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늦었다! 후다닥, 쿵........................
복도에서 현관으로 통하는 문이 조금 밀리는가 싶더니 이내 튕겨서 내 이마에 부딪힌다. '아 x발....' 안경은 반쯤 흘러내려 있고 먼저 문을 나간 후임 녀석들은 키득키득 웃고 있다. 이게 어찌된 영문인가 싶어 밀었던 유리문을 보니 '당기시오'라고 써있다.
급한 마음에 당겨야 하는 문을 밀었다가 봉변을 당한 것이다.
내가 잘못한 것이려니 생각하다가도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든다.
'아니, 아무리 당기시오 라고 적혀있는 문이기로서니 급해서 한 번쯤 밀었다고 해서 이런 굴욕을 당하게 하다니...'
문득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섭섭함을 넘어서 저 문이 괘씸해 보인다.
아무리 사물이지만 융통성이 부족하다는 생각에서이다.
인간이란 누구나 실수를 하게 마련이고 급하면 당겨야 하는 문도 밀어서 열 수 있고, 밀어야 하는 문도 당겨서 열 경우도 생기는 법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라는 우리네 속담은 나같이 성질 급한 사람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아무리 문이 수동적인 사물이라지만 어느 정도 여유는 갖춰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 난 당기시오 문이지만 저 사람은 지금 급하니까 밀어서 열더라도 까짓 용서해주지 뭐." 라고 말할 수 있는 여유와 융통성을 갖추지 못한 문이 미워 보이고 못나 보인다.
사람이란 모름지기 실수를 하기도 하고 조금씩은 원칙을 어겨가며 사는 법이다(적어도 나같은 사람은). 정해진 원칙대로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정이 없어 보이고 상황에 맞는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내지 못하기도 한다.
모든 일에는 어느 정도 실수와 오차 범위 정도는 넉넉히 받아줄 여유가 필요하고 또한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여차여차 해야 하는 일도 응차응차해서 해결하는 융통성도 발휘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저 문도 여간 불쌍한 것이 아니다. 당겨야만 열리도록 문을 만든 그 누군가 때문에 괜히 나같이 속좁은 사람에게 미움을 받게 되고 발로 한 방 걷어차인 것 아닌가. 그 누군가가 조금만 여유와 융통성을 갖고 문을 만들었다면 괜히 미움받을 일도, 한 대 걷어차일 일도 없었을텐데.
아하, 너도 나처럼 피해자구나.
그래. 모든 것에 앞서서 여유와 융통성을 조금만 고려한다면 이 세상은 조금 더 넉넉해지겠구나-라고 생각하며 괜스레 문에게 미안해진다. 아까 걷어차서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