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 번역에 대한 간단한 비판
병장 황민우 03-07 12:45 | HIT : 262
이름에 대하여
시간이 없어서 아주 짧게만 쓰겠습니다.
<반지의 제왕>은 미리 말씀드리지만, 번역이 불가능한 소설입니다. 이 소설을 원문으로 읽어보신 분은 알겠지만, 문체적-정서적으로 굉장히 독특한 고대 영문학적 색채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현대소설'적으로 다시 써낸 부분이 매우 많기 때문에 현재 한국에 돌아다니는 번역을 저는 문제삼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이자, 씨앗에서 논쟁이 분분했던 이름에 대한 간단한 번역문제를 예로 들겠습니다.
Bilbo Baggins, Aragon Strider
이 이름들을 어떻게 번역해야할까요?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의 번역진들이 나름대로 판타지문학에 대한 애정이 있고 노력해서 번역했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톨킨 문학이 가지고 있는 서사시적이고 중세적인 성격을 번역상에서 완전히 간과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톨킨 문학에서 등장하는 이름들은 중세 유럽인들의 작명법을 따라가고 있으며, 간달프 (갠달프도 엄밀히 보자면, 에다Edda의 압운법의 묘미를 살리지 못한 번역이기때문에,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간달프로 번역하는 것이 훨씬 나았다고 생각해요.)나 소린 같은 에다에서 따온 이름들은 주해를 달아주어서 문화적 성격이나 묘미를 설명해주었어야합니다.
어쨌든, 여기에 비교텍스트가 되는 이름들로 TCG (트레이딩 카드 게임)중 하나인 매직더개더링Magic : The Gathering의 한국번역을 상당히 주시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게임이지만, 한글번역자들이 한국인이 아니라 외국인이 참여했지만, 이만큼 유럽 중세적 의미를 한글로 잘 번역한 텍스트가 현재까지 '없기'때문에 이걸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매직더개더링에 등장하는 이름들 역시 톨킨 소설에 등장하는 그것들처럼 중세적인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세 유럽인들의 이름은 '이름 + 계급 + 성격'이라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는데, 예를들면 발터 폰 데어 포겔바이데라는 일므의 경우 (유명한 중세시인이죠) 발터는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 폰은 기사계급을 그리고 포겔바이데는 그 사람의 성격을 지칭하는 일종의 '별명'이었습니다. Vogelwide는 Vogel + wide를 뜻하는 것으로 영어로 풀이하자면, Wilde Traveler 즉 들판을 방랑하고 자유를 사랑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중세 유럽이름은 거의 이렇게 지어졌으며, 서사시에 등장하느 이름들도 거의 이 원칙을 따라갑니다. 톨킨은 이 중세의 원칙과 향수를 따라서 캐릭터들의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그래서 골목쟁이 빌보, 성큼걸이 아라곤이라는 이름이 나온 것입니다.
매직더게더링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중세 성명 두개를 위의 번역과 비교해보겠습니다.
Viashino Sandtalker, Shauku Endbringer
위와 똑같은 방식으로 지어진 중세적인 이름들입니다. 이걸 어떻게 번역해야할까요? MTG 한글번역에서는 다음과 같이 풀이했지요.
비아시노 모래보행자, 샤우쿠 종말초래자.
이 번역은 매우 훌륭하다고 말할수 없지만, 상당히 탁월한 번역입니다. 우리나라 고대 창가나, 서사무가의 운율진행을 보면 2 + 3 음절 혹은 3+3음절의 2보격 진행양상을 띠는 리듬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번역진들이 그것을 생각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을 상당히 잘 살리면서 중세적 맛과 유럽 특유의 향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번역에서 빌보배긴스와 아라곤 스트라이더를 단지 번역만 하여 '골목쟁이 빌보', '성큼걸이 아라곤'으로 번역한다는 것은 톨킨이 의도했떤 중세적 의미와 리듬감을 완전히 무시한채, 의미전달만을 목적으로 하는 의역이 됐다는 생각을 뿌리칠 수 없습니다. 배긴스Baggins라는 말의 속어적 표현인 골목을 거니는 사람이라는 뜻과 Strider라는 말의 '활보하는 사람'을 나름대로 의역했지만, 중세적인 맛을 완전히 살리진 못했습니다. 만약 제가 번역을 했다면, '소로인少路人' 빌보, '활보자 아라곤'이라고 번역하여 3+2, 3+3격의 고대 한국 서사시의 운율을 살리면서 의미전달을 하는 방향으로 모색해봤을 겁니다.
톨킨의 소설들은 번역이 매우 어려운 작품입니다. 이것을 단지 '의미와 이야기전달'만을 목적으로 번역한다는 건 정말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돈키호테의 풍차입니다. 물론, 모든 역자들이 반지의제왕을 번역하면서 나름대로의 고심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톨킨의 원작이 가지고 있는 금자탑적 위치를 약간이라도 제대로 전해주는 작품은 아직도 등장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서울대학교 출판부에서 번역한 '에다Edda'라든지, 허창운 교수님께서 완역하신 볼프람의 '파르치팔'의 경우 외국 운율적 서사문학의 번역의 길을 굉장히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에다'의 경우는 세분의 교수님들께서 한국 서사무가의 운율적 율격을 공부하고 연구한 상태에서 에다의 운문을 고대적인 맛으로 살리려고 상당히 고심하였고, 반대로 허창운 교수님은 볼프람의 엄청난 서사시에서 그의 운율적 서사성을 완전히 배재하는 데신 상세한 각주와 뛰어난 의역으로 거의 완전하게 우리말로 옮겨놓았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당히 훌륭한 업적들에 비해서 우리나라에 번역된 <반지의 제왕>은 그 학문적 깊이나, 문화적 접근성에서 바닥을 치고 있다고 생각했고, 저는 그 점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 밖에도 문체적 특징, 서사적 진행, 사건의 전개나 문학적 고찰등 태클걸만하 내용이 한둘이 아닙니다만,
일하는 도중에 써서 이만 짧게 글 내리겠습니다.
병장 황민우
첨가하여, Beholder라는 이름을 단순히 의미번역하여 '보는 자', 혹은 '보는 사람'으로 번역하는 것 보다는, 한국어의 한문적 관습과 전통을 따라서 '주시자'라고 번역하는게 더 나은 의미와 운율을 가진 번역이라고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씨앗은 매우 안타깝게도 후자보다는 전자를 더 많이 따라갔습니다.) 03-07
병장 이승일
와, 정말 흥미롭군요! 제 생각에는 그냥 '빌보 배긴스' 라고 한 뒤, 민우씨가 말씀하신 내용을 주석으로 다는게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해요. 리듬감이라는게, 단지 글자수만 맞춘다고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Bilbo Baggins 두 b, Aragon Strider의 두 중간 r과 [a] 발음은 한국어로 의역할 경우 옮길 수 없는 부분입니다. 아무리 음절의 숫자를 맞춰도 말이지요. 03-07
병장 황민우
승일씨// 거기에 대해서 약간 첨언을 하자면, Bilbo - Baggins의 두 B는 고대 게르만 서사시의 두운법을 따라가는 것이고, Aragon Strider의 중간의 두 A는 라틴적 율격의 압운법을 따라서 리듬감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원작을 읽어보신 분은 알겠지만, 톨킨의 모든 작품은 (특히 <호비트>에서 최고조로 두드러지는) 소설의 시작 첫문장부터 끝까지 이런 '노래형식'의 운율Rhyme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주제 사라마구나 살만 루시디 어쩌구 하면서조차도 톨킨을 압도적으로 존경하는 결정적인 이유중 하나가 바로 이점때문입니다. 톨킨의 <호비트>의 경우는 책한권이 완전한 '노래'거든요. 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