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베스트-내글내생각] 벗(友)론 - 너와 나의 진정한 만남을 위하여.
병장 정병훈 2009-01-18 00:18:22, 조회: 266, 추천:1
* 벗(友)론 - 너와 나의 진정한 만남을 위하여. *
어릴 적 나는 시골에서 도시로 전학을 오게 되었다. 산과 들과 강을 버리고 아스팔트길이 만연한 도심의 한 복판에 살게 된 것은 나에게 꽤나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 한 번의 이사로 인해 나의 일상은 완전하게 뒤틀렸다. 내 행동 반경, 내가 살던 옛 집 그리고 나의 친구들. 모든 것이 새롭다. 동네부터 사람들 까지.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며, 어떤 생각으로 지금의 상황을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인가.
시골에서의 나는 발육상태가 좋아 남들보다 키가 컸다. 몸집도 좋아 아이들 사이에서 '짱'이라는 칭호를 들으며 학교를 주름잡았던 기억이 있다. 내 친구들은 무조건 내가 지켜 줬다. 그게 누구 던 내 친구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것들을 나는 응징했다. 나의 의리는 무조건 적인 것이었다. 내가 여기 있고, 네가 거기 있는 것. 그것만이 전부였다. 더 이상의 조건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네가 키가 작다고, 너희 집이 가난하다고, 네가 못생겼다고 나와 네가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계산적인 결과는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나와 너의 문제, 나는 네가 필요하고 너는 내가 필요하다면 우린 우정이라 불리는 마음을 나누며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사귄 친구가 제법 있다. 유치원을 다니며 친하게 지낸 친구1. 우리 집과 가까운 거리에서 위치한 가게 집 친구2. 할머니 집과 가까이 있으며 유치원을 가치 다녔고, 나와 좋은 감정을 가졌던 여자친구3. 엄마의 친구의 딸이자 같은 유치원을 다녔던 여자친구4. 형 친구의 동생이었던 어떤 가게 집 친구5. 동네 골목대장이었던 친구 같던 형6.
그러나 나는 먼 이사를 오면서 그들과 연락을 나눌 방법을 알 수 없었다. 부모님도 '작별인사'라는 이름으로 그들과의 관계를 매듭지으라고 했다. 그 말 외엔 어떠한 방법도 일러주지 않았다. 내가 그들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그들이 나에게 찾아 올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단 한 가지도 언급하지 않았다. 내가 그들의 집 번호, 혹은 집 주소를 적어 연락을 하면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내가 떠나갈 공간에 대한 전화번호를, 주소지를 알려주면 우린-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너와 내가 함께 마주보며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부모님은 알려주지 않았다.
그렇게 올라온 도심 속에서 나는 다시 시작했다.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아이들 속에, 1년이라는 그들만의 시간 속에 내가 그들의 깊은 자리를 뚫고 들어가기란 쉽지 않았다. 강원도사투리와, 지저분한 나의 모습들은 그들에게 놀림감이 되기 일쑤 였고, 나의 진심은 통할 수, 통할 기회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먼저 다가오는 아이들은 없었고 내가 먼저 다가간들 그들이 나와 마음을 나누려 하지 않았다.
그건 공간적인 이유(시골과 도시)때문이기도 했으며, 경제적인, 사회적인 문제까지 이유가 되었다. 시골에서 올라온 시골 촌뜨기와 함께 논다는 것은 그들 사회에서 하층 계급으로의 몰락을 의미했다. 그 어린 아이들 속에도 정치는 존재 했고 지역감정은 존재했다. 그것이 작은 모습의 편 가르기라 부르지만 작은 그들에겐 어른들의 그것과 같은 것이었다. 같은 학원을 다니는 것으로 'OO파', 같은 유치원을 나온 것으로 'OO파', 학교의 임원, 같은 운동을 하는, 나 뿐 아니, 그들 사이에서도 자기들끼리의 싸움이 치열 한데 내가 그 공간 속으로 들어가긴 쉽지 않았다. 그것이 초등학교 2학년부터 6학년 사이의 나이인데 말이다.
친구라 불리는 명사 아래 우리의 관계는 허울뿐이었다. 나의 마음은 이미 식을 대로 식어 있었고, 더 이상 그들을 내 마음 속에 담아 둘 만큼의 공간이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그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갈 때 그들도 진심으로 보였다. 그러나 결국 그 모든 것들은 내게 상처로 돌아 왔고, 나는 더욱 작아 졌다.
자라면서 나는 '내가 남의 사람이 되거나, 남이 나의 사람이 되거나.', '나에게 잘 해주는 사람에게 잘 해줄 것인가, 나에게 잘 하지 않는 사람에게 잘 해줄 것인가.'를 놓고 고민한다.
어린 시절 너와 나의 관계가 아닌, 네가 가진 것과 내가 가진 것의 관계가 되어버렸다. 너의 지식이 나의 지식에 미치지 못한다면 너와 나의 관계는 이뤄질 수 없다. 너의 재산이, 너의 학벌이, 너의 외모가 나에 미치지 못한다면, 네가 나에게 이롭지 못하다면 너와 나의 관계는 이뤄 질 수 없다. 너와 나의 관계는 우정이라 불리는 것이 아닌, 지극히 계산적인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그러므로 너와 나는 친구라 부르른 것이 아닌 가게 주인과 손님과 같은 관계 속에서 존재했다. 이 존재 속에서 나와 너는 우리가 될 수 있을까. 언젠가 내가 바라는 것을 잃은 너는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존재가 될 것이고, 너도 나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존재 속에서 나를 네게 의지하고 네가 나를 의지할 수 있을까. 우리는 거짓 속에서 존재를 확인 하는 것. 결국 나는 네게 상처 받고, 너는 내게 상처 받을 존재로 서로에게 존재한다.
그 존재만으로 나는 슬프다. 내가 너를 믿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해, 네가 나를 믿지 않는 것에 대해. 내가 힘들 때 내 곁에 있어 줄 사람이 손가락 안에 들어온다는 것에, 나의 진심이 통하지 않는 다는 것이, 이미 나의 진심을 잃은 것 같은 마음이, 이젠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네 모습에 나는 슬프다. 이 눈물을 닦아 줄 사람이 없는 것이, 나의 슬픔을 나눌 사람이 없는 것이. 그 자체로 슬프다. 슬픔이 슬픔을 부른다.
'내가 남의 사람이 되거나, 남이 나의 사람이 되거나.'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 해석 속에서 나는 허우적거린다. 내가 남의 사람이 되면 남이 힘들 때 난 달려 갈 것이다. 그러나 내가 힘들 땐 그가 달려올까? 그가 나의 사람이 되면 내가 힘들 땐 그가 달려오겠지만, 내가 과연 달려갈까. 이 어긋난 존재함 속에서 나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한다. 이미 나는 너를 믿지 못하고 너도 나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나에게 잘 해주는 사람에게 잘 해줄 것인가, 나에게 잘 하지 않는 사람에게 잘 해줄 것인가.'의 차이는 무엇인가. 나에게 잘 해주는 사람에게 잘해 줘봤자 결국 나에게 잘 해줄 텐데. 그 시간에 나에게 잘 해주지 않는 사람에게 좀 더 신경 쓰는 게 좋은 편이 아닐까? 나에게 잘 해주지 않는 사람까지 신경 쓸 필요가 있나, 나에게 잘 해주는 사람에게 신경 쓸 시간조차 부족한데. 이 어긋난 상황 속에서 입을 열 수 없다.
내게 나와 너의 관계는 그런 식이였다. 내가 굳이 너와의 관계를 선택해야 하는 것인가. 나의 진심만으로 너와의 진정한 벗(友)의 관계를 맺을 순 없는 것인가. 우리가 인간이라는 나약한 존재라는 자기합리화를 내새워 진정한 벗(友)의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얘기해야 하는 것인가.
나는 항상 이 논란 속에서 힘들어 한다. 내가 가진 너와의 관계는 그런 것이 아닌데, 왜 너와의 관계는 항상 그런 쪽으로 돌아가는 것인가. 그것이 나의 문제인가, 너의 문제인가. 모든 것은 물음으로 시작해 결국 답을 찾지 못했다. 아니 못한다. 나의 마음이 진심이어도 너의 마음을 나는 믿을 수가 없기 때문에. 내가 힘들지 않은 이상 너의 진심을 확인 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결국 너를 믿지 못하고 그런 날 너는 믿지 못했다.
나는 너와의 진정한 만남을 원한다. 이 공간에서도 나는 너와의 진정한 만남을 원한다. 그러나 결국 이 공간 속에서의 만남은 한계가 있고, 진정으로 원해도 결국 우린 서로를 믿지 못한다. 특히 온라인상의 만남은 너와 내게 상처를 주기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너를 더욱 믿지 못한다.
2009년 너와 나는 만났다.
2009년 나는 너를 믿기로 했다. 네가 가진 그 모든 것을 그대로 사랑하기로 했다. 그것만이 너와 나의 관계를 우정이란 울타리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건 답이 아니고 진리이다. 너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였다. 이 모든 문제를 버리고 내가 네게 마음을 열었을 때 나는 느꼈다. 네가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모든 걱정과 기우(杞憂)는 안개 거치듯 사라졌다. 모든 물음은 진리 속에서 답을 찾았다.
네가 나를 믿지 않아도 나는 너를 믿을 것이다. 그 상처가 내게 대못으로 돌아와 박힐 지라도 나는 너를 믿을 것이다. 믿을 수 있을 동안 너를 믿을 것이다. 믿지 못하는 슬픔을 느끼기 전까지 나는 널 끝까지 믿을 것이다. 그래도 네가 날 믿지 못하면, 그때 나는 네 곁을 떠날 것이다. 그것이 나의 벗(友)론이다.
모든 사회적 관계 속에서 벗어나 단 하나 믿음만을 목적으로 너와 나의 관계를 바란다.
[이제 나를 믿고 내게 다가올래?]
저는 준비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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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1
15:19:26
병장 김민규
점점 경제적인 관계의 태도를 이루어 가는 것 같아요. 대학 친구들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이 그런 것일까요. 아마도, 갑자기 관계의 반경이 넓어지면서 그 모두를 커버하기에는 벅찬 우리의 좁은 속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게다가
상대방은 이만큼만 하고 있는데, 내가 더 많이 뻗으면 나를 값싸게 보지는 않을까 하는, 무슨 연애담론에서의 밀고 당기기도 아니고 별 이상한 느낌이 적용되는 바람에, 바싹 다가가기에 벽을 느끼는 경우도 있죠. 이게 내가 상대방과 경쟁할 거리가 없는 관계이면 모르겠는데, 내가 상대방보다 낫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은 자존심에 휩싸여 있는 경우 더욱 그런 것 같아요. 후자야 당연히 유치한 것이지만, 전자 역시도 순수한 동기가 아닌, '너는 내 아래야'라는 인식을 바닥에 깔고 있는 것이라면 눈뜨고 못 봐줄 일이죠.
어디에 기대를 걸어 봐야 할까요. 믿음의 원천은 무엇일까요. 情인가요. 객관적으로 입증되지도 수치로 환산되지도 않는 그것에 우리를 걸고 저 협곡을 건너가기에는, 두려움이 앞서지 않나요. 서로가 공유하는 그 추억들에 걸어야 할까요. 오랜 친구들이 참 많아서 5년 이하는 어지간해서 축에 들지도 않는 저의 관계들이지만, 막상 시간이라는 것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어서, 길어질수록 쌓이지만 그만큼 소원해지기도 하더군요. 깊어지지만, 잊혀져 갑니다.
끊임없이 소통하고 갱신해가야 할 겁니다. 그 바탕에는 주파수를 맞추고 음색을 튜닝하는 이퀄라이징이 있어야겠지요. 양쪽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겠지만, 무익한 일만은 아닐 겁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스스로의 거울을 가질 수 있을테니까.
사실 글로 쓰고 싶었는데 너무 정신이 없어서 간략하게 리플로 대신할게요. 흑 2009-01-18
14:35:39
병장 이동석
생각해보니 전 인간관계를 논으로 치자면, 모내기 안하고 그냥 닥치는대로 씨를 뿌려서 크면 크는거고 말면 마는거고, 뭐 이런식이었군요. 농법으로 치면, 직파법인 모양입니다. 그리고 딱 너가 이만큼 했으니까 난 이만큼 한다, 뭐 이런걸 매우 싫어하긴 합니다만, 상대가 그렇다고 해서 집어치우자고 하는건 아닙니다. 화나 좀 내겠죠. 그리고 보니 전 인간을 별로 신뢰하지 않지만, 그래도 한번도 사람을 버려본적은 없습니다.
그냥 나의 인간관계는 어떠한가, 한 번 생각해봤습니다.
그래서 여자친구들은 친구들이 남아나질 않는지는 좀 생각해봐야겠군요. 아니지, 그리고 보면 씨만 뿌려놓고 한번 돌아보지도 않고 안 자랐다고 생각하는 제 문제겠죠. 2009-01-18
19:50:55
상병 김용준
허허. 결론은 제가 생각하는 바로 '믿음'이였군요?! 고.로! 병훈과 용준의 벗(友)론은 같다라고 봐야하나요? 푸하하하.
저는 '나에게 잘 해주는 사람에게 잘 해줄 것인가, 나에게 잘 하지 않는 사람에게 잘 해줄 것인가.'에서 갈등을 많이 했으며, 새로운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긍정적이고 활발한 저의 행동으로 저의 벗(友)들을 가슴 아프게 했던 기억이 남습니다. 하.지.만! 결국 저의 벗(友)들은 그런 저를 믿고 기다려 주었으며 이해해 주더군요. 그 때의 감동이란!!! 크흑-!흑흑.
아무튼 지금도 긍정적이고 활발한 넘이라서 그런지 새로운 사람들에게 계산하고 만나는게 아니라 그냥 다가가서 데이고 상처도 받지만 제 또 다른 벗(友)을 만나는 경우도 있더군요. 후후.
결론은 저의 단 한명의 벗(友)이라도 더 찾기위해 그 위험하고 힘든 인간관계의 사회에 제 몸을 던지렵니다. 이미 벗(友)들은 저를 믿고 이해해주니 걱정할 필요가 있나요? 훗.
하지만! 소홀히해서는 더 더욱 안되겠죠! 흐흐흐. 아무튼 저는 요래요?! 낄낄낄. 2009-01-18
23:54:51
병장 위대한
저의 벗들과의 사귐이 오래되어 기억이 나지 않는 다면 아마 저는 같은 취미를 가졌고 같은 꿈을 꾸고 있다는 이유로 친구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벗이 된 저는 정말 행운아 인 것 같습니다. 같은 꿈을 위해 달려가는 최고의 라이벌이자 친구인 셈이죠―
문득 요즘 최신 곡 중에 ‘슈퍼맨’ 이라는 노래 가사가 생각나네요. [짧은 전화한 통화에 언제나 바람처럼 달려와 -중략- 너는 나만의 슈퍼맨] 2009-01-26
14:02:10
병장 김민규
그립네요. 문득 이 때가. 2009-02-12
19:05:13
병장 정병훈
과거를 그리워 하되 미래를 갈망해야죠.
소녀시대가 부릅니다. '힘내!'
힘을 내 여기 까지 왔잖아,
이 지구가 살만한건, 'It's 민규'(가사가 정확히 생각이 나질 않는.) 2009-02-12
20:15:00
병장 김민규
하지만 힘을 내 이만큼 왔잖아. 이것쯤은 정말 별 것 아냐. 세상은 뒤집혔어.
모두 이해할 수 없는 것 뿐인 복잡한 이 지구가 재밌는 그 이유는 하나, 바로 너-
맞나? (땀) 2009-02-12
21:09:39
병장 김용준
병훈씨와 민규씨는 죽이 잘맞네요? 샘 나는데요? 흐흐. 2009-02-13
14:1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