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Eat Marshmallow ………. Yet  독서 후기
“그 선택”
05-73057247
본부근무대
상병 박수영

자본주의 사회의 발달로 소비와 욕구는 사양해야 할 대상에서 추구해야 할 대상으로 천이했다. 사람들은 누구라도 각자의 욕구를 충족하며 살아가며, 우리의 행동 원리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욕구에 의한다. ‘나는 이게 하고 싶어’, ‘나는 이것이 가지고 싶어’ 라는 뚜렷한 욕구와 목표를 향해 사람들은 움직이고 행위하며 또한 살아간다. 
[마시멜로 이야기]는 이러한 욕구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요구한다. 인간의 욕구는 다양한 빛깔과 맛을 지닌 마시멜로처럼 각기 종류와 특성이 다르고 그리고 층위가 다르다. “난 건강한 육체를 가지고 싶다” 라는 욕구는 상위 층위에 속하고 “나는 지금 햄버거가 너무 먹고 싶다.” 라는 욕구는 상대적으로 저급 층위에 속한다. 햄버거는 칼로리가 높을 뿐더러 저급 지방이 포함되어 있어 먹을수록 콜레스테롤이 높아져 건강에 썩 좋지 않다. 따라서 상위 층위의 욕구 – 빛나는 마시멜로 – 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나는 지금 햄버거가 너무 먹고 싶다” 라는 저급 층위의 욕구를 참아야만 한다. 하지만 “햄버거를 지금 당장 먹는 것”이  “햄버거를 참아 건강한 육체를 가지는 것”에 비해 훨씬 간단하게 욕구를 충족할 수 있으므로 – 그것이 ‘진정한 마시멜로’이던 보통 마시멜로이던 간에 – 사람들은 쉽게 저급층위의 욕구를 선택해버리곤 한다. 저자는 따끔하게 말한다. 

‘좀 더 큰 만족의 가능성을 헤아리지 못한 채 눈앞의 욕구를 충족하는 데 자신의 자유의지를 활용한 것이지.’
 
그러나 더욱 진정한 마시멜로를 손에 넣기가 힘든 것은 눈앞의 마시멜로의 가치가 쉽사리 판단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진정한 마시멜로를 손에 넣기 위해 어떤 고난이라도 이겨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찰리의 햄버거처럼 먹느냐 안 먹느냐의 간단한 ‘선택’으로 귀결된다면야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우리는 삶의 어느 지점에서 햄버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고 복잡한 ‘선택’의 순간을 맞닥뜨리게 된다. 이 순간 눈앞의 커다란 마시멜로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삶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화할 수도 있는 것이다. 
6년 전. 17살의 여름에 나 또한 이러한 큰 선택의 순간을 마주하고 있었다. 나는 그 당시 ‘국적의 선택’을 두고 갈등하고 있었다. 부모님들께서는 보다 선진 기술과 문화를 접하기 위해 7년간 미국에 유학을 가셨고 나는 그 유학시절에 미국에서 태어났다. 한국인 국적을 가지고 계신 부모님 간에 태어난 나는 물론 한국인이었지만, 미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동시에 미국인이기도 하였다. 이른바 이중국적자였다. 부모님은 유학을 마치신 후 바로 한국으로 귀국하셨기에 내가 미국에서 지낸 시간은 3년 남짓한 짧은 시간뿐. 귀국 후 한국에서 죽 성장한 나에게는 미국 시절의 기억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나 자신이 이중국적자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친 것도 아니었기에 나는 평범한 한국의 학생으로서 생활했다. 그러나 국제법의 개정으로 인해 나는 언제까지고 두 개의 국적을 가진 채로 생활 할 수는 없었다. 내가 18세가 되던 해에 나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한국이냐? 미국이냐?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나는 17세가 되고서야 비로소 부모님께 그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부모님께서는 최종적인 결정을 나에게 일임하셨다.
-	너의 인생이다. 신중히 생각해라. 너의 평생을 좌우할 중요한 결정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미국을 택해야겠다’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럼 군대에 안 갈 수 있지 않은가.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라도 가야 하는 군대는 아직 고등학생이었던 우리들에게도 간간히 화제가 되어있었다. 팽배해있던 군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 구타, 폭언, 자살사고 등 – 과 2년이란 시간의 공백이 두려웠던 우리들은 기숙사 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어떻게 하면 병역을 빠지거나 다른 걸로 대체할 수 없을까 하는 화제로 입을 모으곤 했다. 그러던 차에 이것은 합법적으로 ‘군대’를 빠질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겼다. 나는 이러게 말하곤 했다.
  “군대를 가는 사람들 보다 2년이란 시간을 버는 셈이니까 나는 그 만큼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있는 셈이지. 게다가 미국은 강대국이잖아?”
  힘들고 괴로워 보이는 길을 피하면서도 동시에 나 자신의 ‘성공’에도 더욱 도움이 되어 보이는 그 선택은 분명 먹음직스러운 마시멜로였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께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 미국을 선택하겠습니다. 부모님은 담담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	네 의견은 알았다. 하지만 대사관에 가는 건 6개월 후니까 그 동안 곰곰이 생각해보거라.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지 이야기하거라. 
기우라고 생각했다. 어떤 면을 보아도 미국을 포기할 이유 따윈 없어 보였다. 그러나 내 마음을 결정적으로 흔들리게 한 계기가 생겼다. 한창 잘나가는 가수였던 유승준이 미국시민권을 선택하면서 큰 파장이 일어난 것이다. 그야말로 나와 같은 목적 – 병역기피 – 으로 한국 대신 미국을 선택한 그는 사회 전반에 걸쳐서 엄청난 질타를 받으며 가수생명은 물론 한국에 다시는 발조차 붙이지 못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그는 한 순간 ‘유승준’에서 ‘스티븐 유’가 되었고, 그의 이름이 한국에서 다시 유승준으로 불리 우는 날은 없을 것이었다. 이 사건을 보면서 나는 ‘미국 선택’ 이라는 것이 완벽한 마시멜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미국’을 선택함으로써 나는 평생 ‘병역기피자’라는 딱지를 붙이며 살아가게 될 것이었다. 2년의 편의를 위해서 나머지 60년이 넘는 긴 시간에 흠집에 가게 된 다는 사실은 내 가슴에 무겁게 자리 잡았다. 하지만 군대는 여전히 무서운 곳이었고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었다.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이제 더 이상 이전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나는 깊이 갈등했다. 하지만 나 홀로 어떤 결단이 옳은 것인가를 검토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직접적으로 체험한다. 일단 결정된 선택은 이후의 삶에서 교정할 수도 없어, 그 선택의 첫 번째 시연은 이미 삶 자체가 되어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경험자이신 아버지께 조언을 구하기로 했다. 아버지께서는 나의 고민을 차분히 들으시곤 이렇게 말씀하셨다. 
-	‘미국’을 택하면 네가 얻게 되는 걸 생각해보자. 첫째. 2년이란 시간. 넌 그걸 네 또래 아이들에 비해서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지. 둘째. ‘미국 시민권’.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의 일인이 됨으로써 너는 ‘한국’에서 보다 많은 혜택을 누릴 수가 있지.
-	하지만 잃게 되는 것 역시 많단다. 우선 네 이름 석 자는 우리 가족의 호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지. 그건 이 아비와 네가 법적으로 완전한 남남이 됨을 의미한단다. 좀더 나아가면 네가 여태껏 맺어온 인간관계는 거의 와해되게 된단다. 둘째로는 사회적 비난이란다. ‘병역의무’에서 도망가기 위해 ‘한국’을 저버린 도망자로써 한국사회에서 씻을 수 없는 흉터를 평생 짊어지게 된단다.
-	어떤 것이 옳다고 정해져 있는 것 없단다. 사람마다 제 각자의 가치관과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을 테니까. 네가 가장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은 앞으로 너의 미래다. 앞으
로 한국과 연을 끊고 미국에서만 주로 생활할 작정이라면 ‘미국’을 선택하고, 한국과
의 연을 계속 이어가겠다면 ‘한국’을 선택하는 것이 좋겠지. 
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천천히 곱씹어보았다. 그리곤 아버지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똑같은 선택권이 아버지에게도 주어진 다면 어떻게 하실 작정이세요’ 하고. 아버지는 피식
웃으시며 마지막으로 말씀하셨다.
-	그야 한국을 택하겠지. 너의 가장 큰 갈등요인은 군대에서 보내는 2년 때문이잖니?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경험이란다. 군 경험은.

그래서 결국 나는 지금 군에 있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주민등록증도 여전히 내 지갑 한 구석에서 존재감을 빛내고 있다. 선택 당시 뿐 만 아니라 그 후 대학시절과 지금의 군 시절에 이르기까지 나의 선택은 수도 없이 구설수에 시달렸다. 
‘왜 고생을 사서하느냐’  ,  ‘2년이 아깝지 않느냐’  ,  ‘미국 시민권이 얼마나 취득하기 힘든데 그걸 포기하느냐’  ,   ‘이런 미련한 놈’ 등등.
  하지만 나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나는 오로지 ‘성공’이라는 진정한 마시멜로를 위해 달려갈 뿐이다. 내가 선택한 이 길이 힘들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이라고 해도 관계없다. 오히려 나는 병역을 피할 수 있었는데도 당당하게 그것을 정면으로 맞서 받아들임으로써 당당함과 국가를 위해 기여한다는 자부심을 손에 넣었다. 만일 내가 ‘미국’을 택해 외국인 신분으로 생활해야 했다면 이런 당당함 대신 ‘비겁자’라는 응어리를 평생토록 지니고 살았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얼마 전 나는 일본어능력 2급 시험에 합격했다. 군에서 짬짬이 시간을 내어 공부하여 이룩한 성과이다. 비로소 나는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 선택은 옳았다고.
그리고 또 지금 군 생활을 함께 하고 있는 여러 전우들에게도 말하고 싶다. 여러분들은 지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공’의 빛나는 마시멜로를 위해 커다란 한 걸음을 내딛고 있는 거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