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췌언] 그림속으로 들어가고픈 욕망  

병장 김형태  [Homepage]  2009-04-19 15:47:16, 조회: 90, 추천:0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픈 욕망


1. 1999년 여름 베로나에서의 일이다. 친구 L이 베로나의 야외 오페라극장을 취재하러 왔을 때, 우리는 잠깐 틈을 내어 이 중세도시의 미술관을 들렀다. 내가 살고 있던 도시는 볼로냐로, 베로나와는 기차로 약 1시간 거리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전설로 유명하 이 조그만 도시에 무슨 걸작 미술품이 있을까마는 이탈리아의 거의 모든 도시는 그 도시의 독특한 미술관이 있으므로, 우리는 그냥 경치 구경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고궁 속의 미술관을 둘러보기로 했다. 언젠가부터, 어떤 도시를 가든 책방, 극장, 그리고 미술관은 나의 여정의 고정적인 공간이 됐다.
   예상대로 우리에겐 거의 무명인 화가들의 작품들이 연대기순으로 전시돼 있었다. 고궁이 너무 아름다워, 무명 작가들의 작품들이 한참 초라해 보일 정도였다.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이 압도적으로 많은 이곳에서 그나마 이름을 들어본 사람이 파올로 베로네제였다. 성姓인 베로네제는 '베로나 사람'이라는 뜻으로, 그의 이름은 예명이다. 원래 이름은 칼리아리인데, 큰 도시 베네치아에서 활동하며 아마도 자신을 쉽게 알리기 위해 고향의 지명을 이름으로 이용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고향인 베로나에 걸려있는 그림들은 그가 유명 화가가 되기 이전의 작품들로, 화집에도 잘 나오지 않는 초기작들인 셈이다.
   그리스의 신화가, 또 기독교의 역사가 녹색의 들과 푸른 하늘, 그리고 흰 구름 사이에서 펼쳐지고 있는 그림들이 태반이었다. 신화의 그림, 또는 종교화라기보다는 풍경화라고 분류하고 싶을 정도로 인물들 뒤의 배경이 말 그대로 '그림처럼' 아름다운 작품들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림 아에서 넋을 잃고 서 있었냐면 그렇지는 않았다. 순간의 인상만 느낀 채 건물 밖으로 나왔다. 이탈리아의 여름이 늘 그렇듯, 그때도 참 더웠다. 쨍쨍 내리쬐는 햇볕이 머리 위에서 이글대던 날이었다. L은 다음 취재지로 떠나고, 나는 혼자 볼로냐로 돌아왔다.
   베로네제의 그림을 본 이후 나의 미술에 대한 관심은 온통 풍경화로 집중됐다. 급기야 영화를 보다가도 풍경이 아름다운 작품들이 발견되면 보고 또 보고하는 습관이 생겼다. 대표적인 작품이 스탠리 규브릭의 <배리 린든>이다. 로코코풍의 살아거리는 키 큰 나무와 푸른 하늘의 풍경은 언제 봐도 압권이다. 큐브릭의 작품이 낮은 풍경화라면, 알렉산더 소쿠로프의 <여행 엘레지>는 밤의 풍경화 중 대표작이다. 그의 느리고 느린 카메라에 포착된 밤 풍경은 몽유화에 다름 아니다. 스크린 위의 어두운 이미지들은 시작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상상화에 가깝다. 그만큼 소쿠로프의 밤 풍경은 몽환적이다. 아마도 유령의 시선이 있다면 바로 저것이리라는 상상이 들 정도로 숭고미가 있다.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욕망은 그때 처음 느꼈다.
   나는 이런 식으로 '영화와 미술의 만남'을 목격하기 시작했다. 시각예술의 대표적인 두 장르는 곳곳에서 서로 뒤엉켜 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 영화 전공자로서 이런 말을 하기가 좀 주저되지만, 후발주자인 영화는 곳곳에서 미술의 아이디어를 다시 써먹고 있었다. 미술의 역사가 깊고, 또 영화의 역사도 만만치 않은 유럽의 영화들, 특히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영화들에서 그런 흔적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프랑스의 장-뤽 고다르, 에릭 로메르, 자크 리베트, 그리고 이탈리아의 루키노 비스콘티,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등은 그 중 가장 돋보이는 감독들이다.

<중략>

3. 中
   에이젠슈테인, 고다르 등 수많은 거장들이 새로운 형식을 선보였다. 우리 영화의 경우에도, 홍상수, 김기덕, 박찬욱 등이 해외에서 주목받는 이유도 내가 보기에는 새로운 형식,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남다른 형식'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부문에 대한 관심을 조금이라도 불러 일으켰다면 이 책이 큰 소임을 다 한 것이다. 나는, 형식이 내용을 결정한다'라고 감히 말한다.

<중략>

4. 中
   가장 먼저 소개하고픈 책은 필립 아리에스의 『죽음 앞의 인간』이다. 프랑스 역사학자가 쓴 죽음에 관한 일종의 형태학이다. 중세 이후부터 근대까지, 죽음의 형태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 계보를 풍부한 미술의 사례를 동원하여 설명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죽는다"는 첫 문장이 던진 당연하지만 충격적인 선언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탈리아의 몬다도리 출판사에서 번역되어 나온 책을 읽으며, 달빛이 유혹적인 이탈리아의 몽롱한 여름밤을 하얗게 건너갔던 시간들이 눈앞에 생생하다.
   볼로냐 대학교의 은사였으며 지금은 베네치아 대학교에서 '이탈리아 영화사'를 가르치고 있는 안토니오 코스타의 『영화와 시각예술(cinema e le arti visive, Einaudi .torino 2002)』은 미술이 영화에서 어떤 식으로 이용됐는지를 가르쳐주는 일종의 지도책이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영화와 미술 사이의 관계의 계보학을 정리할 수 있었다. 지금도 ‘영화와 미술’에 관련된 강의를 할 때면 코스타 교수의 분류법을 참고한다.
   로베르토 캄파리의 『아름다움의 유령(fantasma del bello, Marsilio .Venezia 1994)』은 미술로 바라본 일종의 이탈리아 영화 감독론이다. 파시즘 시절의 감독부터, 로베르토 로셀리니 등 네오리얼리즘의 감독들을 거쳐, 난니 모레티와 로베르토 베니니에 이르는 현대 감독들까지의 작품들을 오로지 미술적인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내가 연재물에서 이용했던 작가 분석, 작품 분석의 틀은 캄파리의 방법에서 빚진 바 크다.
   그리고 두 권의 감독론은 구체적인 작품 비평을 할 때, 어디서 그 실마리를 찾아야 하는지에 대해 지혜를 보여준 책들이다. 먼저 파졸리니의 모든 작품을 미술적인 인용과 관련해 설명한 알베르토 마르케지니의 『파졸리니 영화의 미술 인용(Citazioni pittoriche nel cinema di Pasolini, La nuova .Italia 1994)』이다. 마르케지니는 풍부한 미술적 교양으로, 역시 미술적 교양이 깊은 파졸리니의 영화 세계를 미술의 인용이라는 키워드를 들고, 즐겁게 여행한다. 파졸리니의 작품에 대한 명쾌한 해설은 물론이고, 르네상스 미술에 관한 폭 넓은 지식까지 담고 있다.
   또 다른 감독론은 라울 그리솔리아의 『시각의 변신:루이스 브뉘엘 작품 속의 영화와 미술(Le metamorfosi dello sguardo: cinema e pittera nei film di Luis Bunuel, Bianco & Nero .Roma 2002)』이다. 살바도르 달리의 친구이기도 한 브뉘엘이 평생을 통해 화가들의 아이디어를 어떻게 이용했는지를 다양한 도판을 이용하며 보여주고 있다. 고야, 피카소, 특히 초현실주의 작품들의 영화적 이용을 확인하고 싶으면 그리솔리아의 책이 효과적이다.
   나는 아리에스의 테마를 연재물에 이용했다. 나의 글을 주제별로 크게 나누면 ‘에로스와 타나토스’ 단 두 가지다. 거의 모든 영화가 에로스와 타나토스라는 관점에서 서술됐다. 사랑과 생명을 찬미한 글도 있고, 죽음과 어둠을 ‘어쩔 수 없이’ 바라보는 글도 있으며, 물론 이 두 개의 세상이 혼재된 것도 있다. 아리에스의 긴 설명을 참고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언어 습관에서 사랑의 절정에 “죽어도 좋아”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에로스와 타나토스’는 혼재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나는 이 둘의 관계에 계속 호기심을 갖고 바라봤다. 왜 그럴까? 왜 사랑의 절정에 우리는 죽음을 떠올릴까? 수많은 학자들이 이 문제에 고민했다. 대표적으로 프로이트는 『쾌락 원칙을 넘어서』에서 ‘죽음으로의 충동’이라는 개념으로 이 문제를 설명하고자 시도했다. 하지만 누구나 동의하는 일반 원칙은 아직 없는 셈이다. 영원히 없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래서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충돌은 더욱 재밌는 주제인지도 모른다.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픈 욕망’도 따지고 보면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만나는 접점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매혹은 분명 에로스적이지만, 시간이 정지된 그림 속 세상으로의 동경은 죽음에 대한 명상에 다름 아니다.

<말미생략>

한창호作 - 『영화, 그림 속을 걷고 싶다 2005』 저자의 글 中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10
10:10:59 

 

상병 홍명교 
  아. 한창호 선생님 못 뵌지도 반년이 넘었네요. 보고싶어라. 참 재밌는 분인데. 2009-04-19
18:02:16
  

 

병장 김형태 
  명교씨 학교가 예종이셨더랬죠? 그렇게 기억하고 있는데, 맞습니까? 클클 
이제 1/3정도 읽었는데, 시작의 글 부터 한번 보고싶은 분입니다. 만나게해주십쇼 2009-04-19
20:44:32
  

 

상병 홍명교 
  김형태/ 
네 맞아요. 스물다섯에 예종 영화과들어가서 1년 다녔어요.(웃음) 저보다는 여기 괴물같은 분들 많잖아요. 
한창호 선생님 만나게 해달라구요? 소개시켜드리고 싶네요(웃음) 수업도 <영화와 미술>, <영화이론세미나> 인가 들었고, 방학땐 푸코 세미나도 같이 했었는데... 참 재밌고, 배울점도 많고, 센스도 넘치는... 그런 분이랍니다. 술도 잘 드시고. 네이버에 이탈리아와 포도주라는 블로그도 운영하시는데 한번 놀러가보세요. 
시네큐브 영화학교나 민예총 문예아카데미 같은데서 강의도 많이 하시던데 그런데 가도 만날수있구요. 2009-04-20
11:35:59
  

 

상병 김태완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혼합이라. 
참 흥미로운 발상이군요. 
글을 읽으며 살면서 애로스의 절정까지 이르러 본적이 있었나 회상을 해보는 동시에 그런 비슷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한 순간, 과연 나는 죽음을 갈망했었던가 생각해 봤어요. 
어떤것에 전율을 느낀후 내 몸에 힘을 다 빼고 시간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나를 방치해 둔적은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자학적 또는 탈생적으로 빠진적은 없었네요.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만남은 메조히즘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예술적으로 조예가 깊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광적이다, 미쳤다는 소릴 들을정도로 예술에 빠지는 것이 진정 그 사람의 삶에 있어 이로운가 혼자 사색해 봅니다. 2009-04-21
17:57:01
  

 

상병 홍명교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걸작은 역시... <베니스에서의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