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적인 파시즘 (1)
병장 이건룡 05-15 13:47 | HIT : 233
매혹적인 파시즘(제작 중).
아직 적고 있어 1, 2부로 나누어 올립니다.
수잔 손택의 <우울한 열정>에 실린 '매혹적인 파시즘' 글은 레니 리펜슈탈이라는 히틀러 집권 시 나치의 정치예술의 중심에 있었던 배우이자 영화감독에 관한 글이다. <우울한 열정>에는 그 외 풀 굿맨, 벤야민, 롤랑 바르트, 지버베르크, 카네티, 아르토에 대한 그녀의 글이 수록되었다(그녀의 70, 80년대 글이다). 벤야민 탓에 책을 구입했는데 예감과 달리 카네티와 아르토가 인상이 깊었다(그러나 벤야민 부분은 두 번 정도 읽었지만). 그들은 글은 추후에 읽어 보길 기약한다. 물론 소개된 이들에 대한 책 또한.
레니 리펜슈탈에 대한 소개 겸 정리할 요량으로 예전부터 몇 자 옮겨 놓았는데 기회가 없어 좀 늦어지게 되었다. 처음?파시즘의 미학의 측면의 중심부에 위치한 그녀에 대한 소개로 파시즘에 대한 피상적인 적개심 보다는 좀 더 접근하자는 취지였다. 당시 그 전에 읽은 진중권씨의 씨의 글 '삼족오 소년 소녀대'에 대한 주간 동아 지에 실린 글로 추진력을 얻기는 하였지만 지금 막상 접근성이 용이한 이 글로 인용하려 보니 수중에 없었다(간부 분의 것인데 뒤적이니 행적이 묘연하다). 우연히 씨네21을 보다 보니 진중권씨의 <이미지의 황홀경>이라는 텍스트에서 이와 비슷한 글이 있었다. 마지막 그가 붙인 '추기'에서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얼마 전 고구려 드라마를 보고 감동 먹은 이들이 '삼족오 소년 소녀대'를 조직했는데, 그 스카우트의 복장과 상징이 공교롭게도 히틀러유겐트의 것을 빼 닮았다......"
그의 계기는 영화 <300>에 활력을 얻은 미디어사회에 대한 비난으로 벤야민을 인용한 바에 덫 붙여 수동적인 대중의 감성의 무지의 결과인 문제의 '제복'으로 관심의 기호를 돌린 듯싶다. 사실 두 글 중 어느 글이 먼저 기획되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둘 다 수잔손택의 글안에 포함된 주제들이기도 하다.
분명 <300>은 어느 정도 재미있게 본 영화이고 정직하지 못한 루트로 보았다 해도 형편없는 영화까지는 아닌 것 같고. 이모저모 뜯어보면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닌 작품이기도 하지만. 우람한 배우들의 몸과 마초적인 에네르기 넘치는 스파르타 전사들의 활극은 관객 (특히 남자 관객)으로 하여금 지지를 보내게 충분한 영화로 본다. 근래에 이런 영화가 드물었던 것 같아 환영하는 분위기 같은데 진중권씨의 비난은 혹독한 것 같다. 그에게 있어서 <300>은 '이런 영화'쯤으로 분류되는 듯싶으니. 그의 텍스트를 참고하자면 원작인 만화라 플롯이 빈약하다는 점과 으레 있을 법한 이런 영화에 흔히 찾아 볼 수 있다는 무엇이다. 그 무엇을 따라 읽는다.
"'컴퓨터그래픽'이란 결국 만화와 사진의 결합이다. 만화는 맥루언(*?)식으로 표현하면 정세도(해상도) 떨어지는 전형적인 '쿨미디어'다. 하지만 그래픽이 컴퓨터를 만나면 사정이 달라진다. 컴퓨터는 그래픽을 뜨겁게 달군다. 디지털 기술은 그래픽의 환상적 이미지에 사진보다 더 실감나는 고해상의 하이퍼리얼리티를 부여한다. 이때 환상은 관객 눈앞에 사실보다 더 실감나는 현실로 나타난다. 환상이 고해상의 실재가 되어 나타나내는 것."
4 월 마지막째 주 씨네 21에서 함께 수록된 영화 평론가(정성일, 김영진, 황?미)들과의 장윤철 감독과의 대담에서 감독 입장의 정윤철씨가 평론가들에게 꼬집는 점은 영화감독이 표현한 미학적 기호에 대해 분석과 이해를 해달라는 호소이다. 이를 입각해서 보면 <300>에서 나온 '정의'등의 여러 분야에 대한 설명은 글의 주제 상 부합하지 않는다 해도 이러 식. 달랑 <300> 하나 놓고 '이런 영화' 논한다는 것은 불공정하다 생각한다.분명 이는 한번쯤 제고해봐야 할 내용이다. <300>이 그만큼 맥락을 점치는데 탁월하고 적절하드는 셈 쳐도 하나를 통해 대중이 영화나 미디어의 황홀함에 노출된 이유에 대한 편협한 고려는 적절하지 못하다.
(* 추가 인용한 베냐민에 대한 불만 : 발터 벤야민 이름으로 출간한 책들이 많은데 그는 여전히 벤야민이 아닌 베냐민이라는 표기를 선호한 것 싶다. 약간의 흠이지만 집착이나 고집이 심하지 않은 가도 싶다.)
그러나 물론 누구나 그의 글을 읽어보거나 문제를 제기해 보아야 하는 책임이 있다(저 또한 주말 반나절을 TV에 눈을 고정하는 우매한 대중이니). 그가 "나치는 역사를 신화로 대체했다."고 밝히 바도 있고 글을 쓴 취지처럼. 나치의 정치적인 호소를 담은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찍은 장본인 리펜슈탈에 대한 수잔 손택의 고찰을 따라가 보자. 그에게 있어 영화와 광고를 나치는 훌륭한 선전물로써 이용하였다. 이 문제에 대한 수집한 정보가 궁금하지만 사정상 아쉬울 수밖엔 없다. 그전에 마지막으로 그의 글을 이후의 작업의 여흥삼아 마지막 대목을 옮겨 본다.
"오늘날 무구한 눈으로 실사와 그래픽을 구별하는 것은 어려워졌다.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의 관객은 더 이상 고증을 요구하지 않는다. 생성 이미지 시대의 대중의 의식, 복제는 원본(史實)과 부합할 의무를 갖고 있으나, 피사체 없는 생성은 애초에 일치해야 할 원본이 없다. 중요한 것은 현란한 디지털 영상의 미적효과다. "현존재는 오직 미적 효과로서만 정당화 된다" 이 유미주의 적 시대에 텍스트로 쓰는 '역사'는 이미지고 그리는 '신화'로 대체되고 대중은 황홀하다."
병장 이건룡
계속 서 내려가기도 바쁜 마당에 잘못된 부분이 많아 많은 교정이 필요하군요(교정 작업도 진척중입니다). 05-15
상병 김재영
한겨레신문에서는 의도적으로 '베냐민'으로 쓰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외래어의 경우 소리나는 대로 적는 것이 맞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한 것 같습니다. 05-15
병장 이승일
글 잘 읽었습니다. 저 역시 우연히도 두 기사를 모두 보았습니다. 정작 영화 <300> 은 못봤지만, 대체적으로 공감가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실보다 더 '사실적인' 공상의 표현에 의해 파시즘(혹은 그 무엇이건간에)은 사람들에게 더 자연스럽고 더 친숙한 것으로 다가간다는 내용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우리가 무언가를 간과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체 어떻게 사실보다 더 사실적일 수가 있을까요? 위 기사에서는 사실적이라는 말 대신 미학적이다 라는 어휘를 사용하여 이 문제를 피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심해서 생각해봅시다. 이건 미학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 영화가 위험하다면, 그것은 더 매혹적일 뿐 아니라 더 사실적이기 때문에 위험한 것입니다. 만약 단지 아름다움의 문제라면 훨씬 더 아름다운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위험하진 않습니다. 사실을 대체하려고 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런 영화들이 사실보다 더 사실적이지 않다면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사실보다 더 사실적이라면, 우리는 걱정해야겠지만, 새로운 문제에 봉착하고 맙니다.
대체 '사실보다 더 사실적이다' 라는 것이 어째서 가능할까요? 그것은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것이 실제로 존재해야지만 가능한 표현 아닙니까? 눈에 보이는 현실 역시 원본이 아니라 하나의 복사본이기 때문에, 그것보다 더 사실적인 복사본이 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만약 이러한 구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300> 에 대한 위와 같은 우려는 아주 이상한 것이 되고 맙니다. 05-15 *
병장 이건룡
재영// 그렇다고 해서 벤야민을 베냐민 등으로 나누어 부를 수는 없습니다. 외국어라 해서 굳이 혼란을 부추길 필요 없는 것 같고. 사소한 문제이겠지만 언제까지 감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승일// 일명 '영상의 파시즘'에 대해 불가피하게 적어 놓았지만, 이후 의도는 다른 방향으로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승일님이 제기하신 문제는 중요하지만 이에 대해 생각해 보다가 갈피를 잃을 까 두렵군요.
몇마디 붙이지면 진중권씨씨처럼 만화를 극화시킴으로 더욱 (임의로 제작된) 리얼리티를 필요 할 테죠. 그러나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억압과 압박이겠지만 반면에는 설득력을(관객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고증이나 표현의 조심성 등의 감독의 노력이나 화답으로도 들을 수 있습니다. 사실 영화는 소비의 행위로 대다수 초점이 맞추어 가고 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영화를 보는 게 당연한 문화에선. 더구나 관객을 입맛을 고려하는 영화를 찍는 문화가 주류 간 된 판에?
이후 내용은 좀 더 다른 내용으로 구상 중인데 문제는 승일님 글을 읽다 보니 형편없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지 의심이 드네요. 사고가 막혀가고 있습니다. (좌절) 05-16
병장 이승일
건룡 / 이런, 제가 괜한 ... (퍽) 제 말 신경쓰지 마시고 구상대로 보여주시면 좋겠어요. 05-17 *
병장 이건룡
농담입니다. 괜히 안풀리니깐 그런 소릴...한거죠. 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