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 문화 - 붉은원숭이와 붉은얼굴원숭이의 이야기
일병 정영목 05-31 19:07 | HIT :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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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님의 '마크 트웨인- 삶과 죽음의 수수께끼'에서 덧글 중에 파생되어 나온 글입니다. 마음에 들어서 예전부터 위키에 스크랩해 둔 것인데, 폭력 문화에 고민하시는 분들께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 폭력과 문화 ==
동물행동학자 프란스 드 발은 폭력과 문화를 연구하기 위해 다소 공격적이고 시끄러운 '붉은원숭이' 새뀌들과 인내심 많고 온순한 '붉은얼굴원숭이' 새뀌들을 함께 지내게 했습니다. 놀랍게도 붉은원숭이가 처음에는 두려워했습니다. 붉은얼굴원숭이의 몸집이 조금 더 크기도 했지만, 붉은원숭이는 붉은얼굴원숭이의 부드러운 성격 속에 숨어 있는 강인함을 눈치 챘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붉은원숭이는 겁먹은 듯 방의 천장에 꼭 붙어 있는 반면, 붉은얼굴원숭이는 새로운 환경을 침착하게 둘러보았습니다. 몇 분이 지나자, 몇몇 붉은원숭이가 여전히 같은 장소에서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다소 거칠게 웅얼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붉은얼굴원숭이를 위협했습니다. 만약 이것이 시험이었다면, 붉은얼굴원숭이가 보인 반응은 붉은원숭이들의 의표를 찌르는 것이었습니다. 서열이 높은 붉은원숭이였다면 그러한 도전에 즉각 응답을 했을 테지만, 붉은얼굴원숭이는 그냥 무시했습니다. 심지어 쳐다보지도 않았죠. 서열이 높은 동료가 자신의 지위를 강조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 이러한 상황은 붉은원숭이로서는 난생 처음 겪는 일이었을 겁니다.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붉은원숭이는 이러한 교훈을 천 번이 넘게 배웠고, 부드러운 압제자와 자주 화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물리적 공격 행위는 아주 예외적으로 일어났고, 전체 분위기는 이완되었죠. 다섯 달이 끝나갈 무렵, 어린 원숭이들은 함께 놀면서 털을 골라 주고 서로 섞여 부둥켜안고 잤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붉은원숭이가 붉은얼굴원숭이와 거의 비슷할 정도로 화해 기술을 발달시켰다는 사실입니다. 실험이 끝나고 나서 두 종을 서로 분리시킨 뒤에도, 이들 붉은원숭이는 싸우고 나서 친근한 태도로 다가가고 털고르기를 해주는 행동을 보통 붉은원숭이보다 세 배나 더 많이 보였습니다. 연구팀은 농담 삼아 이들을 '개선된 새로운' 붉은원숭이라고 불렀습니다.
올리브비비도 붉은원숭이 못지않게 사납기로 유명합니다. 이들은 절대 플라워 파워(Flower Power: 히피의 신조와 생활 방식, 정치 운동을 나타내는 슬로건으로 '사랑과 평화'를 의미함)의 길을 걸어갈 것으로 기대할 수 없는 영장류이지만, 케냐의 미사이마라에 사는 한 집단에서 바로 그러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미국 영장류학자 로버트 새폴스키가 관찰하던 한 수컷 무리는 매일 근처에 있는 관광객 숙소의 쓰레기장으로 가기 위해 다른 무리의 세력권을 지나갔습니다. 몸집이 아주 크고 싸움을 잘하는 수컷만이 그 곳을 통과할 수 있었죠. 쓰레기장에서 얻을 수 있는 전리품이 아주 풍성했기 때문에, 그런 고생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람들이 소결핵에 감염된 고기를 버렸고, 그것을 먹은 비비는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새폴스키가 연구하던 무리 중에서 공격적 성향이 강한 수컷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그러가 갑자기 집단 전체가 냉혹한 비비 세계에 어울리지 않게 화합과 평화가 넘치는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이 사실 자체는 그다지 놀라운 게 못됩니다. 불량배들이 사라지고 나자, 폭력 사건의 발생 건수가 크게 줄어든 것뿐입니다. 그렇지만 10년이 지나고 나서도 이러한 양상이 계속된 것은 아주 흥미롭습니다. 10년 전에 무리를 구성하고 있던 수컷은 이제 한 마리도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수컷 비비는 사춘기가 되면 다른 무리로 옮겨 가기 때문에, 젊은 수컷은 항상 다른 무리에 들어오게 됩니다. 이처럼 수컷들이 완전히 교체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무리는 평화주의의 관용을 계속 유지하고 털고르기 행동이 늘어났으며 스트레스도 현저하게 낮아졌습니다. 이러한 전통이 어떻게 유지될 수 있었는지는 불분명합니다. 암컷 비비는 평생 동안 무리 속에서 계속 살아가기 때문에, 이들의 행동에 열쇠가 숨어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암컷들이 새로운 수컷을 받아들일 때 선택적인 태도를 보였거나, 수컷들과 털고르기 행동을 더 많이 해서 그들의 성질을 온순하게 만듦으로써 처음의 이완된 분위기를 계속 이어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MINAPEKO:224-227}
== 주의 사항 ==
그렇다고, 폭력의 문화를 바꾸고 싶다고, '요주의 인물들'에게 소결핵 걸린 고기를 주진 마십시오. 그네들도 사실 알고 보면 불쌍하신 분들입니다.
== 참고 문헌 ==
* MINAPEKO - 프란스 드 발 지음. 이충호 옮김. 내 안의 유인원. 김영사. 12. 2005.
* 병장 김청하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6-01 17:38)
상병 구본성
오홋 재밌네요. 제 생각에는 두번째 사례에서 암컷들이 수컷을 받아들일 때 선택적인 태도를 보였을 듯 합니다. 자신이 자라난 문화 풍토가 유순한 성향을 지녔다면, 그곳에서 자라난 어린 비비들도 그런 성향을 학습-모방 하게 되고 그것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할 듯 합니다. 집단에서 문화의 전달이 잘 이뤄지려면 내집단의 속성을 선호해야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듯 합니다.
뇌의 발달을 놓고 스티븐 핑커같은 진화심리학을 주장하는 학자들과 스티븐 쿼츠같은 문화생물학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입장에 차이를 지니고 있다고 하던데, 위의 사례는 후자쪽에 손을 들어주는 것 같네요. 05-31
병장 이승일
와아- 정말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인간이 원숭이보다 낫다는 전제 하에 <가지로> 를 외치겠습니다. 05-31 *
병장 김청하
헤에, 흥미로운 사례군요. 10년은 너무 짧기에 유전적인 변화가 그들에게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0에 가깝습니다. 물론 소규모 집단에서 특정 부류가 집중적으로 선택되었다면 해당 유전자의 확산이 조금 더 빨랐을 수는 있습니다만, 올리브비비 암컷이 자연상태에서 '평화적인 수컷'을 선택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애초에 수컷들의 호전성은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발달한 것인데요. 유전적으로 평화적인 유전자가 선택될 가능성이 낮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인간 사회라면 모르겠지만요.결국 위 사례는 문화와 학습에 관련된 변화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중요한건, 폭력없는 사회는 가능하다는 것이겠죠. 우리에겐 그럴 자유가 있구요. 06-01
일병 김준호
저도 <가지로>를 외칩니다. 정말 너무 재밌고 좋은 사례네요. 06-01
상병 김대윤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제가 원숭이보다 나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며 <가지로>노래 부릅니다. 06-01
병장 박수영
아하하하핫. 너무 재밌어요. <가지로> 06-01
병장 강세희
인간의 본성 또한 절대적이거나 유전적인 것이 아니라 환경의 영향하에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훌륭한 예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06-01
일병 정영목
네, 폭력없는 사회는 가능합니다. 우리는 좌절해서는 안됩니다. 특히 '이곳'에서는요. 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