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비롯한 이 땅의 수많은 젊은이들은, 소위 대학(大學)을 다니면서, 
무수한 리포트를 썼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쓰고 있다. 


* 'report'로는 부족하다 - '자득(自得) 보고서'로의 전환 

우리는 학문의 전당이라고 하는 대학에 들어와 헤아릴 수 없는 리포트(report)를 쓰게 된다. 우리말로는 흔히 '보고서'라고 하는데, 나는 그것들이 과연 '무엇에 대한' 보고서인지 의심이 갈 때가 많다. 다시 말해 우리는 지금 '어떤 내용을 보고하고 있는가'라는 문제이다. 

잘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보고서'라는 명칭 자체에는 그 대상(목적어)이 누락되어 있다. 이 점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많은 학생, 심지어 교수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통상 '리포트'라고 부르는 대상에 대해 지니고 있는 평균적 인식은 대개 '지식'에 대한 보고, 그 이상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단지 지식의 취합으로서 '리포트'라는 활동이 이루어진다면 이것은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가 진정 원하는 바가 '한컴타자연습' 혹은 'Ctrl C'와 'Ctrl V'만으로 이루어진, 아니면 '마우스의 원활한 드래그(drag)능력'을 검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본래 지향하는 바는 마땅히 '공부(工夫)활동'에 대한 보고서의 개념으로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나는 현재 무비판적으로 쓰이고 있는, '리포트'란 용어 자체를 거부하고, '자득(自得, 스스로 깨달은 바, 그 변화 양상의 의미) 보고서'라는 명칭을 그 대안으로 내놓고자 한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곳은 어디인가. 무엇보다 '결과물 이전의 과정', '깊은 고민의 흔적 그 자체', '자기류의 언어구사'를 최우선적 고려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자득보고서'는 각자 느낀 '정신적 움직임'을 훤히 드러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자득보고서'에는 주제에 대한 정확한 내용 이해와 더불어, 반드시 자신의 논평(論評)이 핵심을 이루어야 한다. 이 밖에도 각자가 지닌 주 관심분야의 명시, 주제의 선정, 자료의 수집과정, 적절한 글쓰기 형식에 대한 고민 등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야 할 것이다. 또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막상 해당주제와 직접적 관련이 없더라도, 공부과정에서 발생한 임의의 새로운 아이디어 등이 매우 큰 비중으로, 진지하게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특정 주제를 각자의 '어떤 취향'과 학문적 관심에 따라,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실제 '어떠한 자료수집과정'을 거쳐서 자신만의 참고목록을 구성하며, '어떠한 글 형식'에 담아내고 싶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실제 본문 '못지않은 비중으로' 드러나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이미 어디엔가 완결되어 있는 지식을, 화려하고 보기좋게 정리해 내보이는 것이 주(主)가 아니라, 비록 거칠고 완정(完整)하지 않더라도 각자의 문제의식, 사고과정, 개성적인 목소리와 색깔이 뚜렷하게 부각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단순히 '특정 지식에 대한' 보고서가 아닌, 또한 형식적인 '서-본-결'(이것들은 말 그대로 껍데기에 불과하므로)에 전혀 구애되지 않고, 알짜 고갱이라 할 수 있는, 각자 스스로 당당히 거친 '공부과정의 전모(全貌)'를 밝히는 진정한 '자득보고서'가 씌어져야 한다고 믿는다.