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췌언] 큐레이터는 무엇으로 사는가?  

상병 김형태  [Homepage]  2009-03-18 11:52:26, 조회: 206, 추천:0 

  하랄트 제만(Harald Szeemann)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귀를 통해 본다”라고 했다. 이는 안타까운 일이다. 미술 애호가들이 남의 말이나 작품 설명에 의존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작품을 이해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를 통해 보지” 않고서 이러한 목표에 도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지금 여기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예술과 예술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그들은 예술을 가장 사랑하지만 한계 또한 잘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자 그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일 것이다)에 대해서 제대로 모르고 있을 것이다. 이런 현재의 불완전한 이해를 극복하기 위해 그리고 서로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말을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당신은 그것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즉, 이 책을 잘 이해하기 위해 당신은 이제 귀를 통해 보아야 한다. 캐롤리아 테아(Carolee Thea)가 인터뷰한 큐레이더들의 말을 통해, 당신은 그들이 좋아하는 미술, 또 그 미술에 대한 그들의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기획했던 전시에서 무언가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제만의 말을 뒤집어 다시 “눈을 통해 들어야만”한다. 이 책을 읽는데 이보다더 좋은 방법은 없다. 인쇄된 활자 뒤에 숨어 있는 목소리를 상상하면서 책을 읽어야 하는 경우는 특히 그렇다. 말하는 목소리 속에 숨겨진 화자의 태도, 그리고 들리지 않는 또다른 목소리, 이 모두가 말하는 목소리의 미묘한 떨림속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예술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생각을 정당화시켜주는 느낌일 것이다.
  큐레이터란 무엇인가? 큐레이터는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앞으로 이 책 속에서 발견할 수 있을 테니 미리 서두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는 큐레이터는 아니다. 하지만 비평가로서 거리를 두고 때때로 그들을 관찰하기에, 아웃사이더로서 나의 관점은 여기서 유용한 참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큐레이터는 사물들을, 때로는 사람들을 함께 불러모으는 사람들로 여겨진다. 작품 간에 서로 양립하는 것뿐 아니라 대립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사려 깊게 고려하는 큐레이터는, 어떤 면에서는 컬렉터 같은 면도 지니고 있다. 어떤 작품들이 서로 어울리는가? 작품들 간의 차이에 의해 형성되는 공간은 무엇인가? 미술이론가인 티에리 드 뒤브(Thierry de Duve)는 한때 이런 고민을 한 적이 있다. “「예술가의 똥」이 담긴 만조니Manzoni의 깡통을 보나르(Bonnard)의「욕조 속의 누드」와 같은 미술관에 넣는 것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을까?”
  그러나 여전히 큐레이터와 컬렉터는 다르다. 그 이유가 큐레이터들이 만들어내는 전시가 단지 일시적으로만 존재해서는 아니다. 어찌 되었건, 많은 큐레이터는 그들이 종사하는 기관의 소장품을 발전시키는 업무를 맡고 있으며, 이러한 소장품들은 개인적으로 수집한 것들보다 한층 더 오래 보존된다. 실제로 그 차이는 무관심성*¹ 같은 낡은 칸트적 사고 속에 있다. 컬렉터란 말 그대로 ‘자신의 취향을 증명하기 위해 돈을 거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큐레이터는 오직 관심 가는 것, 노력할 만한 것, 명성을 가져다 줄 만한 것에만 투자한다. 큐레이터가 보여주는 것은 자신이 소유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편 그의 ‘수집’은 자유롭고 실험적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이러한 무관심성의 이상은 큐레이터와 비평가 모두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비평가의 일’(이 말은 문학비평가인 블랙무어 (R P. Blackmur)의 말에서 따온 것이다)이란 자시의 관점에서 어떤 작품들이 예술로 간주될 수 있는지, 어느 정도까지 다양할 수 있는지를 표명하는 것이다. 큐레이터는 자신의 관점을 대중에게 표현한다는 점에서 비평가와 비슷하다. 비평가가 어떤 경향이나 관점을 표출하는 출판 분야에서 일한다면, 큐레이터는 유서 깊은 역사와 위상을 지닌 기관을 위해 일한다. 이런 점에서, 비평가나 큐레이터는 둘 다 공히자신의 관점과 공식적으로 부과되는 관점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물론 다른 점은 큐레이터가 주로 예술에 대한 이해를 작품들을 통해 드러낸다는 것이다. 큐레이터는 자신이 행한 것을 글로 쓰지만, 그 슬은 전시하기 위해 무엇을 선택했고, 어떻게 선정했는지와 같이 대체로 그 전시 자체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비평가의 글에서는 작가들의 작품이아무리 존중받더라도 결국 밋밋해지고 단지 도판 사진으로 움츠러들고 만다. 반면, 비평가의 말들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리고 그들의 작업은 때로 자신에게 영감을 준 예술보다 더 빛을 발한다(사람들은 콩스탕탱 기(Constantin Guys)를 기억하는데, 이는 단지 그가 보들레르(Baudelaire)의 글, 「모던한 삶 속의 화가(The Painter of Modern Life)」에 언급되었다는 이유 때문이다). “예술은 싫어도, 전시는 좋아하라?” 큐레이터의 노력이 실패했을 경우, 오로지이 말의 반대상황만이 가능해질 것이다.
  만약 비평가가 주로 언어를 다루고, 큐레이터가 주로 오브제를 다룬다는 점만이 둘 사이의 주요한 차이라면 결국 큐레이터와 작가는 별반 다를 것이 없지 않을까? 사실 큐레이터는 오브제를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뒤샹이나 뒤샹 이후의 수많은 작가가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던 것처럼 오늘날의 작가들 역시 반드시 오브제를 만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로렌스 바이너(Lawrence Weiner)도 말했듯이, 반드시 오브제로 만들 필요는 없다. 또는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Ulrich Obrist)가 언급했던 전시<두 잇-Do it>에서처럼 오브제는 그것이 전시될 장소에 있는 사람들의 ‘애드 리비텀(ad libitum)*²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으므로, 누구에 의해서든 만들어 질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누가 작가인가 하는 문제는 큐레이터와 컬렉터, 혹은 큐레이터와 비평가 사이의 구별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이 될 수도 있다. 어쩌면 자기 스스로를 ’작가‘로 부르거나 다른 사람이 그렇게 불러주어서 작가가 되는 상황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말미생략

*¹. 무관심성이라는 말은 ‘자기의 이익추구가 동기가 되지 않는’이라는 뜻으로, 18세기 중엽 처음 영국에서 쓰일 때는 윤리학적 의미로 쓰였으나, 그 뜻이 미(美)에 관한 논의 속에 도입되면서 근대 미학 성립에 중요한 구실을 하게 되었다. 무관심성은 칸트, 실러, 쇼펜하우어를 통해 발전하면서 미학이 철학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였다.
*². 음악에서 연주자가 원하는 바에 따라 자유롭게 마음껏 표현하라는 의미로, 첫째 기본적인 템포를 변화시키거나, 둘째 어떤 성부 혹은 악기의 파트를 덧붙이거나 생략하며, 셋째 연주자가 직접 만든 카덴차를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는 각 전시 장소에서 전시를 실현하는 관계자 혹은 참여자들에게 의해 작품이 실현되는 과정이 다양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오브리스트가 기획한<두 잇>은 작가의 작품 설치 지침서 또는 작품 실현을 위한 설명서의 지침에 따라 제삼자가 완성해낸 작품들을 전시함으로써, 인간의 해석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큐레이터는 세상을 어떻게 움직이는가-캐롤리 테아’ - 발췌

덧)
어제 도서관을 갔더니, 저 책이 ‘나좀 봐줘’라는 눈빛을 보내고 있더군요. 내용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책의 머리말입니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난해해서 이해하기위해 다섯번 정도 읽었습니다. ‘콩스탕탱 기’ 라든지 ‘보들레르’ 같은 또, 무관심성이라든지 하는 말들을 이 책을 접하면서 알게 되었네요. 더 이상 적었다간, 발췌언이 아닌 제글생각이 될 것 같군요.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10
10:09:59 

 

병장 김대운 
  조회수 0 . 찜콩 2009-03-18
11:53:58
  

 

병장 김민규 
  무관심성이라면 indifferent정도 되려나요. 이거 경제학적 용언데. 난해한 것이 평소 워낙 예술 특히나 미술적 지식이 미천한 관계로, 새로운 단어들이 많군요. 프린트해 보겠습니다. 2009-03-18
12:01:11
  

 

병장 김대운 
  '비평가나 큐레이터는 둘 다 공히자신의 관점과 공식적으로 부과되는 관점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왠지 멋있어 보여요. 그리고 오타발견. 크크 2009-03-18
12:11:34
  

 

상병 김형태 
  대운// 

흙, 제가 책보고 옮긴거라.. 오타 알려주시면 제가 수정할게요... 
민규// 
이제 책한권을 보려고해도, 전문 지식을 요구로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이책 저책 다 난해 해지네요... 조만간 미술이나 예술에 관련된 쉬운 글들을 많이 올릴까봐요.이게 그나마 제 전문분야인걸요. 많은 분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들이 아닐진 모르지만 말이죠-호 2009-03-18
13:15:56
  

 

상병 차종기 
  “「예술가의 똥」이 담긴 만조니Manzoni의 깡통을 보나르(Bonnard)의「욕조 속의 누드」와 같은 미술관에 넣는 것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을까?” 

이게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으엉 2009-03-18
14:19:02
  

 

상병 김형태 
  한오백번 생각해봤는데(거짓말이십배보태서) 미술이론가-티에리 드 뒤브의 견해라니까 뭐, 큐레이터들와 미술이론가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이 의도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