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픽션입니다.


형제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가족이란 일종의 피동의 집단이다. 어쩔 수 없이 속할 수밖에 없는. 어떻게 보면 ‘민주주의’의 원칙에서 가장 어긋나는 집단일런지도 모른다. 이렇듯 선택권이 없기 때문에 가정안에는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 가족이란 마음에 안들면 때려치는 직장과는 다른 집단이기 때문에, 설령 피해를 당한다고 하더라도 그 힘에서 단절되기가 쉽지 않다. 물론 방법이야 있을 수 있다.
일테면, 호적을 파거나, 죽이거나
죽거나
이다.

그렇다, 가족이란 집단에서 떠나는데에는 크나큰 희생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가족이란 일종의 혈맹이기 때문이다. 혈맹? 그렇다. 조폭들은 집단에서 떠날 때에 어떻게 하는가. 피로 맺어진 형제라는 이름하에, ‘조직이 화장실 문짝이냐’ 라고 욕지거리를 하며, 함부로 조직의 세계를 뜨려 하는자의 팔을 자르거나, 손가락을 절단내거나, 한다. 가족도 어쩌면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지, 이것은 주체가 잘못된 이야기다. 조직이 가족 흉내를 내는 것일게다. 가족이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져버리려 할 때, 크나큰 희생을 요구하는 것처럼, 조직역시 가족처럼 크나큰 희생을 요구한다는 거다.
그래, 그래서 나 역시 희생이 따르더라도, 이 빌어먹을 집단을 떠나기로 했다. 더 이상의 피동은 참을 수가 없었다. 호적을 파거나, 죽이거나 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세상을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어차피 뭐, 기왕 세상도 좃 같은데
죽거나
의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내가 태어났을 때, 우리 형은 4살이었다. 4살 터울은 궁합도 안 본다는데, 우리는 형제지간이라서 그랬을 까, 그때부터 걸핏하면 싸웠다고 한다. 갓난아기가 무어 반격을 할 수가 있겠는가. ‘싸웠다’가 아니고 내가 ‘당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엄마가 젖을 먹이고 있을 때면 우리 형은 4년을 키워온 주먹으로 내 몸통을 쳐댔다고 한다. 젖을 먹다가 울음을 터뜨리면 더욱 더 쳤다고 한다. 엄마가 떼어내면 그제서야 다른 일을 찾아서 놀았단다. 
그 이후, 나도 나이를 먹어 엄마 품을 벗어남에 따라, 형의 폭력에 노출되는 가능성은 더욱더 높아졌고, 형의 폭력은 점점 더 강도와 종류를 증폭시켰다. - 나는 성악설을 절대로 믿는다. - 그것은 물론 형이 어느정도의 지각능력을 갖추고 난 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지각능력을 갖추어 형에게 맞고 있음을 깨달았을때에도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각능력을 갖춘 것이 정확히 언제였는지 기억하지 못할 만큼 자랐을 때에도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각능력을 갖춘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하지 못한다고 인지했을 때가 언제였는지 모르게 됐을 때에도 역시 형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이 피동의 집단 안에서 피동의 대상이 되었다.
주먹질과, 발길질과, 꼬집기와, 따귀. 그 피동의 대상

물론 부모님들이 가만히 보고 계셨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울음을 터뜨리면 형을 혼내키고, 나를 보호해 주셨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보호 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 교육방침이었는지, 때때로 나는 형에게 맞고 부모님들에게 또 혼나는 경우를 경험하곤 했다. 더욱이 곤란한 것은, 내가 울고나서 부모님들이 형을 혼내고 나면, 그 이후에 보복의 시간이 다가온다는 것이었다. 형은 자기가 나를 괴롭혔기 때문에 혼난 것을 기억하지 않고 -못하고가 아니고 ‘않고’다- 부모님들이 집을 비우실 때만을 기다렸다. 그러면 나는 또 어김없이 맞았다. 4살 터울의 힘 차이는 웬만해서 극복되지 않았다. 게다가 내가 정신적으로 다 성장하기도 전에 맞았었기 때문에, 나는 형의 폭력에 무조건적으로 위축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진짜 폭풍의 계절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그러니까, 형에게 거시기 털이 나던 시기였다. 나는 포경수술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나와 크게 키차이를 보이지 않던 형은 갑자기 불쑥 요술뿅망치에 맞은 듯이 커져버렸고, 힘 역시 키와 함께 불쑥 강해졌다. 나는 압도당했다. 도저히 저항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밥 먹다가 소리내서 씹는다고 발로 까이고, 추운데 창문 열었다고 아구지 맞고, 1945 스트라이커 같이 하다가 P 2개 더 먹었다고 스타트 버튼 누른 채 밟힌 뒤로는, 나는 정말 이게 무언가 잘못 되어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도 형과 똑같이 우리 엄마 배에서 태어났는데, 항상 피동의 대상은 나였다. 그것은 살면서 느껴본 가장 강렬한 억울함이었다. 때로 나는 하루 온종일을 끅끅거리고 울었다. 베개가 눈물로 적셔져 무거울 만큼, 눈이 팅팅 부어 고무장갑모냥 느낌이 없어졌을 만큼 운 뒤에, 나는 내가 울 이유가 없음을 알았다.

몇 번인가 나는 형을 죽이려고 시도 했다. 밤중에 살금살금 부엌으로 가서 식칼을 빼내어 형의 방문까지 갔었다. 초등학교 6학년이란 나이에도 본 영화가 있어, 칼로 사람을 찌르면 쉽사리 죽는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기습! 기습만이 살길이다. 나는 방문을 살금 열려고 했으나, 그게 되지 않았다. 형은 이미 나의 위에 군림해 있었고, 쿠데타는 불가능했다. 무엇보다, 사람을 죽인다는 마음을 6학년의 어린이가 제대로 품을 리가 없었다. 다만 나는 그날도 울었을 뿐이었다.

복수의 또 다른 방법이 있음을 깨달은 것은 중학교를 들어간 이후였다. 죽음의 슬픔과 잔혹성에 대해서 얼마쯤 제대로 간파했을 때에, 나는 형에게 나의 죽음을 선사하는 것이, 꽤나 잔혹한 복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리 나를 괴롭히는 형제라고는 하지만, 그는 때때로 형제애를 내세울 만큼 형제로서의 정체성이 강했고, - 나에게는 전혀 와닿지 않는 형제애라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 그런 그에게 나의 죽음은 분명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 틀림없었다. 그것도 바로 ‘그’ 때문에 말이다.

한참 귀신이야기가 유행하던 때였다. ‘공포특급’ ‘3D 입체 귀신이야기’ 등의 책이 팔리던 때였고, 몇몇 꽁트에서 ‘네가 나를 죽였어, 네가 나를 죽였어, 너 때문이야’ 라는 귀신의 대사가 등장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 대사가 나의 마음을 움직였는지도 모른다. 형 때문에 죽는거야. 라면 그 사람은 얼마나 슬플까. 자신의 생명에 대해,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 엄청난 회의감과 자책감과 모멸감이 동시에 몰려들 것이 틀림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매력있었다.
그래서, 나는 형에게서, 아니, 형이 속해있는 가족에게서 떠나기 위해 죽는 방법을 택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처절한 복수는 다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유서에다가 ‘형이 너무 괴롭혀서 죽어버리고 싶었어요. 나는 형을 죽어서도 증오할거야!’ 따위의 글귀나 써 놓고, 시체로 발견되는 것은 너무 재미가 없었다. 형에게 현실감을 좀더 불러일으킬 방법이 필요했다. 나는 머리를 싸매고 궁리한 끝에, 자살현장에 함께 있는 방법을 택하기로 마음먹었다. 말하자면, 형이 보고 있지만, 손쓸 수도 없이 동생이 ‘형 때문에’ 죽어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멋진 복수는 다시없었다.

사실 자살의 동기는 형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학교에서도 거의 공인된 왕따였고, 세상 자체가 재미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그 궁극에는 형이 있을지도 몰랐다. 형의 오랜 폭력으로 인해 위축된 것이, 바로 나라는 결정체였으니까. 그래서 나는 아이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그래서 나는 더욱더 자살에 매력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마음을 먹자 일은 일사천리에 진행됐다. 자살 방법은 투신. 날짜는 어머니 아버지가 안 계신 토요일 오후. 장소는 15층에 위치한 우리 집. 다 딱딱 들어맞았다. 나는 일단, 뛰어내릴 준비를 다 하고 나서, 형을 불러다 기습적으로 뛰어내리기로 계획을 완성했다. 대학에 이제 막 들어간 형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면, 그래서 급박한 척 빨리 오라고 하면, 그러면 형은 올 것이다. 그리고, 형이 현관문을 여는 순간, 뛰어내리면 되는 것이었다. 우리집 구조는 현관문에서 거실 베란다가 직빵으로 보이는 구조였으므로, 형이 현관을 열고 베란다를 쳐다보는 순간, 그 베란다 창틀에서 내가 뛰어내리기만 하면 계획은 성사되는 셈이었다.

며칠 밤을 형에게 복수한다는 마음으로 칼을 갈고, 드디어 결전의 토요일이 되었다.

학교를 일찍 마치고 오니, 예상대로 형이 밖에 놀러나가고 집에 없었다. 나는 미리 써두었던 유서를 서랍에서 꺼내었다.

[나는 형에게서 너무나 많은 고통을 당하며 살았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형과 살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죄송해요 엄마 아빠.

개자‘식아 내가 죽으니까 좋냐? 나는 너 때문에 죽는다. 너 때문에 세상이 살기 힘들다 개’새‘끼야. 태어나서 너 때문에 단 한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어. 동생한테 그러는게 형이냐? 이제 죽어서 어쩌냐. 때릴 놈도 없고. 쪼다 같은 색히야. 너는 내가 죽어서도 원망하고 저주할거다. 지옥에나 가라 개’놈아
..].

더 많은 욕지거리가 있지만, 생략하도록 하겠다. 
아무튼 나는 그 유서를 다시 한번 읽어보면서 괜히 눈물이 났다. 오욕과 인고의 세월 동안, 나는 단 한번도 행복하지 못했구나. 이게 다 이 자식 때문이구나. 맞았던 기억들이 또다시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복수의 칼날이 더욱 날카로워 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유서에서 감정이 복받쳐 맞춤법이 좀 틀린 문장을 수정하고서, 베란다 창문을 열고 창틀을 확인했다. 내가 죽을 곳이었다.

나는 창밖을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마지막으로 세상을 눈 담고 싶었다. 비장한 각오로 이 작업에 임하지 않으면 아니되었다. 그리고,
형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어 형.. 난데.”
“어 뭐 새‘끼야 이따 전화해 지금 바뻐!”

달칵


어랍쇼. 이게 아닌데. 나는 당황했다. 형이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린 것이었다.
나는 더욱더 분노했다. 그래 이 새‘낀 이런 쓰레기야. 용서할 수 없어. 나는 더더욱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전화해서 급박하다고, 빨리 오라고 하고 내가 먼저 끊어야 했다. 정말 다급해야 했다. 나는 다시 번호를 눌렀다. 손가락이 조금씩 떨렸다.

“아 왜!!”
“형! 집에 빨리 와봐! 큰일났다니까. 지금 자세히는 못 말하고, 아무튼, 빨리와 빨리!”
“어? 뭐라고? 야. 너 지금 뭐라...”

달칵

성공이었다. 형은 이제 안달이 났을거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집으로 전화가 왔다. 아니다 이것을 받으면 안된다. 받으면 급박한 상황을 연출하기 힘들다. 형은 무슨 일이냐고 꼬치꼬치 캐물을 것이다. 거짓말을 할 수는 있겠지만, 어줍잖은 거짓말 보다 이런 감추기가 더욱 효과가 있을 게 틀림없었다.

형은 보통 동네에서 친구들과 놀기 때문에, 늦어도 30분 안에는 올 것 같았다. 나는 30분의 생을 번 느낌이었다. 자 이 30분간 무엇을 할까. 그렇다고 형이 언제 올지 모르는데 계속해서 베란다 창틀에 매달려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형이 현관문을 따는 소리가 들리면 그때 베란다로 튀어 올라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렇다면 그 때까지는 무엇을 해야할까. 나는 생을 돌이켜 보기로 했다.
돌이켜 보면, 그리 적은 세월도 아니었다. 많은 일들을 했다. 후회 없는 세월이었다. 아니 가만, 후회가 없다고? 사실은 후회가 있었다. 사춘기 남성인 나에게, 가장 억울한 것은 아무래도 性에 대한 욕구였다. 그 호기심도 충족하지 못한 채 죽는 구나. 갑자기 죽음이 억울해 졌다. 아니야 그래도 복수는 중요한 거야. 나는 다시금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하지만 생각하면 할 수록 억울했다. 우리 학교 애들 중에는 벌써 총각 딱지 땠다는 놈들도 있던데, 나는 여자 가슴한번 만져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중3이 어디가서 총각 딱지를 떼는 것일까. 일순간 어이없는 호기심을 가졌지만, 이윽고 이런 호기심은 억울함이 덮어버렸다. 여자 가슴이나 음부를 상상하고 있자니 어이없게도 내 거기가 발기해버렸다.

자살은 성스러운 복수극이지만, 억울한 것은 억울한 일이었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오늘만 날이 아니거늘, 일단 강간이건 사창가건 동정이라도 잃은 다음에 자살을 감행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건 너무 억울하잖아.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자살의욕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 에너지를 이 놈의 똘똘이가 다 빼앗은 듯이.
하지만 나는 이내 도리질을 쳤다. 형이 오고 있다. 어쩐지 나는 오늘이 아니면 의지가 약해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늘 복수하지 않으면 나는 끝나는 거다. 나는 영원히 굴복해야 하는 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로 오늘을 양보할 수는 없었다. 그까짓 섹스. 죽음 앞에서는 가치가 없었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발기한 상태는 진정시켜야 했다. 그래, 30분 안에 동정을 잃고 자살을 하기란 어렵겠지만, 딸딸이야 칠 수 있는 노릇이 아닌가. 나는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생각했다. 시간이 얼마 없었다. 재빨리 나는 고심의 여유도 없이 컴퓨터를 켰다. 진짜 여인네는 없더라도, 가상의 여인네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범람하는 동영상의 시대. 나는 얼른 휴지를 뜯어 왔다. 형이 오기까지 시간이 얼마 없었다.

재빨리 공유기에서 아무거나 용량 큰 동영상을 받은 뒤에, 나는 바지와 팬티를 벗고 의자에 앉았다. 곰플레이어에 플레이를 시키자 벌거벗은 육신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었으므로 나는 영상을 제대로 감상할 여유도 없이 작업을 시작했다.

탁 탁 탁

빌어먹을, 결국은 이렇게 처리하는 구나. 나는 휴지로 흔적을 닦아냈다. 뭔가 찝찌름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발기는 가라앉아있었다. 그렇게 한숨을 푹 내쉬고 컴퓨터를 끄려고 하는 순간

덜컹 덜컹

문을 덜컹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의 심장은 갑자기 미친듯이 뛰놀기 시작했고, 습관적인 손은 후닥닥 컴퓨터를 재빨리 끄는데에 성공했다. 뒤처리를 한 휴지는 바지에 쏙 넣어버렸다. 옷을 제대로 입고나자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되지 하며 우왕좌왕했다, 허나 길은 오직 하나, 창틀에 서는 것 뿐이었다. 재빨리 베란다로 뛰어가 창틀에 조심스레 올라서니, 초인종이 울렸다.

“야 문 열어!!”

형의 목소리였다. 이제 복수의 시작이었다.

띵동, 띵동

“야 문 열라고!!”

어라, 왜 자꾸 초인종을 눌러대지? 우리집은 번호키로 된 잠금장치를 가지고 있었다. 비밀번호는 5642. 내가 다른 걸쇠를 건 것도 아니고, 비밀번호만 누르면 되는데?

“아 씹.. 몇 번이었지”

잘은 들리지 않았지만 형이 궁시렁대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멍청이!! 비밀번호를 까먹은게 틀림없었다. 나는 베란다 창틀 위에서 엉거주춤하게 서서, 이 어이없는 상황에 통탄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디 멀리서 오래 살다가 오랜만에 집에 온 것도 아니고, 매일 들랄날락하는 집의 비밀번호를 까먹다니. 이건 거의 저능아 수준이었다. 아니, 어쩌면 내 계획을 이미 알고, 망치기 위해 지금 저러는 건가?

나는 이제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내려가서 문을 따 주고, 열리는 동시에 다다다다 창문으로 달려가 욕지거리를 하며 뛰어내릴까, 아니면, 여기서 소리쳐 비밀번호를 말해줄까? 아니지,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집 비밀번호를 들을지도 몰라. 골치가 아팠다. 젠장할 죽기 한번 어렵네. 나는 다이하드의 주인공 부르스 윌리스라도 된 기분이었다. 문을 따 주고 다다다다 뛰어내려야겠다는 방식을 마음속에서 선택한 뒤, 창틀에서 내려오려고 다리를 굽히는 순간 나는 주머니에 묵직한 것이 들어있음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아까 정액을 닦아낸 휴지였다.

큰일날뻔 했다. 하마터면 이 숭고한 자살이 웃음거리가 될 뻔했다. 뉴스에 이렇게 나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 한 중학생이 가족관계를 비관하며 투신자살을 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동정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지 못하다가 결국은 자살이라는 방법을 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투신자살을 한 중학생의 호주머니에서는 정액을 닦아낸 휴지가 뭉쳐져 있었습니다. 그는 그의 형 김모씨가 집에 들어오기 전, 포르노 동영상을 보며 자위행위를 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자살사건으로 인해 한국사회는, 사춘기 이후의 학생들에게 성행위를 권장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술렁이고 있습니다. 여기서 잠시 형의 인터뷰를 들어보겠습니다

“아무리 사춘기라도, 그녀석이, 그렇게.. 그렇게 밝힐줄은 몰랐어요. 자살까지 해가면서... 아이구... 동네 망신스러워서 이거야 원”

...]


다행이었다. 나는 휴지를 창밖으로 던져버렸다. 먼저 날아가라, 나의 정액들아. 나의 씨들아. 곧 따라가마. 그리고 창틀을 내려가는 순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 맞다 이거였지”
흡족스러운 듯한 형의 목소리. 그리고 나는 형의 눈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창틀에서 내려가려고 하던 나의 자세는 엉거주춤하기 그지없었지만, 형의 표정은 이 사태가 너무나도 당황스럽다는 눈치였다. 그래. 당연하다. 동생이 자살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지. 겁이나겠지. 무섭겠지. 그것도, 이렇게나 괴롭혀 왔던 동생이다. 
후회막급

자책감이 그를 짓누를 것이다. 모든 용서를 빌 것이다. 하지만 소용없다. 나는 자살할 것이다. 나는 복수할 것이다. 나는 자살욕구가 넘쳤다. 이제 시간이 되었다. 내가 몸을 서서히 일으키자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래 그 표정이다. 그 두려움의 표정이다. 미안함의 표정이다. 그래 미안하다고 소리쳐 봐! 소리쳐 봐! 이 망할 새‘끼야. 어디 한번, 죄를 고해해 봐!!

“야 이 미친‘놈아 거기서 뭐해!!”

어라? 내가 원한 대사가 아니었다. 이상했다. 모든 것이 다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의 입 또한 기대하지 않았던, 대사를 읊었다

“어? 아. 아니 그냥. 더워서....”




끝.  
 
 
병장 송재봉 
  하하하... 

아 재밌어요. 03-13   
 
병장 박동일 
  픽션이라지만, 맞고사는 동생의 심상표현이나 상황묘사가 절대 무경험자의 것은 아니군요. 

왜냐하면 제가 그것에 심히 공감하고 있거든요.(……) 

1945 스트라이커 같이 하다가 P 2개 더 먹었다고 스타트 버튼 누른 채 밟힌 뒤로는, 나는 정말 이게 무언가 잘못 되어있음을 알 수 있었다. 부분이 그야말로 '절정'. 03-13   
 
상병 김지민 
  사실 저는 위로 형이 둘이나 있죠. 
경험은 글의 공감대를 상승시키는 효과를 발휘합니다(....) 
에효 03-14   
 
병장 송재봉 
  어험.. 
전 장남이고 남동생 한 명 있습니다. 

뭐 6살 이나 차이가 나서 별로 때린 기억은 없네요. 
꿀밤선에서 끝났었죠. 

동생이 이번에 대학교에 갔는데, 
아직도 설설 기는 것은 어릴 적 꿀밤 때문? 

이 글을 계기로 잘해줘야겠어요 03-14   
 
상병 김지민 
  저는 형들과 각각 6살, 7살 차이가 나는데, 
왜 맞았을까요. (...) 

꿀밤이라.. (휴) 03-14   
 
병장 이영준 
  "어? 아.. 아니 그냥 더워서..." 라니. 
완전 웃깁니다. 03-14   
 
상병 조진 
  9살 차이나는 동생이 걔기는건, 
왜일까요. 
하룻고양이, 짬타이거 무서운 줄 모르는 걸까요. 03-14   
 
병장 박철웅 
  미치겠군요. 이건 공감 + 유쾌함인데요. 
콧물나네~ 03-14   
 
병장 윤병덕 
  재밌다. 03-14   
 
상병 정민수 
  김지민 상병님 팬입니다. 
글이 매우 재미있습니다(웃음) 
앞으로도 좋은 글 계속 부탁드립니다(웃음) 03-14   
 
병장 한유빈 
  이건 마치 '그러나 그녀는 뒤를 돌아다 보지 않았다'와 필적할만한 반전. 박수! 03-14   
 
병장 홍순형 
  지금 지민씨글 찾아서 하나하나씩 다시 보고 있는데 다시봐도 새롭고 재미있네요. 
팬 입니다. 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