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라 불리우는 자
병장 임정우 03-01 15:02 | HIT : 201
사람은 아기인 채로 태어난다. 그 아기는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는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본능이라 할만하다. 본능은 자연스러운 감정 중에서 최고라 할만하기에, 부모님의 사랑이야말로 최선의 사랑인 것이다. 아이는 누구보다 그 사실을 알고 또한 그 감정을 이용하는데 탁월하다. 모든것이 자신의 능력밖의 일인것만 싶은 당시의 아기는 울음으로서 모든 이야기를 부모에게 전달한다. 부모와 아기와의 관계, 즉 최초의 인간관계는 본능이기에 조건이 없고, 또한 조건이 없기에 자연스럽다. 모든 아기는 이미 간직한 본능으로 조건없는 자연스러움을 터득하는 셈이다.
아기는 곧 아이가 된다. 아직 세상의 꿈틀거리는 혼돈을 경험하지 못하는 아이는 아직 순수하다. 아이는 아기의 탄생을 궁금해 하곤 한다. 아기의 탄생에 우윳빛 호기심을 간직한다는건 얼마나 충만한 아름다움인가. 이러한 아름다움은 급작스럽게 무너져 내려버리기에 더욱 아름다울지 모른다. 이 아름다움의 절정은 천진난만한 우정이라 할만하다. 변질되기 직전의 순수함. 교실 한 구석, 떨어진 볼펜을 주서줌이 단짝친구로 가는 계단처럼 인식되는 성스러움은. 어느순간 번쩍하는 순간 숨을 거두고 그 묘비명에는 추억이란 단어가 새겨진다.
청년이 된 아이는 혼돈이란 악마를 만난다. 청년이 바라보는 모든 세계는 혼란스러워진다. 이 시기의 청년은 영혼을 댓가로 혼란이란 자재를 부여받어 쳇바퀴라 불리우는 집을 짓게 된다. 청년은 완성된 집에서 끊임없이 뛰어야 한다. 끊임없는 되 달음질은 마치 강요와 같아 필연적으로 반항을 탄생시켰다. 반항은 거칠고 날카롭기에 때때로 나쁜 것으로 오인받겠지만 그것이야말로 순수함에 마지막 유산이라고 해야 한다. 실상 반항은 일종의 성장통과 같았다. 헌데 세계의 몰이해라는 악당은 자신에 끔찍한 죄악을 반항에게 떠넘기고 달아나 버렸다. 때문에 반항은 죄인이 되어 감옥에 갖히게 되었다. 반항은 죄가 없다. 때문에 곧 미쳐버리게 되어 간수에게 쳇바퀴를 달라고 애원한다.
스스로의 의지로 쳇바퀴에 올라탄 청년은 이제 어른이라 불리운다. 쳇바퀴 위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거의 어른이다. 물론 아직도 간수에게 구걸하지 않는 자들이 있으나, 이들은 어른이라기보다는 바보라는 명칭으로 더 자주 불리는것 같다. 어른은 예전보다 많은 친구들이 얻게 된다. 어른은 그들을 친구라기보다는 수단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자주 부르는 편이다. 그런식으로 모든 어른들은 스스로의 마지막 순수성마저 저 수단으로 인지하여 구렁텅이로 굴러 떨어지고 만다. 그리하여 세계의 종말보다 개인의 멸망이 빨리 찾아오는 경우가 생기고 말았다.
이처럼 모든 개인은 어른이 되어 노인이 되기도 전에 성급히 추락한다. 그리하여 모든것은 캄캄한 어둠자체가 되어버린 착각을 일으킨다. 공허함은 어둠보다 짙은 어둠으로 세계를 덧칠한다. 곧 무미건조한 절망이 찾아와 우리를 처절한 체념의 늪속에 빠뜨린다. 허나 세상을 구원할 빛은 아직 꺼지지 않은채 반짝거린다. 만약 기억해낼수 있다면 그 빛은 우리가 맨 처음 어머니의 자궁밖으로 나와 마주한 빛과 동일하다고 말할 것이다. 순수함의 소생을 위하여 우리는 그 빛의 존재를 미칠듯이 궁금해 하도록 하자. 갈망은 빛의 윤곽을 뚜렷하게 만들어 빛의 정체를 알려줄 것이다. 또한 앎은 인식으로 세상을 밝게 드리운다. 빛의 정체는 우리가 아직 아이었을때의 친구라 불리던 자임을 너는 곧 알게될 것이다. 그 친구는 당신에게 수단이라고 불리우기 보다 바보라고 불리우기를 원했기에 너에게서 사라졌던 가여운 존재다. 그는 너에게 있어서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이다. 그 소중한 존재를 더이상 바보라 불러선 안되리라. 친구라 부르고 손을 청하라. 그의 손은 너를 쳇바퀴에서 이끌어 광활한 대지에 발을 내딛도록 도와줄 것이다.
병장 심승보
정우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아기의 탄생에 우윳빛 호기심을 간직한다는건 얼마나 충만한 아름다움인가. /
교실 한 구석, 떨어진 볼펜을 주서줌이 단짝친구로 가는 계단처럼 인식되는 성스러움은. /
반항은 거칠고 날카롭기에 때때로 나쁜 것으로 오인받겠지만 그것이야말로 순수함에 마지막 유산이라고 해야 한다. /
이 시기의 청년은 영혼을 댓가로 혼란이란 자재를 부여받어 쳇바퀴라 불리우는 집을 짓게 된다.
너는 이제 바보를 친구로 불러야 한다. 그리하면 쳇바퀴에서 내려오게 되어 평지를 걷게 될것이다. /
- 특히 이 대목들이 매우 인상깊었습니다. 정우님의 글이 갈수록, 무게감을 얻는 것 같군요. (좋은 웃음) 03-01
병장 임정우
몇 구절은 수정을 했기에 승보님에 댓글과 달라진 부분도 있군요. (웃음) 03-01
병장 심승보
그래요, 저 역시 제목과 마지막 문장이 다소 아쉽게 느껴지긴 했습니다. 물론 그것은 글의 모양을 좀 더 가다듬는 세부적 장치에 속하는 것이라 따로 말씀드리진 않았습니다. 글은 어디까지나 본뜻과 그 진실이 우선이니까요.
음, 갑자기 떠오른 대목인데, 논어에 '문질빈빈(文質彬彬)'이란 멋진 구절이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내용과 형식이 서로 함께 빛나야 한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습니다. 본뜻이 우선이지만, 그 형식미 역시 중요하며, 그 형식이 본뜻을 더 단단하고 찬란히 빛낼 수 있다는 뜻으로 새겨 봅니다.
정우님께서, 초고의 다소 밋밋한 피날레를 두고 고심한 흔적이 역력히 보입니다. 그렇지만 역시 문질빈빈의 저울추는 쉽게 붙잡아 둘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약간의 조미료로 인해 그 담백함의 맛은 다소 빛을 잃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웃음) 03-01
병장 임정우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문질빈빈이라, 최근 제가 고민하고 있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생각을 글로 바뀌면서 변질되어지는 것이 때로 너무나 가혹하다고까지 생각이 듭니다. 글은 반드시 생각에 하위개념이 아니고, 생각과 동시를 이루고 있으면 또한 본질을 공유해야 할 것입니다. 허나 그럴듯한 문체로 본질이 빛이 난다면 그것만큼 매력적인것은 또 없는 겁니다. 그리고 그 그럴듯한 문체를 갖기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고가 필요한지요. 사실 그럴듯한 이라고 무시하는 문체 또한 본질에 파편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우선 마무리에 대해선 더이상 손을 대지 않으려고 합니다. 단지 나중에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난후에 약간에 퇴고를 통해 저의 생각을 뚜렷히 할수 있기를 기대하여 봅니다. 03-01
병장 심승보
네, 이 글을 읽고 있으려니, 제가 4년전 써 두었던 작은 글 하나가 함께 떠오르네요. 제목은 <'마음' 흔들기>인데, 조금 이따가 이 글에 대한 '마중글'로 조그맣게 하나 올려 볼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정우님의 이 글과 내용과 느낌이 통하는 점이 많은 데다가, 이 좋은 기회에 저도 옛 추억 좀 쓰다듬어 볼려구요. 히힛. 03-01
병장 임정우
이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이런식의 소통이라면 언제라도 환영입니다.
저는 '겸손이란 21세기 최대의 미덕' 이란 어구를 미간에 진한 글씨체로 작성시킨후 기다리겠습니다. (헤헤헤) 03-01
일병 구본성
미래를 쳇바퀴같이 여기는 것은 너무 우울한 듯 하네요. 03-01
병장 임정우
본성 / 제가 읽어도 좀 극단적이긴 하네요.(웃음) 03-01
병장 이승현
" 반항은 죄가 없다." 인상적이네요. 03-02
상병 김윤호
아기는 아이의 탄생을 궁금해 하곤 한다
아이는 아기의 탄생을 궁금해 하곤 한다, 가 맞는 것 같아서 감히 한 줄 써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제가 이해를 제대로 못한 것일 수도 있으니 만약 바뀐 게 아니라면
너그러이 용서를. 03-02
병장 임정우
윤호 / 오 감사합니다. 바로 수정할게요. 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