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 국소성과 결정론 
 병장 이승일 05-07 03:21 | HIT : 220 



 예전 35연대 시절, 저는 양자역학의 기본개념에 관한 긴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 글에서 결정론과 국소성에 관한 내용, 특히 벨Bell 의 정리와 아스페Aspect의 실험에 대해 차후에 추가로 글을 쓰겠다고 했었는데, 이제서야 쓰게 되네요. 이 글은 인형에 눈알붙이기의 일환입니다. 잠시 뭔가 가치있는 글을 써보고자 시도했지만, 제가 전혀 의사소통 능력이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하던대로 인형에 눈을 붙였어요.

 이 글의 주제는 <국소적 물리세계에서는 결정론이 성립할 수 없다는 철학적 주장이 어떻게 물리적 실험을 통해 증명되었는가, 그리고 그 함축은 무엇인가> 입니다. 



1. EPR 역설

"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 는 아인슈타括?발언과 "신이 주사위를 던지건 말건 상관하지 말라" 라는 보어의 응수는 양자역학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한번 쯤 들어봤을 법한 과학사의 명 에피소드입니다. 이것은 양자역학이 암시하는 비결정론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반감과, 양자역학을 옹호하며 결정론에 대항한 보어의 충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제 5차 솔베이 회의에서 나온 일화라고 하는데, 뭐, 실제로 그런 대화를 나눴는지 그냥 호사가들이 지어낸 이야기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전지전능한 신이 만든 세계에 우연이란 존재할 수 없다" 라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완전한 물리학은 결코 우연이라는 요소를 포함하지 않아야된다고 믿었습니다. 때문에 양자역학을 도저히 액면그대로 받아드릴 수 없었으며, 시대적 대세였던 양자역학에 저항하려고 했습니다. 그 저항은 우리가 흔히 'EPR 역설'이라고 부르는 내용의 논문을 통해 공식적으로 표현되었습니다.  EPR 이란 Einstein - Podolsky - Rossen (스펠링은 보장할 수 없음) 의 약자인데, 이들 세 명이 논문을 함께 써서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이들이 발표한 논문의 제목은 <물리적 실재에 대한 양자역학의 기술은 완전할 수 있는가?> 였습니다.

 이 논문의 주요 논지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양자역학은 궁극적인 물리법칙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직접적으로 측정할 수는 없지만 간접적으로는 '명확히' 측정 가능한 물리량의 존재를 양자역학은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양자역학에서 기술하는 속성의 특징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이젠베르크는 "한 입자의 운동량(위치)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록 위치(운동량) 은 불확실해진다" 라는 정리를 증명했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불확정성 정리> 입니다. 운동량의 불확정성을 ΔP , 위치의 변화량의 불확정성을 ΔX 라고 하면, 

 ΔP × ΔX   >  h/4π                  

 라는 것이 불확정성 정리의 요지입니다. 여기서 h 는 플랑크 상수라고 불리는 아주 작은 상수입니다. 그래서 우변은 변하지 않는 상수가 됩니다. △P 와 △X 의 곱이 어떤 상수보다 무조건 커야한다는 말은, 한 쪽이 작아지면 다른 한 쪽이 작아진다는 것을 뜻하겠지요. 그래서 운동량의 불확정성이 작아지면 위치의 불확정성이 커지고, 그 반대도 성립합니다. 특히 h/4π 가 0 이 아니기 때문에, △P 와 △X 둘 중 어떤 것도 0 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불확정성은 정확히 무슨 말일까요? 그건 별게 아니라 측정되는 값의 편차를 의미합니다. 편차가 크다는 것은 그만큼 불확실하게 측정되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정말로 정해져있지 않기 때문에 불확실하게 측정되는 것이냐, 아니면 우리가 뭔가 모르기 때문에 불확실하게 밖에 측정할 수 없는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양자역학은 전자의 입장을 취합니다. 즉, 우리가 운동량(위치)을 정확하게 측정하면, 위치(운동량)는 불확실하게 측정되고, 따라서 불확실하게 '존재' 한다는 것입니다. 속성의 존재는 우리가 측정하는 순간 결정된다는 말이지요.  만약 ΔP 값을 0 에 가까울 정도로 수렴시키면, ΔX 값은 거의 무한대로 발산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위치를 전혀 측정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양자역학의 옹호자들은 이 경우 위치라는 속성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주장이 말도 안된다고 일축합니다. 기술적인 이유 때문에 불확실하게 측정 될 뿐이지, 그것이 불확실하게 '존재'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운동량과 위치와 같은 속성들이 이미 명확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데, 우리의 한계 때문에 확률적으로만 알려질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이것을 논증하기 위해 양자역학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속성들이 실제로는 존재할 수밖에 없음을  암시하는 사고실험을 제시합니다. 



[1 번입자 측정기]-----------------------[입자 쌍 생성기]----------------------- [2번입자 측정기]


 가운데에 있는 입자 쌍 생성기에서는 질량이 같은 두 개의 입자가 만들어져 반대방향으로 발사됩니다. 한 참을 날아가다가 각기 다른 측정기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 측정기는 운동량, 위치 등의 속성을 측정할 수가 있습니다. 1번 입자 측정기를 가지고, 1번 입자의 운동량을 '아주 정확히' 측정하기로 했다고 가정합시다.(ΔP을 0에 가깝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 양자역학 은 1번 입자의 위치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의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번 입자의 운동량을 아주 정확히 측정했더니 10 이 나왔다고 해보지요.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이 결과를 가지고 2번 입자의 운동량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운동량 P = mv 인데, 1번 입자와 2번 입자는 질량이 동일하고 속도는 부호만 반대이므로 1번 입자의 운동량이 mv 라면, 2번 입자의 운동량은 m(-v) = -mv 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1번 입자의 운동량이 10 이었으므로 2번 입자의 운동량은 -10 이 되겠지요. 위치도 마찬가집니다. 입자 쌍 생성기를 원점으로 하여 1번 입자가 -10 이라는 좌표에 위치한다면, 2번 입자는 그 정반대인 10 이라는 좌표에 위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한쪽 입자의 운동량(위치) 를 측정하면 다른쪽 입자의 운동량(위치) 를 자동으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운동량, 위치와 같은 속성은 양자역학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측정하는 순간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결정되어 있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1번 입자의 운동량을 측정하는 '순간' 2번 입자의 운동량을 알게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측정하는 순간 '결정'되는 것이라면 1번 입자의 운동량을 측정하는 행위가 멀리 떨어진 2번 입자의 운동량까지 결정짓는다는 소리인데, 그것은 상대성이론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정보나 힘이 빛보다 빠르게 전달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위치도 마찬가지입니다. 1번 입자의 위치를 측정하는 순간 2번 입자의 위치가 결정된다면, 빛보다 빠른 속도로 어떤 정보가 1번 입자에서 2번 입자로 전달된다고 볼 수밖에 없고 이것은 상대론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운동량과 위치라는 속성은 이미 결정되어있다고 말하는 것이 당연하며, 입자가 날아가는 과정(빨간색 실선부분)에서도 이미 존재하고 있다고 말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빨간색 실선에서는 운동량과 위치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거나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양자역학은 불완전한 물리학이라는 것이 EPR 논문의 요점입니다. 

 요약/ 정리하면, 

 ⓐ  양자역학에 따르면 2번 입자의 운동량은 1번 입자의 운동량을 측정하는 순간 결정된다(측정하는 순간 존재하게된다). 
 ⓑ 그런데 어떤 정보가 빛보다 빠르게 전달 될 수는 없으므로,  1번 입자에 대한 측정이 2번 입자의 운동량을 결정했다고 볼 수는 없다. 
 ⓒ 그러므로 2번 입자의 운동량은 이미 결정되어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 위치 등의 속성에 관해서도 마찬가지 논리가 가능하다.
 ⓔ 2번 입자부터 측정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1번 입자의 운동량도 이미 결정되어있었다고 봐야한다. 
 ⓕ 이미 결정된 물리량을 파악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양자역학은 물리세계에 관한 충분한 기술이라고 볼 수 없다. 


2. 국소성(locality)과 결정론 

 그런데 이 논문을 잘 살펴보면, 아인슈타인(과 포돌스키와 로젠)이 한가지 확인되지 않은 가정을 깔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 "어떤 정보가 빛보다 빠르게 전달 될 수는 없으므로,  1번 입자에 대한 측정이 2번 입자의 운동량을 결정했다고 볼 수는 없다." 는 것입니다. 이 안에는 물론 "빛보다 빠른 것은 없다" 는 상대성이론적 가정이 포함되어있지만, 이것은 이미 검증된 참으로 가정하더라도, 또다른 중요한 가정이 전제되어있는데, 그것은 "정보가 전달되려면 물리적인 매개체가 존재해야한다" 는 것입니다. 이 물리적인 매개체가 빛보다 빠를 수 없으므로, 정보가 전달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정보가 전달되려면 물리적인 매개체가 존재해야한다"  는 가정을 <국소성 가정> 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사실 상식적으로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멀리 떨어진 장소에 물리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워싱턴에 있는 Bush 가 서울에 있는 Roh에게 전화를 걸어 "Yo ~ 관세 좀 내리삼 man~!" 이라고 말할 수 있고, Roh는 그에 따라 관세를 내릴 수 있습니다. 관세를 내린다는 추상적 행위는 결국 실질적인 물리적 행위들로 구성되어있을터이므로, Bush 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장소에 물리적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됩니다. 그러나 이 영향력은 순간적으로 전달된 것이 아닙니다. Bush 는 전화를 걸었고, 전화선을 통해 전자기 신호가 도달하는 시간을 기다려야지만 그 곳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타이슨이 제 아무리 강한 펀치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상대방의 안면에 물리적 충격을 주기 위해서는 어쨌거나 그의 주먹이 상대방 얼굴에 도달해야합니다. 어떤 사람은 텔레파시같은 것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물리학자들은 텔레파시가 실제로 있는지 없는지 알지 못하지만,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물리적인 무언가'가 이 사람의 머리에서 저 사람의 머리로 전달되어야만 하며, 그 물리적인 무언가는 다른 모든 물리적 존재와 마찬가지로 빛의 속도 이상으로 달릴 수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한편 결정론적이라는 것은 모든 물리적 사건이 이미 필연적으로 결정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아인슈타인은 국소성을 전제로 하여 결정론적 결론을 이끌어내었습니다. 이것을 <국소적 결정론> 이라고 부릅니다. 물리세계는 인과적으로 닫혀있으며 그 안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필연적 물리법칙이 있다는 것이지요. 양자역학은 기본적으로 <국소적 비결정론> 의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의 주장과 양자역학은 양립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물리학자들은 이 양립불가능성이 단지 철학적인 문제일 뿐, 물리학적으로는 구별 불가능한 문제로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인 신념에 달려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벨 Bell 이라는 똑똑한 사람이 등장해서 국소적 결정론과 양자역학 중 어떤 것이 옳은지  '실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음을 증명해 냈습니다. 그리고 결국 아스페Aspect 라는 박애주의적인 프랑스 사람이 등장해서 이 실험을 진짜로 해버렸습니다. 그래서 철학적 문제로 간주되던 결정론 문제가 실험실에서 잠정적으로 결판이 나버렸습니다.

3. 아스페의 실험

 이제 아스페의 실험을 살펴보죠. 아인슈타인은 임의의 입자가 지닌 "운동량" 과 "위치" 라는 약간은 고전적인 속성을 가지고 논문을 썼지만, 아스페는 광자의 편광이라는 좀 더 쌔끈한 속성을 가지고 실험을 했습니다. 편광이 보다 광범위하고 관찰하기도 쉬운 성질이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에서도 편광에 대해 실습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카메라를 잘 아시는 분들은 편광필터를 한번쯤 써보신 일이 있으실 겁니다. 바로 그 편광필터 같은 것을 이용해서 아스페도 실험을 한 것입니다. 한편  빛의 편광성은 전자나 원자의 스핀(회전운동)과 사실상 동일하기 때문에, 요즘은 전자나 원자의 스핀을 가지고 실험합니다. 근래에 나오는 대부분의 양자역학 개론서들도 다 스핀을 가지고 이야기합니다. 허나 우리는 그냥 좀 더 친숙한 편광성을 가지고 이야기해보죠. 


 편광

 먼저 편광에 대해 설명해야할 것 같군요. 빛의 파장을 한번 마음속에 떠올려 봅시다. 이 빛을 빛의 진행방향, 즉 정면에서 보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 | " <- 요렇게 생긴 세로 선 위에서 광자가 아래 위로 왔다갔다 하는 것으로 보이겠죠? (물론 진짜로 보인다는게 아니라 상상하자면 그렇다는 겁니다.) 근데 이 수직선의 각도는 사실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 / " <-- 이렇게 사선으로 기울어져서 보일 수도 있겠고 "ㅡ" <-- 요렇게 옆으로 누운 채로 진행하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생각해보면 빛이 진행하는 평면은 360 도 중 아무 기울기로나 기울어져도 상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빛의 편광 방향은 딱 두가지밖에 없습니다. 남자는 가로 ~ 여자는 세로 ~ 라는 노래처럼, 가로하고 세로밖에 없습니다. 내가 어느 상태에서, 어떻게 보든지간에, 하여간 가로 아니면 세로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내가 TV 를 누워서 보건, 앉아서 보건, 옆으로 삐딱하게 기대어서 보건, 우리 눈에 의해 지각되는 빛의 편광각도는 무조건 가로(즉 0도) 아니면 세로(즉 90도) 인 것입니다. (물론 우리 눈에 평광기를 달았을 때의 이야기겠죠.) 아래의 [그림 1]을 참고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이 그림은 아마 고등학교 물리교과서나 참고서에 나왔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측정하는 각도에 따라서 90도와 0도의 '비율' 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죠.  어떤 빛줄기가 있습니다.  이 빛줄기들을 지면에서 어떤 각도, 예를 들면 30도로 기울어져있는 편광기를 통과시켜, 이 중 90도의 편광각(즉 세로)으로 측정된 빛만 다른 경로를 통해 빼 냈다고 해보죠. 이 빛줄기 안에 약 1억개의 광자가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런데 여기서 편광기를 90도 더 기울여서 120도로 기울여놓았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이 1억개의 광자들은 120도의 편광기를 통과하면서 50% 는 0도의 편광각을, 나머지 50%는 90도의 편광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측정됩니다. 똑같은 빛줄기를 210도로 기울인 편광기에 통과시켰다면 1억개의 광자들 모두 0도의 편광각(즉 가로)을 갖는 것으로 측정 될 것입니다. (왜 이런 숫자들이 등장하는지는 나중에 가면 알 수 있어요.) 우리가 어떤 각도로 편광기를 놓느냐에 따라서, 그 빛의 몇 % 가 0도 혹은 90도의 편광각을 갖는지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변화하는 각도가 두가지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편광기의 각도와 그것에 의해 측정된 광자의 편광각입니다. 편광기의 각도는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으므로 360 도 중 임의의 각도가 선택되겠지만, 광자의 편광각은 앞에서 말했듯이 0도 아니면 90도입니다.)
 더 놀라운 일은 광자를 한번에 1억개씩 쏘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쏠 때 일어납니다. 앞에서 저는 120도로 기울여진 편광기에 의해 1억개의 광자중 50%는 0도의 편광각을 가진 것으로, 나머지 50%는 90도의 편광각을 가진 것으로 측정되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씩 쏘면 50%의 확률로 0도, 혹은 90도의 편광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실험적으로 관측되는 현상이므로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국소적 결정론과 양자역학은 이 현상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서로 입장차이를 갖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한 광자가 120도 기울어진 편광기를 만나 어떤 편광각을 갖게 될 것인지가 미리 결정되어있다고 말합니다. 즉 50%의 확률로 결정되는게 아니라, 오히려 50%의 비율로 광자 발생기에서 특정한 편광각을 갖고 태어난다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우리에게 이렇게 혹은 저렇게 측정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반면 양자역학은 편광기로 측정하는 순간 비로소 광자의 편광각이 결정되며, 그 결정은 전적으로 확률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제부터 기술할 실험은 이 중 어느 것이 옳은 주장인지 판별하기 위한 것입니다. 

 실험 장치의 개요

 자, 이제 본격적으로 아스페가 어떤 꼬라지로 실험장치를 만들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 그림 2]가 실험의 개요도 입니다. 가운데에는 광자 발생기가 있고, 좌측과 우측에 <갑> ,<을> 이라는 이름을 가진 편광기가 있습니다. 광자 발생기는 광자를 하나씩 양 옆으로 쏩니다. 정말로 하나씩 쏘냐구요? 예, 정말로 그렇습니다. 광자발생기는 칼슘 이온이 칼슘 원자로 환원(산화의 반댓말) 될 때 광자가 정확히 두 개 방출되는 현상을 이용한 것입니다. 칼슘이온 을 딱 한개씩만 칼슘원자로 변환하면 서로 '얽혀있는' 광자 두개가 뿅 하고 반대방향으로 날아가게 됩니다. 여기서 얽혀있다는 것은 어떤 속성의 값이 서로 정반대라는 것입니다. 마치 앞에서 두 입자 쌍의 운동량과 위치가 크기는 같고 부호가 서로 반대이듯이 말이지요. 얽혀있는 광자의 경우, 한 쪽의 편광각이 90 이라면 다른쪽은 무조건 0 이어야합니다. 
 이제 <갑> 과 <을> 이라고 이름붙인 동그란 편광기를 보죠. 이 편광기에는 레버가 하나 있습니다. [그림 2] 에서 원 안의 직선이 레버의 방향이에요. 레버 자체는 하나인데, 설정 가능한 방향이 A, B, C 세가지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레버를 어느 쪽으로 설정하느냐에 따라서 편광기의 각도가 달라진다고 보면 됩니다. 고등학교 때 편광기를 만져보신 분은 더 쉽게 이해가 될꺼라 믿습니다. 그림에서는 A 가 12시 방향, B 가 7시 반 방향, C 가 4시 반 방향으로 설정되어있지만, 꼭 그럴필요는 없고, 그냥 A, B, C 가 각각 120 도 씩 차이가 나기만 하면 되요. 이 점에 있어서 <갑> <을> 모두 동일합니다. 

 이제 가운데의 광자 발생기에서는 칼슘이온이 환원 되면서 서로 얽힌 광자들이 만들어지고, 이들은  <갑> 과 <을> 을 향해 날아갑니다. <갑> <을> 편광기는 A, B, C 셋 중 한 방향으로 셋팅이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앞에서 말했듯이 광자의 편광각은 편광기를 어떤 각도로 놓든지 0도 아니면 90도 로 측정됩니다. 때문에 <갑> 과 <을> 을  어떤 방향으로 셋팅하건간에 하여간 그 결과는 0 아니면 90이 나올겁니다. 중요한건 어떻게 나오건간에 <갑> 과 <을> 의 값은 서로 반대여야 한다는 것입니다.(이게 '얽혀있다'는 말의 구체적인 의미입니다.) 예를 들면 [그림 3] 처럼 말이지요. 만약 <갑> 과 <을> 이 모두 A 방향으로 셋팅되어있다면, 갑은 90, 을은 0 이 나올 것이고 등등. 다른 방향으로 세팅되어있다면 또 다른 조합이 만들어지겠죠. 
 아스페가 실시한 실험이란, <갑> 과 <을> 의 방향을 랜덤으로 돌려가면서, 광자 발생기로부터 나오는 광자의 편광을 측정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실험이 알아내고자 하는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Q : <갑> 과 <을>이 서로 다른 편광각을 측정해낼 확률은 얼마인가? 


[ 그림 2]의 실험장치를 제대로 이해하셨다면 아시겠지만, 이 질문에는 두 가지의 확률적 요소가 있습니다. 하나는 광자의 편광각이 특정한 각도의 편광필터에 대해 특정한 확률로 0도 혹은 90도의 편광각으로 측정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양자역학적인 확률입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랜덤으로 A, B, C 세 방향 중 하나로 <갑> 과 <을> 세팅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조작하는 확률로서, A, B, C 가 나올 확률이 각각 1/3 에 수렴하도록 무작위로 돌리는 것입니다. 이 두 요소에 의해 질문 Q 에 대한 대답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아인슈타인이 제시한 <국소적 결정론> 의 예상 대답과, 양자역학의 대답이 서로 다릅니다.(이것을 증명한 사람이 벨입니다.) 그러니깐 실험에 의해 어떤 것이 옳은지 결판이 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 국소적 결정론의 예상 답안을 한번 살펴보기로 합시다. 

 국소적 결정론의 예상 

 답안을 작성하기 위해서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기본 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1. A, B, C 세 방향은 우리가 랜덤하게 조정하는 것이므로 각각 1/3 의 확률을 지닌다. 
2. 동일한 방향에 대해, <갑> 과 <을> 의 측정값은 서로 반대여야한다. 

1 번은 아스페가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니깐 그가 성실하다면 당연히 참일테고, 2번은 얽힌 광자쌍에 관해 실험적으로 관찰된 '사실' 입니다.
 한편 국소적 결정론은 여기에 한가지 조건을 추가합니다. 

3. A, B, C 각 방향에 대한 편광각은 이미 정해져있다.  

 국소적 결정론은 A, B, C 에 대한 편광각이 이미 정해져있다고 말하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정해질 수 있는지 그 가능한 경우를 다 생각해보면 됩니다. 한편 A, B, C 의 방향에 대한 편광각은, 실험적으로 제시되는 것인데 우리는 간편하게 [그림 3] 처럼 가정하고 생각하면 됩니다. 물론 다른 방식으로도 놓을 수 있죠. 하지만 어떤 식으로 해도 결과는 다 마찬가지입니다. (궁금하면 직접 해봐도 됩니다.)

 이제 이 세 조건들 하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림 3]을 보면서 확인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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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번   <갑> (방향, 편광각)  |  <을> (방향, 편광각) |  <값> 과 <을>의 편광값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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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 90                        A, 0                                 달라요
(2)             A, 90                        B, 0                                 달라요
(3)             A, 90                        C, 90                               같은데?
(4)             B, 90                        A, 0                                 달라요
(5)             B, 90                        B, 0                                 달라요
(6)             B, 90                        C, 90                               같은데?
(7)             C, 0                          A, 0                                 같은데? 
(8)             C, 0                          B, 0                                 같은데?
(9)             C, 0                          C, 90                                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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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시다시피  9가지 경우의 수가 나왔습니다. 이 중 <갑> 과 <을> 이 다른 경우는 (1), (2), (4), (5),(9) 의 5 가지 입니다. 총 9 가지의 경우의 수 중에서 <갑> 과 <을> 이 다른 결과를 낼 경우의 수는 5가지 이므로, 질문 Q, 즉 <갑> 과 <을> 이 서로 다른 측정값을 가질 확률은 5/9 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국소적 결정론>의 질문 Q 에 대한 이론적 예상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그림 3] 은 편의상 실험 결과를 그렇게 설정한 것이고, 어떻게 조합하든지간에 각각의 경우에 대해서 질문 Q 에 대한 대답은 5/9 가 됩니다.



 양자역학의 예상 

 양자역학적으로 생각할 때에도 위의 조건들 중 처음 두가지는 당연히 수용해야합니다. 

1. A, B, C 세 방향은 우리가 랜덤하게 조정하는 것이므로 각각 1/3 의 확률을 지닌다. 
2. 동일한 방향에 대해, <갑> 과 <을> 의 측정값은 서로 반대여야한다.

 는 여전히 참입니다.
 그러나 3번은 바꿔야하겠죠. 

3. . A, B, C 각 방향에 대한 편광각은 미리 정해져있지 않으며, 확률진폭의 제곱의 확률로 정해진다.

 그리고 이 경우 역시 [그림 3] 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림 3] 대로 이미 정해져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그림 3]처럼 실험 결과가 나왔다고 가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국소적 결정론과 서로 비교를 할 수 있으니까요. 

 양자역학의 예상은 결과적으로는 매우 간단합니다. 양자역학적으로 계산하면, 
1) "<갑> 과 <을> 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세팅되어있을 때"에는,  그것을 통과한 광자들이 서로 다른 편광각을 갖게 될 확률은 cos²(θ/2) 로 계산됩니다. 이것은 확률 진폭을 제곱한 것입니다. 여기서 θ 는 편광기의 세팅방향간의 각도 차이입니다. 우리는 편광기를 A, B, C 세 방향 중 하나로 고정시켰고, A, B, C 는 서로에 대해 각각 120 도씩 기울어져 있으므로 θ= 120도 가 됩니다. 그래서 질문 Q 에 대한 대답, 즉 <갑> 과 <을> 이 서로 다른 측정값을 내어놓을 확률은 cos²(120/2) = 1/4 이 됩니다. (넓은 쪽 각인 240도로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제곱에 의해 마이너스 부호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2) 한편 "<갑> 과 <을> 이 같은 방향으로 세팅되어있을 때" 에는, 조건 2에 의해 무조건 서로 반대되는 편광값을 지닙니다. 때문에 <갑> 과 <을>이 서로 다른 측정값을 내놓을 확률이 1 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갑> 과 <을> 이 다른 방향으로 세팅되어있을 확률은 당연하게도 2/3 입니다. 같은 방향으로 세팅되어있을 확률은 1/3이구요. 왜냐면 A, B, C 중 두개를 선택하는 경우의 수는 총 9 개인데, 그 중 서로 다를 경우의 수는 6 개고 같은 경우의 수는 3 개 이니까요. 
 따라서 <갑> 과 <을> 이 서로 다른 측정결과를 낼 확률, 즉 질문 Q 에 대한 답변은 다음과 같이 계산됩니다. 

(< 갑>과 <을> 의 방향이 다를 확률) × (다른 방향 하에서 측정 결과가 다를 확률) + (<갑>과 <을>의 방향이 같을 확률) × (같은 방향 하에서 측정 결과가 다를 확률)
= 2/3  × cos²(120/2)  +  1/3 × 1 
= 2/3 × 1/4 + 1/3 
= 1/2 

 그래서 결론은 1/2, 즉 0.5 인 것입니다. 이것이 양자역학의 질문 Q에 대한 이론적 예상입니다. 


 실험 결과 

 아스페의 실험 결과 질문 Q 에 대한 답변은 5/9 가 아니라 정확히 1/2 로 밝혀졌습니다. 아스페 이후에도 더 정교한 실험들이 행해졌고, 역시나 결과는 똑같았습니다.
 양자역학은 살아남았고, 국소적 결정론은 깔끔하게 망했다는 것이지요.

4. 철학적 함축

 과학자들의 결론

 이 실험이 보여주는 것은 <국소적 결정론> 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국소적' 결정론> 은 여전히 부정되지 않았습니다. 국소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즉 정보가 이동하는데에 반드시 물리적 매개체가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을 받아드린다면, 여전히 결정론적으로 생각하면서도 이 모든 상황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국소성은 너무나도 말이 안된다고 여겨지는 개념이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사람이 드뭅니다. 물론 없진 않습니다. 심지어 저명한 물리학자들 중에도 많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결정론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비국소성을 받아드린 것이지요. 이 사람들이 그려내는 우주의 모습은 완전히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체가 되어버립니다. 흔히 "홀리즘" 적이라고 하는, 전체가 하나의 인과틀 안에서 움직이는 그런 세계상이 나오는 것이지요. 사실 황민우씨가 예전에 자주 언급했던 '동시적 인과성' 이란 것이 이런 물리적 기반 위에서 지지될 수 있습니다. 몇 해전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홀로그램 우주> 라는 책 또한 바로 이런 관점에서 서술 된 책입니다. 아직까지 <비국소적 결정론> 과 양자역학 중 어느것이 옳은지 판별할 수 있는 실험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러 사람들이 그런 실험을 심혈을 기울여 설계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제 2의 벨과 아스페가 등장해서 뿅 ~ 하고 문제를 풀어줄지 모르죠. 

 어찌되었건 과학자들은 아스페의 실험 이후, 전통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완전히 비과학적인 두 요소중 하나를 받아들여야만 하게 되었습니다. 비국소성, 비결정론 그 어느 것도 물리학자로서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거든요. 비국소성은 완전 마술을 받아들이는 거나 다름없고, 비결정론은 이 세계를 완전히 결정짓는 물리법칙이 존재하지 않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대다수의 학자들은 후자를 그나마 '덜' 불만족스럽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양자역학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

 제 입장은 - 당연히 아무런 가치가 없겠지만 이것은 제가 쓴 글이므로 첨부하자면 - <비물리적 결정론, 물리적 비결정론> 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저는 물리세계가 '물리적으로' 결정되어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비물리적인 원리에 의해서 완전히 결정되어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백하자면 저 역시 아인슈타인처럼 인격신을 믿게 되었으며, 신이 전지전능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고, 그래서 모든 것은 이미 결정되어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물리적 원리는 신이 세상을 창조하고 유지하는 원리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따라서 물리적 원리만으로는 물리세계를 결정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뭐 그냥 그렇게 생각한다는 겁니다. 

 분명한 것은 만약 세계가 어떤 방식으로든 결정되어있다고 믿는다면, 그 결정 법칙이 물리 법칙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비국소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말이지요. 그러나 비국소성을 받아들인다면, 대체 비물리적 법칙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뭐가 덜 부담스러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안드로메다 성운에 있는 친구하고 순간적인 텔레파시를 주고받을 수 있으며  이 광대한 우주의 조낸 많은 물리적 입자들이 동시적으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전지전능한 신이 물리법칙보다 훨씬 더 풍요로운 법칙으로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요. 사실 동시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시간과 공간을 초월했다는 것인데, 이는 결국 비국소성이 비물리적인 무언가의 존재를 전제하고 있다는 뜻인지도 모르겠군요. 만약 그렇다면 아스페 실험의 궁극적 함축은 아주 간단합니다. : 우주는 아예 결정론적이지 않거나, 만약 결정론적이라면 비물리적인(시공의 제약을 받지 않는) 법칙나 대상이 반드시 존재해야합니다. 




 상병 박수영 
 꺌훅. 역시 승일씨. 잘 읽었습니다. 어쩜 이렇게 이쁘고 깔끔하게 쓰실까.(우러러) 05-07   

 병장 박찬규 
 이승일님 다음 부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측정하는 각도에 따라서 90도와 0도의 '비율' 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죠. 어떤 빛줄기가 있습니다. 이 빛줄기들을 지면에서 어떤 각도, 예를 들면 30도로 기울어져있는 편광기를 통과시켜, 이 중 90도의 편광각(즉 세로)으로 측정된 빛만 다른 경로를 통해 빼 냈다고 해보죠. 이 빛줄기 안에 약 1억개의 광자가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런데 여기서 편광기를 90도 더 기울여서 120도로 기울여놓았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이 1억개의 광자들은 120도의 편광기를 통과하면서 50% 는 0도의 편광각을, 나머지 50%는 90도의 편광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측정됩니다. 똑같은 빛줄기를 210도로 기울인 편광기에 통과시켰다면 1억개의 광자들 모두 0도의 편광각(즉 가로)을 갖는 것으로 측정 될 것입니다. (왜 이런 숫자들이 등장하는지는 나중에 가면 알 수 있어요.) 05-07   

 병장 이승일 
 수영 / 문장이 꼬여서 팔에 쥐났어요. (우어어) 
 찬규 / 리플로 다니깐 선이 깨져서 아래에 답글로 썼습니다. 05-07 * 

 상병 신학수 
 흑. 그게...저 승일씨. 국소적 비결정론이 망했다라는 구절부터 앞뒤가 안맞으면서, 제 머리 속은 한없이 복잡해지는군요. 그러나 그 뒤에도 '국소적 비결정론'이 몇 번 언급되기 때문에, 오타일까 하는 생각 역시 미궁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과감히 오타라고 생각했을 때, 아스페의 실험으로 국소적 결정론 관점의 이론적 예상과 양자역학적 관점의 이론적 예상에서 양자역학의 이론적 예상에 부합하는 결론이 났고, 그로인해 국소적 결정론은 깔끔하게 망했다, 라고 이해했습니다만... 05-07   

 병장 이승일 
 학수 / 헉, 깔끔하게 오타가 났군요 (......) 인형에 눈붙이는 일도 정말 쉬운게 아닌가 봅니다. 

 양자역학 = 국소적 비결정론 
EPR = 국소적 결정론 

 망한건 국소적 결정론. 
 그러나 비국소적 결정론은 여전히 가능하다 정도. 
 결국 가능한 선택지는 국소적 비결정론과 비국소적 결정론 둘 중 하나라는 것. 05-08 * 

 상병 신학수 
 승일씨, 철학적 함축, 과학자들의 결론 부분의 <국소적 비결정론>도 바꿔주세요~. 요기까지 오타인 것 같아서...여기까지 <국소적 비결정론>이라고 적혀있었기 때문에 고때부터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거든요...제가 바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그러나 여기도 <국소적 결정론>이 맞는 것 같군요. 05-08   

 병장 이승일 
 학수 / 바꿨어요. 감사합니다.. 저는 왜 오타쟁이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