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멜로 이야기' 다시쓰기 
 
 
 
 
‘마시멜로 이야기’라는 제목은 사실 옳은 번역이 아닙니다. 제목이 책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이러한 책에서는 더욱 그렇죠. 차라리 직역해서 ‘아직 마시멜로를 먹지 마’나 ‘아직 마시멜로를 먹으면 안돼’라고 하는 것이 옳은 번역일 거에요. 요즘이야 이런 명령어투의 제목이 흔하니까 거부감이 들 일도 없죠.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라든지 ‘PING : 핑! 열망하고, 움켜잡고, 유영하라!’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라와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번역도 나쁜 결과를 불러오지는 않았습니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사람들은 이 잔잔한 ‘이야기’를 마시멜로처럼 부드럽게 넘겨가며 읽었으니까요.

‘성공’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다들 옳은 말씀, 지당하신 말씀이고요. 마시멜로 이야기도 성공을 위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삶의 자세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꿈으로 가득찬 졸업입학 선물’ 같은 책에서 신자유주의와 근대적 자본주의의 망령을 찾아내며, ‘한국경제신문에서 출간한’ 이 책의 무시무시한 경제논리의 실체를 파헤치고 타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저 같은 사람은, 이 책을 읽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정신 나간 사람 취급 받기 딱 좋을 거에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겠죠. ‘너는 마시멜로를 먹어치운 것을 변명하려는 거야.’ 

하지만 제가 이런 유의 책을 삐딱한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의 구조 자체가 마시멜로 이야기에 나오는 인내를 무조건적으로 강요하고 있으며, 저로서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것이 과연 인내인가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시멜로 이야기도 번역하면서 원제의 명령어투를 삭제했지만, 그 속에 숨어있는 강요는 숨길래야 숨길 수 없는 것이었지요.

좀더 큰 만족의 가능성을 헤아리지 못한 채 눈 앞의 욕구를 충족하는 데 자신의 자유의지를 활용한 것이지.

소비가 미덕인, 욕망이 미덕인 시대에서, 욕망의 억제와 조절은 ‘숭고한 의지’로까지 추켜세워지고 성공한 사람들은 ‘성공’을 위해 ‘욕망’을 억제하라고 조언합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리의 사회는 욕망을 기초로 하여 세워진 것입니다. 끊임없이 욕망을 부추기고 욕망을 사고파는 것이 기본적인 구조이며 체계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더 큰 욕망을 위해 지금의 욕망을 다스리라고 말합니다. 왜 우리가 지금의 욕망에 충실하면 안 되는지에 대해서는 아주 간단하게 대답하지요. ‘현재의 욕망을 채우면 미래의 욕망을 채울 수 없다.’

이것이 옳은 대답일까요? 역으로, 우리는 욕망을 다스리라고 말한 ‘그들’에게 어떠한 욕망이 숨어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더 큰 욕망을 부추기는 사람들은 더 많이 가진 자들입니다. 그들은 마시멜로를 두 개 이상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어린 조나단의 욕망을 억제할 수 있었고, 이러한 욕망의 조정은 더 큰 욕망을 위해 맹목적으로 달려드는 찰리 같은 이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죠.

찰리를 예로 들어볼까요. 그는 운전기사라는 직업과 병행할 수 있는 새로운 부업으로 ‘사이버 중개인’을 선택합니다. 조나단이 준 노트북을 활용하여 ‘사이버 중개인’이 된 찰리는 짭짤한 부수입을 올릴 수 있었죠. 하지만 그의 수입은 찰리와 같은 야구카드 수집가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고, 매달 청구되는 인터넷 접속 수수료는 고스란히 조나단 같은 부자들의 통장으로 입금될 겁니다. 결국 자본이 자본을 창출하는 구조는 그대로인 채 그 구조 속에 흡수될 수밖에 없는 개인으로 길들여지게 되고 성공이라는 욕망은 개인을 더 큰 자본을 위한 노예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렇게 욕망에서 이탈한 채 현재에 적당히 만족하고 삶을 꾸려나가는 이들을 하나 둘씩 끌어들이는 것으로 사회의 구조는 점차 견고해지게 되겠죠. 

자네는 오랫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그걸 받을 자격이 있네. 이제 마시멜로를 한두개쯤 먹을 때도 되었지.

우리가 보았을 때 찰리와 조나단은 그다지 행복한 인물이 아닙니다. 찰리는 욕망에서 이탈한 듯 보이지만 현실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운전기사로 취직할 수밖에 없었고, 조나단은 아직도 더 큰 욕망을 위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지 못하고 일에 매여 사는 - 5억개의 마시멜로를 위해 그가 가지고 있는100만개의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쌓아두기만 하는 ? 기업가입니다. 그는 남은 일생동안 1초에 하나씩 마시멜로를 먹는다고 해도 다 먹지 못할, 천문학적이고 공허한 숫자에 매달려 자신의 인생을 자본에 헌납하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운전기사와 식당에 가고 가끔 휴가를 떠나는 데에는 100만개의 마시멜로로도 충분한데 말이죠.

그때가 되면, 자네도 그 누군가에게 마시멜로 이야기를 해 주게나. 그리고 그가 가장 좋은 시기에 그 마시멜로를 먹을 수 있도록 도와주게.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30일 후에 얻을 5억개의 마시멜로가 아니라 지금 가지고 있는100만개의 마시멜로일 수도 있습니다. 내일 먹을 두 개의 마시멜로보다 이틀에 걸쳐서 먹을 수 있는 두 개의 마시멜로가 더 달콤할 수 있는 것은 오늘의 만족과 내일의 기대가 정상적인 범위 내에서 한꺼번에 충족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것은 ‘당장 마시멜로를 하나 먹을까 기다렸다가 두 개 먹을까’가 아니라 마시멜로를 먹기에 가장 좋은 시기를 정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사회와 경제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습니다. 성장과 분배라는 이분법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과연 성장과 분배를 어느 정도의 비율로 조정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까를 먼저 생각하는 것 말이에요. 무조건적인 성장은 성장의 크기만큼 길다란 그림자를 만들 수밖에 없으며 무조건적인 분배는 성장의 앞을 가로막게 되지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최대한 충족시킬 수 있는 황금비율이며, 성장과 분배를 따로 생각하지 않고 ‘더 큰 성장을 위한 분배’와 ‘더 큰 분배를 위한 성장’을 긍정하며 서로 맞추어나가는 과정 그 자체입니다.

애석하게도, 기성세대는 현재를 희생당해 지금을 누리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우리 세대는 미래를 거세당해 내일을 가꾸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바로 그렇기에 오늘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옛이야기가 더 인기를 끌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쪽에서는 연금술사를 읽으며 다른 한쪽에서 마시멜로 이야기를 읽는 사회란 슬픈 일이죠.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그 어느 쪽도 반대편을 위해서 희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상향은 자본만이 살아남는 비인간적인 신자유주의도 아니고 모든 이들이 똑같이 무력해지는 복지사회도 아니니까요.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치열한 고민 없이 타성에 젖어 오늘을 되풀이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미래를 위해 계속하여 오늘을 희생하는 것도, 오늘을 위해 계속하여 미래를 희생하는 것도 틀렸습니다. 자신의 정답은 오로지 자신만의 것일 뿐, 남의 정답이 자신의 정답일 수 없습니다. 사회가 만들어낸 구조 속에 함몰되지 않는 것은 무척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욕망을 가져야 하며, 하나의 욕망으로 묶어내기 위한 모든 시도들을 타파해야 합니다. 우리는 굴복하지 않는 법, 욕망에 굴복하지 않고, 더 큰 욕망이라는 구조적 강요에 굴복하지 않는 법을 익히고 자기 자신에 충실한 것이야말로 가장 커다란 성공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당장 해야 할 일은 마시멜로를 먹는 자신보다 내가 원하는 마시멜로를 찾아내고 얻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자신을 만들어나가는 것입니다. 



덧. 이 글은 허원영 필진님의 '과자에 대하여'의 주석이기도 합니다.(나름대로는 확장판이라고 썼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어제 한 시간 넘게 송희석 상병과 했던 대화 때문이기도 하고, 불침번 서고 나서 잠이 오지 않은 나머지 손에 닿았던 고참의 책을 30분만에 후딱 읽고 잤기 때문이기도 하며, 가끔 심심할 때마다 베스트셀러 1위의 책을 읽고 반론을 쓰는 제 오래된 변태적 습관 때문이기도 합니다. 

송희석 상병과 대화하면서, '왜 송희석 상병의 글은 무수한 반박을 낳게 되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제가 '아예 원론적으로 이야기하면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그런 건 김동석 상병 전문이잖습니까' 라고 해서 한 번 써본 것입니다. 칼럼이라기보다는 독서후기에 가깝긴 하지만, 어쨌든 칼럼을 쓰라는 약속은 지킨 셈입니다.

여기에 올릴 수가 있는 거였군요. 전 레벨이 낮아서 못 올리는 줄 알고, 예전처럼 촌장님이 옮기시는 건줄 알았습니다. 음. 쑥스럽네요.
* 병장 김동환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2-12 13:20) 

  
 
 
 
일병 허익준 (2006/02/10 14:47:23)

어라, 지워졌다가 다시 올라왔네요. 음,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이 글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단 한마디. "미래를 위해 희생하고 있는 현재는 과거에 그렇게 바라던 미래일 수도 있다."라는 것. 역시 이런 책은 거부감부터 먼저 생깁니다. 네.    
 
 
병장 김형진 (2006/02/10 14:48:30)

...다시 코멘트 달고 싶은데, 의욕상실. 
그러니까, 왜 지금의 코멘트를 위해서 아까의 코멘트는 희생되어야만 했던 겁니까.    
 
 
 병장 김동환 (2006/02/10 15:09:10)

저도 새로 가입하신 분들 가입인사에 달았던 댓글이 몇개 없어진것이 뭔가 알수없는 
게시판 오류가 있는것 같아요. 관리자님께 문의해 보겠습니다. 
동석님이랑 댓글이 증발한 분들께는 죄송.(땀)    
 
 
상병 송희석 (2006/02/10 15:44:15)

역시 어제 이야기한 보람이 있군!(웃음) 
이것은 모두를 위한 글은 아니네요! 
그래도 좋은 글임은 분명하네요!    
 
 
일병 최태욱 (2006/02/10 18:07:46)

참 공감이 많이 가는 글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글을 읽고 다름(difference)의 가치와 
'강요'와 '억압'의 구조에 대해서 생각해봤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남들이 갖지 못한 자신만의 아름다운 향기를 갖았으면 합니다.    
 
 
상병 노지훈 (2006/02/10 19:30:25)

와우 첫 칼럼이시네요. 모모에 반대하다에 이어 마시멜로에 반대하다 인가요. 
마시멜로를 못봐서 모르는 내용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공감이네요.    
 
 
병장 허원영 (2006/02/10 19:43:06)

동석 님 / 왜 책가지에 올리지 않으신 겁니까. 이건 [칼럼?]이 아니라 [칼럼!]입니다. 촌장님, 글 이동시켜주세요! 
덧붙이자면, 미래의 '더 많은 마시멜로'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현재의 마시멜로'가 넘칠만큼 충분한데도 쓸데없이 축적되어 썩어간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한쪽에서는 기아로 수만 명이 굶어죽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음식물 쓰레기가 수만 톤에 이릅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자판기 커피 세 잔 값이, 다른 한쪽에서는 일주일의 식량을 살 돈이 됩니다. 이런 불평등, 이런 부조리가 버젓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그저 쌓아두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아주 그로테스크한 현대의 경제논리에 있습니다. 인간이 축적의 욕망을 가지지 않았다면 세상은 과연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저는 그것이 정말로 궁금합니다.    
 
 
병장 김지훈 (2006/02/10 19:51:28)

소위 말하는 '성공'을 위해서 읽으면 그것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겠고, 
모두가 원하는 '행복'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진정 그것을 위하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될듯 하네요. 
하지만 먼저 전자를 생각한다는 것은 현시대 20대의 비뚤어진 현실과 
영원히 오지않을 '안정'을 가진 후에 '행복'을 찾길 원하는 슬픈 나를 돌아보게 하네요. 
두가지 생각을 다 가지고 읽어보도록 해야겠군요. 
마지막 글은 특히 맘에 드네요. 혹한기 준비 잘해요.(웃음) 
원영 님/인간이 '더 많이 쌓기 위해' '쌓은 것'을 사용하여 '나은 것'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인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만일 '그저 쌓아두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다면 '발전'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역시 그로인한 부조리는 안타까울 뿐입니다.    
 
 
상병 박민수 (2006/02/10 23:25:26)

이야기와 관련은 없지만, 요즘 트랜드가 되어버린 것만 같은 이런 성공지침서, 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런 류의 책들의 파급효과는 여전히 무시무시하더군요. 아직까지 나오는 책들도 많고, 베스트셀러 순위에서도 이름을 내리지 않고 있으니. 음. 너도 나도 마치 경쟁하듯이 읽어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중에 다들 저렇게 살면, 놀이문화도 많이 변하겠구나.' 뭐 이런 뜬금없이 생각도 들던데. 하하.    
 
 
병장 김성환 (2006/02/13 11:26:18)

그러게~~ 진작에 먹으랬잖아~!!!    
 
 
병장 장수용 (2006/02/26 08:07:26)

저는 워낙 어려서 부터 가난하게 자란 탓인지 성공하고 싶다는 욕구가 구쳐 마시멜로를 읽게 되었는데 
이 책은 언제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기다려 더 많은 마시멜로를 얻는 방법만이 나와있을 뿐이지 
마시멜로를 언제 먹는지에 대해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언급했군요. 스스로 먹어도 되겠다 싶을 때 먹으라고...이 말은 정말 경제적인 말 같았습니다. 
그래서 전 이 책이 좋더군요.    
 
 
상병 백경민 (2006/03/04 11:26:28)

이 책이 보기에 따라 이렇게 다른 의미로 해석될줄은 몰랐네요. 
책을 볼때 저만의 관점을 한번 생각해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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