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문학이란 무엇인가, 장 폴 사르트르  
일병 홍명교   2009-03-16 17:52:43, 조회: 167, 추천:0 

<문학이란 무엇인가>, 장 폴 사르트르 / 민음사

사르트르의 저작들 중 이 책을 먼저 고른 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추측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전후 바로 발표한 이 책이 어쩌면 이후 사르트르 실존주의 철학의 지표같은 역할을 하게 되어 실존주의 공부와 사르트르 소설을 읽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고, 또 궁에 와서 소설은 열심히 읽어왔지만 문학이론에 대해서는 목마름을 느끼기도 했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이 책은 “누구를 위하여 쓰는가”, “무엇에 대해 써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 쓰는가”, 그리고 1947년 프랑스 작가들의 상황에 대한 글로 나누어집니다. 요컨대 문학의 테마, 목적, 독자에 대해서 본질적으로 파고들려는 노력을 기울인 텍스트로, 대단히 정치적이고 정세적이며, 서유럽, 그 중에서도 프랑스에서의 상황이라는 지역적 조건, 그리고 당파적인 입장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에게는 별 도리 없이 거부감이 생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그 당파성을 논리 안에 개진시키는 데 있어서 논리적으로나 철학적으로 무리하는 감이 종종 없잖아 있어 보입니다. 그래서 이론적 치밀성으로 따지자면 흠 잡힐 곳도 많은 텍스트입니다. 따라서 이 텍스트의 새겨둘 점들에 있어서 이러한 오류의 지점들을 견지한 가운데 텍스트에 접근해야 건질 수 있는 것들을 건질 수 있을 것입니다. (3. 9 ~ 13)

우선 이 책은 사르트르가 다른 L파 작가들과 함께 창간했던 <현대>라는 잡지에 실은 ‘참여문학’에 대한 공격적 선언으로부터 시작된 ‘참여문학론’과 맥을 같이 하며, 그의 문학관, 예술관이 총괄적으로 담겨져 있는 책입니다. 또한 존재론에 입각해 당위론을 펼치는 사르트르의 정치적이며 철학적인 입장이 담겨져 있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이 책은 공격지점이 명확합니다. 우선은 아라공과 브르통을 위시한 당대의 초현실주의자들로 사르트르는 프랑스 콩사탕 등과 함께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자신들의 예술론에 입각해 파괴적인 예술-행동을 벌이는 초현실주의자들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합니다. 이는 프랑스 콩사탕과 스탈린주의에 대한 정치적 비판과도 맞닿아있습니다. 2차세계대전 전후의 소비에트가 택한 정치적 반대파들에 대한 숙청들, 트로츠키를 비롯해 L익반대파 등을 숙청해 내부의 라이벌들을 제거해 이론의 정체를 낳은 것, 그리고 소비에트 국내의 생산율 증진과 미국을 대표로한 자본주의 진영과의 경쟁에서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한 ‘자본주의적’ 정책들과 이런 소비에트에 대한 프랑스 콩사탕의 추종이 더 이상 사회주의자들조차 그들을 지지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초현실주의자들은 이러한 정세적 조건들과 무관하게 자신들의 예술적인 야심으로 그들과 일시적 동맹을 맺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르트르의 반대편 공격 방향은 자신에게 소비에트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망령을 덧씌워 비판하는 작가들에 대한 비판입니다. 이에 대해 사르트르는 자신은 소비에트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결코 지지하지 않으며 자신이 주창하는 참여문학론은 예술 중에서도 문학, 그리고 문학 중에서도 ‘산문 문학’에 한정되어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주장을 밑받침하기 위해 사르트는 다소 무리하게 산문과 시의 근원론적 구분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모더니즘 이후 경계와 구분짓기가 무의미해진 오늘날의 상황에서 볼 때 이러한 분절적인 구분 짓기는 논리적으로 오류를 낳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실제로 사르트르 자신도 이후 이런 입장을 몇차례 번복하기도 합니다. 사르트르의 참여문학론에 무한한 애정을 느끼는 이들이라면, 여기에서 해명되지 못한 ‘시’에 대한 지점들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정리를 시도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렇듯 이 텍스트는 대단히 공격적이며 당파적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책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느꼈고, 또 머리를 도끼로 얻어 맞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없이 무뎌지고 느슨해졌던 ‘그것’에 대한 꿈과 열망이 다시 살아오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사르트르 역시 자신이 스스로 정해놓은 입장의 목표지점으로 치닫기 위해 논리적으로 무리한 점들이 있었음을 수긍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결함들이 <문학이란 무엇인가>와 사르트르의 참여문학론을 폄훼하는 결정적 근거가 될 순 없을 것입니다. 이런 식의 당위론과 공격적 입장은 절대적 기준이 아닌, 정세적 기준을 고려해 읽어야 하며, 그것을 현재적으로 수용/보완하는 게 오늘날의 독자들(그리고 동시에 창작자이기도 한.)인 우리들의 ‘책임’(저자는 이 책에서 그만의 독자론과 작가론을 펼치면서 독자가 이미 하나의 책과 만나게 되면 그에 따른 독자로서의 책임이 생긴다고 말합니다.)일 것입니다. 계속 쓰다보면 밑도 끝도 없을 것 같고, 아예 논문 하나 쓰는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논의지점이 많아, 이 정도에서 정리하고자 합니다. 문학의 역할론에 대해 고민하시는 분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1
15:36:09 

 

병장 김민규 
  일단 노트에 태그부터 적어둡니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샤르트르. 민음사. 
워낙 양서를 많이 번역하는 출판사인 듯, 그간 어지간히 친하지 않았던 것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일단 읽고서 논의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단계인 것 같아 다른 이야기들을 더 꺼내기가 마땅치 않네요. 조만간에 도전해야겠습니다. 
좁고, 얕고, 유희 위주의 읽기의 한계는 여기서 또한번 드러나고 마는군요. 고맙습니다. 2009-03-16
17:58:27
  

 

상병 김형태 
  마찬가지로 부끄럽습니다. 정말 다른말보다 부끄러운 마음이 먼저 드는군요. 2009-03-16
20:13:04
  

 

병장 김대운 
  책마을에 오고 나서 명교님 덕분에 요즘 독서 후기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저에게는 '책을 읽어주는 남자' 같은 느낌. 히히. 
하지만 열심히 읽어도 제가 이해하기에는 많이 버겁네요.(땀) 
그래서 공부하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2009-03-16
20:24:48
  

 

병장 이동열 
  명교님께서 꾸준히 글을 써주시는 덕에 저는 꾸준히 자극이 되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그 어느때보다 즐거운 지적 자극- 그만큼 저의 부족함이 느껴지지만 이를 통해 성장해나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아무튼 결론은 아직 댓글을 달기에는 수련이 더욱 필요하다인 듯합니다(울음) 2009-03-17
09:39:39
  

 

상병 박원익 
  아, '이 책'을 아직 읽지 못했다는 것이 매우 부끄럽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정독을 해야겠군요. 사르트르는 아직 저에게 낯선 사람인데, 이 책으로 일종의 '워밍업'이 될련지요? 2009-03-17
09:40:25
  

 

일병 홍명교 
  김민규, 김형태/ 
부끄럽다니요. 아닙니다. 제가 다 부끄럽네요. 저도 그저 스스로 정해놓은 지도를 따라서 읽고 제 나름의 느낌을 갖고 어렵게 어렵게 소화해나갈 뿐이예요. 2009-03-17
13:15:18
  

 

일병 홍명교 
  박원익/ 
이 책은 굉장히 논쟁적인 성격이 강하고 전후의 문제들에 대해 집중하는 텍스트이어서 아무래도 이 책보다는 <존재와 무>가 더 낫지 않을까 싶어요. 2009-03-17
13:20:50
  

 

병장 이재륜 
  음. 이거 초록색 띠가 전면에 나와있고 사르트르 얼굴 사진이 붙어있는 그 책 맞죠? 
저랑 같은 책이시네요(笑) 

저는 그냥 순수한 의도에서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이 책을 읽었으나, 그건 너무도 안일한 바램이었지요. 

홍명교님 말씀대로, 정말 공격적이고도 논쟁의 성격이 강한 책이에요. 
하지만 작가 자신의 주장을 강조하고 포장하기 위해 강조된 공격성과 논쟁이 아니라서 그리 거슬리거나 답답하진 않았어요. 

그래도 분명, 쉽게 읽어 내리기엔 많이 아픈 책이었어요. 

좋은 독서후기 잘 읽고 갑니다.(笑) 2009-03-17
15:11:59
  

 

병장 김동욱 
  고진이 <근대문학의 종언>에서, 사르트르의 이 책에서 나온 "문학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영구혁명 안에 있는 사회의 주체성/주관성이다."라는 문장은 인용한 것이 언뜻 머리에 스칩니다. 그리고 참여문학이 예술 중에서 '산문문학'에 한정되어 있다는 언급은, 고진이 근대문학이란 결국에 소설이라는 말과 공명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사르트르에게 고진이 영향을 받은 것이겠지만. 

이 정도의 당파성을 견지한 채로 "누구를 위하여 쓰는가”, “무엇에 대해 써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 쓰는가”에 대한 고민으로 나온 소설/비평들이 근래에 들어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차라리 그만한 당파성이 오히려 그립기도 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