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된 버릇 
 병장 진규언 02-26 11:37 | HIT : 261 



 아주 못된 버릇을 가지고 있다. 혼자만의 아집이려니... 싶다가도 왠지 분명 다른 누군가도 이와같은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는 위안을 바라보지만 그렇다 해도 이건 너무 못된 것 같다.

1. 이미 습득한 지식을 아주 허섭스런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습성이다. 이것은 좋은 말로 하면 겸손함이라니, 겸양이라하니, 등의 말로 포장될 순 있겠다. 내가 아는 지식의 미천한 줄은 알지만 그 극소량의 지식 따위조차도 그것이라 칭하기도 부끄러울 만치 아무짝에도 쓰레기로 결론내린다. 이것이 무어 문제일까 ? 심각한 문제다. 왜냐면, 이것이 타인이 행해온 과정들 까지 폄하시켜버리는 우를 범할 수 있으니까. 어째서 그러할까. 어차피, 내가 듣고,보고,배우는 과정들은 누군가가 밟아간... 나보다 앞선 세대의 사람들이, 혹은 동시대의 사람들이 보다 앞서간 발자욱의 다름 아닐터. 이 과정에서 내가 배우는(다른말로 남들이 걸어간) 것들조차 그 가치를 까 내려버리는 것이 문제이다. 알고 있는 지식은(알아 버린 지식은) 아는 순간 이미, 그 가치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과정들까지 빛이 바래버린다. 참 못됐다. 

2. 이를테면 주식에 대해 무지한 내가 있다. 그런데 책 몇권 쯤을 읽고, 경제지 몇을 들썩이며 알았다고 나불댄다. 그래서 얼마간 후에 증권계좌를 연다. 종목 선택을 한다. 오래도록 기다린다. 수익율이 나온다. 그런데 이 과정속에서 이미 증권계좌를 연 시점은... 나에게 있어 '주식 투자'가 더이상 재테크의 빠꼼이들이 하는 행위가 아닌 것이다. 그저, 나 따위조차도 할 수 있는 가장 소극적인 투자행위가 되버리며... 투자 철학 따위는 존재하지 않고 대박 요행만을 바라는 투기꾼의 그것이 되어버린다. 이곳 책마을에도 우오... 하며 경탄에 마지 않는 지식을 소유한 사람이 있다. 그래서, 그가 추천한 책을 읽어본다. 미천한 배경지식수준에 그가 추천한 책을 읽을라치면 분명 그가 투여한 시간보다는 두세배, 혹은 서너배는 오래 걸리지 싶다. 그래도 그 쥐어짜내는 과정을 거쳐 한 권을 완독해내면 그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는다. 어차피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책 몇권도 안되는 개뿔 쓸데없는 지식일뿐인데, 그런 잡스러운 지식만이 늘었을 뿐이다. 지식이라고 말할수조차 없는... 고로 앎을 늘려 간다는 사실은 다시 말해 앎에 대한 기쁨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적어도 못된 버릇을 가진 나에게는...

3. 경험또한 마찬가지이다. 얼마전 연말 TV에서는 때가 때이니 만큼, 불우이웃돕기가 어쩌고 저쩌고, 세계 기아가 어쩌니 저쩌니, 연탄불 어쩌고 무탁독거노인 어쩌고 저쩌고 흘러나온다. 오호라. 갑자기 구세군 냄비가 눈에 들어오며... 뭔가 생각이 번쩍 한다. '그래, 다음에 잠시 나들이 가면 난 꼭 저 냄비에 돈을 넣고 말리라. 특히나 군복을 입고 그러면 있어보이지 않을까. 참 착한 군인아저씨...' 그래서 나들이 가자마자 한 일이 강변역에 있는 구세군의 빨간 냄비에 1,000원짜리 한장을 샤릉 하고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 여인네에게 말도 건냈다. "좋은 일 하시네요..." 하고 멋지게 돌아섰다. 그리고 세 걸음 정도 눈물 날정도의 뿌듯함으로 난 멋진 군인'오빠'겠지. 아하, 역시나 오래가지 못한다. 나들이 복귀 후 다시 TV를 틀었을때, 나와 같은 군인아저씨가 눈에 들어온다. 냄새난다. 역겹다. 내가 원했던게 저런거였나 ? 대학 신입생때부터 막연히 혼자만의 배낭여행을 꿈꿨다. 떠났다. 질펀하게 필리핀으로, 싱가포르로, 말레이로, 태국으로... 동남아 투어했다. 물론 좋았다. 그러나 그뿐이다. 왜냐면 '내'가 했으니까. 내가 한건 더이상 신비롭지도 않고, 흥분되지도 않는 그저그런 경험들일뿐이니까. 타인의 가슴뛰는 여행이야기를 들어도 시큰둥하다. 타인의 경험들까지 나의 경험의 원 안에 집어넣는 쓰레기 짓을 허용해버린다. 경험이 중요한데... 중요하지가 않다. 왜냐면 내가 경험해버렸으니까.

4. 공간이 공간인만큼 책에 대한 이야기도 다시금 조금더 해야한다. 서점에 대한 이야기도 해야한다. 노엄 촘스키가 대단한 언어학자란다. 세계의 지성이란다. 그래서 그의 이름에는 간지가 좔좔 흐른다. 촘스키 촘스키. 당대 최고의 언어학자라나 뭐라나. 그래서 그가 저술한 책 한권쯤, 공동 집필한 책 한권쯤 읽어본다. 그의 통찰력에 감동하고 세계를 보는 통섭적 안목에 감탄에 마지 않는다. 사실... 세계화의 이면을 비판할때면(더 나은 세계화를 이야기할 때면) 눈물도 찔끔나더라. 이제... 누군가 촘스키를 이야기하면 '에이 그거 나조차도 아는 사람인데...' 라고 책 두권 읽어보고 결정지어 버린다. 종로타워 반디앤루니스가 좋다더라. 그래서 갔다. 책을 보고 책을 보고 책을 사고 책을 샀다. 그래 그뿐이다. 더이상 좋은 공간도 아니며 책을 읽기에 편한 공간도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내가 경험한 것' 그 자체만으로도 그 지식과 경험은 전연 가치 없는 그것이 되어버린다. 뭐 이러냐.

5. 못된 버릇을 가지고 있다. 아주 극단적이다. 내가 모르고 있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내가 해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 엄청난 신격화가 이루어 진다. 눈이 번쩍 뜨인다. 내가 구사하지 못하는 문학적 언어, 맛깔스러운 일상적 언어, 전문적 식견, 등 모든 분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이다. 그러나 그뿐이다. 그것들이 내 영향력의 원 안에 들어오게 되면... 그것들은 '겨우 이뿐인가' '나 따위도 알고 경험한 것뿐인데'라는 식의 허섭스러운 것들로 변신한다... 타인에 대하여 공격적으로 '진화'하기도 하고 남을 깔보는 우월함으로 자리하기도 한다. 반면 단 0.1g이라도 나와 다른 점을 발견하고(아니 의식적으로 다른점을 찾으려 애쓴다) 배울라 치면, 그것(혹은 그 인간)의 광명함은 이루 말로 표현 못한다. 그래서 정말이지 '못된' 버릇이다. 

6. 무섭기도 하다. 내가 1년 전에 읽은 책을 지금에서야 잡고 있는 누군가를 보면 일종의 쾌감이 든다. 더불어 단연코 완전 생소한 책들을 들고 있는 자, 읽고 있는 자를 보면 경탄에 마지 않는다. "희야 저렇게까지" 그래서 무섭고도 못된 버릇이다.

 참. 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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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병 이주형 
 말을 무섭게 해서 그렇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고 있는 부분 아닐까 싶어요. 02-26   

 상병 김지민 
 이런 주제로 이토록 치열하게 반성하기란 정말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항상 규언님에게선 채찍질의 냄새가 납니다. 
SM 이란 소리는 아닙니다.(..) 
 그런데 규언님이 좋습니다. 
( 이게 무슨...) 02-26   

 병장 정준엽 
1 은 
[ 강의]라는 책에서 말했듯, 유목민의 사회에서 살아가기 때문이 아닐까요? 과거의 지식이 폐기되는 것은 유목사회에서나 일어나는 일입니다. 노인이 존경받지 않는 사회가 된 것도 같은 이유겠지요. 

2 는. 
 앎에 대한 기쁨을 버리십시오, 기쁨을 버리면 나쁜 버릇은 자연히 사라질 것입니다. 

3 은. 
 타인의 경험과 나의 경험을 구별하지 않으면 될 것입니다. 소유를 구별하지 않을 때 기쁨이 오겠죠. 

4. 는. 
 같은 맥락입니다. 공간 역시 경험함으로써 나의 것으로 만들지 말고 구분하지 마십시오. 

5. 6.... 
 정말 못된 버릇을 가지고 계시군요! 
 정말 못된 버릇을 가지고 계시군요! 
 정말 못된 버릇을 가지고 계시군요! 02-26   

 상병 이지훈 
 허헛. 참 못 되셨습니다. 규언님이 당연시 알고계시는 것들 모르는 사람들 많은데..(여기 이렇게 리플을 달고있는 무지한 어린양을 포함) 
 제가 보기에는 규언님의 글 속에서 충분히 다 느껴져요. 많은 책을 섭렵하신 분이구나 하고 . 
 빨리 그 버릇 고치시길~~ (웃음) 02-26   

 상병 진규언 
 주형 / 저만 유별난줄 알았다면 뻥이겠죠. 
 지민 / 절 때려주세요(...?) 
 준엽 / 조언 고맙습니다. 쉽지만은 않을것 같아요.. 
 지훈 / 그게... 그게 아니에요, 당연시 알고 있는건.. 당연한거고 아닌건 아니니까요 

 이곳에 와서 참 다행인건, 제가 물욕, 성욕만 차고 넘쳐 흐르는줄 알았는데.. 그에 비하여 부족하지 않을만큼(성욕 빼고) '지'에 대한 욕구가 많음을 알았어요. 뭐... 그 '知'가 어떤 것이냐는 더 지켜봐야 겠지만... (웃음) 02-26   

 병장 정준엽 
 못된 버릇을 고쳐야 한다는 것도 구별할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그건 그렇고 점심은 드셨는지? 02-26   

 상병 진규언 
 네, 잔뜩 먹었지요.. 덕분에, 할일은 쌓였는데 졸음이 밀려와요... 02-26   

 병장 성태식 
 규언 //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다가 GG치고 공부중입니다. (엉엉) 02-26   

 상병 권당우 
 예전에 책마을에 처음와서, 사람들이 써놓은 서평을 보고, 몇권의 책을 골라서 본적이 있지요. 
 루이저린제의 생의한가운데와 그리스인조르바, 그리고 뉴욕3부작이었는데요. 
 제가 저 3권을 달달 읽자 마자 갑자기 제가 있는곳에서 책꽤나 잡았다는 사람들사이에 
 저 3권을 읽는 유행이 번지더군요..(;) 

 불과 일주일전만 해도 완전 몰랐던 책이었는데, 줄줄이 사람들이 읽고있는모습을 보자, 
 그때 머리속에 드는 생각이.. 

` 음 좋은책이지. 나쁘지 않은 책이야..음음' (이 뉘앙스를 전달할 수가!!?!) 02-27   

 상병 진규언 
 태식 / 높은 차원의 경지에 이르신분 같아요..(웃음) 

 당우 / 그 뉘앙스를..조금은 알것 같습니다. 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