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들은 항상 서로 접촉하고 교환관계를 맺어왔습니다. 최근 '문화의 세계화', 한류의 힘입은 '문화산업의 팽창' 등은 이런 문화의 운동구조를 더욱 강화시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미디어의 발달은 선진국가의 문화산물을 대량으로 유포하고 보급하여 이념적, 상품적 가치를 획득하는 데 일조를 하고 있습니다. 문화의 세계화는 한편으로 지역적으로 고립된 문화와 사람들의 만남을 도와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량의 교환과 커뮤니케이션 체계에 힘입어 문화산업이 세계화됨으로써 문화시장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문화의 세계화는 양면성을 지닙니다. 한편으로는 다양한 문화를 접촉하게 해주는 단초로서 기능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의 논리로 문화의 민주적 측면과 역사적 가치, 고유성을 재단해버립니다. 문제는 문화의 세계화가 제시하는 믿음이 어떠한 허위의식으로 작동하는지, 그리고 그 의미를 어떻게 해체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문화의 세계화라는 말이 산업화되고 상품화된 문화적 재화들을 세계 곳곳에 고루 분배하는 것으로 해석되지만, 저를 놀라게 하는 것은 세계적 유통 앞에서 벌어지는 국가간, 그리고 한 국가 안 사회적 계층간 엄청난 불평등입니다. 또한 문화의 세계화는 점차 문화들을 하나의 모델로 융합시켜 나갈 것이라는 기대를 만들었지만, 세계화는 기대하던 융합을 생산해내지 않았습니다. 본질적으로 문화는 특수하고 지역적인 것이어서 파급된 문화는 각각의 지역에서 고유한 문화와 가치를 통해 변형되거나 재구성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세계화를 배경으로 문화의 혼성이 벌어집니다. 문화 교류와 접촉이 증가하면서 지역의 문화는 실제적인 변형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한국의 젊은 층에서 속출하던 머리 염색은 더 이상 '검은 눈의 검은 머리'라는 통념으로 동양인의 정체성을 바라보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오히려 유럽에서는 머리를 염색한 동양인을 보면 일본사람 아니면 한국사람이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또한 아시아에서 열풍을 일으킨다는 '한류' 현상에서도 어떤 측면을 한국적인 것으로 간주할 것인지는 분명치 않아도, 그것을 분명 한국의 것으로 생각합니다. 홍콩 영화의 경우 더 이상 전통적인 의미의 중국 문화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혼성의 성격 자체를 홍콩의 문화적 정체성으로 일치시키게 됩니다. 

하지만 문제는 문화의 혼성이 진정한 의미의 문화적 힘과 가치를 상실할 경우입니다. 문화의 혼성은 그 자체가 새로운 문화 현실임에도 대개는 상업주의와 결합하면서 상품화되기 쉬운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에겐 머리 염색을 하는 젊은이들이 어떤 문화적 견해를 갖는지, 한류 열풍에서 어떤 문화적 의미를 찾을 수 있는지, 동서양 문화의 혼성이 어떤 새로운 문화적 지표를 제공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은 결여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단일하고 고정된 정체성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문화의 혼성이라는 현실에 직면하여 어떻게 새로운 문화적 의미를 찾을 것인지의 문제는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개인을 억압하는 전체주의를 거부하고 진정한 개인의 해방을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지젝은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본질과 가상이라는 이분법을 없앰으로써 '보통 사람들'의 평범하고도 구체적인 문화적 현상으로부터 사회변혁에 대한 희망의 추동력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문화의 혼성은 '중심'의 원리를 뒤집는 역할, 즉 고급문화의 권위와 문화적 위계질서를 깨고 문화적 가치 판단에서 '주변(마이너리티)'의 개념을 새롭게 해석하고 살리며, 문화의 차이와 다양성을 헤아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의 양상은 한국의 단일민족을 중시하는 폐쇄주의적 문화와 병행하여 이민문화 혹은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차별받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 분들을 담거나, 이성애 중심의 가치관에 따라 주변으로 밀렸던 동성애 문제를 복권시키거나, 대중문화와 하위문화의 요소들을 또다른 미학과 언어로서 활용하는 것들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문화의 혼성과 정체성 논의가 얼마나 깊이 그리고 넓게 전개되었는지를 돌이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문화란 역동적인 것이어서 결코 멈춰 있는 고정 개념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할 때, 결국 중요한 것은 다양한 문화의 체험과 교류에 있을 것입니다. 한국에서 제안되던 '가장 한국적인 것'들이 사실은 진정한 문화의 차이를 제대로 체득하지 못한 어설픈 상태에서 혼합과 '짬뽕'의 상태로 가는 것은 아닌지 점검하자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문화의 혼성이라는 현실을 외면한 채 '배타적' 정체성 개념을 고집하지 않고, 또한 정체성 상실의 상업주의적 양상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반대해야 합니다. 그 후에 우리들은 현실의 문화에 대해 어떤 시선을 던지고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 지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