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웃는 생활관을 위하여. 
 
 
 
 
모두가 웃는 생활관을 위하여.




- 이 글을 곧 상,병장이 될 일,이병들과 이미 생활관의 선임자 라인을 장악한 상,병장들에게, 대한민국 국군 사병들에게 바칩니다. -

나름대로 나는 꽤나 오랜기간 막내생활을 해왔다. 부대 전체적으로 봤을 때 후임은 점점 들어왔으나 부서가 만만했는지, 부서 후임으로 들어온 전입병들은 타부서로 팔려가기 일쑤였다. 그래서 막내가 들어왔다고 좋아하던 것도 잠시였다. 며칠 뒤 그 후임은 다른 부서로 팔려갔고 나는 여전히 막내였다. 덕분에 부서의 동기 한명과 같이 9개월동안 부서의 막내로서 잡다한 모든 일을 도맡았었다.

해뜨는 일출시간에 맞춰서 국기를 올려야 하는 탓에 여름엔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국기를 올리고 다시 잔 적도 있었고, 아침, 점심, 저녁 하루종일 식사당번을 나간 적도 있었고, 선임자 대신 당직을 서느라 4일 연속 당직을 선 적도 있었고, 회식할 때 음식은 남기지 않고 모두 먹어야 했고, 모든 작업원 차출엔 참가해야했으며, 이병땐 여가시간에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건 상상할수도 없었고, 목소리는 항상 커야했고, 행동은 빨라야 했고, 모르는 것이 없어야했다. 막내 자리는 그래서 힘들었다.

막내 생활을 오래한 만큼 보상도 컸다. 순식간에 후임들이 부서로 전입해들어왔고, 기수 차이가 많이 나던 선임들은 모두 전역을 했다. 덕분에 타부대, 타부서 동기들보다 먼저 부서 최고 선임자 자리를 꿰어찰 수 있었다. 그 때문인지, 나중에 최고 선임이 되면 없애고 싶은 악습 목록을 적어서였는지는 몰라도 나는 부대의 악습에 대한 기억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막내 생활을 9개월동안 해보니 처음에 이해도 안되던 것들이 나중에 짬이 차니까 이해가 되어졌고, 해야 되는 일과 기합을 위해 존재하는 일이 명확히 구분되어졌다. -여기서 짬이 찼다는 말은 군생활의 기간이 어느정도 오래되었음을 뜻한다. 전입 몇 개월만에 후임이 수십명 전입해서 끗발이 찼다는 말과는 다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기합을 위해 존재하는 악습을 하나씩 없애버렸다.

자기가 한 만큼 여가시간은 생기는 법이었다. 그러나 여가시간엔 TV를 보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이병때는 작업을 해도 늑장피우기 일쑤였다. 일찍 끝나도 좋은게 없으니 당연했다. 그래서 다 없애버렸다.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하고싶은 게 있으면 다 하라고 했다. 그렇게 풀어주고나니 후임들은 오히려 더 기합든 모습으로 열심을 다했다.

악습이란 이유없이 단지 짬이 찌글하다거나 선임자들이 눈꼴시어서 하지 못하게 하거나, 해야하는 모든 일을 지칭했다. 

선입자의 빨래를 대신하는게 그러했고, 음악, 책에 대한 제제를 가하는게 그러했고, 깔깔이와 귀마개가 충분히 남는데도 입거나 쓰지 못하게 하는게 그러했다. 신세대 장병으로 지칭되는 병사들이 생활하는 민주군대에서도 폭압과 이유없는 똥기합이 여전했었다. 기초군기는 당연히 지켜야했지만 그 외에 쓰잘데기 없는 악습과 똥기합은 반드시 철폐되어야 할 존재였다.

그러나 이 땅의 수많은 병장님들이 그러하듯 악습은 여전하고 폭력과 가혹행위는 그치질 않았다. 입대하고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길래 올챙이적 생각 못하는 건가 3,4년이 지난것도 아니다. 단지, 길게는 1년반, 짧게는 1년쯤 지났을 뿐이다. 이병때는 그렇게 억울하고 하기 싫었던 일을 단지 ‘나도 했으니까 너도 해’라는 논리로 나이 차이도 얼마 안나는 -심지어 나보다 나이 많은- 후임들에게 강요하는게 옳다고 생각하는가 언제까지고 환경탓만 하고 환경이 바뀌길 기다리고 있는 건가 전역만이 살길이다. 아무리 외쳐봤자 환경에 영향을 받는 당신은 감히 말하건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졸업을 하고 회사에 입사해서도 부장이나 과장을 욕하고, 자신이 부장이나 과장이 되어서 똑같은 이유로 신입들에게 뒤에서 욕먹고. 군대나 사회나 별반 다르지 않는 자명한 사실이다.

너무 많이 들어서 따분하고, 지루하고, 당연한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시작해야한다. 전역하고 시작하면 늦다. 지금 자신이 생활하는 생활관의 악습을 철폐하고 필요한 미덕과 관습만을 남겨두어 모두가 웃는 그런 생활관으로 변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환경에 영향을 받는 인간이 되기란 쉽다. 단지 타성에 젖어 주관과 정체성따윈 상실하고 멍하니 살아가면 되는 거니깐. 

그러나 환경을 변화시키는 인간이 되기란 쉽지않다. 그 일은 마치 흐르는 강물에 자신 또한 구성원인 강물로 녹아들어 흐름을 바꾸는 일과 맞먹는 어려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연어가 되어 강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일이 차라리 더 쉬울지 모른다. 강물이 되어 강의 흐름을 바꾸는 일은 강물에 녹아든 자신이 한결같아야하고, 같은 흐름의 강물을 혼자의 힘으로 다른 방향을 추구하도록 해야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자기 주장의 일관성, 전체 의견을 아우를수 있는 리더십, 방향에 대한 확신이 담보되어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병장님들에게 가장 부족한건 일관성이다. -일,이,상병님들도 새겨 듣길.-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병때 한 병장의 행동을 보고 ‘난 나중에 저렇게 하지 않아야지.’ 다짐을 했건만 막상 자기가 병장으로 진급하고 나면 이병때 욕했던 병장의 하던 짓을 고대로 따라하는 자신의 모습 말이다. 

그러한 행동의 뒤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이병때의 간절함, 억울함, 강한 열망. 모든 것을 잊거나, 희석되어져 욕망의 크기는 생각나지 않고 오로지 욕망의 종류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에 당면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돌고 돈다. 악습은 여전하고, 게으른 선임을 보고 욕하던 이병때는 잊고 자신도 귀차니즘과 게으름에 빠져든다.

잊지 않으려면 적는게 상책이다. 빠뜨리지 말고 적어라. 이병때 당했던 모멸감, 억하심정, 모든 감정의 크기와 종류를 개인 일기장이나 수첩에 꼼꼼히 적어라. 나중에 들여다봐도 그 마음이 느껴지게끔. 그리고 없애고 싶은 악습 또한 같이 적는거다. 나중에 상병쯤 달고나서 써놓은걸 처음부터 훑어보라. 그러면 보인다. 어떤게 없앨수 있는 건지, 어떤게 하지 말아야할 행동인지. 보이면 행동하면 된다. 
강물의 흐름을 바꾸는데 있어서 필요한 리더십은 병장으로 진급하면 자연스레 보장되어지고, 악습은 없어져야 한다는 확신이 있다. 모자란 일관성은 ‘기록’으로 채워졌으니 이제 흐름은 변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없애려고 했다. 그랬더니 복병은 의외의 곳에 있었다. 나보다 후임이었으나 최고 선임자 레벨급의 한 녀석이 이렇게 말하며 그걸 없래는건 좀 그렇지 않냐고 물었다. ‘우리가 다 했었던 건데 걔들은 안하면 안되지 않냐.’ 라며. 한마디로 눈꼴사납다는거다. 우리때는 그런거 다 해가며 안좋은 꼴 당했었는데 억울하다면서.

당신이 그런 악습을 강요하지 않아도 군대는 충분히 힘들고 어려운 곳이다. 처음으로 부모와 긴 시간동안 떨어져 있어야 하고, 알바보다 힘든 과업이 있고, 집에서 먹던 밥이 그리워지고, 무한정한 자유가 보장되던 신자유주의의 사회가 그립고, 여자친구가 간절하고, 외부의 손길이 하나라도 아쉬운 곳. 그런 곳이 군대다. -물론 좋은 점도 있지만 여기선 군대의 어려운 점만 이야기 하고자 한다. 난 살고싶다.- 그런데 당신은 악습을 강요하면서 후임들이 그나마 쉴 수 있는 생활관에서의 여가시간까지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서로 얼굴 구겨가며. 선임자는 화내고, 후임자는 불평하고.

조금만 관용적인 사람이 되자. 당신이 기합을 안잡아도 후임들은 처음 접하는 군대사회라는 것에 휘둘려 힘들어하고 있다. 힘들어 하는 후임들의 생일을 매번 챙겨줘봤는가 후임들의 집안 사정을 다 알고 있는가 후임이 뭐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대화를 해보려고 해봤는가 매번 이렇게 따뜻한 격려와 관심을 보여주지도 못할거라면 조금이라도 그들이 숨통을 트일수 있도록 풀어주자. 당신도 이병때 ‘신발신발’ 거리면서 짜증냈던 악습이지 않은가.

간혹 악습을 없애놓고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더라. ‘내가 옛날에는’ 으로 시작되는 일장연설들. 과거와 단절된 쿨한 사회를 살다가 입대를 한 우리네 세대들은 옛날 이야기만나오면 몸서리치며 짜증내곤한다. 특히 그게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잔소리의 분위기에서 나오면 더 그렇게 반응한다. 과거는 유물로만 남아있고, 지루한 것이고, 잊어버리고 싶은 촌스런 추억일뿐이다. 후임들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인상부터 바뀐다. ‘옛날에 그랬는데 어쩌라고.’ 라던가, ‘또 그 소리야.’ 혹은 ‘어련하시겠어요.’ 라는 표정. 모두가 웃는 생활관을 만들고 악습을 철폐한 당신의 그 거들먹거림 때문에 후임들은 당신의 성과를 간과해버린다. 그런 후임들의 태도에 당신은 서운해지고 그와 더불어 생활관의 전체적인 분위기도 냉랭해진다.

물론 당신은 그런 말할 자격이 있다. 그러나 그 들먹거림은 상대와 상황을 가려가며 해야한다. 당신이 악습철폐한 것을 알고있는 세대들에게는 말을 아껴라. 그들은 당신이 그렇게 못박아가며 반복하지 않아도 충분히 고마워하고 있으니깐. 그럴바에야 차라리 더 없앨 악습이 없나 찾아보는게 당신이 원하는 인정받는 선임이 되는 지름길이다. 또, 잔소리가 될 것같은 상황에선 말을 아껴라. 당신이 악습을 철폐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신병들에게 말을 할때도 마찬가지다. 지나가는 투로, 장난식으로 은근히 자신이 악습을 철폐했다고 드러내라. 당신이 얘기하지 않아도 그 사실을 아는 후임들에게 익히 들어서 알고있을테니.


초절정 인기의 일본드라마 춤추는 대수사선에서 본청에 근무하는 관료인 무로이 신지가  현장에서 범죄를 소탕하는 형사 아오시마에게 이렇게 말한다.

‘변화시키려면 높은 곳으로 올라오라.’ 라고.

힘없는 자리에서 아무리 열정적으로 개겨도 자신이 속한 집단은 변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난 돌이 정맞는다고 피해를 보는건 당신이다. 아오시마가 그랬듯이. 힘을 아끼고, 나중을 위해 그때의 감정을 축적해라. 그리고 끝까지 기억하고 있어라. 힘있는 자리에 올라서고나면 당시의 열정이 변질되어 차가워졌거나, 지워져있다. 식어버린 열정탓인지, 뇌를 굳게 만드는 환경 탓인지. 진리에 대한 확신 역시 흐릿해져버린다. ‘이걸 바꿔서 뭘 하나.’ 라는.

모두가 웃는 생활관은 당신-모든 계급의-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생활관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것은 집단논리도 아니고, 부대내규도 아니고 생활관에 살고있는 사람들에게 달려있는 거니깐. 권력을 가질, 권력을 가진 당신들은 할수있다. 즐거운 군생활을 위하여 모두가 웃는 생활관을 만드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평소에 좋아하는 명언 하나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지금까지 철학자는 세계를 해석했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바꾸는 일이다. K.M 

  
 
 
 
병장 주영준 (20060808 091427)

Thesis on Feurbach No. 11 by K. M. 
Philosophists yet have inspected the world. But the great importance is, to change the world 
진우씨 요즘 너무 잘 달려. 부럽다 못해 무서운데. 누구말마따나 슬럼프에서 땅을 찼구나. 
- 
'모두가 웃는 생활관은 당신-모든 계급의-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려있다.'라니. 아아.    
 
 
상병 김현동 (20060808 092417)

붐 업.    
 
 
병장 안대섭 (20060808 102057)

어제 봤는데. 춤추는 대수사선 특별판, '용의자, 무로이 신지!!'    
 
 
병장 고계영 (20060808 122326)

중요한 것은 아직도 나는 과 막내하는 거~ 하하하. 
저는 오늘도 '모두가 웃는 생활관을 위하여' 시간 날때면 웃찾사의 '언행일치'의 솨~솨솨. 춤을 추곤 합니다. 중독성이 강하다죠. 흠. 잘 읽었습니다~    
 
 
병장 이영기 (20060808 125415)

후후후. 꺽상까지 융을 빨던 나로서는 (.........) 
이런 글을 쓰고는 싶으나, 무섭군요. (......)    
 
 
병장 박종민 (20060808 205629)

다 바꿔버려야겠다고 마음굳게 먹고 자대로 복귀했더니 
이건 군대가 아니라 완전, 

보이스카웃 되었더군요. (...) 

제가 요즘 느끼는건데, 
전반적으로 요즘 일,이등병들 잘 합니다. 
풀어주면 알아서 자기할 일들 잘들 알아서 하고. 
그래서 괜히 애들 보면 맛있는것도 사주고 싶고 그런데, 
친하게 지내고 싶고. 실제로 한달간 후임들한테 열심히 한다고 했더니, 
미안하다 싶을 정도로 잘하더라구요. 저한테. (나만 그렇게 생각하나 응 훈재씨) 

단체생활이라 어쩔 수 없는지, 
꼭 안갈군다는 걸 이용해서 지 한 몸 편해보려고 뺑끼(진우씨 말대로 사이드까는)부리는 애들이 꼭 있더라구요. 그런 애들을 볼때면 정말 저 이등병때처럼 죽도록 갈궈버리고 싶었습니다. 

해야할 건 해야되는데, 
무조건 들이대는 애들 정말이지 에휴.    
 
 
병장 박형주 (20060808 214458)

터치 안하고 다 떠넘기는 초현실주의 방법도 있습니다.    
 
 
병장 이훈재 (20060808 232957)

종민  그게 다 내가 악습을 없애준 덕분 아니겠어 (우쭐) TV를 다같이 본다고 해서, 닳아없어지는게 아니고, 이등병이 책을 본다 해서, 내가 볼 책이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 책이 풍성해지지), '악습'은 정말이지 아무 생각없이 그저 받아들이니까 세습되는거잖아. 게다가 궂은 일, 하기 싫지만 누군가 해야하는 단순한 일을 후임병이 맡아 하는 것이라는 건, 군에 온, 생활관 아이들 모두가 충분히 공감하고 있으니까. 그러니 갈구고 싶을 때는 갈궈. 너그러운 마음이 바탕에 깔린 상태라면 죽도록 갈구지 않아도 될 테니.    
 
 
상병 임재홍 (20060809 085729)

삐~익 해뜸. 국기올림. 정말 끔찍했습니다. 정복 갈아입고 삐질삐질(...) 졸린 눈으로 국기함 들고가다 계단에서 미끄덩(...)으악! 

군대에서 일 이병들이 권력을 가질 가능성은 '자연적으로' 100%에 가깝지만, 밖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위로부터의 변화가 가진 한계가 아닐까합니다. 어쨌든 군대안에서도 이런 생각을 실천에 옮긴다는 것은, K.M씨의 경우와 같이 고집과 뜻을 같이하는 동기가 없다면 완성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절대 공감하지만 잘 하고 있느냐라고 자문한다면 확답하기 어렵습니다, 10명밖에 없는 생활관에서도.(땀) 변명하자면, 고집은 있으나 동기가 없어서 외롭다는 것입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