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숲을 거닐다] 문학은 죽지 않는다 
 
 
 
 
연초에 국방부에서 배부한 진중문고를 보며 좋은 책들이 많아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단호한 의지로 책을 빼든 것이 장영희 교수님의 <문학의 숲을 거닐다>였다.

중학교 때였던가.. 내 영어교과서의 저자로 장영희 교수님을 만났는데 에세이집에서 다시 만나보게 되다니.. 감회가 새롭다. 칼럼과 TV만평으로 매체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장영희 교수님은 카랑 카랑한 목소리와 젖은 눈망울로 인간만이 가진 사랑과 용기에 마지막 희망을 둔 이 시대의 시민교수님이다. 이 책은 단지 교수님이 추천하는 문학들의 소개나 느낌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그 문학을 통해 교수님의 삶과 사회를 향한 외침을 엿볼 수 있다. (지금부터 장영희 교수님이 아니라 장영희 선생님으로 정정해서 쓰려고 한다. 그게 더 친근하고 어울리는 표현인 것 같다)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윌리 로우맨처럼 큰돈을 버는 일도 신문에 이름이 나는 일도 없다. 가끔씩 ‘인생역전’ 의 허무맹랑한 꿈도 꾸어 보지만, 매일 매일 가족을 위해 더러워도 허리 굽히고 손 비비며 성실하게 살아간다.
그래서 오늘도 아버지들은 가슴속에 꿈 하나 숨기고 자신을 팔기 위해 무거운 가방 들고 정글 같은 세상으로 나간다.   <46p>


누군가 나에게 “아버지를 존경하느냐?” 고 물어본 적이 있다.
나는 주저 없이 “나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가장 좋은 친구이자 라이벌이다.” 고 말했다. 경찰관이신 나의 아버지는 강직하고 청렴하시며 신의를 지키는 사람이었다. 가족들에게 늘 엄하셨고 그로 인해 난 매도 많이 맞았다. 아버지는 직업상 집에 많이 계실 수 없었다. 매일 근무에, 조사에.. 어쩔 때는 한 달에 집에 온전히 계신 것이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 가정적인 남편을 바라던 어머니는 이런 아버지를 보고 이혼을 결심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아버지였지만 나는 아버지에 대한 좋은 추억들이 많았다. 그중 내가 아주 어릴 때 생일 날, 난 아버지께 모형 오토바이를 탄 교통경찰관 장난감을 사달라고 졸랐다. 그때 당시 아버지는 말단 순경이었고 변변치 않는 봉급은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리기에 버거웠다. 내가 사달라고 했던 장난감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좀 비쌌던 것 같다. 아버지는 몇 번을 망설였고 어머니는 철없는 나를 보며 혼을 냈다. 난 아직도 그때의 아버지의 표정이 생각난다. ‘사주고는 싶은데 돈을 쓰기가 어렵고 혹시 사랑하는 아들이 상처받으면 어떡하나’ 하는 씁쓸한 표정. 무척 어렸던 나에게 아버지의 그런 모습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왜 그 기억은 잊지 않고 기억 하는지.. 결국 아버지는 그 장난감을 사주셨다. 나는 마냥 좋아했지만 몇 달 뒤 그 장난감은 나의 심한 장난(?)으로 인해 박살이 났다. 지금은 아버지가 나름대로 출세를 하셔서 그런 일은 보기 힘들어도 아침마다 아버지를 보면 가족들과 자신의 위해 생존의 전쟁터로 나가시는 모습이 고귀하고 숭고하게 느껴진다. 아버지는 그런 나에게 미소를 지으며 ‘내 것이 다 너의 것이다.’ 고 말씀하신다. ...가끔 나는 생각한다. 철없던 나는 과연 부모님을 진정으로 사랑한 것일까? 아니면 부모님이 주시는 돈과 물질적인 채움 때문에 사랑한 것일까? 나는 책을 읽다가 이 부분에서 내 눈은 젖어버렸다.


사랑하는 일은 남의 생명을 지켜 주는 일이고,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내 생명을 지키는 일이 기본 조건이다. 사는 게 힘들다고, 왜 날 못살게 구느냐고 그렇게 보란 듯이 죽어버리면,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 채 남아 있는 사람들이 사랑할 몫도 조금씩 앗아가는 것이다.   <68p ~ 69p> 


나는 남들보다 죽음을 일찍 경험했다.
그 죽음은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의 죽음이었다.
정말 친하게 지냈던 친구였고 전날까지 함께 있었는데 다음날 그가 이제 세상에 없다는 것, 믿을 수 없고 믿고 싶지도 않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나는 두 명의 친구를 보내버렸다. 신께 원망도 하고 죽어버린 그들에게도 하소연을 했다. 왜 그럴 수밖에 없었냐고.. 신과 죽은 친구들은 말이 없다. 언제부턴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져 집으로 들어가기 전 나는 이런 말을 한다. 

“부탁이 있어.. 나보다 먼저 죽지는 마.”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두고 죽는 것은 또 다른 살인행위이다. 
나를 지키고 사랑하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해주는 이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오늘도 힘겨운 하루를 넘기면서 생각한다. 그리고 나를 기다려주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힘들지만 살아야겠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운명은 인간의 것이지만 생명은 신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을 권리는 없고, 그 무슨 명분을 갖다 붙인다 해도 ‘정의로운’ 전쟁은 없다. 한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그의 꿈, 소망, 사랑을 송두리째 없애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125p>


지금 이 글을 쓰는 신분이 군인이다 보니 이런 글에 눈이 간다. 
이 세상에 공식적이면서 합법적으로 사람을 죽여도 죄가 아닌 곳이 전쟁터이다. 오직 찌름과 저격이 난무하고 서로 간의 죽임이 있을 뿐 어설픈 동정이나 윤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 사람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은 대체 어디서 주어진 권력일까? 나는 사람의 생명은 어느 것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한다. 고로 나는 전쟁과 사형제를 반대한다. 한 가지 덧붙여서 단지 생명을 빼앗는 행위는 물리적 도구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과 의지로도 가능하다. 장영희 선생님 말씀을 기억하라. 운명은 인간의 것이지만 생명은 신의 것이다. 


그리고 삶이 너무나 힘들다고 생각될 때, 나는 고통 속에서도 투혼을 가지고 인내하는 용기, 하나의 목표를 위해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능력과 재능을 발휘해 포기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싸우는 너의 삶의 방식을 믿는다.   <156p> 졸업식


졸업은 통상적 의미로 새로운 시작이다.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을 받아들여야 하는 졸업. 
사회라는 운동장에서 골대에 골을 넣기 위한 힘겨운 전진을 해야 하는 졸업.
장영희 선생님은 졸업하는 제자들에게 포기하지 말고 정정당당한 삶의 방식을 부탁한다.
대학생활하면서 느꼈던 무한한 도전의식과 열정.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고 도전보다는 안정을, 열정보다는 게으름과 요령으로 다가온다. 가끔 세상과 타협하려는 나를 다스릴 때 장영희 선생님의 쓴 이 글이 생각날 것 같다. 


어차피 인생은 장애물 경기이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작은 드라마의 연속이고, 장애물 하나 뛰어 넘고 이젠 됐다고 안도의 한숨을 몰아쉴 때면 생각지도 않았던 또 다른 장애물이 나타난다. 그 장애가 신체장애이든, 인간관계 장애이든, 돈이 없는 장애이든, 돈이 너무 많은 장애이든 (정부 요직에 오르기 위해 많은 돈을 이리저리 감추거나 먹은 돈을 안 먹었다고 오리발 내밀어야 하는 것도 분명 장애이다) - 아무리 권력 있고 부를 누리는 사람이라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인데 왜 유독 신체장애에만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가.   <228p> 


신체 장애인에 대한 민감한 사회에서 선생님은 신체장애에 유독 인위적인 동정과 부담스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에 의문을 던진다. 신체적인 장애가 아닌 인격적인 장애가 즐비한 이 시대에 정상인이 과연 존재할까? 나는 살면서 가장 인간다운 인간을 만나고 싶다. 할 수 있다면 내가 되고 싶다. 난 사회가 일반적으로 정의한 장애를 거부한다.    


이제 내 삶의 중턱을 훌쩍 넘어버렸는데, 나는 지금껏 ‘마음이 외로울 때 ‘너뿐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한 사람’ 을 가지는 게, 그토록 아름답게 보였던 ‘높고 편한 자리’ 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왔다.   <301p> 


뒤돌아보면 후회스럽고 아쉬운 것이 인생이다. 
무엇을 얻은 것도 아니고 이룬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잃은 것과 잊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내가 추구했던 모든 것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거쳐 갔는가. 나는 그들에게 어떤 의미였는가? 원하는 것을 얻었던 들 가장 중요한 것을 잃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문득 군 입대 하기 전에 선배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훈련소 들어갈 때 뒤를 돌아봐봐. 그게 이 험한 세상에 있는 유일한 너의 편이다.”

잘해야지, 잘해야지 하면서 못하는 내가 부끄러울 뿐이다.
내가 가져야 할 사람은 멀리에 있지 않다.. 


...윌리엄 포크너는 말했었다.
“문학은 인간이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는가를 가르친다.”
그렇다. 문학은 삶의 용기를, 사랑을, 인간다운 삶을 가르친다. 문학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치열한 삶을, 그들의 투쟁을, 그리고 그들의 승리를 나는 배우고 가르쳤다. 문학의 힘이 단지 허상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도 나는 다시 일어날 것이다.   <318p>


문학에 대한 선생님의 의지와 열정을 보여주는 글이다.
선생님이 말씀하신대로 문학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도구이고 시대를 깨우치는 힘이다. 문학의 힘을 믿는 선생님을 보며 잃어버린 이 시대의 선각자를 보는 듯 하다.
자기의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믿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으로 어떤 어려움과 시련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 
정말 문학자 장영희 선생님의 모든 것을 표현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문학이 죽었다는 말이 들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많은 문학자들이 문학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말을 늘여놓지만 시대는 변했고 사람도 변했다. 단적인 예로 문학이 만들고 다져온 윤리가 무너지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 아직 문학에 희망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장영희 선생님 같은 문학자들이 단호한 신념으로 묵묵히 자신들의 할 일을 찾아 몸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들어준 것은 문학의 힘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리가 문란해지고 감성은 빛을 잃는 이 시대 사람들에 그 어느 때보다 문학의 힘이 절실하다. 오늘도 문학을 접하며 문학의 힘을 체험하고 있는 나는 문학의 힘을 믿는다.


완독날짜  :  2006.  3.  13.  월  꽃샘추위  
* 병장 김동환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04-09 17:19) 

  
 
 
 
상병 송희석 (2006/03/18 13:24:27)

정말 멋진 독서후기 입니다. 전 미리 밝힙니다. 이글은 3월 독서후기 이라고! 설사 이글보다 뛰어난 글이 나타날지언정 전 이글을 최고로 뽑을것입니다.    
 
 
병장 정광훈 (2006/03/18 23:01:46)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이 책을 읽고 장영희 교수님 꼭 만나보고 싶었었는데, 
참 사람을 맑게 해주는 글솜씨를 가지고 계신것 같죠(웃음)    
 
 
상병 정효훤 (2006/03/19 17:40:11)

저도 꼭꼭 메모했습니다. 
주옥같은 글이 참 많은것 같습니다.    
 
 
 상병 박진우 (2006/03/20 01:00:10)

아. 서범님의 독특한 스타일의 후기. 
정말 닮고 싶은데요?    
 
 
병장 주현탁 (2006/03/20 14:27:10)

'왜 유독 신체장애에만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가'이 부분이 인상에 남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평등과 배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정말이지 좋은 글이 많은 책입니다.    
 
 
상병 김성준 (2006/04/13 09:16:33)

곳곳에 정말 문학에 숲을 거닐다 라는 제목이 어울릴 정도로 
많은양의 책을 소개해주신..장영희 교수님 이죠~    
 
 
상병 곽지훈 (2006/04/18 08:52:06)

정말.... 
닮고 싶은, 멋진, 와닿는 후기 입니다.    
 
 
병장 박찬훈 (2006/04/26 13:10:42)

후임이 추천해줘서 별생각 없이 들었다가 다 읽고 감명깊다는 생각이 들었던 책이었던것 같습니다. 
우연찮은 계기로 좋은 책을 읽었던것 같습니다. 쓰신글... 공감이 많이되네요.    
 
 
상병 정창호 (2006/04/30 15:55:23)

저도 동기의 추천으로 읽어 본 책인데,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꼭 담아 두고 싶은, 간직하고 싶은 글귀들이 많았던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