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 물가상승과 세금상승 

세금이 고정되어 있을 때, 물가가 상승하면 실제로는 세금이 떨어지는 것이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세액은 물가 상승과 무관하게 항상 100만원이라 하면, 소득은 물가 상승에 따라 함께 오르는 법이니까요. (이자율은 물가 상승에 따라 함께 증가하고, 따라서 최소한 금융소득은 확실히 증가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물가가 상승하면 세금이 증가하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법학을 공부하는 이들이 가장 꺼리는 법이 두 가지 있다. 매년 몇번은 바뀌고 변하여 매년 새로 책을 사야하는 이 두 과목은, 법전이나 판례도 굉장히 방대해서 공부하기도 까다롭지요. 이같은 원성의 한 가운데에서 스스로를 포지셔닝하는 법은 바로 헌법과 세법입니다.

판례 하나하나가 중요하여 참고서적이 계속 변화하는 것일 뿐인 헌법과는 달리 세법은 국가의 세무 정책이나 경제 정책에 따라 법 자체가 변화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2005년 전까지 법인세는 (세법상 1년 순이익이 1억이상인 기업에 한해) 27%가 적용되었지만 2005년 1월 1일부터는 25%가 적용되었지요. 가계소득세율도 IMF를 전후하여 변화하였습니다. 단지 세율의 변화 뿐 아니라 제도 자체가 심각하게 변하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노동소득과 금융소득을 별개로 인식하던 이전까지의 소득세법을 90년대에 대대적으로 개편하여 종합소득을 계산하여 과세하는 제도를 도입하기도 하였고, 비과세나 면세, 감세되는 항목도 때에 따라 심각하게 변하지요. 공부하기는 지극히 힘들고, 변하는 구절은 너무나 많습니다. 세법 공부 한참 하고 있던 어느날 뉴스에서 나온 대통령의 세제 개혁안을 보고 절규했을 정도라면 느낌이 가시려나.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세법은 여전히 경제 현실에 못미치게 변화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세법이 그토록 자주 변하는 것은 그만큼 세법이 변해야할 압력이 크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요. 하지만 법이라는 것이 매 순간순간마다 변화할 수는 없는 것이며, 최소한의 기간(표준과세기간인 1년 이상)을 유지되어야 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예를들어, 경제개발기간에 중화학공업시설의 구축이 필요한데 그 기간 동안 시설을 만들고 있을 기업의 부담이 지극히 높아 설비에 뛰어드는 기업이 없어 이에 대한 조세 특례를 5년간 유지하기로 결정했는데 중화학시설이 5년 이내에 완비되었다면 해당 기업은 부당한 조세 특혜를 받게 되는 셈이랄까요. 일반적으로 경제 현실에 비해 조세 제도는 잘 변하지 않는 편이며, 경제 현실에 비해 조세는 항상 뒤늦게 변화합니다. 경제 현실이 급격히 변화할 때 이는 가장 잘 드러나지요. IMF를 전후하여 각종 자산에 대한 각종 조세들이 변화한 현실에 걸맞지 않아 보였던 문제점들은 심지어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완전히 수선되지 않았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죠. *1 정리하면, 조세 제도는 항시 경제 여건에 대해 상대적으로 늦게 반응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제 여건에 앞서 나갈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역시 경제여건을 그대로 반영한 적확한 반응은 아니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겠네요. *2

이제 비로소 본론에 좀 들어가 봅시다. 조세는 경제지표들의 변화에 대해 상대적으로 둔감하며, 후발적이라고 따라서 가정합니다. 이 경우, 물가 변화에 대해 조세는 단기에 있어서 고정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의 논의에서 조세는 규정된 액수에서 변화하지 않는다고 이해하면 무리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왜, 저런 제목이 달려있는 것일까요. 세금 액수가 변하지 않는다면, 물가가 상승하면 할 수록 실제로는 세금이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우선 일반적인 관점에서 한번 문제를 살펴봅시다. t기에서 t+1기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물가가 두배로 올랐다고 가정해 봅시다. 물가는 화폐적 현상이기때문에 실질변수에는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다만 명목변수에 따라 결정되는 세액은 여전히 고정액인 T이고 실질소득은 a로 그대로 유지되고 있을 것입니다. 실질소비는 c로 변화가 없을 것이고요. 하지만 명목소득은 Pa로 물가가 2배 증가했으므로 명목소득 역시 2배로 승가했을 것이며, 실질소비인 Pc도 2배로 증가했을 것입니다. 저축은 소득과 소비의 차로서 계산하며, 경제학적인 저축은 은행에 예금하는 것 뿐 아니라 소비하지 않고 자산으로 잔류시키는 모든 소득을 포함합니다. 명목저축은 Pa-Pc에서 세금을 제한 것으로 계산할 수 있으며, 따라서 Pa-Pc-T값은 물가가 2배로 상승했을 때 2Pa-2Pc-T가 되므로, 결과적으로 2배 이상으로 증가하게 됩니다. 따라서 물가가 상승하면 세금 납부 후 자산은 물가 상승 이상으로 증가한다고 보는 것이 상식에 보다 가까울 것입니다. 

현실적으로도 그러합니다. 일반적으로 소득세나 법인세, 부가가치세 등 주요한 세금은 현재 소득, 현재 수익, 현재 가격에 대한 비율로서*3 결정됩니다. (개인이 납부하는 세금의 대부분이 이 세 가지 세금에 해당하기는 합니다*4) 하지만 소득공제나, 재산세, 공과금등은 비율이 아닌 정액으로 결정되며, 따라서 물가 상승에 따라 상대적으로 저렴해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소득공제는 물가 상승에 따라 함께 오름으로써 소득세를 절하시키는 효과를 갖습니다) 정액세들의 존재는 인플레이션 현실 하에서 실질적으로 세금 부담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하게 되니까요. 

하지만 물가 상승은 명백히 조세부담을 증가시킵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물가가 2배로 증가했다면, 조세부담은 2배 이상으로 증가한다는 말입니다. 조세부담은 인플레이션 하에서 항상 물가상승율보다 높으며, 우리는 물가가 상승함에 따라 실제 이상으로 더 조세를 지불하게 됩니다. 이는 간단하게 이해 가능합니다. 

국가는 조세징수와 국채발행의 두가지 방식으로 재정을 충당합니다. 현대에 있어서 정부 재정은 조세나 경제 내생요인들과는 비교적 무관하게 결정되지만 최소한 땅파서 메꿀 수는 없는 법이므로, 예산에 해당하는 자산을 어떻게든 충당해야만 공공지출이 성립할 수 있습니다. 

만일 정부가 현재 국채로 100억원의 빚을 지고 있다고 해봅시다. 현재에 해당하는 t시점의 물가지수를 1로 놓고, t+1시기의 물가지수를 2로 생각합시다. 국채는 액면가격으로 크기가 결정되고, 따라서 t시점의 물가수준으로 산하면 국채의 크기는 50억원에 해당합니다. 물가상승에 따라 정부는 조세를 증대시키지 않고서도 사실상 50억원에 해당하는 국채를 환수한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부 수익이 단지 조세와 국채의 두가지 밖에 없다고 할 때, 여기서 나타난 실질수익은 일종의 조세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지요.*5 이를 경제학적으로 인플레이션세라고 부르게 됩니다. 인플레이션을 고려하지 않는 국가채무에 관한 일반 통계들은 따라서 (물가상승이 전세계적인 일반현상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항상 채무를 과대평가하고 있는 셈이 됩니다. 

이같은 모형을 조금 각도를 달리해서 생각해 봅시다. 장기적으로 실질이자율이 높아진다면 또한 어떨까요. 역시, 이자율이 높아져 국가가 지불해야 하는 국채 이자가 많아지므로 재정압박이 심해질 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채권은 이미 액면가치와 액면이자율이 고정되어 있다는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발행한 채권은 시장이자율이 높아짐에 따라 가치가 하락하며 *6 보다 낮은 가격으로 국채를 상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시장 금리의 증가는 우리가 암묵적인 조세를 납부하는 것이 되며, 정부재정의 비율이 높아지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자율이 높아지면 빚이 없고 저축이 많은 사람은 이자율에 따라 더 많은 소득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소득 증가는 이자율 상승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들 모형이 시사하는 중요한 점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경제의 모든 것은 우리 눈에 보이는 것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이면의 효과를 고려했을 때에만 우리는 현상을 제대로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경제와 사회의 모든 현상의 분석은 두개의 머리를 갖고 양쪽을 향해 동시에 달려가는 말을 잡고자 하는 힘겨운 시도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것들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그 겉모습만으로 속단해버리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1. 경제 고도성장기에는 산업 및 금융소득이 상대적으로 급성장하기에 이에 대한 과세를 최대한 투명화하는데 조세 정책의 중심이 기울었는데, 이같은 소득 성장이 중단된 IMF 이후에는 상대적으로 투명화가 덜 이루어진 부동산 등의 자산에 부당하게 조세 특혜가 주어지는 셈이 되어 '유인의 왜곡'이 일어나 부동산 촉진이 이뤄졌고, 적절한 과세는 이 정권에 들어서 비로소 연구되고 있습니다. 

*2. 조세가 경제여건을 적확히 반영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도 합니다. 경제를 효율적으로 가동하게 하고 선택의 왜곡이 존재하지 않게 하는 유일한 조세는 중립세입니다. 하지만 중립세는 당연히도 소득재분배 기능을 도리어 거꾸로 해버리지요. (모든 이에게서 동일한 액수를 징수하는 것은 기존의 소득구조를 공고화합니다) '경제 여건을 정확히 반영한 조세'라는 것은 매우 다양한 가치판단이 동시에 개입되어야 하는 일이고, 따라서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다만 '비교적 현재 다수 의견의 가치판단에 가까운 조세'를 선택하는 것이 가능할 뿐이고, 지금 논의는 그나마 이것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3. 현행 조세제도 하에서 소득세는 현재 8~35%가 적용되며, 법인세는 13~25%, 부가가치세는 영세나 면세 대상자를 제외한 모든 제품에 일괄 10%가 적용되고 있다. 
소득세의 경우를 예를 들어 보다 자세히 설명하면, 소득이 1천만원 미만인 자는 소득액의 8%를 납부하게 되어 있고, 소득이 1천만원에서 4천만원 사이인 자는 80만원 + 1천만원 초과소득에 대해 17%를 적용합니다. 4천만원에서 8천만원 사이인자는 590만원 + 4천만원 초과소득에 26%, 8천만원 초과 소득자는 1630만원 + 8천만원 초과 소득에 대해 35%를 적용 받습니다. 간단히 예를들어, 한국표준형인 4,500만원을 버는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4인가족 기준 평균 소득임) 성인의 경우 지불해야하는 소득세는 590만원 + 500만원x26% = 7,200,000이 됩니다. 

*4. 한국 현행 조세제도 하에서 정부 조세수입 중 약 70%(02년 기준 부가가치세 30.4%, 법인세 18.5%, 소득세 18.5%)가 소득세와 법인세, 부가가치세입니다. 

*5. 물가가 상승했을 때 채무가 절감되는 것은 기업도 마찬가지이지만 기업은 이를 영업 이익으로 생각하지 않고 특수이익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기업의 경우와는 달리, 정부는 전 경제를 대상으로 수입을 취하게 됩니다. 단지 물가가 상승하였다면 경제 전체의 실질변수는 전혀 변하지 않는데, 그럼에도 정부의 수입이 증대되었다면 이는 경제 전체로부터 암묵적인 조세를 거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됩니다. 조세를 증대시켜 국채를 갚는 것이나, 물가를 증대되어 저절로 빚이 탕감되는 것이나 마찬가지 효과를 같게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6. 채권의 현재가치는 이자액과 상환 원금의 현재가치를 구하는 공식에 따라 결정됩니다. 만일 10만원 짜리인 채권이 1년후 10% 이자와 원금을 상환하는 조건으로 발행되었다면, 이 채권의 1년 후 가치는 11만원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시장이자율이 5%라고 한다면 이 채권의 현재가치는 11만원을 5%로 할인한 가격인 (11만원/1.05=104762) 10만4천7백6십2원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주체는 이 채권을 104,762보다 비싼 가격에는 사지 않을 것이며, 104,762보다 낮은 가격으로 판매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 채권의 현재 가치는 104,762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