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론] 책마을 예언전쟁  
상병 김무준   2009-01-11 15:12:33, 조회: 267, 추천:0 

들어가기 앞서

일찍이 수많은 예언가는 종말을 이야기했쉽미다. 홍석기라는 예언자는 위기론과 관련하여 최초의 보론을 작성했쉽미다. 마구로 동슥이라는 예언자는 폭력이라는 이름과 우리의 책마을을 이야기하자는 글로 위기와 극복을 노래함뮈다. 두환씨는 글쓰기의 도의라는 글을 쓰며, 이 끝나지 않을 예언전쟁에 민규씨와 석재씨마저 참전함뮈다. 아아 슬픕뉘다. 깽깽이는 그냥 헛소리를 늘어놓은 것뿐인데, 청춘의 종언 때에도 그랬고 후폭풍이 불어오는 모양임뮈다. 그런고로 깽깽이는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를… 은 헛소립뮈다. 헛소리 하지 않씁뉘다. 책임 지겠씁뮈다. 그동안 얻어터지기 싫어 침묵을 지켜온 깽깽이도 예언전쟁에 참전함뮈다. 그렇쉽미다. 막장압뮈다.

1. 깽깽이가 보아온 책마을의 성격

일찍이 깽깽이는 전산망의 어둠의 게시판을 이용하다 유령처럼 책마을에 침투했습니다. 명예의 전당에 있는 주옥같은 글을 만나고서 좀 더 명예의 전당을 배회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몇 달 동안 심심할 때면 명예의 전당에 들어와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녔습니다. 황민우씨의 문학 산책 시리즈를 읽고 이곳에도 엄청난 괴물이 살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박종민씨의 한강 고시원 체류기를 읽으며 미래에 대해 고민했으며, 하지연님의 비급 취향을 접하고 넓은 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주영준씨의 담배를 한 대만 빌려달라는 말에 대하여에서 한 마디 말을 언어 매커니즘으로, 다각적 방면에서 해석할 수 있음을 보았습니다. 김지민씨의 눈 먼 자들의 도시 독서후기도 있었고 심지어는 김청하씨의 리니지 공략집 후기까지 있었죠.

명예의 전당은 경제학, 사회학, 심리학, 문학비평 등 인문학의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사고가 포함되어 있는 일종의 지식 도서관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가 있지? 하는 물음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괴물들이 판치는 명예의 전당은 사바나의 정글보다도 무시무시한 곳이었습니다. 들판을 뛰어다니며 고대 유물을 발견했고 스스로에 대한 고뇌와 사유를 계속해나갔습니다. 분명 명예의 전당은 통째로 어디다 옮겨 소장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곳이고, 이곳 공사에서 계속 이어져 나간다는 점에서 엄청난 어둠의 성소였죠.

그러다 명예의 전당 말고도 책가지라는 곳이 존재하는 것을 알았죠. 명예의 전당에 버금가는 무시무시한 맹수들이 저마다의 발톱을 들고 캭캭대고 있었습니다. 과연 이 정글은 어디까지인가. 책가지를 돌아다니며 텍스트에 대한 목마름을 해결했습니다. 알고 있던 어둠의 성소들보다 훨씬 성스럽고 어두침침한 곳이었죠. 그리고 마침내 좀 더 밝은 곳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곳에는 수많은 이들의 사유와, 지식과, 독후감이 있었습니다. 오오. 책마을을 찬양하라. 심심풀이 땅콩으로는 안성맞춤인 곳이었고, 유령처럼 배회했습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것이 이곳은 <인문사회 및 독서에 대한 동아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깽깽이가 보아온 책마을은 본디 내글내생각과 독서후기가 결합된 곳이었습니다. ‘책마을’이라는 이름답게 책을 바탕으로 한 사유가 펼쳐져 있었죠. 같은 책을 읽고도 다른 의견이 나왔고, 그런 의견들 사이에서 좁은 시야를 좀 더 넓힐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이 벌판을 한 번 달려보자는 생각에 지난 시월 오일 <산다는 것의 의미>라는 독서후기를 올리게 됩니다. 생산된 목적이야 제출용이었지만 하드디스크에 묻히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에 유령에서 주민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깽깽이에게 있어 책마을은 말 그대로 책으로 이루어진 마을이었습니다.

그러다, 시즌 투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고 문집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물론 직접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습니다만 몇 가지 일을 계기로 시즌 투와 문집은 이십대를 위한 소통의 장이 되어야한다는 색깔을 갖게 되었습니다. 일월의 모임에서 나온 어느 정도의 결론이었죠. 시즌 투의 성격과 관련해 해석해 볼 때 앞으로의 책마을은 소통에 목마른 군인들의 대화 장소가 될 것 같습니다. 일종의 마당이랄까요. 광장. 광장입니다. 마을에서, 광장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마다 가진 생각을 바리바리 손에 싸들고 모이는 광장이요.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고, 상상을 풀어놓으며, 토론에 목마른 이들이 모여 대화하는 광장이요.

2. 약간의 염려

깽깽이가 본격적으로 굴러다닌 타이밍이 연재가 활성화 되는 시점이었습니다. 당시 영목씨의 머신즈 그린웨이와, 현민씨의 화가(畵架), 기화씨의 단편, 깽깽이의 잡담, 종대씨의 싱잉 인 더 레인이 시작되고 있었죠. 보름 쯤 지나서 민규씨의 여행기도 연재됩니다. 지훈씨의 연애의 공식도요. 정말 다양한 소재의 글이 다양한 장르를 바탕으로 올라왔습니다. 기존의 단편이나 단문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또 다른 즐거움이 생겼습니다. 류언씨의 기담(奇譚)도 연재되고 있었고요.

헌데 어느 순간부터 환상소설과 연애소설이 늘어났습니다. 생각해 보건데 이는 공사측의 불법 막장 게시판 폐쇄도 한 몫 했을 겁니다. 글을 쓸 자리가 없는 글쟁이들은 떠돌고 떠돌다 깽깽이처럼 책마을에 안착했고, 눈치를 보면서 글을 썼습니다. ‘이런 글 올려도 될까요?’ 하고 걱정도 했죠. 깽깽이는 그런 예비 작가들에게 철퇴를 휘둘렀습니다. 장르소설에 대한 잡담이나, 한계 등을 조잘거리며 으흐흐. 한 번 써보시라. 물어뜯어 드릴 테니. 하고 그르렁 거립니다. 역시나 염려대로 현재까지 꾸준한 모습을 보이는 장르소설은 몇 되질 않습니다.

환상문학 평론가(라 읽고 그지 깽깽이라 해석합니다)의 입장에서 본 일련의 텍스트들의 퀄리티는 현저히 떨어집니다. 환상을 환상으로 진지하게 대하고, 자신의 글에 애착을 갖고 글을 쓰는 예비 작가들은 책마을에서 찾기 힘듭니다. 이는 연애소설도 마찬가지죠. 책임감도 없고 퀄리티도 좋질 않으니 무시무시한 맹수들이 배회하는 책마을의 정글에서 살아남기는 무척이나 어렵죠. 글쟁이들은 도망간 마누라마냥 싸질러놓고 도망칩니다.

영목씨의 머신즈 그린웨이나, 종대씨의 싱잉 인 더 레인처럼 책임감이나, 견고한 설정이 바탕이 되질 못한다는 거죠. 거기다 꾸준함도 없고요. 애착도 없습니다. 애착이 없는 글에 소설이라는 이름을 붙여 줄 평론가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작가는커녕 예비 작가 타이틀도 달아주기 아깝습니다. 그러나, 텍스트는 책임 없이 생산되고 게시됩니다. 다양성이란 이름아래 책마을은 모든 것을 포용하지만.

다른 어둠의 성소들의 경우 대다수가 현재는 폐쇄되었습니다. 공사의 탄압정책 때문에 글쟁이들이 설 곳이 사라졌습니다. 어쩌면 책마을이 마지막 남은 보루일지도 모르겠군요. 근지대 동아리들의 경우 각각의 전문성을 갖고 있습니다. 싸커매니아는 축구와 기타 스포츠, 인다큐알은 흑인음악 및 락, 웹스는 컴퓨터, 책마을은 위에서 추측했듯 인문학과 도서를 바탕으로 하죠. 근지대 동아리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스스로의 정화작용과, 자원봉사자나 다름없는 관리자들의 노력, 동아리 회원들 모두의 절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에 누군가 디씨와 같은 개막장이 그립다 말했을 때, 주민들 대다수가 흠칫하고 놀랐습니다. 사실 여기저기 거침없이 싸지르고 싶은 욕구는 누구에게나 다 존재할 겁니다. 전역한 괴수들이 책마을에 초성체 한 번 써보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회상할 정도로요. 법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규제를 어기는 데서 오는 일탈의 쾌감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크죠.

비록 연재게시판이 분리되어 더 많은 텍스트를 수용할 수 있도록 책마을이 변화하고 있지만, 글쟁이들은 그 변화에 대한 예우를 갖추고 있지 못합니다. 글쟁이로서 가져야 할 책임감, 텍스트를 게시함에서 오는 독자와의 연재약속, 생산된 텍스트에 대해 텍스트의 생산자 즉 부모로서 가져야 할 예의까지도. 이는 확장시키면 성인이 가져야 할 책임의식을 바탕으로 한다고 할 수도 있겠군요. 책임의식이 없다면, 더 이상 책마을은 살아남지 못할 겁니다.

3. 그런데, 무슨 책임?

책임 책임 운운하면서 그럼 대체 우리가 무엇에 대해 책임을 지고, 책임의식을 가져야 하는가. 자. 모두 양심에 손을 얹고 생각해봅시다. 책마을에서 즐거움과 지식을 얻어간 적이 단 한번도 없는 주민이 있을까요. 눈팅족에서부터 댓글쟁이, 글쟁이들까지 주민 모두는 책마을에서 다양한 종류의 지적유희(知的遊戱)를 얻어갑니다. 일찍이 병훈씨는 글에 대한 저작권을 요구했습니다. 주민들 모두는 책마을의 텍스트를 통해 무언의 재화를 획득했습니다. 이 재화는 땅에 떨어진 동전일 수도 있고, 앞으로의 인생에 좌표를 잡아줄 나침반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선배들과, 지금의 우리들은 주옥같은 글을 쓰면서 공공의 재화를 생산했습니다.

깽깽이가 손가락을 놀리는 것 역시, 공공의 재화를 얻은 것에 대한 보답입니다. 획득한 재화에 대해 값을 지불할 사람들은 모두 공사를 떠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들 역시 어떠한 대가를 바라고 손가락을 놀린 것은 아니겠죠. 때문에, 깽깽이는 무형의 재화에 대하여 다시금 공공의 재화를 생산하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부족한 솜씨나마 손가락을 놀리고, 지금의 주민들이 즐거울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이는 선배들이 깽깽이에게 주고 간 가치에 대해, 깽깽이도 그 가치를 물려주어야 한다는 책임을 느낀 덕분입니다.

선배들은 분명히 지금의 우리가 그랬듯 수많은 음모론을 제기하고, 위기론을 이야기하며, 예언전쟁을 벌이면서까지 책마을을 지켜왔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는 전통으로 이어져 책마을이 약간의 자정작용을 갖출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또한 자원봉사나 다름없는 관리자들을 애정이란 이름하에 끌어들이는데 한 몫을 거들었습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책마을은 몇 년의 세월을 버텨오고 있고, 상황이 변하지 않는 한 계속해서 물려지겠죠.

노블리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 이곳 책마을에는 이러한 책임의식을 느끼고, 공공의 재화를 생산하고 싶어도 스스로에게 부끄러워 손가락을 놀리지 못하는 주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글쟁이들은 이런 주민들의 슬픔을 대신해 손가락을 놀립니다. 조금이나마 많은 지식을 갖고 있고, 다양한 생각을 텍스트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기에 할 수 있는 일을 합니다.

또한 생산한, 생산되고 있는 텍스트의 생산자로 갖추어야할 미덕도 있습니다. 여건이 되는 한 지속적으로 텍스트를 생산하며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는 수준까지 글을 쓰는 것이겠죠. 더불어 텍스트가 더 나은 퀄리티를 가질 수 있도록 스스로를 갈고 닦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누구도 글쟁이들에게 텍스트의 생산을 요구하지 않았고, 질적향상을 부르짖지도 않았습니다. 글쟁이들은 어디까지나 스스로의 책임감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텍스트의 생산자로, 선배들의 지식과 사유를 통해 시간을 뛰어넘어 소통했기에, 무형의 재화를 얻거나 인생의 지표를 얻고, 자신에 대해 되돌아보는 계기를 주었기에 얻은 만큼 돌려주기 위하여 오늘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그럼 지금의 다양성을 외면해야하느냐? 이것은 절대 아닙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입니다. 더 오래, 더 많이 흐르기 위해서는 책마을이 다양한 장르와 다양한 소재를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야합니다. 그러나, 책마을은 어디까지나 마을일뿐입니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부분에서 책마을은 더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다양성을 갖춘 글쟁이들이 일정 이상의 책임의식을 갖고 있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그저 심심풀이 땅콩으로 쓴 텍스트를 아무런 책임 없이 던져놓고, 연재를 시작해놓고 도망가 버리는 것은 독자들에 대한 예의도, 생산된 텍스트 자체에 대한 예의도 갖추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주민으로서, 책마을의 공공재화를 얻어간 사람으로서 가져야할 책임이 있습니다.

누구도 그 책임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동석씨도, 깽깽이도, 집에 간 괴수들도 ‘이렇게 하시오’라는 행동방향을 설정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눈을 부라리고 이모티콘과 초성체를 뒤지고 있을 동석씨도 스스로 부여한 책임감으로 움직입니다. 끝없이 텍스트를 생산하는 깽깽이도 깽깽이의 글을 기다리는 이들과, 생산된 텍스트와, 집에 간 괴물들에 대한 예우로 손가락을 놀리고 있습니다.

예우는 우리에게 소통의 장을 마련해주고, 희망과 가능성을 열어준 선배들에게 대한 예우이기도 합니다. 또 지금 현재 책마을에 상주하는 모든 주민들에게 대한 예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책마을에 입주하게 될 예비주민들에 대한 예우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선배들이 그랬듯, 이 장소를 고스란히 후배들에게 물려줄 책임이 있습니다. 텍스트를 생산하는, 재화를 얻어간, 심심함을 해결한 깽깽이도 가져야할 가장 큰 책임입니다.

이곳을 있는 그대로 후배들에게 물려줄 것.

그 모든 책임보다도 이 책임이 가장 중요합니다. 무사히 책마을이 보존되려면, 우리 스스로에게 책임의식을 부여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책마을은 더 나은 모습으로, 더 다양한 색깔로 빛나겠죠.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군에서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었던 마음의 고향이 되어줄 겁니다.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지켜야겠죠.
* 책마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9-01-26 13:44)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8:27:02 

 

일병 김태경 
  연재하려면 가장 기본적인 [얼개]를 작성해야 하지만 지금 그마저도 안하는 연재물들이 올라오는 것 같아요. [얼개]라는 룰만 지킨다 하더라도 훨씬 나아질텐데...뭐 물론 이게 이상적이거나 완벽한 방법이 되지 않겠지만 말이죠. 자꾸 규칙이 늘어나는 것도 찬성하는 쪽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선은 필요하다고 봐요. 2009-01-11
15:40:57
  

 

병장 김민규 
  간만에 친절합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굳이 부연하고 설명해서라도 납득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져요. 심정적으로나 이성적으로나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문제는, 

이 글마저 묻히고 현상은 바뀌지 않았을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파시스트 폭력주의자가 되어야 하는 걸까요? 

막상 기다리게 되는 건 같은 논지의 동조가 아니라, 정 반대 입장의 '이야기' 인데, 자기 이야기를 풀어 줄 사람들은 없고, 같은 말만 반복하게되는건 허무하잖아요. 내일이 되어야 하는건가요? 

아, 답답합니다. 2009-01-11
18:05:13
  

 

상병 김무준 
  아이 참 별 말씀을. 심심해서 이러고 노는 거에요. 변하지 않으면요? 뭐 알아서 되겠죠. 책마을이니까요. 그렇다고 우리가 반대파를 만들어 지지고 볶고 노는 건 너무 유치해서 싫습니다. 책마을을 해방시켜라 우워우워 이동슥은 물러나라 우워우워 우리는 폭력적 파시스트다 우워우워 하면 촛불 켜놓고 전경들 후드려 패는 우리네 아버지들과 뭐가 달라지나요. 2009-01-11
18:11:22
  

 

병장 김민규 
  왜 토론이 감정싸움으로 번지는지 이해할 법도 하군요. 2009-01-11
20:08:23
  

 

병장 이동석 
  흐흐, 무준님 댓글이 압권이로군요. 2009-01-11
21:51:46
 

 

상병 이동열 
  이 텍스트로 인해 지금까지 제가 가지고 있던 무준님에 대한 선입견이 허물어지는 것같군요- 뭐 물론 저만의 착각이겠지만서도(땀) 민규님 말씀대로 친절합니다- 이런 느낌 처음이예요(도망) 2009-01-12
08:22:49
  

 

병장 정병훈 
  변했다니까, 이사람 도망가서 참. 2009-01-12
09:45:08
  

 

병장 이동석 
  병훈/ 도망간거 아니고, 폐관수련하는겁니다. 그리고 병훈씨가 그런말 하면 뭔가 닭살돋지 않나요? 2009-01-12
21:11:25
 

 

병장 정병훈 
  동석/ 닭살이 왜 돋습니까? 못할 말 한것도 아니고, 저랑 김무준씨랑 무슨 사이도 아니고 싸운것도 아닌데. [변했다니까, 이사람 도망가서 참.] 이게 이동석씨에게 닭살 돋는 얘긴가요? 2009-01-12
22:21:18
  

 

일병 김유현 
  노블리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 이곳 책마을에는 이러한 책임의식을 느끼고, 공공의 재화를 생산하고 싶어도 스스로에게 부끄러워 손가락을 놀리지 못하는 주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글쟁이들은 이런 주민들의 슬픔을 대신해 손가락을 놀립니다. 조금이나마 많은 지식을 갖고 있고, 다양한 생각을 텍스트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기에 할 수 있는 일을 합니다....라니, 아프네요. 

그래요, 책임을 져야겠네요. 

와하하. 2009-01-28
04:4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