마 저는 재수강은 면했어요. 사바사바의 힘(?)을 빌어서 말이죠. (웃음) 

지훈// 저는 종종 삽과 배낭을 짊어지고 산으로 자주 올라갑니다. 실험실에만 박혀있질 않죠.(...)    
 
 
상병 송희석 (2006/06/25 08:45:55)

오랜만에 보는 과학칼럼이군요. 잘 보고 갑니다.    
 
 
일병 김지민 (2006/06/26 08:44:26)

저로서는 이런 글을 쓰는 것을 상상도 못할 칼럼입니다. 정말, 대 단 하 세요오 
잘읽었습니다.    
 
 
상병 조주현 (2006/06/26 20:33:04)

이제야 봤네, 

용준씨다운 컬럼입니다. 잘봤습니다. 하하 이거 진짜 좋아요.    
 
 
상병 민경국 (2006/06/28 13:06:44)

조금은 다른 종류의 댓글. 요즘들어 과학에 대한 회의랄까 하는 상태라서. 
칸딘스키는 과학 이론이란 과거의 것에 대한 외적 요소를 
형상화하는 데서 그친다고 말했죠. 
미래는 외형이 결정되지 않은 비정형의 것이기 때문에 
외형을 말하고자 하는 과학이론은 맞지 않는다고요. 
미래는 감정으로 느껴야 하는 것이고, 내적 지향을 따라가야만 한다고, 
그렇게 생각을 전환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과학, 그리고 분석 과학, 여기에 우리의 미래를 걸 수 있는 걸까요?    
 
 
병장 조용준 (2006/06/28 13:32:59)

경국님// 결론에 나와있죠. 과학, 그리고 분석과학만의 존재가 하나의 도움은 될수 있지만, 절대적 진리는 될수 없다고 써놨죠.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서 신기술이 등장한다 한들, 신기술에 대한 이해와 활용도, 그리고 다른 학문의 도움이 부족하다면, 과학이 미래를 연다는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세살먹은 어린아이가 상대성이론 공식을 외운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는것이 아닌것처럼 말이죠. 

과학은 이 세계를 표현하는 수많은 학문들중, 단 한종류의 학문에 불과합니다. 단지 제가 과학을 비중있게 다루는 이유는, 제가 선택했던 학문이고, 앞으로 계속 선택할 학문이기 때문입니다.(웃음)    
 
 
상병 민경국 (2006/06/28 14:18:18)

한때 저도 과학을 선택했던 적이 있고, 지금도 꽤 관심을 갖고 있지만, 
지금의 과학의 흐름을 보면 왠지 '올인'하는 느낌으 들어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