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密陽, secret sunshine
병장 이건룡 06-11 16:20 | HIT : 298
* 스포일러성이라 유의해서 읽어야 할 것입니다. 허나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은 대체나 주말의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 전반의 내용이 소개 된 터라 그리 걱정스럽게 읽지 않아도 될 것이라 문제는 없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영화를 두 번 볼 사람에게는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 밀양>의 화제에 이상스레 배알이 꼬여 자기진단 할 겸 적어 본다. 사실 <감독상>수상이었으면 보다 이창동 감독에 대한 소음을 좀 더 접할 수 있길 기대했었다. 런닝타임(2시간 20분 정도였나?)이 짧다고 든 영화는 몇몇 되지 않았고 특히나 리얼리티 계열의 영화에서 이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소위 리얼리즘을 편히 볼 수 있을까?). 따라 내 머리 속에서는 이 영화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이영화에 몇 마디나 붙일 수 있을까? 이게 문제 인다. 즉, 과연 형용할 수 없는 감상으로 진정 한 영화가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에 관해 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전도연씨가 연기한 신애의 역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본다(*역시 우려했던 만큼 이거다 하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숭고한 대상은 숭배자를 배신한다).
密陽, secret sunshine. 남편의 사고로 인한 죽음 이후, 신애(전도연분)가 선택한 남편의 고향, 밀양으로 향하는 길에 내비친 생각은 '비밀스런 햇살'의 남다른 도시 밀양이다. 죽은 남편에 대한 미련으로 간 밀양(그녀는 죽은 남편에 대한 사명감으로 남편의 도시 밀양에서 새 삶을 기약한다)이지만 영화는 초반, 의미가 없을 법한 밀양이라는 도시의 해석에 집착한다. 마치 <비밀의 화원>의 주인공처럼, 남모르는 비밀에 몰래 미소를 짓는 여자의 순정을 남몰래 읽어 볼 수 있다. 카센터 주인인 종찬(송강호분)이 치근거리는 등 항상 신애의 기대를 배신하지만.
그러나 생각해 보건데 충실했던 과거의 기억들의 나와 달리 슬그머니 등장한 비밀스런 만족은 영화 자체의 신애의 비극과 추락을 비틀린 형국으로써 생각해 본다(전도연씨가 수상소식으로 짐작해 보건데 영화가 그녀에게 부과한 짐이 얼마나 괴로우며 고달픈지를 짐작할 수 있다-영화를 보았지만). 원작?<벌레이야기>를 보지 않았지만 아마 원작에서 따왔을 모티브라 생각한 것은 '벌레 같은 인간'들의 자신의 뱉어낸 언어에 대한 은밀한 충실함과 (칸트의) 무관심한 만족의 마술이다. 마치 <죄와 벌>의 로쟈처럼? 원작과 줄거리 다르지만 나올 법한 유사지점의 초래는 바로 이창동 감독이 사용한 언어의 화용론(話用論)적 용법을 찾을 수 있다 추측해 본다(<벌레이야기>를 보지 않았지만 원작과의 다름의 불평을 종식시킬 변명은 이 은밀한 언어적 용태의 쓰임에 있지 않을까?). 믿음직한 소개로 적어 볼 것 같지는 않지만 생각엔 <밀양>을 통해 "주의 깊은 관찰자의 눈앞에 노출된"다는 마음속 풍경일 것 만 같은 세계를, 즉 세계의 원 형상을. 펼쳐내는 (어떤 명감독보다 가까운) 이창동 감독의 세계를 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여긴다.
그래서 한번 막연히 품었던 <밀양>에 대한 감탄조의 이해를 벗겨 볼 겸 보다 영화에 대한 이해를 발가벗겨 본다. 다시 한 번 더 볼 날을 기약하며.
< 밀양>은 사회의 우의(寓意) 형상들을 쌓아 놓은 형세라 쉽게 관객들은 영화적 사유에 쉽사리 노출된다. 무엇보다 친근한 부동산 투기, 아동 납치, 종교 그리고 그 밖의 사회인(미망인)의 방황 등등 (우리나라의) 자본주의 사회의 쌓여 올려 진 우의 형상들 속에서 감독의 알레고리 의도를 짐작해 볼 수도 있고 나름의 심판도 내릴 수 있으며, 윤리적 진리를 모색해 볼 수 있는 계기도 될 수 있는, 더구나 웃을 수도 있는 영화이다.
(* 리얼리즘에 대해 옮겨 보건데 "대체로 모든 리얼리즘 형식은 이론적 지식을 선험적ㆍ무매개적인 것으로 설정하고, 이를 통해 객관적 존재를 충실히 포착ㆍ모방ㆍ표현할 수 있다 여기는 반면, 여기서는 발신(emanation) 지점이 실제로 대상에게 전유된다. 대상과 지식-내-사유의 혼합은 인식론적 사실이 아닌 형이상학적 사실이다(수잔 벅 모스의 <아케이드프로젝트>)." 인용된 글 따라 읽어 보면 관객은 이창동 감독의 리얼리즘 형식, 우의 형상에 대한 표현은 라캉의 "모든 편지(letter)는 목적지에 도착한다." 식으로 관객에게 비추어질 설득력이 준비되어 있다 자신한다.)
주인공인 신애가 이창동 감독의 이해의 선 안에 놓인 핵심 인물이고 항상 그녀 주위의 사건에서 플롯은 비롯된다. 물론 <밀양>의 주인공은 신애와 종찬이고 남, 여 간의 사랑의 이론이라는 내러티브로 구성되어지고 있지만 기획에 따라 신애에 대해 좀 더 충실하게.
어느 영화들처럼 어느새 몰래 쌓아놓은 (낯익은) 우의 형상들은 강도의 형상으로 그녀의 공백 화 지역이었던 주위에 자리 잡아 잉여적 부가물/사건이 초래되는 계기가 된다. 그 사건들은 그녀의 존재를 강도질한다(*들뢰즈에 의하면 '사건들은 하나의 유일하고 동일한 대사고(이 세상에 존재 할 수 있는 모든 탈 물질적 사건들의 집합)안에서 소통하는 탈 물질적인 특이성들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선 신애는 주위의 사건의 충실함으로 그녀 자신의 모순성과 자의성을 마주할 수 있으며 삶의 결백성이란 문턱을 넘어 나락의 현기증 속에 추락하는 그녀의 모습을 읽어 볼 수 있다.
삶의 구원, 밀양(密陽, secret sunshine)을 신애가 찾은 이유는 죽은 남편의 고향인 곳에서 새로운 장소에서 삶을 더욱 정초하여 충실(남편에 대한 의무)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나? 미망인은 행복했던 기억과 함께 하였던 혈육을 데리고. 파트너와 같이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자 원한 눈치였으나 이후는 관객으로써의 우려처럼, 그녀의 기대와 달리 뼈아픈 상실 그리고 아픔 속에 그녀는 홀로 부흥회를 찾게 된다. 그녀와 같이 간 종찬은 임계점에서 조차 파트너로써 용납되지 않고 그녀에게 외면 받는다. 그러지만 그의 지난한 에스코트는 리얼리틱하게 끈질기다.
자신의 믿음의 형국은 아들을 납치하고 죽인 살인자와 만남으로 틀어져 버리고 그녀는 이전의 삶과 단절하게 된다. 실상은 그녀 자신을 기만하는 용서에 대한 형식(종교)적 만족일 뿐이 아니었나 싶다. 기구한 그녀 삶속에서 이미 남편의 죽음과 자식의 죽음으로 모든 세계는 이미 '무한한 절망의 세계'였으며 그간 자족함은 자신이 애호한 고집은 사물화 된 '좁은 그릇으로써의 종교'에 대한 충성심일 뿐이었다. 그녀가 원수에게 용서를 하였든 철저히 자의적인 행동일 뿐이었다. 으레 주는 용서란 스스로의 배덕처럼 읽힌다. 그녀가 깨달았던 건 단지 '무한한 절망의 세계'안에서의 자신의 정치적 행동의 음모에 불과함이었던 걸.
알레고리화 된 세계 안의 그녀, 자의적 시선 처리된 삶, (*니체에 의하면 '인간은 지구라는 꽃대에 매여 있는 진딧물' 기생 벌레에 불과한데) '죽은 남편의 고향에 가게 되면 예전의 행복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부동산 투기로 새로운 집을 장만할 수 있다.' '신과 함께 하면 괴로움에 피하고 수 있다.' 등의 얄팍한 계산된 보험은 자신의 존재를 모두 뿌리 체 들어내는 악재로 환원된다. 진절머리 나는 삶 이후 영화를 통해서 그녀가 수행하는 멋들어진 테러를 확인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조차 가혹한 감독의 의도에 따라 비극적인 삶의 단절조차 시원하지 못하다. 바디우식으로 말하자면 진리가 아닌 시뮐라크르적으로 밖에 이르지 못하는 그침이다. 그녀가 확실하게 진리로 이름을 수행하는 단절이란 종찬과 함께다. 언어적인 용법에 기반 한 '벌레'적인 비밀스러운 인간의 비열한 만족과 동반하는 게 아이러니이지만. 그것도 미묘한 처리로.
이창동 감독의 삶에 대한 '인지관찰'은 읽을거리 많다. 그러니 빈곤한 삶의 이미지에 인지를 촉발 할 수 있을 가능성이 높은 점을 높이 산다. 실상은 급박하게 고작 한차례 본 영화를 읽다 보다 같이 읽었던 책의 풍성한 읽을거리를 희생한 꼴이 되었지만(<밀양>에 의지하여 책을 읽는 다는 것 조금은 재미있지만, 나중에 읽을거리가 너무 빡빡해진다), <밀양> 감상에 대한 여백을 더 넓힐 수 있었다. 다음 기회에도 본격적인 영화 감상이라고는 볼 수 없을 테지만 감독의 화용론적인 세계관, '종찬'과의 이해관계는 密陽, secret sunshin처럼 충만하니 다음의 2시간 20분을 기대한다. 물론 같이 볼 사람 몰색하는 시간(일진이 좋지 않으면 혼자...), 기다리는 시간 찾아 가는 시간 등 번거로움은 많겠지만. 게으른 성질을 고려하자면.
상병 엄재식
걸고 넘어지려는건 아닙니다만. sunshin 이 아니라 sunshine 가 아닐런지. 06-12
병장 이건룡
아차..오타가. 부끄럽습니다. 06-12
상병 안근홍
저로써는.. 생각보다 참 이해하기 힘들었던 영화였어요.. 후.. 06-12
병장 이건룡
보고난 후에 찬찬히 2ㅈ주이 가량 줍어 먹었던 생각이 이해보다 크게 작용하고 있지요. 설령 다 이해 했다고 해도 그넌 두번 이상 봐야 가능할테니 아직 저도 멀었습니다. 06-12
상병 조수아
종교적인 시선을 빼놓고는 아무것도 아닌 영화일까?
라고 반문하고 있던중에 여러다른 관점을 설명해 주셔서 감사하네요, 06-15
상병 최영준
2 시간20분, 짧지않은 시간동안 뜬눈으로 보기 쉽지 않은 영화였는데,
괜스레 글을 읽고 궁금해지네요. 06-17
병장 이건룡
사실 부담없이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영화 한번으로 모든 걸 다 보려고 과욕을 내셨는게 아닐까 싶네요. 사실 그렇게 영화를 보면 어렵다고 생각해요. 06-18
상병 오정민
좀 더 쉽게 쓸수 있지 않았을까요?
영화에 대한 평은 거의 없네요... 06-19
병장 이건룡
혹시 줄거리를 기대하셨는지...전 지리한 줄거리 보다는 그냥 영화에서 생각하기를 멈추고 떠나보낸 기억들을 끄집어 내 적었던 것이라서(다른 책과 같이 읽으며), 기대하신 바엔 부흥하질 못했나 보군요. 영화에 대한 평에는 적절치 못하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습니다. 전공상 카메라 워킹 보다 텍스트로서 문학적인 이해로 읽은 터라서. 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