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욱,『자본주의 역사강의』
병장 진규언 03-05 08:06 | HIT : 202
이 책을 들게 된건 두가지 이유에서 비롯된다. 우선 하나는 가까운 미래에 그저 어엿한 1명분의 사회과학도라 스스로를 칭하려면 '세계화' 속의 '자본주의'정도는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순수한 기대에서 촉발했고, 나머지 하나는 이곳 책마을의 누군가의 어떤 글을 통해 새로운 방식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리 많은걸 기대한 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기 보유한 지식의 양이 얼마 되지 않아,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고 내 것으로 만들거나 '내 것'과 융합시켜 새로운 지식을 만드는 것은 지나친 욕심임을 처음부터 알았기 때문이다.
세계체계분석 이라는 명칭
대략, 세계체계 분석이란 어떤 것인가부터 시작한다. 원어로는 World-system analysis 이라는 용어지만 우리말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세계체제'와 '세계체계'라는 두가지가 혼합되어 사용되고 있다. 이에 대하여 통일된 견해가 형성되어 있지 않지만 저자는 굳이 세계체계라고 번역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계연구자들은 레짐(regime)이라는 학술용어를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과 시스템(system)과 구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레짐이 내포하고 있는 함의를 깜냥껏 추론해보면, 대체적으로 정치적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정치적인 어떠한 체제를 설명하는 사례들이 많음에서 저자는 체계라는 낯선 용어임에도 일부러 사용했으리라 짐작한다. 아직도 말을 되뇌이며, 세계체제.. 세계체계.. 헷갈린다. 중요한 것은 아니다.
세계체계분석이 중요한 이유
간단히 말해 세계는 하나의 기준, 혹은 두어기준으로 나뉘어진 체계의 종합이 아니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것을 '요소론적 관점'이라 명명하고..(이 저자가 새로이 연구해내 발전시킨 개념은 아닐듯..) 이것을 넘어선 '관계론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하나의 나비효과를 설명하는 것이라면 지나친 단순화의 잘못을 저지르는 것일까. 상하이 나비의 날개짓이 뉴욕 다우존스 지수의 폭락을 가져오고, 베트남 하노이의 건설경기를 부양시킨다는 현실에서... 지극히 편협한 개념들로 세계를 설명하는 것은 심각한 어폐가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인종적 구분, 역사적 구분, 국내적 요인, 블럭으로 표상되는 지역경제구도.. 등과 같은 협의의 분석으로는 역사적 자본주의나, 현실 세계체계를 적절히 반영하기 부족하며.. 오히려 이것들을 총망라하여 이것과 저것과의 관계.. 다시 말해 한 요소와 다른 요소와의 정치,경제,역사,문화 등 모든 관계적 요소를 반영하여 분석해보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며칠전 벌어졌던 중국 증시의 폭락이 가져왔던... 미국, 유럽, 동아시아, 중동 증시의 폭락이 이에 대한 반증이라 여겨진다.. 관계론적 측면을 지나치게 경제적인 방식으로 이해하는 우를 범한 것이기도 하다..) 21세기의 특질이 아닌, 자본주의는 그 맹아(*주1)부터 세계체계적 특질을 확장시켜 나가는 과정이었다해도 과장이 아니다.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브로델의 삼층도식 설명 일부)
이 두 개념은 이 책을 읽은 후 가장 큰 소득이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뭔가 엇비슷하면서도 그것의 의의가 불분명하게 자리잡은 개념들이 '었다'. 다시 말해, 그놈이 그놈이겠거니... 했던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분명히 다른 것이었다. 시장경제는 투명하며 모든 정보가 공유되고 개방되기 때문에 누구도 이렇다할 규모의 이윤을 축적할 수 없는 그런 시장을 말한다. 누구도 이윤을 독점할 수 없고, 어느 규모 이상의 이윤을 축적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것에 들어간 모든 정보를 모든 정보의 이용자가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옛날 우리네 5일장에서 닭을 키운 사람과 쌀을 재배한 사람이 5일마다 만나 서로 가진 것을 교환하면 둘다 이익을 보는 것은 맞지만, 그 둘중 누군가도 돈을 버는 것은 아니다. 양계장 주인은 쌀 농가가 쌀을 가졌다는 정보를, 그리고 쌀 한가마니의 가치가 닭 몇마리라는 것을 다 알고 있기에(그 역도 성립한다) 어느 누구도 초과 이윤을 달성하지 못한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다르다. 그것은 반시장적인 독점인 것이다. 시장경제의 투명성 내지는 형평성의 논리를 누르고 경쟁을 배제할 수 있을때에 즉, 독점이 가능할때에만 비로소 자본주의가 나타난다. 레닌은 "독점은 자유경쟁의 상부구조이며,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이다"라고 말한다. 독점 아닌 자본주의와 독점자본주의가 역사적으로 따로 나타났던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독점이었다는 이야기이다. 독점이 아니면 자본주의가 불가능한데, 왜냐하면 이윤이 축적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역사를 활용해보면(*주2), 개발시대에 우리 정부는 1개 기업에 한 산업군을 몰아주는 정책을 시행하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현대-자동차, 삼성-반도체.. 내지는 현대-중공업, LG-생활가전.. 을 들 수 있으며, 이것을 역행했던 사례들이 현대가 삼성을 따라잡으려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고, 삼성이 현대의 아성을 무너뜨리려 자동차 사업을 시작했던 예라 볼 수 있다.(전자는 성공된 사례로 기억되며, 후자는.. 현재 최대의 소송거리로 진행되고 있기에 평가를 생략한다.).. 역행했다는 것은 '자본주의'를 역행했다는 것이 아니라, 독점을 '과점자본주의'정도로 나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말한다. 그래도,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이다.
자본주의의 역사
책 제목이 그러하니 만큼, 이 책은 충실하게 자본주의의 역사를 조명한다. 그 탄생과 기원 발전과정을 모두 포함하여 세계적인 권위자인 브로델, 칼 폴라니.. 윌러스틴, 아리기의 이론을 소개하며 그 공통점과 차이점을 아우른다. 윌러스틴의 그것에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하며, 아리기가 지적한 헤게모니의 순환과정에서 자본주의를 비추어 본 것 또한 비중있게 다룬다.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내지는 '자본주의의 기원'을 알기에 세계적인 석학들의 이론들을 차용하고 융합함으로써 독자들의 이해를 도운 저자의 노력에 높은 점수를 준다. 가까운 미래에 경제학을 포함한 전공의 언저리를 배회할 것이 뻔한 나이기에... '거시경제'를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하여 자본주의의 역사를 알아보고자 하는 때묻은 욕심이, 책 한권을 통해 충족되는걸 바라는 것도 또 다른 욕심이다. 그러나, 이것이 시작임을 알기에 참 좋은 선택을 했노라고 자부한다.
신자유주의, 동아시아.. 그리고 노동
후반부는 전반부보다 저자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커진다.(그렇다고 전반부가 저자의 의도가 결여된 단순히 이론의 소개라는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의 금융세계화를 비판하는 뚜렷한 논지가 보이며, 금융화의 휘발성과 핫머니(혹은 헤지머니)의 위험성을 경고하려는 의도또한 확실하다. 이러한 저자의 노력만으로 무지한 내가 신자유주의, 새고전학파의 이론을 피상적으로 파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욕구가 불끈불끈 솟아오른다. 토머스.L.프리드먼의 "렉서스와 올리브나부", "세계는 평평하다"에서 프리드먼이 처음부터 끝까지 주창한 내용인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며, 정부와 개인의 선택만이 남았다.' 의 철저한 반대되는 주장이라 여겨진다. 더 나은 세계화는 가능하다.(*주3) 라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논지이다. 동아시아에 주목하여 볼 때에는, 동아시아에.. 우리의 조국이 존재하지 않는다는것에도 분개하며.. 중국,일본 아니면 동남아시아 만이 부각될 따름이다.. 우리가 나아갈 길은 어떠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 또한 그로인해 촉발되었다. 한미FTA에 대한 부분은 참 많이 아쉽다. 반대하는 목소리는 분명한데, 그 근거가 상당히 미흡하다. 내가 이미 신자유주의의 볼모가 되어버린 편협한 사고방식을 지녔기 때문인가, 혹은 저자가 이 부분에 치중하기에는 너무 협소한 주제였는가. 둘다 일지도 모른다. 노동에 대한 새로운 시야 또한 넓혀졌다. 자본주의 내 노동의 역사를 기술해보기에는 아는바가 너무 적어 다음으로 미룬다.
후기를 끝맺으며...
훌륭한 책을 후기라는 글 하나로 요약하기에는 쉬운 일이 아니다. 글과, 저자와, 독자의 삼중융합의 과정이 '독서행위'라고 생각하는 이상 그 융합의 과정을 글로 표현하는 것 또한 어지간한 마음가짐으로는 공해만을 양산해낼 뿐이다. 그래도, 내가 학생이라 다행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학생도 아니고 학생의 씨앗을 내포한 씨앗인 군인인 것이 다행이다. 사회인이라면 뚜렷한 목소리를 내야한다. 혹은 행동을 하여야 한다. 그것이 사회인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생은 아니다. 다만 문제제기만을 한다 하여도 그는 이미 충분하다. 학생은 불완전하기에(독자가 학생일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문제제기에 그친다 하더라도, 타인에게 생각을 촉발시키는 기제가 될 수도 있고 이것 자체가 학생의 행동에 의의를 부여하는 것이다. 하물며 군인인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학생의 행위 그것에 비할수도 없는 미천한 행위, 미천한 생각만을 하더라도 현 신분이라는 것때문에 청춘의 알리바이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학생이 되기까지도 일종의 유예기간을 갖고 있으며, 사회인이 되기까지에도 꽤나 많은 유예기간을 가지고 있다는것에 무한한 행복감을 느낀다.
생각해볼 점
과연 자본주의는 진보인가 ? 다시말해, 역사적 자본주의의 진보과정이 나아감의 과정이었는가... 유럽,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에게만 통용되는 논리는 아니었을까. 누구를 위한, 누구에 의한 그것이었는가. 제 3세계에도 그것이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열역학 제 2법칙(엔트로피 법칙)에 따라 우리가 진보라고 믿었던 것이, 사실 질서의 파괴 내지는 혼돈과 혼란의 증폭으로 귀결될수도 있음을 우리는 알았다. 동일한 방식으로 자본주의의 세계적인 전파가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흘러왔던 것은 아닐까. 이에 우리의 자세는 어찌해야 하는가.
* 주1 : 윌러스틴은 자본주의의 기원이 농업자본주의의 시작이었던 16세기라고 말한다. 그는 이 이유를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언급했듯이 농업 내부의 분화에 의하여 발생했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리기는 상업자본주의(혹은 금융자본주의)의 시작이었던 이탈리아 제노바,베네치아와 북부유럽의 자본주의가 만나는 13세기를 자본주의의 맹아라고 파악한다. 자본주의 내의 순환의 논지를 강조하는 윌러스틴과 혁신의 동학을 통해 자본주의 역사 내에서의 변천을 분석하려는 아리기의 입장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중국(현 중화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아닌 역사적 범중국)의 자본주의 시작을 조명해보았어도 참 좋았을것 같다.
** 주2 : 이러한 자본주의의 논리는 우리 역사보다는, 서구 유럽이나 미국의 역사에서 더 뚜렷하게 보여진다. 그들의 산업이 아직 온전치 못할 시기에는, 보호주의를 강력히 주창하며 자국의 산업이 세계화에 적절한 수준의 규모와 시스템을 가질 수 있도록 보장하고(미국의 슈퍼301조, 과거 영국과 프랑스의 중상주의등), 그것이 정착될 시기에는 전 세계적 개방과 자유화의 물결을 선동하여 다국적 기업이 제 3세계에 빠르게 침투할 수 있도록 장려한다. 이것이 심각한 모순이다. 과거 개발독재시대에 독점적 지위를 기 획득하여, 세계적 경쟁력을 지니게 된 우리나라의 대기업 군들이 '세계화'를 옹호하고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이유는, 미 개척지역에 대한 개방과 진출이 가지는 독점적 이윤창출의 능력을 극대화 하는 것이 그들이 나아갈 길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 주3 : 스위스의 휴양지 다보스에서 매년초 벌어지는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의 집합체 세계경제포럼(WEF)에 대비되어, 2001년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라는 구호아래 열린 세계사회포럼을 기점으로 대안세계화를 향한 모색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것은 브라질의 포르투알레그레에서 개최되며, 세계사회포럼(WSF)이라한다.
더 읽어볼 글 : 509번글 병장 강세희 독서후기 '윌러스틴의 세계체제 분석_미국의 세기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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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병 김지민
빡쎄네요. 저는 참 무식한 놈 인것 같습니다. 허허.
접할 때 마다 생각하지만, 사회과학이란 참 빡센 학문인 것 같아요.
치열한 숨이 느껴지는 후기였습니다. 솔직히 이해가 안되서 잘은 읽지 못했지만요. 히 03-05
상병 김재영
더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은 책 - 한미 FTA 이미 실패한 미래, 사회진보연대 03-05
상병 진규언
지민 / 요새... 퍽이나 유명한 작가인 까뮈가 쓴 '시지프 신화'를 읽고 있는데.. 이걸 보면서 느끼는 것은, 까뮈에 대해 논하고, 철학이나 인문에 대해 논하기 보다... 차라리 다시 돌아갈 학교에서 배울 저의 세속적인 전공이 쉽겠구나 하는 생각이에요. 하루에 30페이지 조차 씹어 먹기가 버거워요... 뭐 비슷한 생각으로 지민씨의 머리속에서 퉤퉤 뱉어나는 글들이, 그리고 가고자 하는 길이 더 어렵고 멀고 험하게만 느껴지는건 저뿐일까요(웃음)
재영 / 감사합니다. 월말에 잠시 서점에 들러 찾아봐야겠어요.. 그나저나 이제 8차 협상인가요.. 7차인가. 03-05
병장 강세희
제가 피쳐링을 했군요. 하핫. 책 만큼이나 알차고 친절한 글 잘 읽었습니다. 03-06
상병 김지민
피처링이라니 크하하 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